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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올리기·마귀경…하원 '축산 풍속도'

작성자영실|작성시간15.01.06|조회수157 목록 댓글 0
상산 올리기·마귀경…하원 '축산 풍속도'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4.하원공동목장 ②
2014년 04월 28일 (월) 14:59:53 김봉철 기자
  
 
 ▲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원공동목장조합은 잊혀가는 제주의 축산풍급과 의례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하원공동목장에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 
 
마을 공동방목 문화 등 다양한 축산풍습 대대로 이어와
지역발전 위해 목장 일부 내놓기도 "산남교육 이어달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원공동목장조합에는 대를 이어 목장을 지켜온 테우리들이 있어 잊혀가는 제주의 축산풍습과 의례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상산 올리기와 보양 비법 등 일부를 소개한다. 또 탐라대 설립부터 폐교까지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하원목장의 역사가 됐다. 하원공동목장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을에 남아있는 옛 축산 풍습
 
'상산'(上山)은 마을 위의 산, 즉 해발 1400m 이상의 한라산 백록담 남사면 고산 초원지대를 가리키는 말로, 여름철 공동목장의 우마들은 진드기와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올라갔다.
 
강만익 박사의 연구(2013)에 따르면, 상산은 물과 풀이 풍부하고 진드기가 거의 없어 방목지로 적당해 일찍부터 애월읍 광령리·유수암리, 서귀포시 하원동·도순동·상효동·하효동 등 백록담이 보이는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상산으로 우마를 올려 방목했다.
 
하원동에서는 하원공동목장에 방목했던 우마나 집에서 기르던 우마들을 선작지왓, 윗세오름, 장구목 일대로 올려 방목했다. 윗세오름 일대는 서귀포시 하원동과 애월읍 광령리 주민들뿐만 아니라 제주시 해안동, 서귀포시 도순동, 영남동, 서홍동 등 과거 남·북군 지역 우마들의 공동방목지로, 전도 우마들의 집합장소이자 테우리들의 만남 장소였다.
 
상산에 우마를 올려 기르기 위해서는 쉼터인 '궤'(바위동굴)가 필요했다. '궤'는 비바람이 불어도 붕괴 위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임시 거처로 이용됐다.
 
하원동에서는 4~5월에 공동목장에서 소를 상산으로 올렸다. 상산에서는 대체로 10월까지 방목했으나 농사 사정에 따라 8월에 소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철 비바람이 불 때 소들은 구상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비바람을 피했다.
 
상산에 방목중인 소들은 '쇠테'(소의 무리)를 따라 옛 북제주군 지역인 애월읍 더럭·상가·금덕, 심지어 하귀마을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방목 중에 잃어버린 소들은 낙인을 보고 서로 연락을 취해 찾을 수 있었다.
 
상산방목이 이뤄질 때 테우리(목자)들은 서로 인정이 있어서 다른 마을 소를 보면 인편을 통해 알려줬다고 한다. 상산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갈 때 솔라니·향·양초를 준비해 상산에 있는 큰 바위 위나 궤에서 고사를 지냈다. 잃어버린 소들은 애월읍 소길리, 장전리 심지어 한림읍 금악리 마을에서 찾기도 했다.
 
상산에 우마를 올렸던 상산방목 문화는 한라산이 1970년 7월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자연보호를 이유로 금지됐으나, 하원마을에서는 1990년까지 상산에 소를 올렸던 사람도 존재한다.
 
좌절된 '산남 대학' 꿈, 향배 관심
 
"이젠 '쇠 대신 사람 키우자'해서 온 동네가 다 나섰주. 절반 값에 땅 팔아준 것도 다 그런 이유라"
 
수십년 세월 테우리로 일하며 하원공동목장조합 조합장을 지내기도 한 원수윤씨(56)에게 탐라대학교 폐교는 아직도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원마을 역사상 마을주민들이 가장 단합된 힘을 발휘해 탄생한 조직'으로 자평하는 하원공동목장조합은 현재도 제주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동목장조합에 해당한다. 민주적이고 체계적으로 목장을 경영해온 역대 조합장들의 헌신에 힘입어 공동목장 조합은 주민 전체가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직체로 성장해왔다.
 
