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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1-13(4)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11|조회수11 목록 댓글 0

6월 12일(금)   야고보서 2:1-13   찬송 401장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개역 개정)

 

- 형제 차별 책망과 형제 사랑 권면 -

어제 말씀에서 야고보는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기초로서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에 대한 권고를 주었다.

이어 오늘 말씀에서는 전단락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신앙 자세에 이어

교회 내의 형제에 대한 차별을 경계한다.

즉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의 빈부나 지위의 고하와 같은 외형적 조건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된 성도들을 평가하고 차별 대우했던

수신자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책망하며(1-5절)

그러한 수신자들의 태도가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는 죄임을 논한 후(6-11절)에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그들로 하여금 긍휼을 행하는 자들이 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12-13절)

이러한 본문은 믿음은 반드시 바른 행위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본서의 핵심 단락인 다음 단락(14-26절)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배경으로 주어진 것이다.

한편 야고보는 여기서 성도들이 형제를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성도는 누구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다.(1절)

둘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5절)

즉 하나님은 물질의 부요 정도나 외모를 보고 성도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형제 차별을 금하고

이웃 사랑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8절)

넷째, 형제를 차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2-13절)

이러한 내용의 본문이 주는 바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 결코 어떠한 경우에도 형제를 외모로 판단하여

차별해서는 안되며 형제들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요7:24; 고후10:7)

만약 교회가 믿는 형제들을 외모로 판단하여 차별한다면

그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급기야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세속적 단체다 됨은 물론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야고보는 경고한다.

이러한 야고보의 권면은 특별히 오늘날 황금 만능주의, 배금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주의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②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실 때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부르셨다.(5절; 마5:3)

이는 성도들은 마땅히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은사들을 사모하여야 함을 보여 준다.(약1:17-18)

따라서 이러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세상 것 때문에

차별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일은 성도로서, 교회로서의 본분을

완전히 망각한 행위인 바 이를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자유의 율법’이란 1:25에 언급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과 같은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야고보는 지금 성도들에게 장차 심판 때에는 복음이 기준이 될 것이니

이를 염두에 두며 항상 복음대로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 복음대로 사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인가?

한 목사님께서 경험하셨다는 이야기가 훌륭한 대답을 준다.

언제가 한 목사님께서 친구 목사님 몇 분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아원은 원래 친구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가던 곳이었는데 그 동안 바빠 못가다가

6개월 만에 간신히 시간을 내어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몇 분 목사님이 함께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고아원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울면서 하는 말이

그 동안 한 아이가 죽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아이들을 껴안고 함께 울며

‘얘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면서

예배 중에는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눈물로 기도 드리더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따져 생각해 보면, 이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사과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아니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고 본인도 어렵게 살면서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여

이 고아원을 찾았으니 오히려 칭찬을 들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님은 하나님과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복음이 그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목사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한 사랑을 뉘우치게 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죽을 죄를 짓고도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과 평생에 단 한번도 고아원을 찾지 않으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님은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복음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단지 세상의 법이나 윤리 등을

지키고 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사는 것만으로는 복음을 기준으로 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엄중하신 책망을 피할 수 없다.

산상 수훈에서 보듯 복음 속에는 세상의 그 어떠한 법과 윤리도

따르지 못하는 차원 높은 요구와 명령이 담겨 있다.(마5-7장)

따라서 우리는 비록 몸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살아가더라도

천국 시민답게 삶의 기준과 원칙만은 언제나 복음과 성령에 둠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차원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6: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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