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9)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8.02.19|조회수331 목록 댓글 3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제1부.  족구이야기

   제3장.  족구세상 나누기 ①

       

-족구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성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생각해 본다.

지금도 전국의 족구동호인들은 그들의 구장에서 경기를 하며 족구세상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족구를 하는가?

우선 접근성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공터라도 족구공 하나와 네트만 있으면 되고, 인원도 8명만 있으면 된다. 여덟 명이 안 되어도 3명씩, 2명씩, 아니면 일대 일로 경기를 하여도 된다. 축구처럼 넓은 공간과 인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코트에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 족구이다.

족구를 하는 사람들은 8명이 모여 있을 때 축구를 하는 것보다 족구를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성구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선 족구는 쉽고 부상이 많지 않다. 룰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서로 부딪히며 하는 경기도 아니다. 운동종목에는 배구도 있고, 야구도 있고, 필드하키 등도 있다. 요즘 동네 운동장에서 배구나 필드하키나 야구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하지 않지.... 요즘 배구나 야구 경기하는 사람들 있나? 없지!’

성구는 중얼거리며 자문자답을 한다. 

요즘, 전국의 어느 운동장에서나 좁은 공터에서 즐기는 운동이 족구일 것이다. 족구 전용구장이 만들어진 도시도 여럿 있다. 그곳에서 전국대회도 많이 개최되고 있는 실정이다. 족구 전성기를 맞이하여 동호인이 어느덧 700만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구는 아직 전국체육대회의 정식종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서너 곳의 공중파 방송사에서 족구경기를 중계하고 있고, 선수들의 기량도 일취월장 뛰어나지만 아직 전국체전 정식종목에도 들지 못했다.

족구는 삼국시대부터 지금과 유사하게 운동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리고 1960년부터 군대에서 군인들이 즐겨하는 운동으로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체육계에서는 변방에 불과한 신세가 아닌가 말이다.

‘족구가 이직도 군대에서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체육계 원로들이 많아서 그런가.’

성구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어 미간이 좁혀진다. 

앞으로 지상파 방송에서도 중계를 하고 정식종목으로 인정받을 날이 있겠지만, 동호인들의 즐기는 숫자에 비해 족구활성화 조직은 너무 뒤처져 헐떡이는 마라토너처럼 안쓰러운 것이 사실이다.

‘족구협회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성구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돌아오다가 옆에 어깨높이 정도를 나뭇가지를 보고 멈춰 선다.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가늠하다가 발등으로 한번 질러본다. 잔가지가 부러져 저 앞에 떨어진다. 떨어진 솔잎을 보자 아픈 마음이 엄습해 온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성구는 잠시 주위를 살핀다. 마침 아무도 없다. 성구는 오른발 발코차기로 열림 버튼을 맞춘다. 스르륵 문이 열리자 그는 안에서 다시 숫자 버튼을 발코로 정확하게 누른다. 문이 닫히자 성구는 위를 쳐다보며 생각한다.

‘이 모습 CCTV에 녹화되는 거 아냐?’

집안에 들어서자 역시나 아내와 아이들이 반긴다.

“운동 많이 하고 오시나요?”

아내가 생글생글 웃는다.

“어, 연습 많이 했지롱~.”

저녁을 먹고 나자, 아들 녀석이 다가와 앉는다.

“아빠, 우리 족구해요?”

“지금? 어디서?”

“여기서요! 저 공으로.”

아들이 가리키는 곳에 비치볼이 하나 놓여 있다. 일반 비치볼보다 조금 작다. 바닥충격도 없을 테고 그런대로 괜찮을 듯하다.

“좋아, 저 탁자를 네트로 하면 되겠네.”

성구는 탁자를 들어 거실 중앙에 놓는다.

“나이스!”

아들이 외치며 즐거운 몸짓을 보인다.

“자, 1세트 15점이고 5점을 접어준다. 좋지?”

아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 탁자에서 네모 칸 3개씩이다.”

거실바닥 무늬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어 코트를 정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도 제지를 하지 않는다. 아들이 즐기는 것이라면 아내는 뭐든지 반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이 놀이를 제지하지 않는 이유도 남편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 하는 놀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구는 그렇게 생각하자,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 모르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족구이기 때문인지도...’

서브를 넣고, 바운드된 공을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고,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어느 땐 공이 거실장 위에 있는 물건에 맞아 나뒹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눈치를 준다. 성구와 아들은 그렇게 눈총을 맞아가며 게임을 즐긴다. 발꿈치를 최대한 들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울림이 없을 수 없을 거였다. 아들과 3세트를 진행하는 중에 현관 초인종이 울린다. 아래층에 산다는 어떤 할머니가 찾아온 것이다.

“참아보려고 하다가 참지 못하고 올라왔어. 이 늙은이가 심장이 좋지 않아요. 이 집엔 도대체 애가 몇 명이야?”

