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매력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특정 대회가 쌓아온 역사와 상징성은 종목의 정체성을 만들고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테니스의 4대 메이저 대회인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그리고 윔블던이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과 스토리가 스포츠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족구협회에서는 '2026 슈퍼오닝배'를 전국 대회로 승인하지 않는 대회이니 경기도 외 지역팀의 출전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게시했다. (아래 공문 참조)
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기간 열리는 울산광역시장배와 일정이 중복되면서, 슈퍼오닝배가 초청 부서를 2개 이상 운영하게 되어 규정 위반 소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슈퍼오닝배에서는 1일차 경기 일반 2부, 40대부, 경기 50대 2부, 2일차 일반부를 운영할 예정이었다. 협회는 이를 '2개 이상의 타 시·도 초청 부서를 운영'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며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도대체 슈퍼오닝배가 어떤 대회인가? 2006년 첫 대회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회다.
2012년 부천 중앙이 현대파워텍과 준결승전에서 대역전극을 거두고, 마산 로봇랜드와 결승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는 등 수많은 명승부가 이 대회에서 탄생했다. 전국 각 지역의 팀들이 꾸준히 참가하며 자연스럽게 권위도 쌓였다. 특히 수도권이라는 접근성 덕분에 전국 단위의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는 점 역시 의미가 크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규모의 대회를 지금부터 일부러 만들어도 그 무게와 상징성을 쌓기까지는 다시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대회에서 남겨진 기록과 이야기들은 훗날 우리 족구 역사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협회는 '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와 상징성을 가진 대회일 수록 협회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해야 했다. 일정 중복이 문제였다면 사전에 조율할 방법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결국 오랜 전통의 이 대회는 '경기도 관내 대회' 수준으로 축소되어 진행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슈퍼오닝배를 희생(?) 시켜가면서까지 개최한 울산광역시장배의 상황은 어땠을까. 결과는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무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리아리그와 일정이 겹쳐 J1 부서는 폐지되었고, 가장 높은 수준의 J3 부서는 단 4개 팀만 참가해 풀리그라도 치르려고 했지만 그나마 한 팀의 불참으로 아예 폐지되어 운영되었다. 게다가 모든 부서 참가 팀의 대부분이 부산, 울산, 경남 등 인접한 지역의 팀들이었다. 사실상 전국 대회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대회가 되고 말았다.
전국 대회 개최의 구조적인 문제점
이번 논란은 단순히 슈퍼오닝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대회의 운영 구조 자체의 한계를 보여준다.
현재 전국 대회는 명목상 대한민국족구협회가 주최하고 해당 지역의 족구협회가 주관한다. 예를 들어 슈퍼오닝배의 경우 주최는 대한민국족구협회, 주관은 평택시 족구협회다. 하지만 실제 운영 구조를 들여다보면 경기장 대관, 장비 준비, 심판 운영, 숙식, 각종 진행 비용까지 모든 부담을 지역 협회가 떠안고 있다.
여기에 협회 지정 브랜드 장비 사용 조건까지 더해지면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해설 위원, 심판, 경기위원 등 운영 인력의 숙식과 수당 역시 적지 않은 지출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참가팀 수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참가비와 지역 체육회 지원금으로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전국 대회를 개최할수록 적자'라는 인식이 현장에 퍼지고 있다.
그 결과 한때 전국 규모와 권위를 자랑했던 수원화성기, 향수옥천배, 온양온천기 같은 대회들이 모두 축소 운영되거나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족구협회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협회가 반드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유치 지원금, 일정 조율, 지역 협회와의 유연한 협의만 있었어도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울산광역시장배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지주대 문제 역시 협회가 메인 스폰서인 '조이킥스포츠' 장비를 일정 수량 직접 확보한 뒤, 전국 대회를 주관하는 지역 협회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슈퍼오닝배, 영월동강배 그리고 이번에 마무리된 울산광역시장배 등 각 지역의 전통 있는 대회들을 시즌의 '메이저 대회' 형태로 육성하고 시즌 마지막 '코리아리그'와 같은 대회를 왕중왕전과 연계하는 구조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지역의 전통 있는 대회를 살리는 일은 단순히 한 대회를 유치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족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스포츠는 결국 스토리의 힘으로 성장한다. 선수들의 추억과 명승부의 기억 그리고 지역 대회의 전통이 쌓여 종목의 문화가 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행정의 여파가 결국 동호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슈퍼오닝배를 앞두고 협회에 '슈퍼오닝배에 출전하면 징계를 받나요?'라는 문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고 싶을 뿐인데, 혹시 모를 징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위기는 결코 건강한 스포츠 문화라고 보기 어렵다.
대회 이후 슈퍼오닝배에 참가한 일부 심판에 대한 징계 가능성이나 심판 배정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부디 단순한 오해이거나 과장된 소문이길 바란다. 대한민국 족구 발전을 위해서는 규정의 엄정함만큼이나 현장의 신뢰와 소통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족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함께 땀 흘리는 모든 동호인의 스포츠여야 한다. 지금 족구계에 필요한 것은 규정을 앞세운 소모적인 갈등이 아니라, 전통 있는 대회를 지키고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족구경기 작성시간 26.05.16 new
심정은 이해합니다
어렵게 개최한 전국대회
당사자로써 기분이
안좋을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이번건은 대족에서 잘못힌거 같습니다
전국대회에 전국에 있는
일반부들이 다 참가하는것도 아니고
무주에서 J리그 열리고 있는데 이건은 대족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인천수비 이영진 작성시간 26.05.16 new
울산 국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족과 평택시가 풀어야 할 일을
왜 울산시와 전국 동호인들이 피해를보고, 눈치를 봐야하는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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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강섭 SNT모티브 심판 부산 작성시간 26.05.16 new
일정 조율의 필요성에는 공감합니다. 전국대회 준비가 쉽지 않고 예산·장소·인력 등을 1년 전부터 고민하는 점도 이해합니다. 다만 아쉬운 건 왜 그 부담과 희생이 항상 동호인들과 전통 있는 대회에 돌아가야 하느냐는 점입니다.
서로 배려가 필요하다면 울산광역시장배도 존중받아야 하고, 20년 전통의 슈퍼오닝배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쪽을 제한하는 방식보다 협회가 사전에 일정 조율 시스템을 만들고 중재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 수원화성기, 비슬산배 같은 전국대회가 그립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남아있는 전통 대회들도 살릴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작성자청주빵이 작성시간 26.05.16 new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족구 입문자들은 갈수록 줄고있는데
대족에서 갈수록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네요
대한족구협회는 동호인들 의견을 반영하여
내년부터는 이런 논란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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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꿈나무킬러 작성시간 26.05.16 new
이러다가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되어
대족에서 주관하는 전국대회에는 아무도 참석을 안할수도 있지 않읗까요.
점점 메이저리그 대회였던 대회들도 하나 둘씩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것도 마음 아픈데
대족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회와 겹치는날에는 하지 말라는 억지 같은건 이제는 더이상 없기를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