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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탁구의 미래상에 대해 - (4) 점빵 문화에 대해 (2편)

작성자TAK9.COM|작성시간16.04.20|조회수718 목록 댓글 9

독일 얘기를 진행 하다가 멈췄지요?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하다 보니 몇 가지 정리할 개념들이 생기네요.


우선 서구 문명의 출발을 다 목축 문명과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 문명이 농경 문화 보다는 목축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제 글에 "산천"님이 이 부분을 지적해 주셨는데요, 농경 문화와 목축 문화로 인한 여러 가지 차이점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동서양의 세계관에 연결해서 바로 보지 못 했는데, 저에게 그것을 바로 알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시대를 보면서 서구 세계가 비교적 잘 살기 때문에 그들의 과거도 화려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서구 문명은 동양에 비해 많이 뒤져 있다가 뒤늦게 발전한 셈이지요. 그 발전의 양상도 정복과 제국주의라는 동양의 입장에서 보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지요.


서구 문명은 근본적으로 농경 문화 보다는 유목 문화에 가까왔습니다. 유목 문화가 농경 문화로 변모해 간 것이 서구 문명의 형성 과정과 거의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목 문화일 때에는 사실 문명 축적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유목 문화는 목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니는 문화이므로 정주성이 약하고 정주 개념이 약하므로 튼튼한 집을 짓거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이루기도 어렵습니다.

한 목초지에 여러 사람이 몰려 들면 곧 먹을 풀이 부족해 지므로 유목 생활은 곧 멀리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사는 문화를 뜻하구요, 결과적으로 고대 국가라는 개념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구사를 보면 국가를 이루지 못 하고 떠돌아 다녔던 많은 민족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후에 국가와 제국을 이뤘던 로마 문명과 이슬람 문명권에 흡수 되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국가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족장이 있었고 부족장의 세력이 거대해 진다고 하더라도, 큰 도시를 짓고 왕궁을 짓지 않으므로 어떤 문화 유적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왕을 위한 각종 장신구들을 만들지도 못 하고 문자를 만들어 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도 않습니다.


번외편에 해당할 주제가 좀 길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국가의 형성, 왕권의 확립,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수많은 백성의 노예화, 대규모 건축 동원, 장인들을 육성하여 만드는 각종 왕가의 장식품, 그리고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한 문자의 고안과 기록물들의 형성 등이 이러한 정주 생활 기반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발달한 고대 문명권들은 이런 문화 유적을 풍성하게 남겼지요. 중국의 황하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등 4대 문명이 바로 그런 문명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강을 기반으로 한 농경 문화권이라는 점입니다. 농경 문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를 가질 수 있었고, 도시를 다스리는 왕이나 황제가 출현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정점으로 하여 문자가 정비되고 역사적 유물이 형성됩니다. 농경 문화는 일정 시기에는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일을 해야 하는 농번기가 필요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또 먹고 사는 데 남을 만큼 풍족한 생산이 이루어 집니다. 그 덕분에 문명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직업군이 그 유휴 인력으로부터 출현합니다. 각종 수공예품도 생산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곧 문명권을 이루게 되지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수 밖에 없는 수메르 문명의 경우 기원전 35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고대 바벨론 국가들의 기록물이 진흙위에 쒜기질을 해서 만든 점토판 형태로 존재하는데, 대략 50만개가 존재하며 그 중 이십 몇 만개 정도가 해독되었다고 합니다. 이 바벨론의 토판 기록을 보면 기원전 3500년경 부터 숫자와 문자가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세워진 고대 바벨론의 왕궁은 물을 옥상으로 끌어 들여 만든 공중 정원이 있었고, 그 위에서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갈 만큼 넓고 튼튼한 성벽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후에 이집트 문명이 출몰하지요. 이집트 문명은 토판이 아닌 파피루스에 문자를 남겨 바벨론만큼 원형 그대로 문명을 다 전하지는 못 하지만 성경이 동서고금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만큼 현대 세계에도 많은 내용들이 연구되고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대 왕국의 경우 특기할 만한 것은 절대 권력이 출몰하고 그 절대 권력은 신과 같은 지위를 누리면서 모든 백성을 노예화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70만명의 일꾼을 동원해 36년 동안 자신의 무덤을 만들게 한 진시황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서구 문명권들은 이런 제국들의 변방에 위치했습니다. 스티가의 본산인 스웨덴도 과거에는 바이킹족이었고 전혀 문명을 알지 못 했지요. 서구의 선교사가 바이킹족을 만나고 그들의 야만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당시의 기독교 문명에서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후진성을 지녔다고 평했었지요. 티바가 위치한 독일은 어땠을까요? 독일은 사실 비스마르크가 19세기에 독일을 통일하기 전까지 수많은 공국으로 나뉘어 있던 나라였으며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절대적인 가문이 거의 제국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독일을 통치하기는 했습니다만 왕권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독일과 스웨덴은 과거에 아주 큰 힘을 가진 나라들이었습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 때문에 아주 많이 괴롭힘을 당했고 스웨덴이라면 아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구요, 역시 독일 주변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어쩌면 두 나라의 그런 공격성이 지금 탁구 브랜드인 티바와 스티가 성장에 조금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생각 되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역사의 흐름을 보면 서구 제국들은 정주성이 약한 문명이었고, 상대적으로 고대로부터 농경 문화에 기반한 강력한 왕권을 누렸던 제국들에 비해서 문화적 소양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침없는 전쟁 정신 (이것을 다른 말로 부르기가 적당하지 않네요.)으로 수많은 아시아와 고대 제국들을 정복하고 14세기 이후 빠르게 고대 문명들을 흡수하면서 제국 주의로 확장해 갑니다. 결국 그들의 전쟁 문명이 정주 문화에 기반한 고대 문명을 먹어 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탁구 얘기에서 한참 벗어 나서 다른 얘기들을 좀 적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다시 탁구 관련 이야기에 이어 붙여야 겠지요?



