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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야고보서

히브리서 13:22-25(39, 끝)

작성자흐르는 물|작성시간26.06.07|조회수23 목록 댓글 0

26년 6월 8일(월)   히브리서 13:22-25   찬송 393장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개역 개정)

 

- 마지막 권면과 축도 -

오늘 말씀은 본서를 완전히 매듭짓는 마지막 권면이다.

이에 앞서 저자는 이제까지 본론부인 1:4-13:17에서,

그 존재에 있어서 탁월하신 그리스도와 큰 대제사장으로서의 속죄 중보 사역을

감당하신 그의 사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선진들과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좇아 생활 가운데서 믿음을 실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이어 본서의 저자는 본론을 마무리함에 있어

또다시 이러한 권면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함을 밝히고 있으며(22절)

바울의 동역자였던 디모데가 석방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머지않아 본서 저자는 디모데와 본서 수신자들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하여

자신이 얼마나 그들에게 가고 싶은가를

앞 단락에 이어 디시 한번 나타내고 있다.(23절)

그리고 최후의 부탁으로 저자는 다른 여러 형제들에게

자신과 이달리야에서 온 형제들의 문안을 전해달라고 한 다음(24절)

모든 서신들의 종결부 양식과 같이 수신자들에 대한 축도로 끝맺는다.(25절)

그러나 서론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서신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서신의 인사 형태도 생략했던 저자는

결론부에 이르도록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아니한다.

이러한 본서의 특징을 들어 어떤 학자는 본문이 바울의 저작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후대에 첨가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친 저자가

모든 것을 끝내 놓고 나서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일반적인 서신들이 가진 문안과 축도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지 생략한 것이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뿐이다.

본서의 권면의 내용은 직접적으로는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서신적 형태를 띤 성경이 그러하듯이 본서 역시 궁극적으로는

모든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본서가 주고 있는 권면과 경고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으로 여기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 준행하도록 해야 한다.

 

23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3절 말씀은 단순한 사실을 알리는 정도의 내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구절의 말씀을 22절의 말씀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놀라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곧 22절의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권면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반응을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에 곧 이어서 디모데가 풀려난 사실을 전하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권면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용기를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권면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대신 그들 자신의 부패 성향대로 자유롭게 행하는 자들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노예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에 복종하는 자들만이

참되고 신령한 자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유로운 상태를

아무런 속박이나 권위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오해한 것이다.

다른 어떤 종류의 권위 아래에 놓여지는 것을

자기의 자유가 차단되고 얽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도 없다.

왜냐하면 무법하게 행하는 것이 곧 자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이는 곧 육신의 방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죄와 사단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렇다면 참된 자유란 어떠한 자유인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대로 행하게 하는 자유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자유이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며

주 안에서 행하는 권면들을 실행하는 한

우리는 모든 부패의 족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자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또한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스펄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룩한 길은 노예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왕의 첩경이요

자유민이 걸어갈 길이다. 다시 말하면, 애굽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안식의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기쁘게 순행하는 자들의 길인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 안에서 행하는 권면을 성실히 이행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성도가 누리게 될 신령한 자유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23절의 소식을 22절에 연이어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참된 신령한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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