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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8일 요한, 14,7-14.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작성자*김희칠 대건 안드레아|작성시간18.04.27|조회수54 목록 댓글 0

복음

 

요한, 14,7-14.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느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는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내가 진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을 볼 수 없는 분이시니,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허상이거나 자기만또는 자신의 바람을 투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필립보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예수님의 통해서라도 하느님을 뵐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런 필리보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의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져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실로 체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의 얼굴이시고,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시며,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십니다.

 

강생의 신비인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입니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 한계를 지닌 인성과 대도되는 초월적 신성에 대하여 다양하게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교는 그들과 달리 초월적 신성의 하느님께서 한계를 지닌 인성 안에 머무르시며 인간을 영원한 신적 생명에 초대해 주고 계시며, 인간이 하느님께서 다가가는 절대적 기준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한 인격과 만남에 있다고 확신하며 기르칩니다.

한 인간의 완성이 고통과 죄,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 희망에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믿는 이에게 더 이상 세상의 한계들을 영원한 희망을 가두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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