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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정원 - 조선시대 해적섬.,이작도(伊作島).

작성자선경나라|작성시간17.01.25|조회수2,189 목록 댓글 0

소이작도

2018.09.01 소이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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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작도.트레킹

소이작도....댕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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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섬에 가고 싶다. - 대이작도 풀등



대이작도

그섬에 가고 싶다. - 대이작도 풀등

소이작도....댕겨왔습니다

대이작도

대이작도 섬트래킹 및 부아산, 송이산 산행 등산지도, 등산코스

서해 이작도 -대이작도 / 소이작도

인천의 대이작도

그섬에 가고 싶다. - 대이작도 풀등

인천의 대이작도

인천의 대이작도

인천의 대이작도

인천의 대이작도

그섬에 가고 싶다. - 대이작도 풀등

풀등

대이작도

[ 03 - 18 - 658 ] 옹진군 대이작도


서해의 신기루 대이작도


[경기도 관광지] 대이작도

우리나라의 전통정원 - 해적섬., 소이작도 대이작도 


조선시대 해적섬.,이작도(伊作島).

'왕도를 세우기 위한 섬'이라는 뜻말.

사람人 + 다스릴 尹 = 저 伊 = 왕도(王道).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 소이작도.

자월도에서 도선을 타고 건너가면.,소이작도.

도선(島船)은 섬과 섬을 잇는 도서민 교통수단.


'이작도' 옛 이름은.,이적도(伊賊島).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전쟁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숨어서 살며

해적질을 한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도 전한다.


대이작도 '풀등' - 신비로운 섬의 '비밀' 

                                      대이작도 부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풀등.


'대이작도 소이작도' 2개의 섬이 곧.,이작도.

대이작도에는 '서해의 신기루' 풀등이 볼거리.

아울러, 5개 봉수가 있는 부아산 봉수대가 있다.

서해 전망대라 불리우는 풀등 & 부아산 봉수대.

대이작도에서 썰물이면 3~5 시간쯤 보였다가
밀물이 들면 사라지는., '신기루 모래섬' 풀등.
뭍도 아닌, 그렇다고 바다도 아닌 시한부 모래섬.

대이작도 풀등 정보 올려봅니다. 
[모래의일생1] 대이작도 풀등은 왜 점점 작아질까?  

제98차 '낭만이 있는 섬여행' 여름휴가 특선 - 「 서해의 신기루 대이작도 풀등」「환상의 모래섬 사승봉도」「승봉도」참가자 모집해요^^ 
제98차 '낭만이 있는 섬여행' 여름휴가 특선 - 「 서해의 신기루 대이작도 풀등」「환상의 모래섬 사승봉도」「승봉도」참가자 모집해요^^ 

낭만 섬여행~~♬ 승봉도 그물 고기잡이체험 대이작도 풀등 & 부아산 
대이작도 풀등과 가마우지 떼 

서해 바다에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같은 풀등에서는
예쁜 조개껍질들이 막 샤워를 마치고 사람들을 반기는듯.
은빛 모래는 아니지만 걸음 가볍게 한다는 그 곳이 가고싶다.

[모래의일생1] 대이작도 풀등은 왜 점점 작아질까?  


조선시대 해적들의 집터와 무덤이

남아있다는.,소이작도 북쪽 휘청골.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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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작도 & 대이작도.

두 섬을 합쳐서.,이작도.

인천항 남서쪽 44km 거리.


면적 3.87㎢,

인구 157, 가구 82 호.

(2003년 인구조사 통계)


소이작도(1.3㎢)는 대이작도보다 작은 섬.

대이작도는 큰 섬이란 뜻의  지명이 아니다.

대이작도는 면적 2.57㎢, 해안선 둘레는 18km.


당일 산행지로 많은 등산동호인들이 찾는.,대이작도.

부아산(159m)~송이산(188.5m) 도보거리 3~4시간 거리.

수도권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당일 종주산행이 가능한 코스.


부아산(負兒山)은 '어머니가 아기를 업은 모습'.,산세.

'소서노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올랐다.'는.,한산(漢山) 부아악.

한산(漢山)은 서울이며, 부아악(負兒岳)은 북한산 인수봉이다.


부아산 지명은 이작도가

백제 영역이었음을 대변.  


부아악은 백제 초기 도읍지.,한산의 성역(聖域)

부아산이 서해 백제 영역의 성역임을 뜻하는걸까?

아니면, 이작도가 서해 항로 상에서 요충지였던걸까?


소서노(召西奴 : BC 66년 ~BC 6년).

'고구려, 백제, 왜' 삼국을 창업한 여걸.


기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2천년이 넘도록 항로 요충지.

이작도는 백제 서해 영역의 중심.


옛날부터 지금까지 유서 깊은

고대 항로를 품고 있는.,이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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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작도 부아산 약수터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 샘물은 부아산의 정기를 받은.,생명수.

아기의 점지, 수호, 탄생의 신비를 간직한 약수.


'부아산' 등산로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길가에 위치. 


장골마을 주민들은 삼신할미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거나, 소원을 빌 때

이곳 약수터 샘물을 정한수로 사용했단다.


대이작도는

지명과는 달리

그 규모가 작은 섬.


대이작도 부아산(負兒山)은

'백성들을 품어, 왕도를 세우고

아이를 갖게 한다.'는.,전설의 고향.


대이작도는 고려시대부터 말을 사육했던 섬.

조선 태종 재위 때 국영말목장으로 지정된 섬.

이 섬에 마성(말목장터)이란 곳이 국영목장 터.


약 1m 높이 돌담이 말목장 옛흔적.,마성.

제주마 군마 임시 대기, 말목장 터였던듯..

조선시대 명나라에 군마로 공출된.,제주마.


조선시대 공출 군마는 10만 마리를 상회한다.

고려때 원나라에 100년간 보낸 군마는 더 많다.

'원, 명'시대 중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공출 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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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도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고,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 유역을 번갈아 점령했고.

1018년(고려 현종 9) 수원, 그후 인주(인천)에 속했다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은

서해 상에 해상 요충지.

봉화대 5개가 설치되어 있다.


대이작도 '풀등'체험 프로그램 교육 1차 


서해에서 봉화대 5개는 대이작도 뿐.

서울., 남산 봉수대에는., 봉화대 5개

서울., 안산 봉수대에 역시., 봉화대 5개.


'남산 & 안산' 봉수대와 동격인 곳.


인천.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4 지역을 통과하는 항로 상., 봉화대. 

이작도가 중요한 위치 임을 대변한다.

즉, 서해 상에서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


봉화대(烽火臺)란 고대 변방에서 봉수(烽燧)를 이용,

긴급상황을 알리려 토성으로 축조한 초소.,"봉후(烽候)".

대낮에 연기로 위급 상황을 알리는 것을 ‘봉(烽)’이라 하고,

저녁에 불을 놓아 위급함을 알리는 것을 ‘수(燧)’라고 한다.


이작도는 서해 항로를 아우르는.,중심 축.

인근 해역 수많은 섬들의 중심 축이.,이작도.


부아산 구름다리 건너 정상 전망대에 서면

소이작도, 대이작도, 풀등, 승봉도, 사승봉도,

덕적도, 소야도, 선갑도, 굴업도 등이 바라보인다.


가볼 만한 인천 앞바다 섬 안내 


인천 앞바다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 없이 많은 섬이 있다.


간만의 차가 극심한 서해바다

한강을 들락거리며 밀물이 밀고

썰물이 썰어 오랜세월 빚어낸 섬들. 


침식작용

풍화작용

퇴적작용.


이작도도

물길에 패여져

둘로 갈라진걸까?


'소이작도 & 대이작도'.,이작도.

두마리 물고기가 마주보는.,형상이다.

약 200m 거리를 두고 마주보는.,선착장.


조선시대

인천 앞바다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자월도 여행(6월23일) 


유인도 40개, 무인도 113개.

현재, 매립 또는 육지화 된.,옛 섬( - ).

옛날에는 지금보다 광활했을.,인천 앞바다.


인천시 중구.,노랑섬· 매도 · 매도랑 ·

 무의도 · 분도 · 사도 · 사렴도 · 삼목도 ·

 소운염도 · 소월미도 · 신불도 · 실미도 ·

 영종도 ·  용유도 · 운염도 · 월미도 · 잠진도 ·

 장고도 · 장기도 · 조름도 · 팔미도 · 해녀도 등.


