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토) 야고보서 5:7-11 찬송 411장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개역 개정)
- 고난 중의 인내에 대한 권면 -
어제 말씀에서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준 데 반해
오늘 말씀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이 임박하였으므로 그때까지 핍박을 인내하라는 격려성의 권면을 주고 있다.
혹자는 본문을 앞단락과 연결하여 여기서 핍박을
불의한 부자들에게서 받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핍박은 특정한 어떤 것을 가리킨다기 보다
1:1-12에서 밝힌 바와 같이 디아스포라 지역의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받는
여러 가지 고난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주께서 재림하시기까지
불의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러 사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다.(빌3:20; 벧전1:17)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이 세상의 가치관 가운데서
심한 혼란을 느낄 뿐만 아니라 때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기도 한다.
본서의 수신자들도 그러한 박해로 인하여 심한 고난을 겪으며
심히 낙담하는 가운데 처해 있었다.
이에 야고보는 본문을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버리지 말고
주의 재림 때까지 인내할 것을 권면하는데
인내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현재의 고난의 삶을 역전시킬 수 있는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이다.(7-9절)
농부가 파종을 하고 수확을 하기까지는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농부는 그 기다리는 동안 여러 자연적 재해 등과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가 인내할 수 잇는 것은
귀한 열매를 거두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고난을 인내해야 할 이유도
인내 끝에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시126:6; 롬8:17-18)
그런데 이러한 영광은 주의 재림을 통해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가깝다는 사실은 성도들이
고난을 인내하며 믿음을 더욱 굳게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둘째, 신앙의 선배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10절)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악한 자들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함으로써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았다.(왕상22:24-2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앙의 정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어찌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성도들 또한 영혼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이겨야 한다.(마10:28)
셋째,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하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11절)
야고보는 이 사실을 욥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욥은 당대의 의인으로 원인모를 시험을 받아 고난에 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고난받기 이전보다 배나 되는 축복을 받았다.
이는 바로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받을 천국의 영원한 축복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재의 고난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복되게 하기 위해
허락하신 방편임을 깨닫고 신앙의 선배들의 본을 따라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특별히 성도들은 심판자되시는 주께서 지금 문 밖에 와 계시다는
종말론적 자세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하고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9절; 계22:20)
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는 지금까지 해왔던 부자들에 대한 책망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성도들을 향한 권면을 시작하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성도의 시련과 고난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이 땅에 사는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최우선적 자세를 설명하는 것이다.
‘신앙 = 무고난 + 무고통’ 이란 공식은 옳지 않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행14:22)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땅에서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시련과 고난을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신앙이란 이 땅에서 평탄 대로로 진입하는 안내 표지판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이 있는 세상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다시 말해, 신앙이란 인생의 기준과 삶의 목표를 보이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사람들에게 지시해 주는 가장 확실한 등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처럼 앞으로도 시련과 고난이 계속될 것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있는 신앙의 형제 자매들에게
그 길에서 갖춰야 할 각오와 태도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인내’이다.
야고보는 인내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먼저 농부의 예를 제시한다.
이는 잠언의 말씀을 연상시켜 준다.
곧 잠언 기자가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로 가서
그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권했던 것처럼(6:6-8)
야고보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농부에게로 가서 인내와 기다림을 배우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농부들이 가을에 있을 귀한 수확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인내하듯
우리 역시 주님의 재림과 그 때 있을 상급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농부들의 수고와 인내가 가을의 수확 때까지 계속되듯
우리들의 기다림과 인내 역시 주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때까지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첫째, 주님께서 이 땅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에(벧후3:9)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 역시 동일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기다림은 하늘에 계신 주님의 인내와 상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누군가 조금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불평한다면
이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형편만을 생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하는 자만이
온전한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막13:13)
그리고 이는 앞서 제시한 농부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곧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이내 열매가 없다고 포기하거나 중간에 낫을 휘두른다면
곡식은커녕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중간에 인내와 기다림을 포기한다면
그 어떤 열매와 상급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 시험과 고난을 만날 때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넉넉함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오직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자만이
예비하신 상급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히10:36)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와 수고로 받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