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풍속화첩 중에서.,연당야유도.
신윤복(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지본담채 28.2 x 35.2cm
간송미술관
국보 135호
연당야유도(蓮堂野遊圖).,해설.
1758년에 태어난 혜원 신윤복(영조 34 ∼?).,작품.
조선 후기에 회화를 관장하는 도화서 화원(畵員)으로서
첨절제사(僉節制使) 벼슬을 하다가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났다는데, 그후의 행적은 기록에 없다.
조선시대 천재 화가로 정평이 난.,혜원.
혜원은 영조, 정조의 어진(왕의 모습) 제작에 참여하였고
정조 7년부터 22년간 규장각 자비대령 화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무렵 일반화원으로 규장각 소장의 의궤(儀軌)제작에도 참여.
의궤(儀軌)란 왕실· 국가 행사가 끝난 후에 논의·
준비과정· 의식절차· 진행· 행사· 논상을 기록한 책.
연당야유도는 그의 전성기였던
첨절재사 시절에 그린듯 추정된다.
그의 비범한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
예나 지금이나 높은 담은
집주인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부유(富有)함을 가름하는.,척도.
사대부가 자신의 집에 퇴청 후, 권신들을 초대.
후원에서 여인들과 더불어 향연을 즐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풍류를 아는 남정네라면 솔깃한 일.
연당(蓮堂) 연잎이 무성한 것을 보면
무더운 한여름의 하오(下午)인 듯 싶다.
혜원 자신도 이러한 풍류의 멋을 몸소 체험하고,
또 목마르게 바라본 남정네들 중 한 사람이었을듯.
요즘 말로 표현하면, 가든 파티에 속하는 일종의 향연.
으례히 주객이 있게 마련이고, 또 이렇게 단촐하고
오붓한 모임에는 의기가 서로 부합될만한 세도가들을
몇 사람만 초대해서 은밀하게 즐기는 것이 풍류일 것이다.
이 그림 전체에는 세 사람의 사나이와
세 여인 만의 오붓한 모임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세 쌍 남녀가 향연을 벌리는 풍경.
이 그림 속에서 향연을 즐기는 모습은 제각각.
누가 초대손님인지, 집주인인지, 애매모호하다.
초대 손님이나 집주인이나 상당히 신분이 높은듯.
가리마를 쓰고 홀로 앉은 여인은.,의녀(醫女).
의녀가 단촐한 향연에 참석한 것은.,매우 이례적.
억지로 불려온 것 같지는 않고 초대받아 참석한듯..
여인들은 남자들의 거느림에 따라 품위가 달라지기 쉽고
여인은 사나이의 거느림을 따를 줄 알아야 어여쁨 받는 것은
조선시대 유교관념 사회가 지녔던 남녀 생태의 일면이기도 했다
이 그림 속 구심점은 여인들이 아니라
잘생긴 한 사나이에 쏠려 있음이 분명하고,
또 이 멋진 사나이의 관록 있어 보이는 풍모나,
차림새가 능히 그것을 가늠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청초 푸르른 연당가에 초막을 깔고
둥근 장침에 기대앉은 사나이의 거동은
자태가 중후하고 격조와 세련에서 오는 풍김.
거문고를 타고있는 여인
담뱃대를 들고 있는 여인.
한 사내 품에 안겨있는 여인.
세 여인들의 시선이 모두
한 사나이에게 모인듯 하다.
혜원 신윤복이 이 그림을 그린 의도가
그러했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청금상련, 연당야유.'
신윤복(申潤福).,대표작.
‘거문고 소리 들으며, 연꽃을 구경하다’.,청금상련(聽琴賞蓮).
‘연꽃 핀 연못에서의 유희.’라는 뜻으로.,연당야유(蓮塘野遊).
"연당야유도"는 "청금상련" 또는 "연당야유"라고도 불리운다.
처음에는 그림의 제목이.,'청금상련'(聽琴賞蓮)이었다.
나중에 그림의 제목을.,'연당야유'(蓮塘野遊)으로 바꾼 것.
'청금상련'은 죽부인에 기대앉은 양반에게만 해당되는듯한 탓.
죽부인이 후원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바야흐로 계절은 무더운 한여름 같고
남자들은 권세가 높은 만큼.,나이가 지긋.
기생을 품에 안은채
거문고 소리에 심취하여
연꽃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은밀히 즐기는 선비의.,청금상련.
'그가 이 그림의 주인공 아닐까?'
'자신의 집인양 편안한 옷차림이다.
