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예수님의 왕좌
21일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거기에서 그들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말, 라티말, 그리스말로 쓰여있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엥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는 유다인들의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썼으면 그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19.17-22)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장면이 마치 임금님의 즉위식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빌라돠 직접 십자가 위에 명패를 써서 다는데, 그 내용이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입니다. 지상의 권력인 빌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을 임금이라고 고백하는 셈입니다. 또한 이것이 히브리 말, 라틴말, 그리스 말로 쓰였다고 요한복음은 전합니다. 히므리 말은 종교적 언어의 상징입니다. 라틴말은 당시 정치적 언어의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말로 당시 경제적, 문화적인 언어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 가지 대표 언어를 통해 온 세상의 임금으로 선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을 주는 사형 도구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제 예수님의 왕좌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왕좌라는 요한복음 메시지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큽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꺼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하늘 어좌에 앉게 할 것임을 요한복음은 일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 목걸이나 팔찌는 하고 다닙니다. 또 방이나 책상에 십자가를 모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표현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을 가까이 두면서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갈 생각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생명의 월계관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십자가는 장식품이나.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기꺼이 삽지가를 지고 가겠다는 다짐이어야 합니다. 긜고 십자가야말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앉게 될 영광의 자리임을 고백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주님, 고통은 주지 마시고 평화만을 주시라고 청하지 않겠습니다. 십자가는 피할 수있게 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청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 보여주신 대로 고통을 통해 참 평화를,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제게 주어진 고통을 누눈가를 위한 사랑이 되게 하시고,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게 하소서.
21일째...
예수님이 골고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19.17-30)을 주의 깊게 읽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