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7.11.24|조회수354 목록 댓글 7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제1장. 소속팀을 찾아서 ②


진정한 족구인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성구 일행이 산업도로를 따라 십여 분을 달리자 도로 옆에 동부공원이 보였다. 차창으로 설핏 족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도로변에 주차시키고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족구장 2개가 설치된 곳 모두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인원이 많아 벤치에 앉아 관전을 하고 있는 사람도 너댓 명이나 되었다. 우리나라 족구 인구가 점점 불어나 7백만 정도라고 하던 말이 실감나는 거였다.

성구 일행도 벤치에 앉거나 서서 관전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족구장 옆에는 네트 없는 매드맨턴 지주대가 3개나 설치되어 있고, 뒤편으로 농구 골대와 공중 화장실도 보였다. 주위에는 낮은 능에 잔디가 파랗게 자라 있고 곳곳에 소나무들이 가족처럼 도란도란 모여 있다. 족구장 뒤쪽 소나무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동부족구단 회원모집’이라고 쓴 글씨 아래 감독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회원 모집 중이네.”

동재가 성구와 만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회원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무언의 표정이다. 그 문구는 소속팀이 없는 떠돌이에게 꽃뱀보다도 더 유혹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성구와 만규가 느끼는 감정도 황홀한 기분에 다름 아닐 터였다.

관전만 하고 있는데도, 한여름의 햇볕이 올곧게 따갑다. 하지만 사람들은 땡볕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성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실력들이 상당하였다. 한쪽은 동네족구 수준이지만, 가까운 쪽에서는 월등한 수준이었다. 꽤 오랜 기간 족구경험이 있는 것에 틀림없어 보였다. 진지하고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보고 있자니까 슬그머니 주눅이 드는 것을 성구는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여럿이고보면, 여기에서도 성구 일행이 낄 자리는 없어보였다. 소속팀이 없어 게임을 할 수 없는 비애감이 성구의 가슴 속으로 다시 저릿저릿 엄습하기 시작한다. 그 기분을 성구 혼자서만 총알받이처럼 감내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 터였다.

“저쪽으로 한번 가 보죠? 저기도 코트가 있어요.”

동재가 손가락으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족구공 하나가 달랑 들어있는 그물망을 덜렁거리며 신호등이 있는 도로를 건너 동쪽으로 향하였다.  동부공원은 그 도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시에서 관리하는 공원으로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남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성구 일행이 걷고 있는 너머로 낮은 능에 꾸며진 숲 속에 ‘맨발걷기’ 하는 길이 좁다랗게 보였다. 마치 굽은 철길처럼 정돈된 길에 하얀 돌들이 노출되어 있다. 그 위로 몇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다. 주변에는 낮은 산릉마다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그런대로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쪽에는 허리돌리기, 윗몸일으키기, 철봉, 역기 등의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간단한 조깅이나 걷기를 할 수 있는 길도 만들어져 있다.

동부공원은 한마디로 너른 부지 위에 인공으로 꾸며 놓은 흔적들이 역력하다. 시내 외곽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에 시민들이 한 줄기 위안을 얻게 될 터였다.

사각정처럼 만들어놓은 식수대에서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기도 하고, 물통에 물을 받기도 한다. 그 식수대를 지나자 넓은 공터가 보인다. 농구장과 족구장 하나가 나란히 있다. 군데군데 벤치도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없다. 그 건너편으로 풋살 경기장인 듯 녹색 철재망 담장이 보이고 공을 차는 사람들의 보습이 보인다. 그 옆에는 게이트볼장이 2개나 설치되어 있고, 한 편에서만 어르신들이 게이트볼 치는 소리가 딱, 딱, 들리곤 했다.

“자, 저곳에서 2대1 게임하자고!”

성구가 망에서 족구공을 꺼내며 말한다. 동재와 만규도 다른 방도가 없다는 듯 수긍한다. 속된 말로 놀면 뭐하나?

그러나, 3명이 족구를 하기에는 너무 적은 인원이다. 4명이면 2명씩이라도 한다지만 말이다. 세 명이 할 수 있는 놀이는 고스톱 정도로 꼽힌다. 고스톱도 4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은가. 그래야 패가 좋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고 광을 파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은가 말이다. 성구의 머릿속에서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마구 쏟아진다.

“자, 우리 둘이... 동재 혼자서 하자고.”

성구는 그 중 나이가 적은 동재를 혼자하게 하고, 만규와 함께 한쪽 코트로 나선다. 한 사람을 이렇게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도 없다. 

“11점 3세트로 하죠?”

