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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10(8)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16|조회수12 목록 댓글 0

6월 17일(수)   야고보서 4:1-10   찬송 408장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개역 개정)

 

- 성도간의 다툼에 대한 경계 -

3장에서 야고보는 성도 각 개인의 신앙 인격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말의 올바른 사용과

마음의 생각을 바로 다스리는 참된 지혜를 소유함으로

신앙 인격 성숙에 힘쓸 것을 교훈하였다.

그에 이은 4장에서는 교회 공동체 전체가 다툼이 없이 일치된 모습으로

또 보다 성숙된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주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오늘 말씀은 성도간의 다툼에 대해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전반부 1-6절에서는 성도간의 다툼의 원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즉 본문에서 야고보는 성도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는 그릇된 욕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여기서 세상의 헛된 것이란 사도 요한이 말한 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가리킨다.(요일2:15-16)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성도 자신이 사단의 미혹에 빠지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됨을 이미 1:13-18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야고보는 여기서 이것들이 교회 안에서의 다툼의 직접적인 원인도 됨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로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

세상 법정에까지 나아간 경우를 들 수 있다.(고전6:1-8)

그리고 이같은 일들은 초대 교회 당시 때보다 오히려

현대 교회 안에서 더욱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서 우리 개개인의 인간적인 욕심들이 교회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최초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와 같이

성도들 간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기 욕심을 버리고

일치된 모습으로(행2:43-47; 4:32-35) 나아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 성도들간의 다툼을 극복하는 비결을 언급하는 부분이다.(7-10절)

즉 본문에서 야고보는 성도들간의 다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소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며,

적극적으로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자극하여 세상 정욕을 추구하도록

미혹하는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7절)

성도들의 싸움 상대는 다른 성도가 아니라

바로 세상 정욕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마귀이다.(엡6:12)

둘째,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에 서 있는 두 마음의 상태를 버리고

마음을 성결케 하여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다.(8절)

셋째, 자신의 죄에 대해 철저히 애통해 하며 회개하는 것이다.(9절)

이에서 수평적으로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은

각 사람들이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정욕을 좇아 스스로를 높이려하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겸손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낮출 때 모든 다툼과 분열은 극복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게 된다.(눅14:11; 고후 11:5; 벧전5:5)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씀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질투하실 정도로 강하다는 의미이다.

곧 신부인 성도들을 향한 남편이신 하나님의 사랑은

한마디로 질투할 정도로 강한 불타는 사랑이다.

사랑은 독점적이다.

따라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사랑은 독점을 원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면 시기하고 질투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영원한 신랑되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시기하고 질투하신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자주 표현되어 나온다.(출20:5; 나1:2; 슥8: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기면 질투하신다.

물론 하나님의 질투를 인간의 질투와 동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처럼 상대에 대한

미움과 파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사랑의 발현이며

본래의 정상적인 관계로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

우상을 숭배하는 성도, 자기 정욕대로 살아가는 성도를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에 대하여 질투하시며 때로는 정상적인 관계 회복을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징계하시기도 한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거나 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않을 때

고난이 닥치는 것도 우리를 바른 길로 돌이켜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게끔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곡한 사랑의 표현이자 메시지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제단에 내어주시기까지 한 사랑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라고 증거하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는가?

세상에 신이라 하는 존재들이 많이 있지만

어느 신이 인간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었는가?

그러한 세상의 신들도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부터 더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먼저 인간을 사랑하셨다.

영원히 죽어 마땅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셨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고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당신을 버리고 세상의 헛된 것들을 사랑하면 시기하고 질투하신다.

다른 신보다 더 좋은 대접을 원해서가 아니라

참된 신은 당신 한 분뿐이며 그것이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민감해져야 한다.

오늘날 이 땅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으면서도 기쁨과 행복보다는

오히려 무겁고 힘든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더 많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영적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에 낀 묵은 때를 씻어내고 민감한 마음으로

그 사랑을 느끼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온몸으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며 평생토록 함께 하시는

인자와 보호속에서 참으로 신혼을 살아가는 신부처럼

풍성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시23:1-6)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렘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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