초대손님 눈총에도 아랑곳 않는.,눈치.
얼마나 지체 높은 특권층 세도가이기에
저리도 무례할 만큼 향연을 만끽하는걸까?
아무튼, 조선후기 특권층 신분인 이들은
사랑채 뒤 연못이 딸린 넓다란 정원에서
그들 만의 특권을 한껏 향유하고 있는 모습.
혜원 신윤복은 왜 그들 남녀 6명의
각양각색인 모습을 그렸던 것일까?'
...........................蕙園(혜원)..........................
'정조 ~순조' 재위 때 '도화서 화원' 신윤복 호.,혜원.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으로.,연당야유도(蓮塘野遊圖)
단오도(端午圖), 무무도(巫舞圖)·산궁수진(山窮水盡)
미인도(美人圖)· 선유도(船遊圖)· 산수도(山水圖)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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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산수도.
..........................호(號)...............................
유교 문화권,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본명이나
자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으로 사람의 별칭이나
필명(筆名) 또는 별호(別號)나 아호(雅號) 등을 가리킨다.
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허물 없이 쓰기 위한 것.
학자, 군인, 예술가 등 명성을 날린 사람 만 가질 수 있었다.
호는 종종 그 사람 취미나 성격, 능력 등을 반영하는데,
일반적으로.,이름과 자는 부모나 연장자가 지어 주지만,
호는 본인, 친우가 짓기에 자신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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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蕙園)
은혜 혜(蕙)
동산 원(園)
단원 김홍도의 제자로 알려진.,혜원 신윤복.
김홍도(1745년 ~ 1806년)는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
혜원 신윤복은 단원 김홍도에게
은혜를 많이 받았던듯., 여겨진다.
은혜 혜(蕙), 동산 원(園).,혜원(蕙園)
.
'연당야유도는 조선 정조 재위(1776~1800) 때
'도화서 화관' 신윤복(1758년 ~ ?)의 작품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미상.
조선시대 생몰연대 미상 인물 대부분
개인 행적에 관한 기록이 멸실된.,흔적.
신윤복은 말년 행적이 기록에서 멸실된듯.
신윤복은 단지 도화서 화원으로
벼슬이 첨절제사(僉節制使)까지
이르렀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일설에 의하면,
남녀 간의 춘정을
즐겨 그렸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 전한다.
이 작품을 보면
그가 도화서 화관에서
쫓겨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金得臣)과 더불어
오늘날,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서 지칭된다.
김득신(1754:영조 30∼1822:순조 22). 도화서 화관.
3인 모두 '도화서 화관' 가문 출신으로
신윤복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난.,화관.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신윤복은 조정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재야에서 탐관오리 비리를 화폭에 담았다.
그당시 성리학 이념의 폐쇄적 굴레에 반하는
획기적인 화풍으로 양반 귀족들의 위선과 불륜을
파헤치고 풍자하면서, 은폐된 면을 화폭에 담았던 그.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 전해질 뿐
그의 사생활에 관해 거의 알려진 바 없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
연당야유도는 도화서 화관 신윤복이
전성기 시대에 그린 작품으로 여겨진다.
만약, 신윤복이 도화서 화관들 중에서도
최고위직 아니면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곳.
작품 속 등장인물과 배경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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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 풍속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연못이 있는 뜰에 잘 차려 입은 세 쌍의 남녀
사대부 양반들과 기녀들 간에 풍류를 즐기는듯.
한쪽에는 한 여인이 거문고를 타고 있고,
긴 담뱃대를 물고 음률을 감상하는.,남녀.
또 한편에는 탕건은 벗어 둔 채 포옹한 남녀.
기생을 무릎 위에 앉혀놓은 남자의 묘한 손놀림.
이를 못볼 광경인듯 바라다보는 한 사대부의 모습.
'온갖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6 남녀의 시선들.'
유려한 선과 세련된 색감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준다.
잔디밭 광경을, 담 너머 훔쳐보듯 운치있게 굽은 소나무.
당시 사대부들이 높은 담장을 선호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작품을
얼핏 보면.,
춘화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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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다시 한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
높은 담장을 두른 후원 안에서 벌어진.,연회.
2단 석축 위에 고목이 심어진 것을 보면.,대가집.
집주인은 왕실 종친 또는 정3품 당산관 이상 아닐까?
당상관은 국정을 입안, 집행하는 최고급 관료.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군사권 등 권한을 독점.
왕의 특지(特旨)가 있어야 당상관이 될 수 있다.