인천시 서구., 가서도 · 거첨도 · 고무도 · 난지도 ·

대다물도 · 도도 · 매도 · 명도 · 목섬 · 문첨도 · 사도 ·

 세어도 · 소문첨도 · 소염 · 소염도 · 소율도 (오류동) ·

 소율도 (원창동) · 승도 · 아라빛섬 · 안암도 · 육도 ·

 율도 (오류동) · 율도 (원창동) · 이도 · 일도 · 자치도 ·

 장금도 · 장도 · 정도 · 청라도 · 축도 · 토도 · 호도


인천시 동구.,묘도 · 작약도.

인천시 남구.,소원도 · 원도.


인천시 남동구.,대원례도 · 

 소원례도 · 장도 · 저어새섬

인천시 연수구.,소아암도 · 아암도


경기도 강화군.,강화도 · 고가도 · 괴리섬 ·

 교동도 · 기장섬 · 납도 · 대섬 · 대송도 · 돌섬 ·

 동검도 · 동그랑섬 · 딴납섬 · 말도 · 매음도 · 미법도 ·


 볼음도 · 분지도 · 비도 · 서검도 · 석도 ·

 석모도 · 소송도 · 송가도 · 수리봉 · 수섬 · 수시도 ·

 아차도 · 어유정도 · 용란도 · 우도 · 주문도  · 함박도 · 황산도


웅진군 백령, 대청 연평면.,거도 · 구지도 

 당도 · 대연평도 · 대청도 · 모이도 · 백령도 

소연평도 · 소청도 · 시루섬 · 용뒤섬 · 책도 등.


웅진군  복도면.,동만도 · 모도 · 비가지도 · 사도 ·

 서만도 · 시도 · 신도 · 암서도 · 와도 · 장봉도 등.


웅진군 영흥 자월 덕지면.,가 · 각흘도 · 갑죽도 ·

 검도 · 계섬 · 관도 · 광대도 · 굴업도 · 납도 · 대이작도 ·

 대초지도 · 덕적도 · 도량도 · 동백도 · 랑각흘도 · 먹도 (먹통도) ·


 멍애섬 · 목덕도 (덕적면) ·

 목덕도 (자월면) · 문갑도 ·  뭉퉁도 ·

 바지섬 · 백아도 · 벌섬 · 부도 (덕적면) ·

 부도 (자월면) · 사승봉도 · 상공경도 · 상바지섬 ·


 소야도 (새곶섬) · 선갑도 · 선미도 ·

 선재도 (소우도) · 소가도 · 소이작도 ·

 소초지도 · 소통각흘도 · 승봉도 ·  어평도 ·


 영흥도 · 오도 · 오섬 · 외항도 ·  울도 ·

 자월도 · 중바지섬 ·  중통각흘도 · 지도 · 측도 ·

 토끼섬 · 통각흘도 · 하바지섬 · 할미염 · 항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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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무렵에

조선을 떠난 고려 유민들은 약 10만명.

산동반도에 정착한 고려 유민들도 상당수.


지리산에 은둔한 고려 충신들과

산동반도 고려의 유민들과 교류했던

흔적, 지명들이 삼남 지방에 제법 많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반역의 산'이라 불렀던.,지리산.


훗날을 기약하며

고려의 재기를 꿈꾸었던

저항세력도 만만치 않았던 증거.


'고려왕조' 왕씨들이

조선개국 때 수장된 곳.


강화도 앞바다.

남해 거제도 앞바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며 회유.

강화, 거제에 수용 후.,배와 함께 수장.

그후로 극소수 왕씨만 성을 바꿔 겨우 생존. 


그 무렵에

고려 유생들과

고려의 유민들은

웅진반도 앞바다 섬들

또는 인천 앞바다 해역 등

외딴 섬에 숨어 살았던 흔적.


이작도

자월도

굴업도

덕적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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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초, 이작도에 숨어 살던.,고려 유생들.

'왕도를 세우기 위한 섬.'이었다는.,이작도(伊作島).

임진왜란 후 어떤 연유로 이적도(伊賊島)가 된 것일까?


저.,伊

도둑.,賊

섬.,島.


'왕도를 세우겠다.'는

도둑이 판치는.,해적섬.


조선시대 내내 해금정책과 공도정책.

그로 인해 폐허화된 조선시대 도서지역.

임진왜란 이후에도 도서지역은 왜구의 영역.


왜구에게 수탈을 당하고

관리에게도 수탈 당하느라

이중고를 겪었던 도서 주민들.


이중고 수탈에 견디다 못해

해적이 된 양민도 있었으리라.

하여, 해적섬으로 불리운 이작도.


도서지역 농산물 자급자족율.,50% 남짓.

어업으로 생필품, 식량을 보충해야 하지만

대기근에는 세곡선이라도 털어야 연명했을듯.


이작도 주변에 있는

고만고만한 섬들 또한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을듯.


평소, 평범한 농어민이던

이적도 해적들의 활동 영역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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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작도' 항공사진 뒷편에.,선갑도.

인천항에서 서남쪽으로 60km 거리에 위치.

선갑도(仙甲島)는 국내 최대 무인도(150만평).


선갑도(仙甲島) 와 선갑산 (352m)소개    


마치, 하늘나라 선녀가

구름을 타고 섬에 내려와서

해신(海神)을 온몸으로 품은 자태.


옛부터 덕적군도 고갯배들이

풍랑과 악천후를 만나게 될 경우에는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섬.


마치, '선녀의 품' 처럼

따듯한 피난처였다는 곳이다.

과거, 어업을 위한 일시적인 체류지.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무인도와 다름 없을 만큼

인적이 거의 끊겼던 외딴 섬.


미지의 섬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인도-선갑도의 비경 


선갑도 섬 둘레가 기암절벽으로

선접(仙接)이라 일컬을 만큼 비경지.

덕적면과 자월면에 풍부한 어장을 제공.


1995년 '굴업도 핵폐기장'이 무산된 후,

한국해양연구소(현재 한국해양연구원)가

선갑도 매입 후, '핵폐기장 재추진' 논란 확산.

 

한국해양연구원은 2006년에 선갑도를

선도공영 L회장에게 약 41억원에 매각.


올해 다녀보고 싶은 섬 [선갑도] 작성중.. 


............선갑도(仙甲島)..............

해안가 절벽 4~6각형 기둥 암석들은 

제주도 주상절리 기암 절경을 보는듯.,

선갑산 폭포바위 아래는 선녀의 목욕처.


선갑도에 반한

하늘나라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섬과 하나가 된다고 하여

"선녀도" 또는 "선접도(仙接島)".


원래, '선계(仙界)'의 영역.,선접도(仙接島).

조선 개국때 한양 '남산'과는 경쟁 후보라는 전설.

'남산'에게 양보 후, 내려와 자리 잡은 곳이.,현 위치.


6.25 전후 미군 켈로 부대 주둔지.

선갑도에 뱀이 많아 1952년에 철수.

그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외딴 섬

 

'선녀가 갑옷을 입은 자태 같다.'는.,선갑도.

한때 선갑도는 북파공작원 '비밀부대 양성소.'

지금은 민간 S기업 소유로 넘어가 있는.,무인도.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단 31명.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파된 124군부대.

"박정희 목을 따러 왓수다." - 생포자 김신조 -


즉각, 이에 대응하여,

북파공작원을 양성했던

실미도부대 & 선갑도부대.


'실미도부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반면에

'선갑도부대' 구성원 32명은 사형수와 무기수.

사면을 전제조건으로 엄선한 더 강력한 특수부대.


30kg 배낭을 메고

12km 선갑도 산길을

1 시간 내에 주파하는

자살특공대.,선갑도부대.


선갑도부대는

철마산 안가에서

해단식 후 사라졌다.

 

옛날 대홍수가 나서 바닷물이 밀려 올라와

철마면 일대가 물속에 잠기자 동해의 용왕이

곽암 용굴에 사는 용마(龍馬)에게 명령을 내려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는 전설 속.,철마산(鐵馬山)

 

용마는 홍수를 물리치고 나자 물이 없어

결국, 용궁으로 환궁하지 못해 햇볕에 말라

점차 굳어져 쇠말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육군 특수 첩보부대'(AIU) 산하

902정보부대 803대.,선갑도 부대.

1972년 남북74공동성명 이후 해체.


'실미도'와 유사한.,

미래 관광자원 지역.


그후, 한때

국내 최초로

방사성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물망.


'선갑도가 적당할까?'

'굴업도가 적당할까?'


선갑도(仙甲島)는 덕적도 남쪽 11km.

자월도(紫月島), 승봉도(昇鳳島)와 근접.

면적은 3.93㎢이며, 해안선 길이는 16.16km.


덕적군도에서 최고봉 선갑산(352m).

.

섬 둘레가 기암절벽으로 덕적면과 자월면에

어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낚시꾼에게 인기 높다.

