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를 한다고? 네가?"
"족구? 그게 뭔지는 알아?"
"하면 얼마나 하겠어?"
수현이 지인들과 족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남편들의 반응은 이랬다.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아내들이, 남자들에게조차도 흔치 않은 취미인 '족구'를 하겠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엔 서브 하나는 네트를 넘기기도 힘들었고, 공이 오면 우왕좌왕하다 엉뚱한 곳으로 차버리기 일쑤였다. 넘겨준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운동하러 나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덕분에 회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어린이집 선생님' 역할을 해야 했다. 임산부가 생기면 모임을 중단했다가 아이가 자라면 다시 시작하는, 해체와 재창단의 반복이었다.
족구를 전혀 알지 못했던 아줌마들의 족구 입문부터 지금까지 족구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눈물 흘렸던 날들을 뒤로하고 그 아줌마들은 이제 대한민국 족구의 최고 무대라 할 수 있는 디비전 J1 리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차 안에서 이러한 과거를 떠올리던 수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때 울린 알림 소리
'여보! 다치지 말고 파이팅!'
'엄마! 꼭 이기고 돌아와.'
처음에는 비웃던 남편이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고, 자녀는 '우리 엄마는 족구 선수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수현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경기장에 도착한 선수들은 몸을 풀며 준비에 들어갔다. 올 시즌 두 번의 대회에서 충북월드스타는 모두 패배했다. 선수들의 마음은 무거웠고, 특히 공격수 보배는 더욱 그랬다. 화려한 자리인 만큼 패배의 책임도 짊어져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수현이 다가가 말했다.
"보배야!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네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야."
주장 윤경도 거들었다.
"맞아. 혼자 짊어지지 마. 언니들이 부족해도 뒤에서 바쳐줄 테니 같이 성장하자."
언니들의 말에 보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을 굳혔다.
오늘의 상대는 영월동강배 J1에 첫 출전임에도 준우승을 차지했던 강팀, 쏘디엔레오파드.
김종민 감독은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사랑이 공격이 길게 들어오니까 민자, 수현이는 평소 보다 길게 서. 보배는 엔드라인 잡고, 윤경이는 사이드라인에서 움직여. 보배는 공격할 땐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자신 있게 차."
효진과 혜정이 보배의 등을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았다.
- 중략 -
경기 시작을 앞두고, 충북월드스타 선수들이 경기장 입구 복도에 들어섰다. 복도에는 이미 쏘디엔레오파드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쏘디엔레오파드의 이정훈 감독이 충북월드스타 선수단을 보자 깍듯이 인사를 했다. 쏘디엔레오파드의 선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어색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윤경이 말했다.
"우리 처음 만나는 사인가? 왜 이렇게 다들 굳어있어?"
윤경이 상대 선수들에게 웃으며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수현을 비롯한 동료들도 상대 선수들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코트 위에서는 적이지만 그전에 족구라는 같은 종목으로 함께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들인지라, 충북월드스타 선수들은 언니들답게 동생 같은 상대 선수들을 살갑게 대했다.
경기 시작 직전, 전 감독 김남현이 찾아와 말했다.
"누나들!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코트 위에서는 정말 미친 듯이 뛰어보자. 파이팅도 평소보다 크게 하고, 잘 안 되면 크게 소리 질러도 누가 안 잡아가니까 다들 미쳐야 돼."
누군가 들으면 웃을만한 이야기일 수 있었지만 이미 오랜 시간 남현의 지도를 받으며 스타일을 알고 있는 선수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어린 감독이었지만 선수들은 자신들을 위해 본인 시간 쪼개가며 지도해 준 남현을 잘 따랐다.
때로는 너무 열정이 넘쳐 대회 중 민자가 '나 다리가 좀 아프니 교체 좀 해줘.'라고 요구하자 '누나! 부러진 거 아니지? 그럼 뛰어.'라고 말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있었지만 지금도 선수들이 연습할 때 자주 찾아와 지도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드디어 경기 시작.
우수비 민자의 서브, 성은지의 리시브, 용민아의 토스, 조사랑의 가슴이 약간 우수비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수현은 우측으로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조사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축 비껴 차기 공격으로 수현과 보배 사이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생각보다 길게 코트 모서리에 정확하게 떨어진 공격에 보배와 수현이 전혀 반응을 하지 못했다.
"괜찮아. 이제 시작이야. 조금만 대기했다가 돌아가."
윤경도 선수들을 모아 말했다.
"우리도 할 수 있어. 리시브부터 차근 차근 해보자."
이어진 랠리, 수현의 리시브가 조금 길다. 윤경이 간신히 공을 올렸지만 그대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 정가영의 리시브와 용민아의 토스 이후 조사랑의 발등 공격, 다행히 네트에 걸린다.
"휴!" 수현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윤경과 민자가 수현에게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사인이다.
그리고 이어진 수현의 서브, 조사랑의 가슴이 다시 한번 우수비 쪽으로 향한다. 수현은 이번에는 미리 돌지 않고 뒤로 살짝 빠졌다. 조사랑의 공격이 중앙으로 강하게 날아왔다. 수현은 이를 파악하고 오른발로 걷어 올렸다. 이번에는 발에 정확하게 맞은 느낌이 난다. 이어진 윤경의 토스 그리고 보배의 A 킥이 발등에 제대로 맞았다. 바운드가 크지는 않았지만 쏘디엔레오파드의 용민아가 잡을 수 없는 깊은 각으로 강하게 날아간다.
이 공격으로 수현의 경기 초반 긴장감이 모두 날아갔다.
"월드!"
"스타!"
윤경의 힘찬 선창에 선수들이 화답했다.
관중석의 한 여자가 말했다.
"저 언니들은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글쎄! 그 의미는 저들만이 알겠지."
옆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민자가 받은 공이 라인 밖으로 향하자 수현이 따라가 받아 올렸고, 그 공을 이번에는 보배가 안축 비껴차기 공격으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
"월드!"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