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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탁구 이야기

[탁구일기]탁구치는 꿈

작성자일요일들|작성시간11.12.21|조회수2,023 목록 댓글 25

언젠가부터 탁구에 빠져있다. 탁구를 치기 전에는 '탁구장'이라고 붙은 간판을 본 적도,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탁구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치 자전거를 사고싶을 때면 동네 자전거 가게나 자전거 타는 이들의 그것이 눈에 쏙쏙 박히는 것처럼, 탁구에 재미가 들린 후 부터는 어느 동네를 가든 탁구장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거다. 사람 눈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 관심있는 것만 보인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탁구장은 대개 지하나 엘리베이터가 닿지 않는 3, 4층에 있다. 한계단 한계단 탁구장에 다가설 수록 핑퐁핑퐁 탁구공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가까워지는게 묘하게 기분이 좋다. 어떨 때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탁구장 문 앞에 서면 머리가 쭈뼛 서는 것만 같다.

 

탁구장에 들어서면 알 수 있다. 이미 잊혀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어떤 것이든 그 안에는 그것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말이다. 탁구장 문을 열면 어릴 적 보던 만화영화에서 처럼, 돈데크만이 나를 다른 시공간에 데려다 준것마냥 묘한 기분이 든다. 어색하리만치 밝은 형광등, 화려한 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땀냄새가 뒤섞인 습한 공기,,,아마 8,90년대의 풍경과 한치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지하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걸 알기나 할까. 이 세계에 갓 발을 들여놓은 나는 누구나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한 것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내심 좋았다.

 

탁구장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접한 질문은 젊은 사람이 어떻게 탁구를 배울 생각을 했냐는거다. 주변에 탁구를 치는 또래도 없거니와, "엥? 탁구를 친다고?"라는 반응만 봐도 탁구장에서 받은 물음이 이상하지만은 않다. 나는 교회에서 탁구를 알게됐다. '알게됐다'고 표현한 것은 탁구를 치기보다는, 지켜보기만 했기때문이다. 아빠 엄마는 주일마다 종종 교회에서 탁구를 쳤다. 어릴 적 부터 내 눈에 새겨진 탁구 치는 풍경은, 그래서 행복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초록색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두 남녀는 상기된 얼굴로 즐거워했고, 둘의 랠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린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탁구를 치고 싶다'는 다소 강하고 구체적인 생각은 내가 어른이 되고난 뒤의 일이다. 내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했던 풍경,하얗고 가벼운 공이 테이블 위에서 내는 경쾌한 소리, 어릴 적 내 눈과 귀에 각인된 'Peace'라는 단어 그 자체로 기억되는 시간들이 그리워서. 왠지 탁구를 치면 평화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 같다.

 

박민규의 소설 '핑퐁'을 읽은것도 순전히 제목때문이었다. 탁구공처럼 보이는 수백수천개의 작은 점으로 뒤덮인 표지, 그리고 핑퐁이라는 제목. 물론 소설 핑퐁은 내 머릿속의 핑퐁과는 전혀 다른, 저릿저릿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어릴 적 그렇고 그런 기억 위에 박민규의 소설이 더해지고부터 나는 탁구장을 찾았고, 그날로 레슨비를 치렀다. 처음으로 라켓을 잡고 어정쩡한 기마자세로 서있는 내게 관장님은 첫 석달만 잘 넘기면 계속 탁구를 칠 수 있을거라고 했다. 나는 '무사히' 석달을 잘 넘겼고, 여섯달째 되는 날 라켓을 샀다. 그러고보니 그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주인공인 모아이가 라켓을 사러가는 부분이다. 소설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자신의 라켓을 갖는다는건 자기 의견을 갖는다는 거야'라는 탁구용품점 주인의 말에 흐리게 밑줄이 그어져있다.

 

나는 라켓은 가졌으나, '의견'이라는걸 가질만큼 탁구를 잘 치지 못해 아직은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핑퐁의 가장 큰 매력은 몸을 숙여 저편의 서브를 기다리는 자세라는데는 공감한다. 탁구장 구석에 앉아 사람들이 탁구치는걸 보고있으면, 한방에 내리치는 스매시나 드라이브보다, 서브를 기다리는 자세가 가장 멋지다. 어떤것을 기다리는, 약간의 긴장을 가진 자세. 자세를 갖추고 기다리면 분명 공이 올 것이다. 내게 공이 오면 한방에 승부가 나는 게임보다도, 랠리를 하고싶다. 상대방과 마음만 맞으면 열번 백번 천번이라도 이어지는 랠리. 지금도 막, 눈앞에 공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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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일요일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23 ㄴ페르숑/감사합니다^^
    루디악 매니아/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셋째따님과 기쁜 연말 보내세요!
    헬신/짱구는 못말려처럼 시간탐험대는 요즘 애들도 보더라구요ㅎㅎ (나이 헷갈리게 만들려는 작전 ㅎㅎ)
    야행성불나방/내공은요;; 열심히 쌓아보겠습니다.
    셀라/뭔가 익숙한 닉네임이라 친근하네요. 감사합니다.
    토이사랑/여기 수많은 회원님들 중 이미 봤거나, 언젠가 한번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글 읽었습니다. 시험준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그 토이가 그 토이인지 모르겠지만 저도 유희열님 팬입니다. ㅎㅎ)
  • 작성자구름속에달 | 작성시간 11.12.23 꿈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결국 "꿈" 이야기 였네요.
    저도 탁구입문 20개월만에 처음으로 잠을자다 꾸는 "꿈"을 며칠전에 꾸었답니다.
    요즘 맞드라이브 연습에 몰두하다보니 꿈에서 맞 드라이브를 신나게 걸고 있더군요.ㅎㅎㅎ
    일요일님에 ★꿈은 꼭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좋은글 마음에 새겼습니다^^*
  • 작성자성공한다 | 작성시간 11.12.24 아~ 지금 회사인데 너무너무 탁구장 가고싶어지네요...^^
  • 작성자부루스리 | 작성시간 11.12.26 저도 꿈속에서라도 계속 탁구연습하는 꿈을 꾸고 싶은데 제 열정이 부족한 지 꿈을 꾸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일요일들님,
    빠른 실력향상으로 고수 반열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예리하게 | 작성시간 11.12.27 아름다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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