선갑산 정상에 올라가면 덕적군도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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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선갑도 개발계획 


최근 채석장 인허가 문제로

도서주민 및 환경단체와 마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섬 선갑도 개발계획


선갑도를 애워싼 해벽에 듬성듬성 구멍들은

망망한 서해바다 철새들의 중간 휴식지 역할.  

수십여년 전까지 덕적군도 고깃배들의 피항지.

과거, 고깃배 성능이 떨어질 때

갑작스러운 풍랑주의보를 피할 때,

덕적군도 대이작도 행 작은 배들에게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선갑도. 


국내최대규모의 무인도 선갑도 선갑산 352M개척산행 


'선녀가 갑옷을 입은 자태 같다.'

풍랑 속 뱃사람은 그렇게 느꼈으리라.

선갑도(仙甲島) 지명의 유래를 알 것 같다.


다음 스카이뷰로 굴업도를 다녀왔습니다. ^^ 


선갑도와 더불어

방사성 폐기물 유치장

후보지 물망에 올랐던 굴업도.


[인천/옹진]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 (굴업도 가는 방법, 굴업도 민박, 굴업도 배편, 굴업도 여행, 굴업도 캠핑, 인천 굴업도) 


'바람의 섬' 굴업도는 바람이 세다.

해안가 모래가 둔덕 위까지 날려와

산 중턱 곳곳이 모래에 파묻혀 있다. 


굴업도는 민어 새우 파시가 유명했던 섬.

1923년 엄청난 태풍과 대홍수 해일이 휩쓴 곳.

당시, 선박파괴 200척, 가옥 유실130호.,아비규환.


1924년 극심한 가뭄

대기근, 돌림병 만연.


그후 오랫동안 인적이 끊겼던.,굴업도.

이제 바닷가 해변에 널려있는 녹슨 닻들이

그 옛날 민어 새우 파시 전성기를 대변해준다.


조선 초 고려 유신들이 숨어 살던 섬,

'갈매기와 백로가 우는 섬.'이라고 하여

1923년 조선일보 기사.,구로읍도(鷗鷺泣島).


.................굴업도...................

덕적도 남서쪽 13㎞ 해상에 있으며

면적은 1,71㎢, 해안선 길이는 13.9㎞

가구 9, 인구 19(2006년 인구조사 기준).


<대동지지>덕적도진조 - “굴압도는 사야곶 서쪽.”

굴은 굴(屈)자와 오리 압(鴨)자로, 굴압도는 지형이

바다물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다."


1910년경 굴압도가 굴업도(屈業島)로 바뀌었고,

1914년에 팔 掘, 일 業 자.,덕적면 굴업리(掘業里).

굴업(掘業)은 땅을 파는 일이 주업이라는 뜻말 지명.


굴업도는 쟁기를 대고 갈만한 농지는 거의 없고

괭이 삽 등으로 파서 일구어야 하기때문에.,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건립을 위하여 정부는 1994년 12월

292개 임해(臨海), 210개 도서, 90개 폐광지역 등을 대상.

10개 후보지 선정 후, 굴업도 최종 낙찰, 고시(1995년 2월).


이에 대한 굴업도 주변 덕적도 및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거센 반대로

1995. 11. 30에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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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섬 굴업도 1박2일 


굴업도는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오리.'

조선시대 굴압(屈鴨) 지명이 실감나는 섬.

바다를 가로질러 떠있는 백사장이 인상 깊다.


토,일 백패킹/5월30일~31일/덕적도-굴업도/오전8시/동틀때대장 


6·25전쟁 전에는 60세대가 살고 있었으나,

질병이 만연하고 어획량이 감소하자 모두 다

덕적도, 인천으로 이주했다가 6·25후 다시 거주.

현재, CJ 제일제당에서 97% 이상을 소유한 굴업도.


cj그룹에서 굴업도에 골프장 개발을 하려는가 보군요 병신들 ㅡ,ㅡ;; 


CJ에서 골프장, 해양관광단지 조성 계획으로

섬의 환경파괴와 사유화 논란을 빚었던.,굴업도.


2014년 논란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CJ측에서

골프장 개발은 안 하겠다고 지역사회에 공언.

인천시가 '명품섬'으로 조성하겠다고 나서면서

다시 논란에 기름 붓지 않을까 우려되는.,굴업도.


6월28일-29일(토-일/1박2일) 굴업도 백패킹 


'바람의 섬' 굴업도 곳곳에는

'바람의 언덕' 초원이 널려있다.


다음 스카이뷰로 굴업도를 다녀왔습니다. ^^


덕적군도에 속하는 굴업도는

백야도 문갑도와 함께 비경지.


'인천 연안부두 ~ 덕적도' 뱃길 한시간 거리.

'덕적도 ~ 굴업도' 하루 1회 운항 뱃길로 한시간.

1억년전 형성된 화산섬으로 파충류 서식처였던 곳. 


옹진편, 굴업도 지리여행(Gulupdo Geotravel) 


일제시대 초기까지 민어가 많이 잡혀

민어잡이 철에는 어선 100여척이 붐볐고

파시가 서면 동섬 서섬 사이에 유곽이 성행.


일년 사계절 안개가 자주 끼는.,굴업도.


인천의 보배로운 정체성을 간직한 섬으로

만인이 공유하는 섬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심사수고해야 할 뜨거운 감자.,굴업도.


토,일 백패킹/5월30일~31일/덕적도-굴업도/오전8시/동틀때대장 


이작도 뒤로 수평선에 걸려있는.,'덕적군도.'

서포리해수욕장으로 더 잘 알려진.,본섬 덕적도.

수평선 넘어 북방한계선은 북한과의 연평해전 지역.  


황해도.

경기도.

인천.

충청도.


항로 길목에 위치한

소이작도 & 대이작도.


규모는 작은 섬이지만

섬의 위치 상으로 보면

서해 항로를 아우르는 곳.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 전망대는

서해 섬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위치.

4개의 봉화대가 설치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이작도는 군사 요충지.

그러면서도 평화로운 섬이다. 


매일 하루 두번

썰물에 드러나고

물이 밀때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환상의 섬.

'풀등'이 있기 때문 아닐까?


이작도-풀등 


대이작도 큰풀안 해수욕장에서

눈앞에 바라보이는.,기나 긴 모래섬.

밀물에는 잠기고, 썰물에 드러나는.,풀등.


이곳 주민들조차 그 누구도

끝까지 걸어본 사람이 없다는 곳.

걷다 보면, 밀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하루에 2번씩 3~4시간 남짓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신기루.


아울러, 서해에는 그뿐만 아니라

평소, 바다물 속에 모습을 숨긴.,암초.

풍랑이 일때 만 모습을 드러내는.,여(汝).


이작도 인근 해역을 비롯한 서해 해상은

예나 지금이나., 해상 조난사고 다발지역.

수심이 깊지 않아 큰배는 암초에 걸리기 쉽고

작은 배는 악천후 풍랑 속에서 전복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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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을 출발

제주로 가던 6천825t급 청해진 소속

여객선 세월호 침몰로 292명 숨진 사고.


서해바다에는 아직까지도

지적 공부에 없는 섬들이 많고

바다물 속에 숨은 '암초, 여'도 많다.


특히, 모래톱 풀등은

물이 밀때와 물이 썰때

조류와 해류에 따라.,이동.


풀등은 제자리에 멈춰있는 모래사장이 아니라

신기루처럼 수면을 들락거리며 이동하는 모래섬.

그로 인해, 항로에서 이탈하는 운항 사고가 잦았다.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참으로 안타까운.,세월호 사건.

그 여파로 우리나라의 해양정책은

갈 길을 못찾고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중국, 일본의

해양정책과 비교된다.


2015년 6월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 조성.

무장을 기정사실화하자 미국이 총력 저지하며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태평양으로 나서는 길목에

오키노토리 확장으로 중국의 대양진출 저지 속셈.


찰떡궁합  미일(美日).,우호 혈맹관계.


오키노토리는 일본 도쿄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1,740㎞ 떨어진 태평양 해상에 위치한 암초.

높이 70㎝, 가로 2m, 세로 5m 규모의 산호초다.

산호초를 배양하는.,오키나와현 쿠메지마 연구센터.

오키노토리 산호초에서 작은 크기의 산호초를 가져와

1년간 금속판에서 크게 배양한 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머지 않은 장래에 세계 최초

3 헥타아르 정도 ‘인공 산호섬’이

조성될 수 있다.” - 마코토 오모리-


3 헥타아르(9075평) 산호초 인공섬.


일본이 산호초 형성에 열을 올리는 것은

오키노토리가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인 때문.

