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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12-20(12,끝)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21|조회수11 목록 댓글 0

6월 22일(월)   야고보서 5:12-20   찬송 412장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개역 개정)

 

- 맹세 금지 및 기도 그리고 미혹된 자를 구할 것을 촉구하는 권면 -

12절은 맹세에 대해 교훈하는 부분으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맹세를

엄히 금하고 있는데 이는 산상 수훈의 마5:33-37과 그 내용을 같이 한다.

그리고 13-18절은 기도에 대한 교훈으로

야고보는 먼저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면한 후에(13절)

특별한 문제의 하나인 질병에 걸린 자에 대해 성도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설명함으로써 고난에 직면한 성도들은 

이를 합심 기도로 극복해야 함을 강조한다.(14-16절)

또한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17-18절)

성도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기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앞서 7-11절에서 야고보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인내로 고난을 이기도록 권면했거니와

여기서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기도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사실 성도들이 홀로 고난을 극복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

고난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신앙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상이하며 다양하다.

그리고 성도들은 직접 고난당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 성도들은 중보 기도를 통해 고난에 처한 자들을 도울수 있다.

즉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로 연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각자의 다양한 경험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서로를 도울 수 있다.

특별히 합심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큰 바

이는 고난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된다.(마18:19; 행12:12)

그러므로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고 위하여 기도하되

특별히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19-20절에서 야고보는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구할 것을 권면함으로써 야고보서를 마무리짓는다.

이는 성도들의 합심 기도를 강조하는 13-18절과 연결하여

성도간에 협력하고 도와주는 공동체적 신앙 생활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해 주어진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하여튼 초대 교회 당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유대교로 회귀하거나 여러 이단 사상에 현혹되어

진리에서 떠나 그릇된 길로 들어서는 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들을 미혹의 길에서 다시 돌아서게 하는 것은

주님의 구속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요

그에게 가장 큰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도들 중에 누가 실족하여 진리에서 떠나면

그를 비난하고 정죄할 것이 아니며

그들을 돌아보고 다시 진리의 길에 돌아오도록 힘써야 한다.

특별히 성도들은 자신들 모두가 본래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감으로

죄에 미혹된 존재였으나(사53:6)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에 이르게 하셨음을 기억하고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미혹된 형제를 사랑과 열심히

돌이킴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부응해야 한다.(롬1:14; 8:12; 유1:20-23)

한편 야고보는 당시 서신의 일반적인 형식인 마지막 문안 인사를 생략한 채

돌연히 미혹된 자를 구할 것을 권면하는 것으로 자신의 글을 끝맺고 있는데,

이는 야고보서와 요한일서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형식이다.

아마도 야고보는 그의 권면의 긴박성을 나타내기 위해

마지막 문안 인사를 생략한 듯하다.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6절 하반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말씀한다.

물론 여기서의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아무런 죄와 결점도 없는 완벽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이 땅에 완전한 의인이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롬3:10)

따라서 여기서의 ‘의인’이란 그리스도의 십자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믿음의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특히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여 행하는 자를 가르킨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하시고 자녀로 삼으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성도들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17-18절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엘리야의 기도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능력이다.

예컨대 먼저 17절을 보면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삼 년 육 개월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는 엘리야가 어떤 악심을 품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을 징계하기 위함이었다.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면 하늘을 닫아 지면에 비를

내리지 않으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신11:16-17)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엘리야의 기도는 자그만치 삼 년이 넘도록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역사를 일으켰다.(왕상17:1)

이는 오늘날 미국과 같이 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나라조차도 가뭄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에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능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 18절을 보면 그가 다시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오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

이는 그의 기도에 의해 내린 비는 홍수로 온 땅이 잠길 정도도 아니고

해갈에 부족할 정도도 아닌 참으로 경작에 알맞을 만큼의

적당량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공 강우니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도 지극히 적은 양의 비밖에 내릴 수 없는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실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기도를 통해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던 엘리야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재였는가?

이에 대해 야고보는 17절에서 그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이었다고 말씀한다.

곧 그 역시 길을 가다 피곤하여 지치기도 하고 위기에 처하면 끝없는 낙심에

빠지기도 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왕상19:1-8)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우리들도 바른 믿음만 가지면

엘리야와 동일한 능력의 기도를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셨음을 알고 감사하며 아울러 큰 자부심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이 땅의 그 무엇보다 강력한 하늘의 능력들(막16:17-18)을

나타냄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능력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르시되 너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20)

 

 

개인 사정으로 말씀 묵상(베드로전서~)

    잠시 쉬었다가 71일에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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