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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이곳에서 돌을 두드리니 종소리가 났다ㅡ9

작성자고구려|작성시간24.09.07|조회수122 목록 댓글 1

만어사는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에서 고려 명종(1180)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만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사찰 장엄구로서 용(龍)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물고기이다

 

 물고기를 금어(金漁)라고 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금어(金漁)라고 한 것과 같은 뜻으로

 

 여긴다고도 한다 사찰 이름에도 동래 범어사(梵魚寺)밀양 만어사(萬魚寺),

 

포항 오어사(吾魚寺) 등 고기 어(魚)자가 들어가 있는 절이 있다.

 

 '어' 자가 들어간 산이 많다는 것도 인도문화 교류의 증거이자 가야불교 도래의 근거다. 이러한 물고기

 

관련 흔적은 수로왕릉 정문의 '신어상'과 은하사 대웅전 단청의 '신어문'과도 맥이 닿아 있다

선종에서 사찰규범의 지침서로 삼고 있는 '백장청규'에는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 눈을 감지 않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듯이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항상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으며, 또한 이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정신 차리도록 꾸짖는다”라고 적고 있다

 

목조 건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화재이다. 불은 물을 만나면 바로 생명을 잃는다

 

사찰 추녀끝의 풍경에 물에 사는 고기를 달아놓는 것은 물고기는 곧 물을 상징하므로 화마의 침입을

 

 막으며 물고기가 잠을 자지 않는 것처럼 항시 화재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미로 달아 놓는 것이다

만어사는  46년 수로왕이 창건하였다는 전하는 전설 속의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던 사찰이다

 

만어사의 유래는 삼국유사 탑상편 어산불영조에 자세하다.

 

'만어산 근처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수로왕에 의해 다스려지던 가락국이 있었다. 만어사 경내 옥지의

 

독룡과 만어산의 다섯 나찰녀가 오가며 사귀었는데 때때로 천둥비를 내려 4년이 지나도록 곡식이 익지

 

않았다. 왕이 주술로서도 멈추지 못하자 부처님을 청해 설법했다. 이에 나찰녀들이 5계를 받아 후환이

 

없어졌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이들 돌에서는 신기하게도 두드리면  마치 범종과 같은  맑은 소리가 난다해서 종석이라 한다

천연기념물물 제528호

 

청도 운문사에서 거처하며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일연스님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만어산에 답사 와서 돌을 두드려보고 종경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위의 기록들을 근거로,만어사는 가야  김수로왕(46년) 시대에 세워진 절이며, 명종1180년에 중창하고,

 

고종(1879년)에 중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반면 기존 학계에서는 이 설화를

 

'불교 경전 중 하나인 <관불삼매해경>의 무대만 가락국으로 바꿔 거의 그대로 옮겨서

 

기록하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더.

위의 기록을 .대체로 허왕후가 가야에 입국한 후 불교가 남쪽에서부터 밀양으로

 

전파된 후에 윤색되었다고 보거나, 후대에 가야에 불교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설화라는 견해이다.

 

이 설화에서는 수로왕의 건국설화가 불교설화에 밀려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가락국의 수로왕이

 

 어쩔 도리가 없어 고민하던 일을 부처가 해결해 주었다고 해서 부처의 우위를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불경에 수록된 설화를 받아 들여 등장인물과 장소를 국내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설화는 수로왕 당시의 역사적 사실로 보기가 어렵다

만어사삼층석탑보물(제466호)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모두 한 돌로 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낙수면은 경사가 급히다.

 

탑신에는 각 층마다 우주가  있을 뿐 다른 조각은 없다. , 상륜부에는 보주형 석재가 놓여 있으나

 

 후에 만든 것이다.단층의 받침돌을 갖춘 점, 지붕돌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점,

 

지붕돌 굄이 1단이나 2단으로 불규칙한 점 등 세부 구조와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건립된 것

 

으로 추정된다

만어산 암괴류는 한반도에서 빙하기가 끝난 후 산의 암석들이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된

 

암괴류로 세종대왕때 편경을 이 만어사 돌을 가져다 만들었다고한다. 석질이 뛰어나 석재로는 만어사

 

 청석이 쓰였으며 일제때 이돌을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미륵전>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는 만어사 창건설화가 전한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숨을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라고 알려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왕자가 가다 머물러 쉰 곳이 바로 만어사라고 한다. 그 뒤 왕자는

 

큰 미륵돌로 바뀌었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어사 어산불영 (경상남도기념물 제152호)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하며,어산불영경석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는 그의 저술에서 친히 와서 참례하고 보니 분명히 공경하고 믿을만한

 

 일이 두가지 있다.. 동중의 돌이 거의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고 사실이 그 하나요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사라져 부처영상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것이 그 하나이다...

 

 라고 저술 했다고한다...

신어산과 만어산을 포함하는 지역은 모두 가야 권역이었다. 물고기 신앙이 유입되었던 시기인

 

1~3세기에 작은 나라들이 김해를 중심으로 동래, 함안, 고성 등 낙동강 하류와 경남 해안 지방에

 

분포하고 있었다. 이 일대는 남해바다와 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되는

 

유역권으로, 내륙의 수운과 도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해양을 통한 문화교류가 활발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춘 지역인 것이다.옛 인도의 물고기 산이 불교 전파와 함께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산 이름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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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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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구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08
    코스: ㅡ주포 ㅡ망산도(유주비각)- 흥국사--장유사 -


    해은사 ㅡ은하사ㅡ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구지봉ㅡ삼랑진 만어사 ㅡ지리산 칠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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