섬이 되면, 국제적으로 200마일 경제수역이 형성.

자원의 보고인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오키나와에서 대만 해역까지

일본의 해상 영토를 크게 확장.

미군 괌 잠수함기지 설립지원 용이.


특히, 중국의 핵잠수함 이동 경로와 일부 겹쳐

향후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군사적 요충지.


‘오키노토리’ 산호초 인공섬 조성에 성공할 경우,

중국의 ‘인공섬’과는 달리 국제적 비난을 피하면서

일본은 영토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적으로는 일본정부의 친환경 정책으로 평가되면 

국제법 상 섬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 일본의 계산이다.

오모리 교수는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끌어내고 있는 발언. 


“산호초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지만,

이식된 산호초 망실률이 높은 것도 사실.

이식된 산호가 자연 확장력을 갖고 있는지

산호섬이 커지고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日, 최남단 암초 오키노토리 대륙붕 설정 


산호초 재배로

인공섬을 만들어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장할 속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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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서해바다 거친 풍랑 속에서

암초 또는 여(汝)를 보았다면 

그 뱃사람은 십중팔구 물고기밥.


여자 물귀신을 뜻하는.,여(汝).


'산제물 처녀 물귀신'.,汝.

공양미 삼백석에 팔린.,심청.

인신공회 산제물 처녀였던 것.


풍랑을 가라앉히기 위한.,인신공회 풍습.

산제물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부인당.

인신공회 풍습에서 비롯된.,해신당 무녀 풍습.


삼척 신남 해신당 

삼척 신남 해신당.

삼척 신남 해신당 


섬의 남근 숭배 토템, 당산, 당집, 해신당, 부인당.

유배지, 사찰, 마을 숲, 전설의 고향, 잃어버린 역사.

고인돌, 문화유적, 토속음식 맛보기, 섬의 특산물 구매 등.


지금까지 400여 섬을 걸었고

여전히 걷고 있는 강제윤 시인.

국내 유인도 여행 전문가 강제윤.


&#65308; 섬 택리지 &#65310;_ 강제윤 저 _ 호미 


지난 10년간 400여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문화를 기록해 온.,그의 발자취.

장차, 해양정책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굳이, 섬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그가 쓴 책들은 읽어볼 만 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국토.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이 모두 다 

섬에 깊은 관심을 갖어야 할., 싯점.


조선시대 정조는

'정약용' 등과 함께

적극적인 해양정책을

펼치려고 시도하다가 운명.


결국, 조선시대 내내

국제사회에서 폐쇄된 채

해양정책 한번 펴지 못한채

'조선왕조 519년' 역사를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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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공도정책 및 해금정책으로 자멸.

신라~고려시대는 동아시아 해상왕국.,"코리아"

우리나라 미래는 해양 정책에 달려있지 않을까?


승봉도 & 사승봉도 여행사진 1 


현재, 남한 지도 상.,무인도 2,689개, 유인도 464개
그리고, 지적 공부에 추가 등록할.,섬이.,약 1400 개
3153 섬 + 1400 섬 + (바다 속에 산처럼 솟은., 암초들)


"바다가 육지라면~" 잠재적인 무한자원 보고.

남한 육지 면적보다 5배 이상 넓은.,三面의 공해.
서해 남해.,평균 수심은 모두 약 100m 정도에 불과.


연육교

해저터널로

섬과 섬을 연결하면

육지와 다름 없는 서해.


미래 어느 시점에는

해상도시 건설도 가능.


현재, 인천 송도신도시가 들어선 곳은.,송도(松島).

인천 송도해수욕장 앞바다에 송림 우거졌던.,무인도.

인천경제자유구역( IFEZ)이자 인천경제 중심이 되었다.


인천.,송도 신도시.

인천앞바다 약 1200 만평을 매립.

홍콩 또는 싱가포르 도시국가와 비슷한 규모.


송도관광단지(4블럭) 인천 송도해수욕장부지 불법형질변경(매립)에 대한 국민감사청구 

1971년 인천 송도해수욕장.

인천송도해수욕장의 어제와 오늘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무인도서 보전 및 관리 법률에 따라

옹진군 영흥면 외리 산 261 무인도 소어평도에

2015년 5월 14일 주택(건축)개발사업계획 승인 발표.


휴식처 제공을 위한

'인천해수청'의 무인도

개발계획 국내 최초 승인.


영흥도와 자월도 사이.,무인도.

소어평도 규모는  2만5천785㎡이며

주택개발사업 승인 면적은 4천482㎡다.


영흥도에서 3.6㎞ 거리

뱃길로 1시간~1시간 반. 


인천 해수청은

이번 사업승인이

인천 앞바다 무인도

휴양시설 개발에 있어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

인천해수청 관할에는 현재 95개 무인도가 있으며,

절대보전 10, 준보전 32, 이용가능 45, 개발가능 8 곳.


개발가능한 섬 8 곳은 소어평도,

상공경도, 사승봉도, 부도, 작약도,

장구도, 선미도, 사렴도 등이다.

“우수한 지형,지질, 생태환경

무인도에 대해서는 보전·유지하되

8곳은 해양관광 레저자원으로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 - 인천해수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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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도(伊作島).

'옛 이름은 이적도(伊賊島)였다.'고 전한다.

서해, 남해 여러 섬처럼 고려 말., 왜구의 거점.


 "고려 말 왜구들이 이 섬을 점거하고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선을 약탈하던 근거지라 하여 이적(夷賊)

또는 이적(二賊)이라 불렀다" - 고려사 '변광수전(邊光秀傳)' -



 통상, 왜구란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

일본 열도 침략에 실패한 이후인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부나

일부 내륙 지역을 약탈하고 밀무역을 행하던 무리.


그 전에도 왜구는

존재했다는.,기록.


한반도, 중국 남부와의 무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대마도, 이키 섬 주민과 규슈 주민들은 고려원나라

연합군 침략후 무역로가 차단되고 뱃길마저 끊기게 되자

복수심과 생계를 위해 해적질을 시작한 것이 왜구의 시초.


이처럼 초기 왜구들은

가난한 규슈의 농민들.


한국에서의 이들의 활동 시기는

고려 말~ 조선 전기에 이르는 사이.

왜구는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현물세를 운반하던 배가 이 섬 근처에서

왜구 습격을 자주 받자  전선 80여척을 동원

수송케 했다.' -  고려 공민왕 13년(1364년) -



조선시대에도 '소규모 해적 집단이

이작도를 은신처로 삼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육로보다는

뱃길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다.

특히, 세곡미 운송은 뱃길에 의존.


인천 옹진군 굴업도1 (2014.11.8-9)-1.방아다리선착장, 섬그리메, 굴업도도착, 개머리언덕 


............이작도 가는 길..................

인천연안부두 여객선(인천 ~대이작도)

안산 대부도 방아다리선착장(이작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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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도 여행.. 


대이작도로 향하는 대부도 방아다리선착장.

오전 8시 10분 대이작도로 향해 카페리호 출발.

배의 3층 선상 위에서 바라보는 인천 옹진군 섬들.


장차, '서해안의 지중해'

세계적인 보트(뱃길) 트래킹 명소.

국제적인 해양관광지로 부상할., 해역.


[모집중] 제115차 `낭만이 있는 섬여행` 환상의 모래섬 &quot;사승봉도+승봉도&quot;, 서해의 신기루 &quot;대이작도 풀등+고기잡이체험&quot; 


'수도권에서 가까운 뱃길에

이렇게 섬들이 많았던 것일까?'

지도에 없는 섬들이 더 많은듯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초, 여'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얼마나 될까?



인천시 옹진군 우편번호[⑥ 작월면-자월도,대이작도,소이작도,승봉도,..]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두 섬이 마주 보는.,이작도.


두 섬의 선착장도

약 200m 남짓 떨어져

마주 보는 위치에 있다.


소이작도 


소이작도 휘청골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정착했던

해적들의 집터, 무덤이 있다는 곳.


소이작도 가파른 고갯길 넘어.,휘청골 해변.

큰 무리 해적들이 살기에는.,작고 비좁고 옹색.

더 큰 무리 해적들은 대이작도에 숨어 살았을까?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조선시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공도정책과 잦은 전란 등으로 인해

도서지방 해양 유민들이 많았던 시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국가 혼란기에

전란,  노역, 수탈을 피해 온 해양 유민들.

전란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섬에 정착.


조선시대 우리나라 섬의 역사는

대부분 임진왜란 후, 약 삼사백년. 

1592년(선조 25) ~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이라고 하면

보통 정유재란까지 포함.