잠시 멈추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귓속으로 또렷이 들린다.

“네, 아이들이 많아요. 할머니,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킬 게요.”

할머니가 돌아가자 아내는 말없이 그것 보라는 듯이 성구에게 손짓을 한다.

성구는 아이가 많다는 아내의 말에 마음이 찔린다.

‘그럼, 졸지에 내가 개구쟁이 아들이 되고 말았네.’

성구와 아들은 3세트를 중단한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심장이 약하고 하지 않은가. 족구도 좋지만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하는 거다.

성구는 땀을 닦으며 비치볼을 들고 살펴본다. 실내에서 서브와 공격 연습하기에는 그런대로 좋을 듯하다. 성구는 슬그머니 일어나 왼손으로 띄운 다음 발 뒷축으로 공격형 서브를 넣는다. 비치볼에 닿는 발의 느낌이 부드럽다. 성구의 뒷축을 맞고 튕겨나간 공이 아내의 엉덩이에 정통으로 맞는다. 과일을 씻던 아내 화들짝 놀란다. 옆에 있던 아들 녀석이 낄낄거린다.


성구는 다음날 퇴근 후에 족구화 대신 일반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걷기와 뛰기를 하며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공격연습을 하며 왼발이 튼튼해야 파워도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작정을 하고 나선 길이다.

성구는 아파트 앞 큰길을 건너 통복천 코스로 들어섰다. 천을 따라 뚝 아래에 걷기와 달리기 등을 할 수 있도록 단장된 코스였다. 바로 옆에는 물이 흐르고 나무와 잡초들도 우거져 있어 가을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통복천에는 하루 종일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 오전에 운동하는 사람, 오후 또는 저녁, 심지어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걷기를 하였다. 때론 마라톤 선수인 듯한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도 가끔 보이곤 하는 곳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릴 곳 없이 곰비임비 사람들이 애용하는 평택의 레포츠 터전으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지금 성구는 사람들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사람들이 뜸한 곳에서는 옆에 자란 잡초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구였다. 잠시 노려보다가 여지없이 오른발 발등이 허공을 가르면 잡초 상단이 휘청한다. 뚝 떨어져 나가는 봉오리를 보며 성구는 희열을 느꼈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운동하는 맛이 있지.’

성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개천을 횡으로 낮게 막아놓은 곳에서는 물길이 아래로 떨어지며 그런대로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린다. 저문 해가 서산에 걸렸는지  붉게 물들어 있다. 살살 부는 바람이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다. 요즘은 여자들이 운동을 더 많이 하는 듯하다. 날씬한 여자들이 많다. 정작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할 것 같은 여자들은 잘 안 보인다. 오늘만 그런 걸까.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씬한 여자들이 운동은 더 많이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S라인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도 나오고, 더불어 신체에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거 아니겠어.’

성구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는다.

어느새 3.5km 정도의 반환점이 눈앞에 보인다. 코스의 마지막에는 양쪽으로 의자도 만들어놓아서 사람들이 앉아 쉬기도 하고 주위에서 몸을 풀기도 한다. 성구는 그냥 발길을 돌려 돌아갈 채비다. 다시 돌아가면 7km 정도가 되는 것이다.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것이 다리를 튼튼하게 하겠다싶어 성구는 뛰어 돌아가기 시작한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라도 매달고 달리고 싶기도 하다. 오직 공격에 파워가 실리도록 기초체력을 기르고 싶은 것이다. 중간쯤 돌아왔을 때 저문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조금 있으면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것이고 주위의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릴 거였다.

성구는 뛰다가 걷다가 하며 사람들을 제치고 있다. 땀방울이 얼굴로 흐른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발등차기 연습을 한다. 한번 두 번... 사람들이 다가오기 전까지 여러 번 스윙연습을 한다. 회전하는 몸이 가볍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도 신선하다. 마음까지 가볍다. 몸 상태가 상쾌하고 싱싱하다. 땀이 흐를 때 긴장되었던 근육이 한 매듭씩 풀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였던가.

성구는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테니스장을 지나 주말마다 운동하는 구장 옆을 지나며 성구는 그 코트를 정겹게 바라본다. 가로등 하나에 희미하게 자신의 몸을 맡긴 족구 코트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 쓸쓸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몸을 뒤채며 밤새도록 그렇게 있을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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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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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류한호 | 작성시간 08.02.19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족구를 발전시키기위해 하루속히 한마음 한뜻으로 족구인이 뭉쳐서 발전방향에 대해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족구를 잘해보기 위해서 보라매 공원에서 매일 연습하던때 그리고 풍경등....모든 족구인이 필독해야할 소설이 될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해 주시기 바람니다...수고 하셨습니다..
  • 작성자저ㄴ◐ㅠ처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2.20 족구발전을 위해 한몸 헌신하는 류한호 님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가 든든합니다. 족구소설에 대한 성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주시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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