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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강론

작성자*김희칠 대건 안드레아|작성시간26.06.08|조회수24 목록 댓글 0

                                            제일 큰 선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대상 그 존재 자체이지 않을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도 나 자신일 겁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구요?

너무나 뻔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의외로 뻔합니다. 그 뻔한 걸 이해하거나 실천하지 못해 한평생 무

난하게 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사람이 나에게 물질적인 큰 가치를 주어야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 자체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원하는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 그 사랑하는 존재에게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고마움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가치로 주어

져야 믿으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고마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체입니다. 너무 식상하고 뻔하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뻔한 걸 잊고 살기에 주님의 사랑을 잘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고마움을 알 수 없듯이,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한다면 나는 훨씬 더 신앙적으로 성

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성체를 모실 때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 주님께 "아멘!" 이라고 응답하면 좋겠습니다.

성체성사의 다른 말은 "감사의 제사" 이니까요 나의 신앙의 크기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을까요 


말씀 KEY WORD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51)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내려오다'라는 그리스말 동사 카타바이노(?)는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행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의 기원과 사명을 설명하는 신학적

언어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노력하여 하늘에 도달한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신 사건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요한 복음 1장은 육화 사사상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

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선언은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가 사라진 순간을 증언합니다. 보이지 않던 말씀이 얼굴을 갖게

되었고 손에 잡히지 않던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랑은 언제나 내려오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머물러 숭배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낮추어 상대의 삶 가까이 다가갑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빵이라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빵은 가장 평범한 음식이지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누군가의 생명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사랑은 하늘의 영광 속에 머물지 않고 세상으로 내려와 나누어지고 부서지며 마침내

생명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빵은, 사랑이 얼마나 멀리까지 내려올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아름다운 육화의 비밀입니다.

 

다산 성당 주임 / 이강재(요셉) 신부

 

2026년 6월 7일 본당 주보에서 옮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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