개인 집에 이 정도 후원을 갖추었다면
집 주인은 그 위세가 아주 당당한.,정승급.
또는 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역관(譯官).
조선 숙종때 장희빈은 '경종'의 생모.
한때, 국모 위치까지 올랐던 역관의 딸.
당시 '조선 제 1 부자' 광통방 포목상.,여식.
정조 재위때에도 무역을 장려하여
역관은 중인 신분 임에도 불구하고
정승급 위세를 누린 역관들도 있었다.
'도화서 화관'.,신윤복.
그가 그린 '연당야유도'는
'정경유착 연회장면' 그림일까?'
아니면,
사대부 양반의
연회 장면을 그린
그 시대의 풍속화일까?
그림 속 후원은
2단 석축으로 조성.
거기에 그러한 의문을
풀 수 있는 해답이 있다.
왕실 종친 중에서도
대군 서열이 아니라면
2단 석축 정원 꾸밈은 불가.
....................
....................
조선시대 궁궐 후원은
왕과 대비가 거주하는 곳.
3단으로 석축을 쌓아.,조성.
4단으로 석축을 쌓은 후원은
구한 말, 대한 황실의 영역 뿐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조선왕실 대군 가택.
즉, 조선왕실이 소유한.,가택.
왕실 종친이어야 살 수 있는 집.
경국대전
기록에 의하면
가택 규모에 대해.,규정.
대군.,60칸
왕자, 공주.,50칸.
옹주, 종친, 2품 이상., 40칸
3품 이하는 30칸 규모로 규정한다.
곁담장 너머 후원 안으로
깊숙히 들어온 소나무 가지.
겹담장이 집주인 신분을 대변.
그런데, 그림 속에서 의관정제 하고 서 있는.,선비.
손님으로 보이는데 도포에 두른 붉은색과 자주색 띠.
이런 복장은 돈이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당상관(정3품) 이상
신분이어야만 가능한 옷차림.
얼핏, 보면 연회의 주인공 같다.
그러나, 그는 연회 자리를
빛내기 위한.,초대손님 같다.
연회와는 걸맞지 않는.,의관정재.
연회에 초대 받은 객에 불과.
그러나, 벼슬은 상당히 높은듯.
장마도 끝나고 연못 속의 연꽃들이
경쟁적으로 꽃대를 들어 올리던 여름
세 남자가 후원에서 만나 연회를 즐긴다.
그러나, 3선비는 막연하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기생을 무릎 위에 앉혀놓은.,선비.
의관정제 옷차림으로 서 있는.,선비.
거문고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선비.
여인들을 대하는 선비들의 태도가 각각 다른데,
왼쪽에 여인을 무릎 위에 끌어안고 희롱하는 선비와
그 무릎 위에 앉아 부끄러운듯.,새침을 떨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 곁에 서서
이를 내려다보는 선비.
반면에 오른쪽에는 대관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선비는 점잖다 못해 근엄.
어느 한구석도 흐트러진 몸 가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문고 앞에 놓여있는 화로는
담배불을 붙이는 용도의.,곱돌.
담뱃대를 물고 있는 여인이 쓴 모자는 가리마.
이것은 원래 궁궐 의녀(약방기생)가 쓰는.,모자.
'기생과 의녀'의 업무가 겹쳐 연회에 불려온듯 하다.
기녀들의 옷맵시나 선비들의 옷매무새, 거문고.
사대부 가문의 후원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그당시 사대부 선비들의 생활상과 풍속 잘 알게 해 준다.
.
연꽃을 무척 사랑한
중국 북송대 유학자
주돈이( 1017-1073 )
‘애련설(愛蓮說)’을 지어
연꽃을 ‘군자(君子)의 꽃’으로
추켜세워 선비의 상징이 된 연꽃.
연꽃은 고결하게 살고 싶어하는 선비.
군자(君子)는 ‘높은 인격을 갖춘 사람’
'고결하고 높은 인격을 상징하는
연꽃이 피었는데, 당신들은 군자인가?
그림 속 연꽃이 세 남자를 향해 일갈하는듯.'
고화 미술 전문가 시각으로는
그렇게 보일 소지가.,다분하다.
그런데, 누가 연회의 주인장일까?
왕일까?
대군일까?
권신들일까?
.........................
..........................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기생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있는., 선비.
그 곁에는 그가 벗어놓은 '정자관'이 있다.
정자관은 선비가 집안에서 쓰는.,모자.
그런데, 집 주인장을 서서 내려다보는.,선비.
