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1)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7.11.17|조회수656 목록 댓글 5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제1부. 족구이야기

    제1장. 소속팀을 찾아서 ①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행복과 불행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들은 언제든 우연한 곳에서 발생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그게 정말입니까?”

성구는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다. 무의식중에 휴대폰을 오른손으로 바꿔 귀에 밀착시키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동재도 어이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동재는 성구와 함께 족구를 하는 회원이었다. 회원이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호칭이 될 터였다. 아직 어디에 소속된 족구클럽도 없고,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교회 사람들이 모여 족구를 하는 곳에 더부살이로 끼어 운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성구와 정동재 그리고 장만규 이렇게 세 명이었다. 모두 동네 아파트 족구장에서 가끔 만나 운동을 하다가 친해지게 된 터였다. 세 명 모두 족구를 하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족구에 미쳐 있었다.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수다로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그럼, 남자들 셋 이상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대부분 군대이야기나 축구이야기 아니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는 군대이야기와 족구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족구한 이야기’로 바뀔 것이다. 왜냐하면 족구인의 수가 해마다 늘어 지금은 700만 명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들 세 명도 마찬가지로 족구에 푹 빠져 있는 경지를 넘어 족구공이 터져 나갈 정도로 족구에 미쳐 있었던 터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 팀에서 동재가 이제 안 나왔으면 한다는 말을 조금 전에 들었다는 것이다.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동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는 거였다. 직접 말하기에는 너무 난처한 문제라 제 삼자를 통해, 이제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동재는 상상의 나래까지 활짝 펴며 친절히 설명하는 거였다.

이유는 교회 회원들의 불만 때문이라고 했다. 외부인 세 명으로 인하여 교회팀 회원들이 족구게임을 못하고 대기하고 있기도 하고, 회원도 아닌 외부 사람들이 실력이 좀 떨어지는 회원에게 요령을 설명해 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자격지심의 발로로 빚어진 일이라고 하였다.

“자기들 팀에 안 나왔으면 하는 사람, 우리 외부인 3명 다 말하는 건가?”

성구는 동재의 말을 들으며, ‘회원도 아닌 외부인 주제에’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 말을 꼴칵 삼키며 그렇게 물었었다.

“글쎄요, 나만 해당되는지 모두에게 해당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동재는 통화하면서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성구와 만규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동재는 현재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설령, 동재만 안 나왔으면 한다. 라고 하더라도 성구는 동규의 전화를 받으면서 벌컥 화가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운동하고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교회 회원만 운동하려면 교회 운동장에서 하던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옮기던지 해야지, 남의 아파트에 와서 운동하면서 그런 논리를 편다는 것이 누가 들어도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성구는 씁쓰레한 입맛을 다시며 소속팀이 없는 자의 설움을 온몸으로 오싹 느끼고 있었다. 설사 동재만 안 나왔으면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 나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성구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성구가 교회(세교교회) 족구팀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성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축구장이 나올 정도의 넓이는 되지 않지만, 농구장과 족구장 2개 정도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규모였다. 요즘 아파트에 그런 운동장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하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규모만으로도 분명 ‘넓다’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운동장 사방으로 단풍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빼어난 경관으로 운동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여름에도 아파트와 나뭇잎들이 만들어주는 그늘로 인하여 땡볕에서 족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봄여름에는 사방이 신록으로 우거져 있고, 가을에는 색색의 단풍잎들이 경관을 아름답게 수놓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곳에는 한쪽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도 있고, 가끔 가족 단위로 배드맨턴을 치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들도 축구공을 가지고 나와 공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만들어 놓은 그 족구장에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클럽은 없었다. 대개 교회 소속의 사람들이 주말에 가끔 사용하기도 하고, 아파트 주민들이 각자 모여 족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세교 교회 팀에서 족구 코트를 다시 하나 만들어 주말마다 일정한 시각에 모여 족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성구도 그 자리에 끼게 되었던 터였다. 그렇게라도 족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성구는 늘 감사해야 할 입장이었다. 아무리 족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소속이 없으면 혼자서는 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6개월 전쯤이었다.

“전성구 선생님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 참 좋을텐데...”

어느 날, 교회 회장이 지나가는 말인 듯 한 마디 하는 것을 성구는 겉으로는 긍정적인 웃음으로, 마음속으로는 난처한 웃음으로 흘려버렸었다.