숲속에는 돌무더기들만 더러 남아 있으며

또 무덤 몇 기가 있지만 관리 상태로 보아

그리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소이작도산행~큰산... 


오늘날까지 해적의 무덤이 남아있다고 한들

비석에 해적의 묘라고 새겨지지 않은 바에야

어찌 조선시대 해적의 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소이작도 끝에 위치한 

'벌안해수욕장' 일대가

해적들의 은둔처 아닐까?


웅진군 자월면 이작리.,'벌안마을'

배낚시, 갯바위낚시, 그물체험, 보트,

쭈꾸미 꽃개잡이, 해산물참숯구이, 풀등.


특히, 소라껍데기를 이용한

벌안 '쭈꾸미잡이'.,그물 체험.

다시 찾아오고 싶을 만큼 인상적.


자월도까지 이어진 광활한.,풀등.

바지락, 골뱅이, 어폐류  황금어장.

썰물에는 사막처럼 끝이 없는 모래밭.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가 자랑할.,해양 관광자원.


붉은달 자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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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북아에서 가장 위협적인 해적은

대마도에 근거지를 두었던 왜구라 하지만

왜구가 아니라도 섬에 숨어산 해적은 많았다.


이들 해적을

조선시대에는

'포작'이라 불렀다.

 

원래 양민들이었으나 관청의 수탈을 피해

섬에 숨어 살며 불법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

가끔 왜구와 결탁해 노략질하기도 했던.,포작.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해상 지리에 밝았던 포작들을

왜군과 전투에 활용하기도 했다.


'해적' 설리, 손예진 오른팔 캐릭터 맹활약 감초 역할 '톡톡' 


임진왜란 이후에는

일부 포작 만 양민으로 환원.

대부분  해적으로 남았다 전한다.


<성종실록>과 <선조실록>등을 살펴봐도

포작은 해양 방위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1485년 4월 12일 성종 실록에 따르면,

포작은 일정 거처 없이 섬 장막에 살며,

배안에서 주로 생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작들은 행동이 재빠르고 사나우며,

그들의 배들은 가볍고 민첩하고 빨라서

폭풍이나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순신 함대 - 거북선, 판옥선, 협선, 포작선 


'왜적을 만나도 왜적이 두려워 피할 정도.

포작들은 배에 큰 돌 수십 개를 실고 다니며,

왜적들을 만나면 돌을 던져 왜선을 파괴하였다.'


'이들 바닷가 고을에서 진상하는 해산물

모두 이들 포작이 채취한 것이라 하고 있다.'


Re:보트 피풀의 행복지수 


'포작들은 바다 위를 떠돌며 조개미역을 채취.

정처없이 이섬 저섬을 떠돌며 어업으로 생계 유지.'


왜구가 출몰하면 포작은 수군에게 바닷길을 안내.

배를 조종하거나, 전투병, 정보원으로도 활약했다.

<난중일기>와 이순신의 장계에도 등장하는 포작선.


이순신의 함대는 전선(戰船) 판옥선 & 포작선.

그 숫자를 보면, 판옥선 보다 포작선이 많았다.


전라좌수영 이순신 함대 1차 출전

1592년 5월 4일에서부터 5월 8일까지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 등.


임진왜란-조선, 철저히 유린되다 


“포작으로 배를 능히 조종할 수 있는 연해 사람들”

(1593년 3월 22일 이후 메모는 포작의 특징을 언급)

임진왜란은 수군과 포작들과 함께 승리를 이끌어냈다.


당시 제주도는 토질이 척박해 농사가 어려웠다.

각종 수탈에 시달린 16세기에 자연재해도 심했다.

그런 까닭으로 전라도나 경상도로 많이 이주했는데

이날 일기는 제주에서 도망쳐 나온 포작이 그런 경우.

이순신은 이들을 세는 단위로 ‘구(口)’를 썼다.

이는 양인의 숫자를 세는 단위 ‘명(名)’과 다르다.

조선시대 ‘구(口)’라는 단위는 노비를 세는 단위다.


이로 보면 제주도에서 나온 사람들의 신분이

천민 ‘포작(鮑作, 보자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제주를 떠나 섬을 유랑하는 무리.,포작.


구한 말, 포작들은 배에

해녀 여러 명씩 싣고 다니며

우리나라 섬들을 떠돌며.,조업.


독도에 &apos;제주 해녀&apos;가 살았다?..독도는 해녀들의 &apos;엘도라도&apos; 


울릉도 독도 등은 물론이고

일본 동남아 러시아까지 진출했다.

특히, 독도 오키섬은 안방을 드나들듯.


'독도 겨냥한 전진기지' 일본 오키섬은 어디? 


오키섬은 독도로부터 약 157,5km거리.

오늘날, 독도를 겨냥한 일본의 전진기지.

제주해녀가 원정조업을 하던 독도, 오키섬.


독도에 '제주 해녀'가 살았다?..독도는 해녀들의 '엘도라도' 


원래, 제주에서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역할은

남자 ‘포작(浦作)’이 맡았으나 진상용 전복 수탈에

시달리다 대부분 도주하는 바람


오늘날, 해녀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일본 해녀 ‘아마’는 5∼9월에 일하지만

제주 해녀는 추운 겨울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선 영조 재위 때 기록에 의하면

부력을 줄이기 위해 알몸 조업도.,강행.

세계에서 가장 생활력이 강한 제주 해녀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목적이기 보다는

가족을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한겨울에도 물질해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급속한 고령화 제주해녀, 복지 지원 대폭 늘인다 


제주해녀는 물때를 가려 한 달에 절반쯤 물질.

그외에도 집안일, 밭일, 장사일로 쉴 틈조차 없다.

뉴욕타임스는 제주 해녀를 ‘한국 최초 워킹맘’이라 소개.
제주 해녀는 우리나라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선정되었다.


조선시대 내려진.,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

제주 도민들은 뭍으로 나가 살 수  없었기에

제주도는 고유한 언어와 전통문화가 보존된 것.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온 적이 있는 여인은

정조 때 제주도 객주집 여주인인 김만덕이 처음이었다.

제주도 기근 때 전 재산을 털어 수천명 아사자들을 구휼.

 

제주 도민의 1/3  굶어죽고

돌림병으로 죽어갈 때였는데

나라님도 못한 일을 그녀가 한 것.


하여, 정조때 왕의 부름을 받아

그 공로로 김만덕이 상경을 하자

마치, 외국인이 표류하여 온듯.,관심.


왕의 배려로 한양 궁궐을 구경하고

설악산을 유람했던.,의녀반수 김만덕.

그것이 합법적인 기록으로는 처음이다.


그외 제주 포작인 및 해녀들이

독도, 울릉도, 일본 해외 원정 등

비공식 기록은 모두 불법이었던 셈.


소이작도 약진해변~벌안해변 트레킹 / 소이작도 배편,배시간,민박 


소이작도 선착장 동쪽 몽돌해변 옆에는 데크 산책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의 바닷가에 우뚝 선 ‘손가락바위’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관음보살'로 보이기도 한다.


정기여객선을 타고 가다보면

소이작도 콩돌해변 끝에 선바위.

소이작도 큰마을 왼쪽 웃목섬 끝바위.


 이 바위는 대이작도 선착장을 출발,

인천이나 대부도로 향할 때 갑판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이작도 랜드 마크.


손가락바위 


서해 항로를 오가는 배들에게는

이작도 선착장을 알리는.,항로 좌표.


.......................이작도..............................

인천 시청에서 남서쪽으로 약 55㎞ 떨어져 있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44km 떨어진.,유인도.

임진왜란 이후 '해적들이 살았다.'고 하여.,이적도.


면적이 큰 섬.,대이작도

서쪽에 작은 섬.,소이작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긴 섬.

최고 지점은 동쪽의 188m이며,

맞은편 북서쪽 산지 사이에는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한 평지.


곳곳에 만과 갑이 이어져 드나듦이 심하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크며, 겨울에 눈이 많다.

농작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땅콩 등이 생산.

연근해 일대에서는 갈치·조기·민어·새우·꽃게 등.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와

북쪽 만안 게넴이· 이작 마을.

인천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장골해수욕장은 모래가 많고 고와

여름철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면적 3.7㎢, 해안선 18㎞,

인구 157, 가구 82(2003).

..................................


소이작도 약진해변~벌안해변 트레킹 / 소이작도 배편,배시간,민박 

                                                                            


 소이작도



해군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해군기지가 있는.,소이작도.


2015년 10월 인천해역방어사령부는

해군본부 및 2함대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도서지역 주민 위로 및 격오지 근무 장병 격려.

옹진군 소이작도를 방문해 위문공연을 실시했다.


