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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 14.테우리 생활사

작성자영실|작성시간15.01.13|조회수165 목록 댓글 0
단절 위기 놓인 '테우리史' 보전 대책 시급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 14.테우리 생활사
 등록 : 2014년 12월 29일 (월) 10:02:16 | 승인 : 2014년 12월 29일 (월) 10:13:48
최종수정 : 2014년 12월 29일 (월) 10:13:43
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 수십년 세월 테우리로 일하며 하원공동목장조합장을 지내기도 한 테우리 원수윤씨(56·서귀포시 하원동)가 소의 목에 줄을 걸기 위한 장대와 밧줄을 보여주며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봉철 기자 
 

생업 떠나며 말 모는 소리도 함께 상실 위기 맞아
목축사 보전위해 생활사박물관 등 방안 마련 필요

"어허 어으 어로로로로 어으~" 제주의 바람을 닮은 할아버지의 노랫소리에 어디선가 풀을 뜯던 말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광경은 앞으로 역사 속,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주의 풍습이 됐다. '마지막 말테우리'로 불리며 조명 받아온 최고령 말테우리 고태오 할아버지가 말테우리 생업을 떠나면서다.

# 경제성 밀리며 사라져간 말테우리

'테우리'는 마을공동목장에서 소나 말을 돌보는 사람을 일컫는 제주어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목장에 말이나 소를 풀어놓는 기간 목장안 관리사에 거주하며 마소를 돌보는 테우리가 예전에는 마을마다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다루기 어려운 말을 대신 관리해주고 일정한 수입을 얻는가 하면 농번기에는 자신의 말을 이용해 밭 볼리기·연자매 돌리기 등 농사일을 돕거나 운반일을 하며 부가수입을 올렸다.

좋은 목초지를 찾아 풀을 먹이고 설사하는 말은 없는지, 또 발정기에 들어서거나 새끼를 밴 말은 없는지 일일이 살핀 후 수의사에게 알리는 역할도 맡았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산으로 올라가 말 돌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농삿일에도 필수였다. 밭에 뿌린 씨앗들이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밭을 고르게 밟아주는 '밭 볼리기' 때는 수십 마리의 말들을 이끌고 다니며 밭을 밟아 흙이 날리지 않도록 했다.

소만 이용했던 타 지역과는 다른 제주만의 고유한 풍속이다.

하지만 '기계'의 등장과 함께 말테우리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경운기를 시작으로 트럭과 트랙터 등 농사용 기계 앞에 말과 말테우리들은 경제성에서 밀려났다. 보리나 조 대신 당근 등 밭볼리기가 필요없는 작물로 바뀐 점도 말테우리들의 수입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다른 일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결국 말테우리는 제주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 보전 중점 '맥 잇기' 시급

고태오 할아버지(87·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4대째, 300년 가까이 이어오는 제주 말테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다. 어려서부터 말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 70년 넘게 말과 함께 살아오며 지금까지 말테우리의 맥을 이어왔다.

제주지역 목장을 취재하면서 50~60대 테우리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고 할아버지 만큼 연륜을 갖춘 말테우리는 찾아보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특히 동작이 빠르고 너른 들판에서 자유롭게 달리려는 습성이 강한 말을 다루는 말테우리는 제주 목축사에서 더욱 귀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자식과 주변의 만류로 지난해부터 생업에서 물러나면서 더이상 구좌읍 너른 들판에서 그의 말 모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한평생 말을 자식처럼 키우며 살아온 고 할아버지의 은퇴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제주 목축사 보전 측면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잠녀문화의 경우 해녀노래가 1989년 제주도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고, 관련 조례도 2009년 제정됐다. 구술자료 정리, 해녀박물관 건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등재 추진 등 다방면에 걸친 '문화재화'와 전승·보전 작업이 늦게나마 시작되고 있는 반면 '테우리'에 대해서는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말 모는 소리만 해도 말을 한곳에 모으는 소리와 목장지 몰고 가는 소리, 밭볼리는 소리 등 유형별로 나뉘어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와 채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경험많은 테우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고령의 테우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

물론 잠녀와 테우리는 절대적인 숫자나 앞으로의 전승 가능성에서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잠녀의 경우 공동체적 문화를 기반으로 전승·발전·보전을 꾀하고 있다면 테우리는 사실상 전승이 어려운 만큼 '보전'에 중점을 둔 연구와 생활사박물관 건립 등이 시급하다. 김봉철 기자

 

"사라지는 제주 문화가 아쉽다"

  
 
   
 

고태오 할아버지

 

"주변 말테우리중 둘은 죽고 한명은 몸이 불편해. 정정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안남았어"

고태오 할아버지는 자신의 대에서 말테우리의 맥이 끊어질 위기가 찾아온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 할아버지는 "말이라는 게 말은 못해도 사람의 말귀는 잘 알아듣는 동물"이라며 "목장갈 때, 농삿일 할 때 말 모는 소리도 예전 어르신들은 다 할 줄 아는 기술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게 됐다"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는 또 "얼마전 행정기관에서 호루라기만 쓰고 있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말 모는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시범을 보여준 적이 있다"며 "또 외국사람들도 찾아와서 제주의 말 모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줬는데, 제주문화를 알려준 것 같아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말 모는 일을 하려 해도 주변에서 '뭐하러 그런 고생하느냐'는 반응뿐이라 아쉽다"며 "소싯적부터 말 모는 일만 해와서인지 이렇게 사라지는 게 아쉽다. 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내가 아는 범위에서 모든 걸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테우리 목축생활사 조사 시급"

  
 
   
 

강만익 박사

 

바다에 잠녀가 있다면, 중산간 초지대에는 테우리가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에는 목자(牧子)라는 명칭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빈번히 등장해 제주사(濟州史)의 핵심요소가 되었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우마를 생산하는 주체였기 때문에 국가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현재 제주사회에서 목축의 주인공이었던 테우리 집단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이들의 목축문화를 계승했으면 하면 바램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테우리들의 목축생활사 조사가 매우 시급하다. 이들이 우마를 길렀던 구체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한 목축생활사 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센터), 대학 내 연구센터 등에서 추진할 수 있다.

 

둘째, 테우리들의 목축문화를 체험하고, 이들의 목축기술을 전수할 '테우리 학교'를 프로그램 형식으로 운영했으면 한다. 테우리 학교는 목축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고문서와 전시물을 비치하고 있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운영할 수 있다.

 

셋째, 테우리 축제가 필요하다. 제주마축제나 들불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에는 테우리가 소외된 감이 없지 않다. 차제에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리립 조랑말체험공원 시설을 활용해 테우리 축제를 열 수 있다. 백중날에 테우리들이 행했던 테우리 고사(백중의례) 재현, 낙인, 거세, 말 모는 소리 경연, 조랑말 경주 등을 소재로 테우리 축제를 진행할 수 있다.

 

테우리가 사라지면 700년 이상 이어졌던 전통적 목축문화가 소멸되는 것은 자명하다. 더 늦기전에 목축문화를 만든 테우리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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