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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는 천사였다

작성자좋아좋아|작성시간16.04.12|조회수286 목록 댓글 0

봄바람이 상쾌하다.
만개한 벚꽃이 한 줄기 바람에

눈송이처럼 쏟아진다. 젊은 테너의

윤기 있는 노래가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 속에
소프라노가 야외무대위로 올라왔다.

때는 봄,
가슴 뛰는 봄이다.
관객들은 중앙의 VIP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볍고 화사한 나들이 차림이다. 이 같은 공연이

자주 있지 않은 탓인지 원근각처의 주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전주가 끝나고

드디어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노래를 경청한다.
나도 그 속에서 담담하게 그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다.

"노래의 날개위에 그대를 보내오리
행복이 가득 찬 그 곳, 아름다운 나라로
향기로운 꽃동산에 달빛도 밝은데
한 송이 연꽃으로 그대를 반기리
한 송이 연꽃으로 그대를 반기리"

물 흐르듯

편안히 흘러가는

멜로디도 아름답고 정감이

넘치는 노랫말도 가슴으로 다가온다.

하이네의 詩를 원어로는 잘 모르지만

한국말로 번역한 가사는 쉽고도 사랑이 넘친다.

무릇 음악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간주에 이어 2절이 이어진다.
노래 부르는 소프라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어느새 1968년의

서울 남산 기슭으로 와 있다.
언덕길 양 옆으로는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보는 여학교 교정이다.

‘문학의 밤’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교문을 지나

 언덕길을 하얀 하복 상의를 걸친

남녀학생들이 삼삼오오 담소하며 올라가고 있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꽃송이 사이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이 수줍은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같은 반 친구인

L군의 권유로 여학교라고는

난생 처음 와보는 나는 까닭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써 태연한 척 심호흡을 해보지만

어느 새 아카시아 향기와 여학교에 대한 설레임에 취해가고 있었다.

S여고 강당을

꽉 메운 학생들의 열기와 함께

문학의 밤은 점차 무르익어 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단상에 올라왔다.피아노의 반주에 맞추어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그녀는 천사였다.
그것은 천사의 노래였다.
그녀는 어린 내가 보기에 소박한 외모의

여학생 이었지만 그녀의 노래는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나는 부끄럽지만 그때까지

음악회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내 생애에 처음 접한 클래식 예술 가곡이

바로 ‘노래의 날개위에’ 였고하이네의 시詩에다

멘델스죤이 곡曲을 붙였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그녀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고 신비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노래가 끝나고 뜨거운 박수소리가 내 귓전을 때린다.

나는 스르르 눈을 뜬다.
검은 뿔테안경의 단발머리 소녀 대신

그 소프라노가 미소를 띠고 박수에 답례하고 있다.
나는 잠시 꿈결인듯 그 소녀의 모습을 찾아본다.
그의 환한 얼굴이 밝게 웃고 있다.

또 한 차례 불어오는

봄바람에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린다.
그 소녀는 아직 발아하지 못했던 내 감수성의

싹을 틔워준 여인이다. 그 여인으로 인하여 나는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지...

‘노래의 날개위에’를 들을 때 마다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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