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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탁구 - (3) 서구의 권력과 한국의 권력

작성자Oscar|작성시간17.04.01|조회수559 목록 댓글 8

지난 편 글에서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예"의 사회에 대해서 적었지요.

"예"라는 것은 깊이가 없는 규범이므로 우리 모두를 항상 스스로 돌아 보게 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통제적인 삶을 살게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예는 층층시하의 사회 계층 구조를 만들어 주므로 모두가 다층적인 상하 관계 속에 살아가게 된다는 점,

그런데 탁구에서는 실력에 따라 그런 상하 높낮이가 형성되고, 그러므로 고수는 스승에 준하는 존경과 권위를 누리게 되고,

그러므로 누구나 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승부는 곧 사회적 계층 이동과 비슷한 심리적 효과를 준다는 점이 지난 번 글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을 더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 서구 사회의 질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예"라는 개념보다는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한 "양보", 혹은 "자기 제한"이라는 개념의 질서 체계가 있습니다.

즉 내가 하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질서에 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개념이 강하지요.


우리는 흔히 동양은 공동체를 중시하고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가 발달되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동양은 각 개인의 내면 세계, 혹은 각 개인이 가진 정신 세계를 중요시 합니다.

내가 무심코 스쳐 지나간 그 사람이 그 내면에 어떤 엄청난 것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조심성이 우리 안에는 있지요.

영화를 봐도 엄청난 고수가 행색 남루한 거지꼴을 하고 거리를 걷다가 횡포를 부리는 사람을 실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구요,

겉모습으로는 알기 어려운 도사나 혹은 수도자가 우리 옆에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 모습 보다는 그 사람 속에 담긴 내면 세계의 가치를 은연 중에 두려워 합니다.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엄청난 공부를 한 사람이었더라... 혹은 도를 깨우친 사람이었더라... 하는 일이 생길까 조심하지요.


반면에 서양 세계에서는 귀족과 천민의 구분이 있을 뿐이고 그런 엄청난 내공이나 실력이 드러나지 않은 고수, 혹은 도사 같은 사람은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서양 세계에서는 드러난 모습이 곧 신분을 의미하지요.


예를 들면 지금도 그런 신분 구조를 이루고 있는 러시아 같은 경우는 파티가 있어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도 서로간의 신분이 맞지 않으면 귀족 계층 사람은 하던 얘기를 중단하고 그 사람을 떠나 버립니다.

격이 다르므로 너랑은 얘기할 수 없다, 하는 것이지요.


영국 같은 경우도 신분에 의한 사회 계층 질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귀족 출신인 휴 그랜트가 쓰는 영어와 하층민 출신인 베컴이 쓰는 영어가 다르지요.

일례로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을 때, I beg your pardon 을 쓰는 것은 하층민 영어, 귀족층은 그냥 "What?"이라고 합니다.


저희 회사가 개발한 체데크 자전거를 가지고 영국에 가서 샾을 들른 적이 있는데요,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듣보잡 자전거를 무시하고 싶은 영국 미캐닉이 알아 듣기 힘든 브리티쉬 엑센트를 아주 심하게 넣어서 얘기를 하는데 정말 모멸감이 들더군요.


어떻게 보면 지금 영국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런 사회적 신분 구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Snobbish 문화가 있지요.

귀족을 동경하고 어떻게든 젠체 하기 위해서 고급 사치품을 구매하는 문화,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신분이 낮아 보이면 자기 신분을 과시하는 그런 문화를 영국은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다른데요,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수많은 귀족과 왕족을 단두대에서 처형해 본 경험이 있지만,

영국은 명예혁명이라고 불리우는 무혈혁명이 있었을 뿐, 하층민이 상층민을 전복시켜 본 일이 없습니다.

영국 뿐만 아니고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사회 신분 계층이 전복되어 본 경험이 없지요.


우리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제품에 수백만원을 들이는 것도, 그들이 그 브랜드를 수백년간 이어오면서 꾸준히 가격을 올렸기 때문인데요, 즉 어떻게 보면 그런 귀족 문화를 대대에 걸쳐 이어온 만큼 그들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는 권위의 체계가 상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런 신분 구조를 거스를 만큼 크게 성공해 보겠다는 그런 패기 같은 것을 찾아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시대, 왜 미국이 산업을 리드해 가고 있는가 하는 근본 원인을 살펴 보면, 하층민이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상부 구조로 올라가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했는가, 그렇지 못 한가에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요.

상대적으로 유럽에서는 브랜드, 혹은 산업 자체가 귀족 가문과 연결된 경우가 많고, 아무 배경이 없는 사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자본을 조달하여 창업을 하고 사회 상층부로 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닫혀 있습니다. 그런 의욕 자체를 갖지 않는 사회라고 보여요.


이런 사회에서는 신분 상승의 욕구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탁구를 아무리 잘 쳐도 귀족은 귀족이고 하층민은 하층민이지요.

그리고 부 자체가 세습되는 가문의 개념과 거의 일치하므로 상대적으로 신분 상승의 욕구가 제한적입니다.


탁구의 경우도 유럽 사회에서 탁구를 잘 쳐서 내가 권위를 갖겠다 라던가, 혹은 높은 신분의 사람처럼 어떤 존경을 받겠다 라는 개념 자체가 있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그 나라들도 탁구를 잘 치면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가 스승에게 표하는 예와 같은 그런 개념은 아니지요.