특히 조합원들은 축산업을 통한 경제적 기여 뿐만 아니라 목장부지 일부에 대학을 유치해 산남지역의 '고등교육기관 부재' 문제를 해결는데 뜻을 모으고 1994년 31만743㎡를 당시 시세의 절반인 21억여원에 내놓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1996년 동원산업대학교가 6개 학과 940명 정원으로 개교했고, 1997년에는 4년제 탐라대학교로 전환, 이듬해 10개 학과 450명으로 첫 입학생을 맞으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미래 제주국제자유도시 제주를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한다는 목표 야심차게 출발한 탐라대가 잇단 경영부실로 결국 산업정보대와 통폐합되며 조합원들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 1999년 마을회가 펴낸 「하원향토지」를 보면 탐라대 관련 소개만 10페이지에 이를 정도다. 당시 조합원과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한다. 한때 탐라대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던 조합원들은 탐라대 부지 매각이 결정된 현재, 해당 부지가 조합웝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앞으로도 산남 교육발전을 위해 '교육용'으로 쓰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탐라대 부지는 지난 3월말 제주국제대 이사회 결과 매각 위탁기관이 지정됐지만 어떤 용도로 누구에게 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대학 설립 인가권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국제대 정상화와 산남 교육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봉철 기자 ▲자문단=강만익 문학박사(한국사)·문화재전문위원, 좌동열 문화관광해설사. 

"8소장 중심, 기부·투자로 형성"

적바림  / 강만익 박사

  
 
   
 

하원리공동목장은 조선시대 국마장 중 8소장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현재의 법화사 입구 부근에는 말들을 점검했던 점마청 터와 8소장의 하한선인 하잣(목장경계돌담), 그리고 제주국제대학교 인근에는 상잣이라는 목장유적이 남아있다. 이 마을 공동목장은 면적이 넓어 상잣의 상하부에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갑오개혁을 통해 국마장 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1930년대를 전후로 제주지역의 국마장은 대부분 마을공동목장으로 변모했다.

하원리공동목장조합은 1943년 중문면공동목장연합회장이 제주도목장조합중앙회장에게 보낸 「공동목장지이용상황조사에 관한 건」을 보면 1934년 3월28일에 제주도사(濟州島司)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1936년에 정식출범했으며, 초대 조합장은 원성문씨였다. 1943년에는 조합원은 모두 200명으로, 1구당 1명씩 조합에 가입했다.

「공동목장 이용상황 조사표」(1943)에 따르면, 이 목장조합의 목장용지는 대부분 사유지를 매입해 확보했다. 우마방목에 필요한 목장용지의 대부분은 개인소유의 사유지를 매입해 확보했으며, 특히 상잣 위에 토지를 소유했던 조합원은 토지를 조합에 출자했다. 토지가 없었던 조합원들은 1인 당 10원씩 투자했으며 이 돈으로 180여 정보의 토지를 매입해 목장용지를 확보했다.

일부는 면유지(중문면 소유지)와 도유지(전라남도 소유지)를 빌렸다. 중문면유지는 산16번지 2정보, 전라남도유지는 45정보였다. 마을소유의 리유지(산66번지) 25정보를 기부받기도 했다. 「일제시기 목장조합연구」 (2013)에 따르면, 이 조합은 전형적인 사유지형, 매수형 목장조합이었다.

"외양간에 상차리고 동토 다스려"

적바림 / 좌동열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

  
 
   
 

다른 마을은 낙인을 하기 전에 '낙인코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하원공동목장은 달리 의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낙인을 하기에 좋은 날은 택해서 했는데 좋은 날은 정해져 있다. 즉 인일(호랑이날)이나 신일(원숭이날)에 하는 것이 좋다. 낙인을 하기 전날 비가 오면 더 좋다.

과거에는 좋은 소 한마리를 팔면 밭 하나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소를 살찌게 하는 다양한 보양 방법이 있었다. 일부는 생닭을 손질해 방애톡(절구)에 넣어서 부드러워 질 때까지 빻은 후에 간장과 참기름으로 살짝 간을 해서 소에게 먹였다. 또 자리를 다져 된장과 식초를 조금 넣어 그 국물을 짜서 먹이기도 했고 개의 고기를 삶아 그 국물을 먹이기도 했다.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젖물(젖)이 부족하면 생선류들을 삶아 뼈를 골라내고 그 물에 좁쌀을 넣어 죽을 쒀 먹이기도 했다.

소에게는 질병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가끔은 발톱 사이가 벌어져 염증이 생기기도 하고, 눈병이 생기기도 했다. 발톱에 염증이 있을 때는 밧줄에 콥(소기름)을 발라 박박 문질러줬고 눈병이 생기면 독한 고소리 소주를 눈에 뿌려줬다.

또 과거에는 동토(동티; 건드려서는 안될 땅을 파거나 돌을 옮기거나 나무를 베었을 때 지신(地神)이 화를 내 받는다는 재앙)가 많았다. '쇠막 동토에는 소가 죽는다'고 할만큼 위험했기 때문에 외양간에 상을 차리고 동토를 다스리는 사람을 불러 이를 풀어야 했다. 우선 소 머리 쪽에 음식을 차리는데 멧밥(쌀밥)·머리고진 솔라니(옥돔 구운 것)·술·물을 바닥에 차리고 마귀경(마구경)을 세 번 읽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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