그 뒤에는 담뱃대를 물고 '가리마'를 쓴.,의녀.
선비와 의녀는 이곳 연회에서 파트너가 아닐까?
왕실 종친의 연회에 흥을 돋구기 위해
약방기생의 자격으로 파견된듯 여겨진다.
'선비와 의녀'는 갓 벗은 선비를 향하고 있다.
마치,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듯한.,두 시선.
선비는 '당상관' 격식의 옷차림.
거문고 타는 여인 앞에 놓여있는.,화로.
담배 불을 붙이는.,'화로 겸 재털이'이다.
선비는 아예 집 주인과 등돌리고 앉아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 기생들은
궁궐 관기 신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을 그린.,'도화서 화관' 신윤복.
이 그림은 왕에게 보이기 위한.,보고서.
신윤복은 '정조~순조' 재위 때 도화서 화관.
신윤복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표현하려 한걸까?
.............................
.............................
그 해답은 ' 도화서 화관'신윤복 작품인
또 다른 그림인.,'주유강청'에 있는 것 같다.
역시, 남자 3, 기녀3, 피리 부는 악사 1, 뱃사공1.
기생을 희롱하는듯한
남자는 선비 하나 뿐이다.
남자 셋은 연당야유도와 동일.
옷차림도 유사.
여기에도 신윤복이
도화서 화관으로 파견되어
그림을 남기게된 것이 아닐까?

'맑은 물에서 뱃놀이하다.'.,주유강청.
'피리소리는 바람을 타서 아니 들리는데
흰갈매기 물결을 타고 날아든다.' - 한시 -.
주유강청 그림 안에 곁들인
'한시'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담배불 붙여주며 여인에게 다가서서 희롱하는 선비.
뱃전의 강물에 손을 담가보는 기생을 바라보는 사내.
기생에게 아예 관심 없다는듯 무심하게 서 있는 선비.
연당야유도와 공통적으로 선비와 기생이 세 명씩이다.
뱃놀이 흥을 돋우려 피리 부는 아이를 태우고, 유유자적.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노젓는 사공이 화폭에 담겨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왕권정치 확립을 위해 애썼던
조선 22대왕 정조(1752 ~1800).
'당파싸움 권신정치의 희생양'.,사도세자.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후, 조선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왕도 정치를 세우기 위해
생전에 무던히 애썼던 정조.
정조가 각별하게 왕실 종친들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애썼어도
세도 권신들에 눌려살았던.,종친들
역대 조선왕실에서 왕을 제외한 종친들은
권신들의 세력에 눌려 억눌려 살아야 했다.
특히, 대군들은 언제 죽을지 모를., 파리 목숨.
종친이 주흥에 겨워
詩 한수 잘못 읊조리면
권신들의 해석 여하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이 좌우되는 운명.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소이다."
'연당야유도.'는 그것을 표현한 것일까?
'주유강청'으로 세월을 소일해야 하는.,종친.
![]()
'도화서 화관' 신윤복은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듯.
'연당야유도.' 그림에 숨은 내용은
그러한 풍속을.,대변하는듯 여겨진다.
물론, 감상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보 제135호.,혜원풍속화첩.>
도화서 화관.,'신윤복 그림' 작품들.
신윤복의 풍속도는
그당시, 옷차림, 풍습, 등.
시대 상황을 알려주는.,사료.
신윤복은 말년에
'8도유람'을 하며
풍속화를 그렸거나
기방을 전전한듯 하다.
특히, 조선시대 여인들을
모델로 한 작품들이 많다.
신윤복은 말년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걸까?
조선시대 천재화가였던
그가 말년에 남긴 것으로
여겨지는 춘화도 전해온다.
조선 말, 처녀성을 거래하는 매파.
기생이 매춘하는 광경을 묘사한 작품.
도화서에서 쫓겨난 후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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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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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방안 작성시간 16.11.09 민화는 언제 보아도 정감이 감니다...
옛날 지인이 한정식집을 운영하여 분위기를 맞추기위해
복사본을 액자화하여 나름대로 구색을 맞추기도...^-^ -
작성자선경나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11.09 .
마치, 근대 한정식집 분위기가 물씬한.,연당야유도.
조선시대 사랑채 후원이 어떤 용도였는지 알 수 있죠.
현대인들에게는 아웃도어 리빙룸 공간이자 가든 파티장.
마당쇠 시절에 많이 만들어보긴 했지만
산속 '숲속의 빈터' 야영장만 늘 못했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