소이작도....댕겨왔습니다 


주민 100여명을 초청해 이뤄진 이날 공연은

해군홍보단의 사물놀이, 마술쇼, 밴드공연 등.

해군 장병 및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소이작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해 항로 상에서 전략적 요충지.

인천 앞바다 해역를 아우르는 위치.


소이작도는 자월도(紫月島) 곁에 위치.

자월도는 인천 앞바다에서 가까운.,위치.

영종도~자월도~ 이작도~소야도~덕적도.


한강서 배 타고 아라뱃길 따라 서해 섬 간다  


......................영종도........................

고려시대 개성 예성강 벽란도 포구에서부터
고군산군도·흑산도 등을 경유해 중국의 명주까지
연결되는 항로의 거점으로 객관이 세워졌던 영종도.

 

조선 숙종 때는 교동수영에 속했고,
영조 때 진을 설치하는 등 군사요충지.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 항로.,영종도.

.....................................................

 


인천) 검붉은 달의 섬, 푸른바다에서 즐기는 하룻밤 섬의 여정, 옹진군 자월도! 

....................자월도(紫月島).......................

2010년 인구 579명(남 306명, 여 273명)이 거주.

인천 시청에서 서남쪽으로 약 34.8km 떨어져 있다.

주위에 영흥도, 대이작도·승봉도·대초지도·소초지도 등.


조선시대 이곳으로 귀양온 사람이 첫날 보름달을 보며

자신의 억울함을 한탄하니 달이 붉어지고 바람과 폭풍우.

하늘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듯 달이 붉다고 하여.,자월도.

.............................................................................


소이작도 바로 곁에 위치한.,자월도.

조선시대 자월도는 악명 높았던.,유배지.

'피눈물이 흘러 달이 붉게 보인다.'는.,뜻 지명.


인천) 검붉은 달의 섬, 푸른바다에서 즐기는 하룻밤 섬의 여정, 옹진군 자월도! 

조선시대 자월도 유배인들은

주변 일대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당시 해적 근거지.,소이작도 휘청골.


자월도에 귀양온 유배인들은

국영 말목장에서 노역했던듯..


백령도 등산지도및코스 여행(취소) 


자월도는 조선시대 남양도호부.,목장 터.

큰말해수욕장과 장골해수욕장 등이 있다.

장골해수욕장은 썰물 때 소이작도와도 연결.


그러나, 밀물이 소리없이 들이닥치면

해안가 사막과 같이 광활한 모래사장이

서서히 물속으로 잠겨., 조난 당하기 십상.


'아!~ 언제부터 내가

바다 가운데 있는걸까? '


자월도, 장골해수욕장, 장골해변 


원래, 유배지란 원주민들도 살기 어려운 곳.

하물며, 유배인은 제명대로 살기 더욱 힘든 곳.

자월도는 '피눈물이 흘러 달이 붉게 보인다.'는 뜻.


'황진이(黃眞伊)' 삼행시(三行詩).


"黃"  황망한 휘청걸음으로.,자월도 유배길.

"眞"  진한 슬픔 풀어놓을 한잔의 술이 그립다.

"伊"  이제는 술잔 기울일 친구마저 곁을 떠났네.


자월도에서 배 타고 소이작도로 건너간다.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 소이작도.

이작도(伊作島) 옛 이름은 이적도(伊賊島)였다.


옛 해적 근거지.,소이작도 휘청골. 


소이작도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전쟁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숨어서 살며

해적질을 한데서 유래된 지명.,이적도(伊賊島)


옛 해적들의 집터와 무덤이

남아있다는.,'섬 북쪽' 휘청골.


인천 대이작도 캠핑 

 

가파른 고갯길 넘어 들어간 휘청골 해변은 작고 옹색.

아무래도 큰 무리의 해적이 숨어 살기는 좁아 보인다.

해적들의 집터였을까? 숲속에는 돌무더기들만 남았다.

 

숲에는 무덤 몇 기가 있지만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해적의 무덤은 아닐 것이다.


소이작도산행~큰산... 

 

숲 속을 뒤져봐도 해적의 무덤은 찾을 길이 없다.

오랜 세월 돌보지 않았다면, 비바람에 사라졌을듯.

'세곡선을 노린 해적들이 신출귀몰 들락거린 섬일까?'


소이작도 


▲ 소이작도 휘청골 해변.

서남해의 여러 섬처럼 이 섬 또한

해적 섬이 되기 전에는 왜구의 거점

 

 < 고려사 > 에는 고려 공민왕 13년(1364년)에

현물세를 운반하던 배가 자주 왜구의 습격을 받자

무장과 전선 80척을 동원해 수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 동북아에서 가장 위협적인 해적은 대마도에 근거지를 둔 왜구.

왜구가 아니라도 조선시대에는 해도에 숨어 살던 소규모 해적집단들.

평상시 양민도 기근이 들면 굶어죽지 않으려고 해적으로 돌변했으리라.


소이작도, 대이작도 


조선시대 서해, 남해 도서지역

농산물 자급자족율은 약 50% 전후.

대기근이 들면 굶어죽는 주민들이 절반.


대기근 여파로

돌림병까지

돌기 때문.


소이작도 

 

이들 해적을 포작이라 했는데 이들은 원래 양민들이었으나

관청의 수탈을 피해 섬에 숨어 살며 불법 어업으로 생계 유지

가끔씩 왜구들과 결탁해 노략질을 했던.,관청 수탈이 키운 도적. 


과도한 세금

과도한 부역.


관청의 수탈을 피해

외딴 섬으로 숨어들어

살 수 밖에 없었던 유민들.


관청의 제도권 밖으로 벗어났으니

외딴 섬에서 '삶' 자체가 불법이었고

기근 때는 오직 살기 위해 약탈도 자행.

충무공은 해상 지리에 밝은 포작들을 임진왜란 전투에 활용.

임진왜란 이후 일부 포작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양민으로 환원.

이작도 해적들은 전란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을 것.

 

그들은 언제까지 해적질을 했을까?

그들은 해적으로 생을 마감했던 걸까? 


소이작도 


해양왕국의 역사는 곧, 해적의 역사이다.

해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길다.

해양사에서 해적과 비해적의 구분은 무의미.

 

강한 군사력으로 침략하고 노략질하고 땅을 빼앗고

양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해적질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가들은 이를 정복이라 미화하지만

해양왕국의 역사는 바로 해적의 역사다.


동아시아 해상왕국 "코리아"의 옛 명성은

왕건이 무역로 뱃길을 열고 세운 고려의 역사.

즉, 동아시아 해적들을 소탕하고 지배한 고려 역사.


소이작도 

 

먼저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운 해적 두목은 왕이 되고

뒤에 나타난 세력은 해적으로 이름이 남겨졌을 뿐이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해적은 바이킹들이었다.

 

이들은 잉글랜드 섬과 러시아를 침략

노르만 왕조와 키에프 공화국을 세웠다.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의 악명 높은 해적이자

노예 상인 호킨스나 드레이크 등은 국가에서 공인을 받은 해적.

 

해군제독이 된 해적두목 드레이크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영 제국의 세계 지배에 일등 공신.


‘캐리비안의 해적4’는 몸이 쑤시지 않는다(씨네리뷰) 

삼국시대 이후 고려,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 가장 큰 위협은 해적 왜구.

 

일본 왜구는 단순한 도적이 아니었다.

지방 호족 사무라이들이 통솔한.,수군.

 

왜구들은 중국 해안을 비롯

한반도 연안의 각 고을을 노략질.

강간과 납치, 방화와 살인을 일삼고

조정의 세곡선을 약탈해 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포도청 종사관과 포졸을 사칭한

해적은 중국이나 일본 해적들에 비해 미미한 편.

'관리가 되려면 먼저 도적 수령이 되라' 중국 격언


인천 섬지도 -자월도 이작도 승봉도 

 

소이작도에서 대이작도는 코 앞이다.

뱃길 5분거리지만 배는 하루 세 차례.

 

대이작도로 건너가는 막배를 기다리며 걷는.,콩돌 해변

해의 끝에 주먹쥐고 검지를 하늘로 치켜든., 손가락 바위.

동자승을 품에 안고 서있는 '문수보살' 형상으로도 보인다.


소이작도 손가락바위    


무슨 까닭으로 

손가락 하나 들고

그곳에 있는 것일까?

 

................손가락 바위., 전설..............
구지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이었다.

선사는 불법에 대해 물으면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일 뿐 일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다.

 

선사를 시봉하는 동자승은 그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봤다.

하루는 구지선사가 출타 중인데 어떤 스님이 법을 물으러 왔다.