어떻게 보면 탁구를 잘 친다고 거들먹 거리다 보면 천한 것이 신분 모르고 행동한다고 경멸을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하던 얘기로 돌아 가서요, 동양은 개개인이 가진 내면적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의미에서 서양보다도 더 개인주의적입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적 계층과는 상관 없는 내면적 가치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우리는 서구 사회를 개인주의적이며 동양 사회는 공동체적이라고 이해했던 것일까요?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글에 썼지만, 서구 사회는 사회 질서를 중시합니다.

과거 서구 사회는 예가 없는 무질서한 사회였지요.

귀족층은 한도 끝도 없는 에티켓을 갖추었겠지만 그것은 snobbish한 문화 (속물 근성)에 근거한 면이 많을 거에요.


예를 들면 중국의 후추가 금과 같은 높은 가격에 팔리던 때, 독일과 프랑스의 귀족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치킨 위에 후추를 부어서 범벅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게 맛이 있어서 그렇게 했겠어요? 그냥 돈 자랑 하는 것이지요.


또 일본이 빠르게 서구화 하게 된 배경 속에 유럽으로의 도자기 수출이 큰 역할을 했는데요, 서양의 박물관에 가보면 조선의 도자기공들이 만들었을 멋있는 백자 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금 치장과 금 손잡이가 달린 자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바다 건너 가져 왔으니 그 값이야 어마어마 했을 거구요, 그것이 왜 멋진지도 알지 못 하면서 그 위에 금칠을 해서 돈 자랑을 한 것이지요. 이런 것이 유럽의 귀족 문화의 일면입니다.


생각하면 참 한심하지요.

그 당시 유럽의 농민들은 농사 지은 대다수의 곡물을 다 귀족에게 바치고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며 살았을 것이고, 그 하층민의 사회에서는 동양적인 가치인 예라든가, 혹은 도리 라는 개념은 없이 그저 신 앞에 복종만 강요 되었을 것이니 말이지요.


이러한 서양 세계에서 중요시한 가치는 귀족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한 엄격한 신분 질서입니다.

바로 홉스가 얘기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루소가 얘기한 "사회 계약론"에 담긴 정신이지요.

이 사회는 내버려 두면 서로가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처참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사회 계층을 두고 권력이 하층민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기원한 이런 정신은 인간을 야수로 보고 현명한 몇 몇 권력자에게 무한한 권력을 주는 것을 정당화 시킵니다.

그리고 귀족에게는 하층민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귀족만의 문화를 용인하고, 하층민은 다만 통제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권력을 사회 질서를 위해 유보해야 합니다.


즉 내가 통제를 따르는 것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그것이 통제 받지 않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지요.

각 개인은 이 세계가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곧 사회 질서란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권력 앞에 두는 사회적 계약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은 통제를 따르는 한에 있어서는 자유를 누립니다.

즉 끝도 없는 깊이를 가진 ""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유보된 영역 외에는 자유로와도 됩니다.

이것이 서구의 개인주의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뒤집어 보면 그 속에는 무서운 집단주의가 숨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무한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권력의 출현을 용인할 수 있는 정신이지요.

이런 정신의 토대를 만든 것은 헤겔 철학과 막스 베버의 관료제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는 신의 절대 정신이 발현된 것이라는 헤겔 철학이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료제로 이 사회를 잘 통제할 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는 베버의 관료제론이 그 정당성의 실현 방법을 제시할 때,

우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 권력의 출현을 용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동양적 관점에서의 권력은 "예"를 기반으로 합니다.

어느 선만 지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예"가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박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상사에게 굿 모닝 한마디 하고 일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사만 할 것인가, 식사는 잘 하셨는지 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커피라도 한 잔 타 드려야 하는가... 하고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지킴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 예의 관념에는 절대적 권력을 용인하지 않는 정신도 있습니다.

중국, 일본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상상도 하지 못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한국 사회가 공자의 예를 극히 최근까지 국가적 이념으로 유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 권력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절대 권력자는 통제 되어야 합니다.

조선의 왕은 나면서부터 학식 높은 학자들에 의해 교육 되었으며 그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기록 되었고, 일생을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주변의 학자들에 의해 점검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지 않은 권력자는 의분을 가진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양의 수많은 귀족 중에서 선한 귀족이 있었겠습니까?

마차에서 내려 굶어서 죽어 가는 농부를 끌어 안고 애틋하게 여기며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인 사람이 있던가요?

그러나 서양 사회에서는 그것이 아주 당연합니다.

신분 구조는 사회 질서를 위해 강제되어야 하고, 그것에 어떤 변수를 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족의 입장에서 농민은 가축처럼 사육될 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예"의 정신은 그와 다릅니다.

우리는 왕이 평민 복장을 하고 암행을 하면서 민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핍니다.

억울한 사람은 신문고를 울려 왕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도 나랏님이 잘못한 탓이고 가뭄이 들어도 나랏님 탓을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 져서 중간에 자르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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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4.01 예, 어떤 내용인지 한번 봐야겠네요.
    도올 선생 강의 들은 기억은 있지만요, 아는 것은 없네요~^^
  • 작성자마징커 | 작성시간 17.04.01 오스카님, 세계사와 한국사... 사회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의 혜안과 통찰력이 대단하시네요^^탁구 이야기를 보면서 지적으로 많이 배워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4.01 예, 감사합니다~^^
  • 작성자붉은돼지 | 작성시간 17.04.03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권력에 대해서 항거를 했고, 쟁취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 사람은 다이나믹하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보면 수그러 드는 것이 아니라 대드는 것이 또 한국인의 습성이라고 어느 강연에서 본것 같습니다. ^^

    글이 긴데 참 재밋네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4.04 예, 다행입니다.
    길게 쓸 수 밖에 없는 소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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