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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13-18(7)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15|조회수10 목록 댓글 0

6월 16일(화)   야고보서 3:13-18   찬송 407장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개역 개정)

 

- 선행으로 나타나야 할 참된 지혜 -

어제 말씀에서 성도 개개인의 신앙 인격 성숙을 위해 요구되는

두 가지 교훈 가운데 첫 번째로 말의 절제에 대해 교훈한 야고보는

오늘 말씀에서는 그 두 번째로 마음속의 생각을

잘 다스리는 참 지혜를 소유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즉 야고보는 여기서 인격의 외적인 반영인 말의 사용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모든 윤리적 행위들이

결국 인간의 마음속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인 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참된 지혜에 근거한 바른 생각을 마음 속에 가짐으로써

결국 선한 행위를 나타낼 수 있도록 교훈하고 있다.

야고보가 본문을 통하여 이같은 교훈을 준 것은 일차적으로

초대 교회 당시 스스로 선생이 되어 지혜와 총명이 있다 하면서도

오히려 실생활에 있어서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으로 인해

성도들간에 분쟁과 다툼을 일으키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지적함과 아울러

참 지혜는 반드시 선행으로 나타나야함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야고보는 먼저 거짓 지혜와 참 지혜를 대조하여

시기와 분열과 다툼이 거짓 지혜의 소산임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하는 자들의 무지와 죄악을 지적하고(13-16절)

참 지혜있는 자들은 필경 선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17-18절)

여기에 나타난 두 지혜의 특징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거짓 지혜의 특징은 독한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거짓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세상적이요 정욕적인 것이요 마귀적인 것으로,

결국 거짓 지혜는 무질서와 모든 악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14-16절)

반면 참 지혜의 특징은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17절)

따라서 참 지혜는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18절)

특별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참 지혜의 특성이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갈5:22-23)와 일치하는 것으로

그 지혜가 하늘로서 난 것이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서 참 지혜는 진정한 믿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와 총명이 있다 하면서도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악한 열매를 맺는다면 그는 참 지혜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일 수 없다.

참된 믿음은 전인격적인 것으로서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 곧 그 사람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선한 열매를 맺게 한다.

이상의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첫째, 성도는 하늘의 참 지혜를 얻어 화평의 씨앗을 뿌리고

의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의 삶이요

거듭난 자의 마땅한 삶의 모습이다.(엡4:25-32; 5:8-14)

둘째, 오직 하나님의 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짐을

깨달아 성도는 한편으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생활에(딤후3:14-17)

다른 한편으로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성령 충만한 생활에 힘써야 한다.(고전2:10; 엡5:18)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7절에는 하늘에서 오는 신령한 지혜의 여덟 가지 특징이 제시되어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일찍이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산상 수훈의 팔복(마5:3-10)과 대단히 비슷하다.

예컨대 팔복 가운데 마음이 청결한 자는 17절의 성결과 상응하고,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과 상응하며,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과 일치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양순과 비슷하며,

온유한 자는 관용과 상응하고,

의에 관한 말씀들은 거짓 없고 편견됨이 없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학자들에 따라서는 본절의 말씀을 가리켜

‘산상수훈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혜의 여덟 가지 열매’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5:22-23)에 비유하여

‘지혜의 여덟 가지 열매’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령한 지혜의 열매들은

산상 수훈의 교훈처럼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보기로 먼저 성결을 살펴보면

이는 구약 시대 대제사장이 쓰는 관에 새겨질 만큼(출28;36)

성도들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덕목이지만,

오늘날에는 이처럼 낡고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외면당하는 것도 달리 없다.

요즈음 성결과 순결을 말하면 ‘너 조선시대 사람이니?’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양순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은 무릇 양순해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곧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래?’라는 것이다.

특히 이 점은 앞의 성결과 함께 여성 신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 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과 아내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성결과 양순한 자세로서의 순종을 꼽으면

한마디로 여성을 노예로 묶어놓기 위한 족쇄라는 비판만 들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살펴보면 지혜의 마지막 열매인 ‘거짓 없음’을 들 수 있다.

이것 역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리석음의 하나로 간주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단적으로 나타난다.

언젠가 우리 사회에 소위 무슨무슨 게이트니 해서

각종 비리 사건들이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을 때에

당시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1부 2도 3수’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곧 자기의 부정이 발각되면 먼저 부인하고,

그래도 안되면 도망가며, 그래도 안되면 적당히 수습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처음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거나

‘만일 내가 그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면 할복이라도 하겠다’며 결백을 장담하다

결국 진실이 밝혀지자 얼굴을 가리며 감옥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사실들은 결국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모범과 성령의 지혜를 따라 성결하고 양순하며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시대 착오적으로 보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비웃고

복음을 배척한다고 해서 결코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렇기에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말씀대로 사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오직 굳은 용기와 결단으로 복음의 좁은 길을 택함으로써

비록 세상으로부터는 조롱과 배척을 받으나

최후에는 천국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받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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