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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1-12(1)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08|조회수14 목록 댓글 0

6월 9일(화)   야고보서 1:1-12   찬송 395장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개역 개정)

 

- 인사 및 시련 중의 성도의 신앙 자세 -

야고보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던 주의 형제 야고보(행15:13)가

스데반 순교 이후 거세게 불어닥친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행8:1)를 피해 로마 제국 각 지역으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출신 성도들과 본래부터 이방인 지역에 거주하다

개종한 유대인 출신 성도들에게 시련 가운데서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행함을 통한

신앙의 성숙과 교회 공동체의 공고한 결속을 도모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간단한 문안 인사(1절)로 본서의 도입부가 끝이 나고

2절에서부터 본서의 본론부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본론부는 주제상의 뚜렷한 구분이나 어떤 체계를 갖추지 않고

일련의 실천적 교훈들을 나열식으로 언급하였다.

이는 로마 제국 각처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삶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루면서 교훈을 주고자 한 야고보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편의상 굳이 본론부를 구분해보자면

교훈들의 특징에 따라 보다 기본적인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전반부인 1:2-2:26과

구체적인 세부 교훈을 주고 있는 후반부 3:1-4:17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하에 오늘 말씀은 시험과 관련된 몇 가지 일련의 교훈들을 주고 있는

1:2-18중 그 전반부로서 환난과 핍박과 같은 외적인 시련(trial) 중의

성도의 신앙 자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2-4절은 성도에게 있어 여러 가지 시련은

인내를 통한 영적 성숙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시련의 의의에 대해,

마지막 12절은 시련을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으로서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5-11절은 시련과 관련된 부차적인 주제로서

성도가 시련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성숙되어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것(5-8절)과,

시련 중에 물질적인 궁핍함으로 고생하는 자들은 하늘의 영적 축복을 자랑하고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들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함에 이르도록 힘씀으로써

결과적으로 영적인 부요함에 이를 것(9-11절)에 대해 권면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서 기자가 본서 서두에서 이렇게 시련과 관련된 일련의 교훈들을 준 사실에서

본서 수신자들이 당시 처해 있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본서 수신자들은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인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출신 성도들로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상당한 박해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박해는 A.D.30년 후반경 스데반의 순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디아스포라 지역에서도 이러한 박해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타향에서의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형태의 고난이 있었던 바

이로 인하여 수신자들은 신앙적으로도 상당히 실의 상태에 빠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에 야고보서 기자는 다른 교훈들을 주기에 앞서 성도들이 받는 그러한 시련의 의미와

시련 중의 바른 신앙 자세를 일깨워주기 위해 이같은 교훈을 준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형태로든 필연적으로 시련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시험을 받을 때에

유독 자기 자신만이 시련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절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그같은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시련의 분명한 이유를 알 때에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영적 성숙에 이르게 된다.(롬5:3-5)

둘째, 시련 중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있는 믿음이다.

이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간구할 수 있고

또 간구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막11:34; 요일5:15)

셋째, 시련 중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세상 물질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축복이며,

우리가 진정 추구하여야 할 것도 물질의 부요함이 아니라 영적 부요함이다.(벧전1:6-7)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때

우리는 시련 중에 물질을 다 잃는다 하지라도 절망치 않으며,

또 물질이 부요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배금주의 사상이 팽배한 현대의 우리들에게 적절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에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한다.

언뜻 보면 이는 몰지각한 권면이며, 인정 없는 듯한 요구라고 여겨진다.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험과 고난의 때에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며 저절로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피게 마련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것을 ‘기쁘게’ 그것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니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을 무시한 권면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아니다.

이것은 본절에 있는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된 어리석은 결론이다.

그러면 2절의 진의(眞意)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시련을 받은 성도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3-4절에 나와 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인내가 생기고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모든 것이 구비된 완전한 성도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과 시련은 우리에게 무익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온전한 성도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여러 시험과 고난들은 모나고 부족함이 많은

우리들을 원만하고 온전한 성도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다.

곧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면 우리들에게 닥쳐는 모든 시험과 환난은

인내-연단-소망으로 이어지는 과정(롬5:3-4)을 거쳐 온전한 성도로 빚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편으로서 일종의 성화 과정이다.

이는 마치 보검이 수많은 담금질을 통해 만들어지며,

아름다운 도자기가 뜨거운 가마의 열을 통해 완성되며,

금과 같은 금속들이 도가니의 열을 거치며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정금으로 탄생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 고난과 시련을 통과해야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야곱과 모세를 보면, 야곱은 처음에는 그 이름처럼 아버지와 형까지

속여 가며 자기의 욕심을 이루던 자였지만(창27장)

이후에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찬 험악한 세월(47:9)을 지나며

점차 성화되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존재로 변화되었다.(창49:18)

또 모세 역시 처음에는 사람을 쳐 죽일 정도로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지만(출2:12)

광야 사십년의 세월을 통해 온 지면에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온유함을 지닌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었다.(민12:3)

어디 이들뿐인가?

성경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단 이 두사람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들도 이와 동일한 과정을 통해

온전한 성도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곧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간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는 말씀 그대로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손길을 통해

땅의 백성으로부터 하늘의 백성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을 만나면 온전히 기뻐하라는 말씀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고난과 시련이 오는 이유를

정확히 깨달은 자가 주는 정확한 가르침이다.

고난과 시련이 달갑지 않고 힘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과 시련 속에는 우리를 다듬어 완전한 존재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시련과 고난 후의 영광스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향락만을 좇고 고통과 연단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과 성도를 확연히 구분해 주는 표식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단과정을 통해 날마다 죄와 더러움을 계속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순금과 같은 모습(욥23:10)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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