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월) 야고보서 3:1-12 찬송 406장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개역 개정)
- 혀의 올바른 사용 -
야고보는 지금까지 1:2-2:26까지에서 성도의 보다 성숙한 믿음을 위하여
시련을 당할 때의 성도의 자세와 믿음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실천을 동반한다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원론적인 측면에서 역설하였다.
이제 3:1-4:17까지에서는 앞서 언급한 원론적인 교훈에 근거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성도들이 신앙 생활 가운데서 접하게 되는
주요한 몇가지 문제에 관한 교훈들을 제시함으로써
성숙한 성도의 바른 신앙 자세에 대해 일깨워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 3장이 보다 개인적 교훈인데 반해
제 4장은 교회 공동체에 주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하에 오늘 말씀은 3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
성도 개개인의 신앙 인격 성숙에 있어 요구되는 두 가지 교훈 중 그 하나로서
혀(말)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을 보다 세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 2절에서는 함부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선생이 되려고 나서는
일에 대해 금한 뒤 말의 절제의 중요성을,
이어 3-5절에서는 혀의 특성과 영향력에 대해
6-8절에서는 혀를 제어하지 못할 때에 나타나는 악한 결과에 대해
그리고 9-12절에서는 혀의 올바른 사용이
성도의 바른 신앙 생활에 있어 필수적임을 설명하고 있다
특별히 야고보는 이상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재갈’, ‘키’, ‘불’, ‘동물’, ‘샘’, ‘나무의 열매’ 등을 비유로 들어
혀의 올바른 사용의 중요성을 다각도로 조명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야고보가 말의 올바른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한 이유는
당시 초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도들 간의 다툼이나 분쟁의 발단이 결국
개인 신앙 인격의 미성숙으로 인한 말의 오용에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이미 앞에서도 두어 차례 말의 절제에 대해 교훈하였거니와(1:19-20, 26)
본문에서는 보다 집중하여 말의 절제를 통한 개인 신앙 인격의 성숙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의 오용으로 인한 다툼이나 분쟁은 비단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 안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인 바
본문이 현대 성도들에게 주는 바 교훈은 실로 크다 하겠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말의 사용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인 바
우리들은 자신의 신앙 인격 수양을 통해
말을 올바로 사용하기에 힘써야 한다.(잠17:27; 골4:6; 딛2:8)
둘째, 말의 오용이 주는 폐단은 비단 자신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이 죄에 얽매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잠18:8)
따라서 시편 기자처럼 스스로 말의 오용을 막기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말의 사용은 대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대신 관계에서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할 성도의 직분과,
또 나아가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성도의 의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올바로 사용해
성도로서의 직분과 의무에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사43:21)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6절에서 혀는 물론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즉 야고보는 말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불은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의 삶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그 질이 달라졌다.
불은 인간이 잘만 사용한다면 삶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불은 한편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자칫 취급에 부주의하면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성냥개비에 불을 그을 때는 미미한 것이지만
그것이 번지면 엄청난 재산과 인명상의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불씨에 대한 취급 부주의로 엄청난 피해를 보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 바로 이러한 불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말을 주신 것은 참으로 큰 은혜이다.
이 말은 인간에게 더없이 유익한 것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를 소통하고
그럼으로써 놀라운 문명을 만들어 냈다.
물론 동물들도 소리로 의사를 소통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말과는 본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의 말이 중요한 것은 과거 바벨탑 사건시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진 사실로 반증된다.
인간의 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말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불이 그렇듯이 말도 잘 다스리면 매우 유익한 것이지만
잘못 다스리면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구소련의 반체제 작가였던 솔제니친은
‘참된 말 한마디가 세상보다 더 무겁다’라고 하였다.
말의 중요성과 신중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불과 말의 가장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아마도 번진다는 것일 것이다.
불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번진다는 데 있다.
불은 아무리 작게 시작된 것이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주위로 마구 번져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강원도나 미국, 호주 등지에서 일어난 산불의 위력을 기억해보면,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동안도 번져간다.
문자 그대로 화마(火魔)다. 모든 것을 검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말도 이와 같다. 별 생각하지 않고 조심 없이 한 말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가연성을 지닌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자기의 온 인격을 더럽히고
때로는 인생 자체를 불살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나아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난다고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말은 사실상 불과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불은 잘못 다룰 경우 단지 재산상의 손해나 육적 피해만을 가져다줄 뿐이지만,
말은 잘못 다스리면 이 세상의 삶은 물론
내세의 삶까지도 파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형제를 향하여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마다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경고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내뱉은 말은 화마가 되어 다른 사람을 덮치고
자신까지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조심 이상으로 말조심을 해야 한다.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이 과연 합당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바르고 유익하고 아름다운 말만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말을 하여
말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아름다운 언어 생활을 하여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12: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