동재는 아무래도 체력소모가 클 것이 분명하기에 그렇게 말한다. 성구는 동재의 제안에 동의하고 게임에 임한다. 스트레칭도 없이 곧바로 게임을 선언한다. 날씨가 더워 큰 부상의 염려는 없을 듯하다. 몇 번 공을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이 땡볕에 누가 시켜서 족구를 하겠는가. 조상님들의 말씀대로 이 더운데, 머슴이나 시켜서 해야 할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처음에는 동재가 앞서나가다가 종반부에 오자 전세가 역전되고 만다. 성구와 만규는 수비와 공격을 분담하여 하지만, 동재는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니까 체력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1세트를 끝으로 그만하자고 선언한다.

잠시 벤치에 앉아 땀을 닦는다. 규정 인원대로 하지 않으니까, 체력소모만 크고 실감나는 게임이 되지 않으니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들의 마음자리에는 자신들이 떠돌이 신세라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는 거였다.

“저쪽으로 다시 가 봅시다.”

성구가 말하며 일어섰다. 동재와 만규도 따라 일어선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 서쪽 족구장으로 다가간다.

여전히 그들은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동네족구 수준의 한쪽에서는 계속 욕설이 오고간다. 유니폼과 신발을 보니 축구를 하고 온 사람들인 듯 하였다. 공격하는 한 사람은 아예 윗옷을 벗어놓고 맨몸으로 운동을 한다. 낮술이라도 걸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맨살을 드러낸 상체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다. 술을 먹고 운동을 하니 그 수준을 알 것 같기도 하였다. 성구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쪽에 끼일 생각은 당최 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코트 옆에서 한 사람이 족구공을 가지고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 혼자 띄워놓고 발날 페인팅을 연습한다. 나이가 대충 사십대 후반으로 보인다. 품새만 보아도 실력이 있어 보였다. 성구는 슬며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통성명을 한다.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공찬석이라는 사람은 혼자 왔다고 한다. 잘 됐다싶어 성구는 자신들 3명 함께 한 팀을 꾸리자고 제안한다. 그도 동의 한다. 찬석의 동의 얻은 그들은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코트에서 게임이 종료되기만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잠시 후, 그들 코트에서 게임이 끝났다. 박빙의 승부가 엇갈리자 더운 날씨 속에서도 긴장감이 흐른 뒤였다. 인원 당 오천 원짜리 게임이었던 듯 한 사람이 돈을 걷는다. 공을 담는 그물망에 돈을 집어넣는다. 어디서나 그 그물망은 돈을 거둬들이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족구장이 있는 곳에서는 대부분일 것이다. 족구가 우리나라에서 보급된 경기니까, 그 그물망 관습은 아직 나라 안에서만 적용될 것이었다. 하지만, 태권도처럼 세계 곳곳에 족구가 보급된다면 그 관습도 세계 곳곳에 따라다닐 테지. 성구는 설핏 그런 생각이 들어 혼자 ㅎㅎㅎ 웃어본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성구 일행은 공을 들고 빈 코트에 들어간다. 2명씩 편을 갈라 연습을 하면서 눈치를 살핀다.

“그쪽 4명이 한 팀으로 하면 되겠네!”

더위에 지쳐서일까. 게임을 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말한다. 그럴까요? 성구는 못이기는 척 제의를 받아들인다. 성구 일행과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4명이 코트에 들어선다.

그날 게임은 성구 일행이 지고 말았다. 오늘 처음 만난 찬석의 공격력도 상당했지만, 상대편 공격이 보다 강했고, 수비도 끈끈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교회 팀에서 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박진감과 긴장의 끈이 조여 오곤 해서 게임다운 게임을 하였다고 성구는 생각하였다. 비록 졌지만, 그래도 기분 상쾌한 경험이어서 그들은 만족하였다. 실력이 있는 킬러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고 동재와 만규도 좀더 분발해야겠다는 말을 하며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곳에 회원 가입할까요?”

돌아오는 길에 동재가 운전하면서 말했다. 동재가 나서서 알아 온 가입 조건들을 말하며 성구와 만규에게 의향을 물었다.

“한번 생각해 보고 다음 주에 결정합시다.”

성구의 말에 그들은 동의하였다.

잠시 후, 십여 분을 자동차로 달려 성구 일행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다음 주 일요일에 다른 곳으로 한번 더 가 보기로 하였다. 그런 다음 최종 소속팀을 결정하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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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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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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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엽기광 | 작성시간 07.11.25 잘 읽고 있습니다..그들의 행보가 궁금하군요..
  • 작성자굿모닝한상훈 | 작성시간 07.11.26 계속이어가길 바랍니다
  • 작성자저ㄴ◐ㅠ처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1.28 족구인 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은 바로 님들의 초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운시간되세요~~.
  • 작성자족구남 | 작성시간 07.11.30 저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모습이 이곳 소설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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