객승은 동자승에게 물었다. "선사께서는 법이 무엇이라 생각 하는가?"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객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구지선사가 돌아오자 동자승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러자, 구지 선사가 물었다 한다.

"그 스님에게 했듯이

나에게도 대답해 보거라.

불법이 무엇이냐?" - 구지선사 -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선사는 동자승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동자승은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구지선사가

동자승을 불러.,

다시 물었다고 한다.

"그래 불법이 무엇이냐?"

동자승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아차, 그런데 손가락은 이미 잘리고 없지 않은가?

그 순간 동자승은 퍼뜩 깨쳤다고 하는.,벽암록 기록.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

 동자승은 대체 무엇을 깨우쳤을까?

'무아(無我)'를 깨우쳤다는 것일까?

 

나를 내려놓을 때, 나의 주장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깨달음.

.............................................................


벽암록(碧巖錄)은 송(宋)나라 때의 불교서적.

손가락바위 전설은 송나라와 무역이 융성했던 고려때

소이작도 앞바다로 무역선들의 왕래가 잦았음을 대변한다.


즉, 손가락바위 앞바다는

'고려 ~ 송나라' 무역 항로. 


조선시대 - 제주 모슬포 &amp; 해금정책. 

 

인천 정기여객선 막배는

이곳 소이작도에 닿지 않고

대이작도로 곧장 가기도 한다.


손님이 없는 비수기에는 흔한 일. 

주민들이야 자기 배로 건널 수 있지만

나그네는 200m 거리 바다에 갇히기 쉽다.


옹진 대이작도 이작분교...인천시 옹진군 


뱃길이 끊기면

하룻밤을 더 묶고

배를 기다려야 한다. 


지척 눈앞에서 갈 길을 가로막는 바다.

건너 뛰고 싶지만, 건너 뛸 수 없는., 몸.

그러나, 머리 속은 온갖 잡념이 오락가락.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걸까?'


[인천] 소이작도 신성민박, 바다낚시하고 회도먹는 민박집, 발안해수욕장 민박, 고래등뼈화석 


우편 배달부는 우편선을 타고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를 왕래한다.

그 배를 얻어 타고 건너온.,대이작도.

  


 대이작도.



인천의 섬 지도 [#1]


대이작도에는 큰풀안, 작은풀안, 계남, 풀등 등

크고 작은 해변들이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작은풀안에서 큰풀안으로 이어지는 해변산책로는

목재 데크로 조성되어 있기에 누구나 걷기에 편하다.

 

또 길다랗게 이어진 부아산과 송이산은

섬 속에서 트레킹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선착장에서부터 반대끝 계남마을까지 총 4km. 


옹진 대이작도 선착장(파일럿 선착장)...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 선착장에는 '영화의 섬'이라는 빛바랜 글귀.

'섬마을 선생님'을 영상화 한 1967년 김기덕 감독 작품.

선착장 지나 큰말 부근에서 대이작도 부아산(해발 159m)


대이작도 선착장에 도착하게 되면

보통 부아산 구름다리부터 올라간다.

구름다리 ~ 삼신할미약수터~ 장승공원.


대이작도에서 명물은

부아산 산정.,구름다리. 

SBS '출발 모닝와이드'에 인천의 대이작도, 승봉도가 떴다! 

'이른 새벽에 부아산 신선들이 

천상으로 오른다.'는.,구름다리.


구름다리를 건너 송이산 방향으로 

이동하면, 삼신할미약수터가 나온다.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전설.


[가을여행 섬으로] 대이작도 / 삼신할미약수터

옛날부터 명성이 높았다는.,삼신할미 약수.
고려시대에는 병을 치료해준다는 약수로 유명.
정한수로 사용하면, 아들을 점지 또는 소원성취.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아
항로 상에서.,식수 보충 약수터.

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섬들이 발 아래 펼쳐진듯.

서면 인천 시내, 승봉도, 소이작도,

사승봉도, 덕적도, 소야도, 굴업도 등.


이작도가 해적섬이 된 연유를

이제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옹진 대이작도 이작분교...인천시 옹진군 


가수 이미자 

가요 '섬마을 선생님~'

가사로 잘 알려진.,대이작도.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대이작도 부아산 구름다리  

 

70m 구름다리가 있는

정상은 충남 서해 전망대

 

동쪽은 옹진군의 승봉도,

서북쪽은 자월도, 소야도, 덕적도,

서쪽은 문갑도, 굴업도, 각흘도,

 

남서쪽은 선갑도, 백아도, 울도.

동남쪽으로는 풍도, 육도, 대란지도


[여름휴양지,휴가지,피서지] 인천 대이작도 


장승공원을 지나면

대이작도에서 최고봉

송이산(188m) 정상까지 

팔각정과 전망대 등 시설물.

섬 주변의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늘공원"으로도

부를 만큼 전망좋은 등산로.


소이작도, 대이작도 


송이산은 25억년전

화산 열기에 의해 형성된

국내에서는 '최고령 암석층'.


'작은풀안해수욕장' 데크 산책로 옆에는

25억 년 전 땅속 깊은 곳에서 암석 일부가

뜨거운 열에 의해 녹을 때 만들어진.,혼성암.


8/15~8/17(금~일)2박3일 대이작도~소이작도 비박산행 


땅속 깊은 곳에서 암석 일부가

뜨거운 열에 의해 녹을때 생성되는

암석층은 '지각변동 진화사' 연구자료.


인천 섬 여행! 꿈같은 섬 대이작도 


이작도는 풍화작용에 약한 고생대 암석층

덕적군도와 더불어 지질이 가라앉고 있는 곳.

한강이 오랜 세월 간 토해낸 모래를 쌓아두는 곳.


인천 앞바다에는 왜 풀등이 많을까?

조수 간만의 차이가 10m를 넘어서일까?


인천 앞바다로 나온 모래는 하루 두 번씩

거칠게 밀고 써는 조류를 따라 바닥을 배회.

인천 앞바다 크고 작은 섬 근처에 쌓였으리라.


썰물로 하루에 두번 해수면이 낮아질 때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인천 앞바다 풀등.

풀등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모래섬이 아니다.


해류에 따라서 움직이는 모래섬.,풀등

바다 위로 나왔다가도 사라지는.,신기루.


풀등 / 오명선 


거대한 해류에 쓸리거나 태풍에 밀려 조금씩 이동.

베태랑 선장이라고 해도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닐듯..

썰물 때 풀등에 얹히면 밀물 때까지 꼼짝달싹 못하는 탓.


그래도 풀등은 '여(汝)'보다 안전.

바다 속에 바위를 감추고 있는.,여.

조심성 없는 배는 여지없이 부서진다.


해안의 갯벌이 넓은 인천 앞바다

풀등도 많지만, 곳곳에 여도 많다.

여를 감싸는 풀등도 더러 볼 수 있다.


'풀등'은 바다의 천연 정화장치.

아울러, 바다 생물의 '인큐베이터'.


한강이 토해내는 육지의 영양 염류는

모래 틈 치자어의 훌륭한 먹이가 되니

어패류들이 산란을 하기 최적지인.,풀등.


개흙이 많은 인천 앞바다지만 풀등 주변은 맑다.

갯벌 검은 입자가 모래 틈으로 배어들어가는 까닭.

해양수산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당연.


서해는 태평양 어류의 산란장.

풀등 어패류 산란장이 사라지면

그만큼 태평양 어류 산란장이 줄고

서해 어민의 어획량이 감소되게 된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김양식이 사양화

옹진군의 어획고는 형편없이 낮아졌다.

모래에 산란하는 새우가 드물어지게 되고

어폐류 산란장인 풀등의 조개들이 집단폐사.


어민들의 수입이 타격을 받게되면

주변 섬의 경제적인 상황도 시들해지고

섬처녀 총각들은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섬에 대한 미래와 희망이 없어지면

고향에 대한 미련도 없어지게 마련.


모래채취로 돈을 버는 군청을 그렇다 치고,

바다 어장을 잃고 관광객마저 잃은 주민들은

세금 낼 돈도 없어지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최근 3년간 웅진군이 해변 백사장에 쏟아부은 40억원,

20년간 공유수면 점용 사용료로 걷어들인 돈은 1400억.

웅진군은 산술적으로 큰돈을 벌고 주민은 손해를 입은 격.


웅진군의 ‘밑 빠진 백사장에 모래 붓기.’

명목 상으로는.,'관광객 유치사업'의 일환.

주민들은 떠나가는데 언제까지 계속할건가?


'누드 비치' 개발로 섬주민 소득증대.,案.

골프장 개발사업 등 섬주민 소득증대.,案

섬주민을 위한 핵폐기물 유치 등.,탁상공론.