하지만, 주말마다 함께 운동하면서 성구는 가끔 고민을 하기도 하였다. 그들과 어울려 서너 번은 족구를 한다지만 그곳 교회를 나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입장이 곤란하고 속된 말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가 아닐 수 없었다.

가끔 교회에 나오라는 눈치를 받을라치면,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두려움처럼 가슴 속으로 저벅저벅 다가오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이 참에 아예 교회를 다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교회를 다니는 것이 생래적으로 맞지 않는 성구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처지는 장만규도 만찬가지였다.

그 교회 팀에 성구가 먼저 일원이 되었고, 다음에 동재, 그리고 동규가 마지막으로 합류하여 주말마다 족구를 하였던 터였다.

만규는 띄움수, 동재는 공격수, 성구는 공격수 또는 수비수였다. 교회 회원들보다는 실력이 월등해서 가끔 회원들에게 조언을 하였지만, 일부 회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비나 공격에서 실수를 할 때, 올바른 방법으로 조언하면 그것을 배우려는 입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회원도 아닌 주제에 참견”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갈등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교회 인원도 많지 않아 구색을 갖추기 위해 성구 자신을 필요로 하였지만, 그리고 성구의 족구 실력이 좋아 그들도 반기는 입장이었지만, 차츰 교회 족구인원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슬슬 눈치가 보이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단풍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고 박수는 치지만, 그 운명은 곧 낙엽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성구는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낙엽 같은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지금 성구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였다.

“어떻게 한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운동할 일이 난감하였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세교교회 팀에게 너무 야박하다고만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들 집행부도 회원들의 불만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을 터이었다. 회원의 수가 불어나면서 빚어지는 불만인 것을.

회원들 불만의 싹을 자르려면 외부 사람들이 목을 내놓아야 하는 거였다. 어찌 보면, 그 동안 함께 운동을 한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성구는 동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주말에 만나 직접 이야기할 마음으로 참았다. 기쁜 소식은 빠르게, 슬픈 소식은 최대한 늦게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달갑지도 않은 소식에 분명 그도 난감해 할 것이 뻔한데......

성구의 고민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주말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족구를 하는 날만 기다리며 한 주를 보내는 그였지만, 이번에 맞는 주말은 어쩐지 우울한 낯을 숨길 수 없었다. 일요일마다 3시에 모여 교회 사람들과 운동을 하였지만, 그들 세 명은 연락을 하여 1시간 전에 아파트 운동장에 모였다.

성구가 소식을 모르고 있던 만규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그는 잠시 당황해 했지만, 곧 체념한 듯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금방 체념하는 그를 보고 오히려 성구가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그런 표정으로 모여 있는 운동장으로 한여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벌써 초가을이 찾아오고 있는지 시원한 바람이 불자, 더위가 한결 물러서는 듯 했다.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다가 쪼그려 앉았다가 그들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난감해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운동했던 족구 코트를 바라보는 심정은 모두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지 않았으면 아마 셋 중 누군가는 육두문자라도 날리며 족구공을 발길질로 차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어느 자동차의 백밀러라도 부서지는 소리가 귀청을 후볐을 테지......

“동부공원에 한번 가 보죠?”

그 중에 나이가 가장 적은 동재가 말했다. 전에 그곳 사람들과 함께 족구를 몇번 한 적이 있다는 거였다. 성구와 만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곳은 자동차로 십여 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럽시다. 가죠?”

성구는 벌떡 일어나며 걸음을 옮겼다. 만규의 말을 들어볼 것도 없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이미 묵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즐족즐생. 즐거운 족구가 있어 즐거운 생활이 되는 그들에게 있어, 족구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인들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동차에 올라 동부공원으로 향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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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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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_족구 | 작성시간 07.11.18 처음 연재되는 잔다리사람들, 기대가 됩니다. 족구의 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지게 되는 건가요?
  • 작성자저ㄴ◐ㅠ처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1.26 네, 족구공 하나만으로 행복한 생활이 되는 족구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이지요~~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 작성자낼은주전 | 작성시간 13.09.11 즐겁게 감상하겠습니다..
  • 작성자달맞이 | 작성시간 14.07.17 잘 읽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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