이처럼 정주 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국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회귀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목축, 정복 전쟁 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은 이주하여 살 곳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특성이 있어요. 제가 얼마 전에 몽골을 3 차례 다녀 왔는데요, 참 희안한 것이 몽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한국에 오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말 못 하는 것도 겂을 내지 않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도 겂을 내지 않는 것 같아요. 외국 가서 살다 오는 것을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결국 이 사람들의 삶 자체가 그런 삶이었던 거에요. 유목성이 아주 깊이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아요. 아픈 역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와 묻히고 싶은 것이 우리 민족의 근본적 특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덕분에 우리는 해외 자본이 자꾸 한국으로 들어와 경제 발전에 많은 도움을 얻었지요.


독일 얘기를 좀 하자면요, 독일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이주성의 경향이 강한 민족 구성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제가 독일 민족의 구성 형태를 잘 몰라서 전문성을 가지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독일 사람들의 경우 정주성도 상당히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그들의 건축에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집을 돌로 지어 왔어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로마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집이 수 백년 이상의 수명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그 집을 근거로 한 정주 문명이 독일의 최근 문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즉 과거 그들의 출발은 이주성이 강했을지 몰라도 최근 몇 백년의 역사는 별로 이사가지 않는 형태의 문명을 이루어 왔단 얘기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몇 십년 전 전화 번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수십년 전 전화번호로 걸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늙은 채로 전화를 받아요. 이것이 그들의 집에 대한 애착의 결과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집을 아들이 대를 이어서 짓는 경우가 많아요. 아주 집에 대한 애정이 깊지요. 가정 주부들의 일과 중 상당 부분은 집을 꾸미는데 할애 됩니다. 정원을 가꾸거나 자질구레한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집안 곳곳의 조명도 마치 카페처럼 꾸미고 하는 것이 주부들의 일상입니다. 남편들도 역시 집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 일 중 하나에요. 그래서 곳곳에 DIY 백화점이 있습니다. 이게 작은 슈퍼마켓이 아니에요. 그야 말로 집도 뚝딱 지을 만큼의 엄청난 공구들이 우리 나라 이마크 한 채 만한 곳에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또 이해가 되기도 해요. 독일 사람들은 저녁 5시가 되기 전에 퇴근합니다. 시내의 가게들도 그 시간에 문을 닫기 시작해서 6~7에는 거의 다 문을 닫아요. 문을 여는 곳은 식당과 술집 뿐이지요. 그러다 보니 오후 시간의 상당 부분을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처럼 저녁 늦게 퇴근하는 문화가 아닌 것이지요. 또 밖에 나가서 별로 할게 없어요. 삶 자체가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단조롭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운동을 하게 되요. 어느 종목이든지 하나씩은 택해서 클럽 사람들과 어울리며 운동하지 않으면 별로 재미 있는 일이 없는 것이 바로 독일 사람들의 삶이지요. 꼭 독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나 오스트리아등 인근 국가들은 다 비슷해요. 헝가리나 체코 등 동유럽 계열에 속하는 국가들은 경제 사정이 열악해서 그런 여유가 좀 없습니다만, 그래도 유럽이라면 기본적으로 독일식의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지요.


이처럼 집을 중시하는 독일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탁구 문화도 그런 집을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 중심의 문화를 이루게 됩니다.


글이 너무 길어 져서, 이 내용 부터는 다음에 적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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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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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TAK9.CO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21 감사합니다~^^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 작성자머루 | 작성시간 16.04.21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 재미있었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TAK9.CO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21 감사합니다~^^
  • 작성자부르스리 | 작성시간 16.04.21 과거의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이 현시대에도 차이점을 보여주는군요.
    전혀 지루하지 않고요.흥미롭네요^^
    독일사람들의 '저녁이 있는 삶' 부럽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TAK9.CO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21 저녁이 넘 길지요. 복작대는 한국의 저녁이 그리우실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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