서해안은 동해안보다 2~3도 추워

해수욕장의 성수기 기간이 짧은 편.

바람이 심해 골프장이 부적합한 환경.


태평양 어류 산란장인 서해에

웅진군 핵폐기물 유치장 탁상공론.

주민소득 및 관광객 유치에 도움될까?


옛부터 국가기관이나 민간기업이나

인재 하나가 백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지만

어설픈 리더를 만나면, 그 아래는 손발 만 바쁜 법. 


예산 만, 축을 내고

성과 없는 경우.,허다.


서해 자연환경이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서해 도서 주민들을 위해

바람직한 해양정책을 찾아내야 할 때 아닐까?

  

>우기자 여행사진< 대이작도 이작분교 

인천 옹진군 자월면 이작리.,이작도.


요즘 섬마을 초등학교 분교들이 사라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대이작도의 계남분교도 폐교.

순정을 다 바쳐 총각선생님을 사랑 할 섬처녀는 없다.


'이섬 처녀들이 도시로 떠나서일까?'


아니면, 결혼 연령이 늦어져서일까?

어린아이들이 뛰어 놀지 않는.,운동장.

'폐교되어 인적이 끊겨 텅빈.,계남분교.


대이작도 '섬마을 분교'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계남분교 전경.


1967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섬마을 선생'의 주요 촬영지인 계남분교는

문을 닫은 뒤 빈터에 폐교 건물만 남은 상태다.


"총각 선생님.~~"

<섬마을 선생> 영화도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다.


그 대신에 백 패킹, 캠핑카

연인 또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피서철에 주로 찾는 정도.,외딴 섬. 


대이작도 

 

젊은 사람들이 이미

떠나가 버린.,섬마을.

 

1박2일도 모르는 대이작도 완전 해부[1박2일 여행지추천]  


대이작도 보물은 섬 안에 없다.

큰 풀안 해변 건너 바다 속에 있다.

밀물 때  숨었다 썰물 때 보이는 모래섬.


이작도-풀등 


'바지락, 골뱅이' 서식처.,풀등.

'명주조개' 등도 지천인.,보물섬.


승봉도·사승봉도 -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섬 

 

사승봉도에서 자월도 서남단까지 펼쳐진 모래밭., 풀등

고기잡이 없는 여름철에 피서객을 태운 어선들이 운항

봄가을 겨울에는 풀등으로 가는 배를 타기가 쉽지 않다.


섬안의 섬,대이작도&풀등/여름가볼만한곳/섬여행/대이작도가는길  

 

낚시배 10분 남짓 거리 바다 위., 모래섬

'조금'에 장대한 모래섬의 일부만 보이지만

'사리' 때면 동서 2.5km, 남북 1km의 모래 평원.


바다에서 바라본 대이작도 풀등.. 


마치, '바다의 신기루' 같은.,모래섬. 

예전에는 썰물 때면 풀등 웅덩이에 갇힌 꽃게, 새우, 광어 등

주어 담을 수 있었다지만 서해에 물고기들이 넘치던 때 이야기.

겨울에는 풀등을 떠나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는다.


&gt;인천섬 10도10색&lt; 우리가 몰랐던 인천섬의 10가지 매력 

 

수온이 높아지는 5,6 월이면 다시 몰려온다.

그 때는 깊은 바다 속에서 추위를 피하던 골뱅이도

풀등으로 올라오고 방게도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이다. 


대이작도 


부아산성에서 썰물 때에만 드러나 보이는., 모래섬 풀등.

1980년대부터 20년간 인천 앞바다에서 사라진 모래는 2억㎢

원래, 50만평 풀등이 모래채취 후 지금은 30여 만 평만 남았다. 


큰풀안해수욕장 500m 앞바다에 떠있는.,'풀등.'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섬'이라 부르는.,모래섬. 

12시간 주기로 나타나는 물도 바다도 아닌 모래톱.


동서 2.5km, 남북 1km 크기. ,'풀등.'

연인들이 이곳에서 반지를 교환하며,

언약을 맺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곳.


바다위를 걷는 환상적인 대이작도 풀등 & 승봉도 코끼리바위 


1990년대 중반까지도 덕적도 서포리 해수욕장에서

굴업도로 가는 작은 배에서 보던 풍경은 파라다이스

망망한 바다 가운데에서 난데없이 일어나는.,하얀 포말.


썰물에 장엄하게 드러나는 드넓은 모래섬.,풀등.

바다 밑에서 모래섬이 서서히 솟아오르는듯 보였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신비로움 앞에서 말문이 막힐 정도.


“오늘은 풀등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지요.

백중사리 때는.,길이 5마일, 폭 1마일." - 선장 -


사승봉도 & 대이작도 풀등 


그러나, 난생 처음으로 

입소문으로만 듣던 풀등을

눈앞에서 드디어 처음 만난 감회.


떠오르는 모래섬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배.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드넓게 펼쳐지는 풀등.

냉큼 뛰어내려 한없이 걷고 한없이 뒹굴고 싶은 마음. 


풀등에서 갖는 행복 / 신승희 


진도나 무창포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과 또 달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떠오르며 뭍이 되는 풀등을 만나면

피안의 세계나 파라다이스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천국.


포말이 부서지며 펼쳐지다

포말과 함께 사라지는 풀등은

신기루가 아닌 환상적인 무릉도원.


물이 썰 때 잠시 나타났다가

물이 밀 때 자취를 감추는 풀등.


풀등에 들어서면 세파에 찌든 때와

숱한 오해와 편견 따위를 모두 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곳인 것 같다.


국내여행지 - 환상의 모래섬 사승봉도 


풀등에 남아 차오르는 바다에 몸을 맡기면

세상만사 시름을 다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가슴까지 밀려오는 바닷물을 끌어안는 짜릿함.


'풀등'이란, 강 한가운데에 상류에서부터

흘러 내려 온 모래가 쌓여 형성되는 모래섬.

그 크기는 물의 유속 또는 흐름에 따라 다르다.


대이작도 '풀등'은 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가운데 위치해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자손만대 후손에게 물려 줄.,유산이 아닐까?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호'와

삼성물산 '삼성 1호' 충돌로 인한 원유 유출.'


'12,547킬로리터(78,918 배럴).

원유가 태안반도 해역으로 유출.

서해를 검게 물들였던 최악의 사건.'


'자원봉사에 나선 온 국민이

기름 묻은 자갈 하나 하나까지

닦아내어 살려낸 태안반도 해역.'


아직까지는 넓고 아름다운 대이작도.

승봉도, 덕적도 섬 해변 등 모래 채취가

환경을 볼품 없을 만큼, 훼손하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천혜의 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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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등 外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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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도9] 큰풀안해수욕장 (퀴즈 4,5) 


큰 풀안 해수욕장

작은 풀안.,해수욕장


대이작도 (작은풀안해수욕장~삼신할미약수터~이작선착장~연안여객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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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풀안 해수욕장 &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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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여행-환상의 섬 대이작도을 가다 3탄&gt;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풀안 해수욕장~영화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 계남분교&lt; 

장애인도 다닐 수 있는.,해안 데크.

9월 23일 대이작도 큰풀안해수욕장에서~ 

대이작도.,비박, 야영장.

9월 23일 대이작도 큰풀안해수욕장에서~ 

대이작도 계남해수욕장 캠핑장.


7. 10-11 이작도 야유회 20 - ^^*| 작은 풀안 해수욕장에서.. 

인천 섬여행-환상의 섬 대이작도을 가다 3탄&gt;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풀안 해수욕장~영화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 계남분교&lt; 


궁합 바위,

영천 바위,

5 형제 바위,

코뿔소 바위 등.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찾다 보면 알 수 있다는데.,


'궁합바위'는.,어디에 있는걸까?

'영천바위'는.,하늘나라 가는 길(?)

'5형제 바위'는.,신선들의 5개 공기돌.


[모집중] 제115차 `낭만이 있는 섬여행` 환상의 모래섬 "사승봉도+승봉도", 서해의 신기루 "대이작도 풀등+고기잡이체험" 

바다위를 걷는 환상적인 대이작도 풀등 &amp; 승봉도 코끼리바위 

제59차 '농산어촌찾아가기' 옹진군 승봉도 어부체험과 환상의섬 사승봉도 섬여행(1박2일) 

대이작도 캠핑(3일차) - 서해의 신기루 풀등해수욕장 

사승봉도 &amp; 대이작도 풀등 

아~꿈같았던 이작도 캠핑여행  

대이작도 비박(1일차) 


대이작도 풀등과 함께하는 캠핑, 이작도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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