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2장 1절 ~ 9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1-2)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맞이하는 6월의 첫 주가 되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세웠던 수많은 다짐과 영적 계획들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정세와 여건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고단하고 빡빡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더 어둡고 캄캄한 영적 영토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시작한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하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께 버림받은 처지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분심(부르심)을 받아 믿음으로 사는 삶을 시작한 첫 출발점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처럼 우리 자신도 복을 받고, 나아가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복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 그 영적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익숙한 과거와 죄악의 자리로부터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시며 처음으로 던지신 말씀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비현실적이고도 충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곳에 정착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당합니다. 삶의 근간이자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무작정 놓고 떠나라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작은 바로 영적 과거로부터의 철저한 ‘단절’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믿음의 세계는 과거의 습관에서 현재로 서서히 이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따라 우리 삶에 안겨주시는 전적인 새로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던 옛 방향과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하나님의 하늘 신령한 새로움을 결코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끊임없이 세상적인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우상 숭배의 옛 자리에서 분리되는 과정이었습니다.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 평생의 동반자 같았던 조카 롯을 떠나보냈으며,
* 인간적인 조급함으로 취했던 하갈과 이스마엘마저 단절해야 했습니다.
* 심지어 모리아산에서는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까지 번제로 드리며 온전한 영적 분리를 경험했고,
* 노년에는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며 물질로부터도 초연해졌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 우리는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작은 것을 버릴 때 하나님은 영원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천국)을 허락하셨고, 육신의 아비를 떠나보낸 그에게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옛 이름은 잊혔을지 몰라도,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찬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과감히 정리하고 떠나야 할 영적 죄악과 안일함의 자리가 무엇인지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2. 안일한 ‘하란’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다시 일어나 재출발’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기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 살기 좋고 풍요로운 대도시인 ‘하란’에 임시로 머물렀습니다. 영적 긴장이 풀리자 그곳에 정착해 버린 것입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에 취해 주저앉아 있는 사이, 세월은 흘렀고 그의 아버지 데라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영적 정체기에 빠져 있던 아브라함은 75세라는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늦은 나이에 다시 믿음을 추스르고 일어난 그 재출발의 시점을 성경에 똑똑히 기록하시며 매우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다시 결단하고 가나안 땅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나타나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며 놀라운 확장의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올 초에 수많은 영적 계획을 세우고 출발했지만, 지금 어느새 ‘하란 땅’과 같은 영적 나태함과 안일함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풍파에 휩쓸려 기쁨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있다면, 이 시간 아브라함처럼 다시 한번 결단하고 일어서십시오. 우리의 출발이 비록 불완전하고 막연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을 붙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시작은 미약하여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고작 12초 동안 하늘을 날았던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적 승리와 창대한 결말로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3.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야’ 합니다
본문 4절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여기에 믿음의 결정적인 비밀이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 곁에는 조카 롯도 함께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두 사람 모두 고향을 떠나 같이 예배하고 같이 걸어가는 동반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알맹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갔지만, 롯은 말씀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사람(삼촌 아브라함)’을 쫓아갔고 세상의 풍요로운 ‘환경’을 쫓아갔습니다.
환경을 쫓아간 롯의 눈에는 물이 넉넉하고 에덴동산 같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의 끝은 유황불로 말미암은 영원한 멸망이었습니다. 반면, 기꺼이 좋은 땅을 양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척박한 광야에 홀로 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거부가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계보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의 끊임없는 전략은 우리의 환경을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어,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빼앗고 예배의 자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누구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인생의 팔자가 고쳐질 것 같고, 환경이 좋아지면 신앙생활 잘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은 늘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결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이양하는 회심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삶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미물인 공중의 새와 기르는 가축 한 마리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독생자 예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영적 고비와 결핍 속에서도 신학교를 졸업하게 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며 여기까지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남은 생애 역시 완벽하게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지금 비록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져 있거나 영적으로 침체해 있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 아브라함처럼 익숙한 죄악의 자리에서 돌아서는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 내딛을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삶에 시작됩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완전한 승리가 임할 것입니다. 6월의 첫 주, 안일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감으로써,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심령이 이 시대의 진정한 ‘복의 근원’이자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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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 건네는 위로]
#초록이 한층 짙어지는 유월
푸른 아침이 내려앉습니다.
길가에 흐드러진 붉은 양귀비꽃은
오가는 발걸음마다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수면을 차고 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에
우리네 마음도 덩달아 탁 트이는 듯합니다.
자연이 건네는 이 작은 위로와 싱그러운 기운을
카메라에 담아 고스란히 띄워 보냅니다.
수동에서, 포토테라피스트 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