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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베르사유 궁전 & 루브르 박물관.

작성자선경나라|작성시간17.05.10|조회수2,656 목록 댓글 2

프랑스 지도 


프랑스(프랑스공화국 : La République de France)

면적 64만 3801㎢로 한반도 2.5배 유럽연합(EU) 1/5.

수도 파리(Paris, 인구 220만, 위성도시 포함 1,100만)

(1989년 5578만 4000명, 2015년 현재 6655만 3766명).


인종은 북부·중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켈트(Gaule족)·

게르만·노르만계가 대다수이고 소수의 라틴계가 혼재

피레네산맥 북부 바스크족 50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

종교는 가톨릭교(81.4%)·

이슬람교(6.89%)·신교(1.64%)·

유태교(1.29%)·불교(0.68%)·

그리스정교(0.34 %)


...............

................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인류사를 지니고 있다.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최고 10만 년도

더 된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고대 인류가 정착생활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BC 1200년경에 켈트계 갈리아 마실리아

BC 121년에 시작된 로마인의 갈리아 정복은

 BC 58~5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정복으로 끝났다.

갈리아는 로마지배를 받는 동안에 철저히 로마화되었다.


로마가 쇠퇴하면서 갈리아는

게르만족 침입을 받게 되었다.


5세기말까지는

프랑크계 살리족(支族)이

루아르 강 북쪽 지역을 점령했고,

서고트족이 아키텐과 프로방스를,

부르군트족이 론 강 유역을 차지했다.


살리족은 6세기에 메로빙거 왕조의

영도하에 갈리아 대부분을 장악했다.


8세기에 이르러

메로빙거 왕조의 왕권이

카롤링거 왕조로 넘어갔다.

 

이 왕조의 가장 위 대한 왕인

샤를마뉴 카페 왕조 발루아 가문

필리프 6세에게 넘어간 것( 백년전쟁)


이 전쟁으로 발루아 가문은

프랑스의 왕가로 자리잡았고,

잉글랜드는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내의 영지를 전부 다 상실했다.


15세기말 부르고뉴와 브르타뉴가

 발루아 가문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프랑스 영토는 오늘날과 거의 같게 되었다.


16세기에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어 종교전쟁


뒤이은 혼란 속에서

부르봉 가문의 프로테스탄트

앙리 드 나바르(앙리 4세 루이 14세)


그러나 18세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인

해외원정이 연이어 실패한 결과 프랑스는

여러 개의 해외영토를 상실하고 거의 파산상태.


1789년에 일어난 혁명은

왕을 몰아내고 '인권선언' 발표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렸다.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군사원정은

1815년 몰락과 함께 끝났다.


제한적으로 복고된 왕정은

짧은 공화정 기간(1848~52)을

제외하고는 1871년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한 후

비시 프랑스의 필리프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친독일 정권이 수립되었다(제2차 세계대전)드골


제4공화국은 1950년대에 인도차이나에서

민족주의자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값비싼

전쟁과 알제리를 비롯한 프랑스 식민지들에서

대두한 민족주의 운동을 감당할 수 없었다.


1958년 공직생활로 복귀한 드골은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프랑스의

해외식민지 대부분 독립시키는데 앞장.


1981년 사회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8년에 재선되어 1995년 물러났다(→ 프랑스사)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기후...................

국토는 3대 지질지역, 즉 헤르시니아 산괴들

(아르덴 고원, 보주 산맥, 마시프상트랄, 아르모리캥

대산괴)을 이루는 고기 산맥의 잔구지역, 북부와 서부의

평야지역(파리 분지, 루아르 평야, 아키텐 분지, 알자스 평야),


남부와 남동부의 보다 높은 신기 습곡산맥지역

(피레네·쥐라·알프스 산맥들과 인접한 손 평야와

 론 평야 포함)으로 대별될 수 있다.


헤르시니아 산괴들 가운데 가장 큰

마시프상트랄 파리 분지 피레네 산맥

스위스까지 이어지는 쥐라 산맥 알프스.


프랑스의 하계(河系)는 북동부에 있는

보주 대산괴의 남쪽 부분으로부터 남부에 있는

마시프상트랄까지 주분수계(主分水界)에 의해 결정된다.


이 분수계에서

센 강과 루아르 강을 포함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대부분이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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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식물.

대부분은 전북구

식물지리구에 속한다.


이는 다시 3개 지역으로 나뉜다.

파리 분지 대부분을 포함하는 서프랑스에서는

참나무·밤나무·소나무·자작나무가 수목의 주류를 이룬다.


전북구 제2 식물구인 동프랑스 식생은

중유럽형에 가까워 노르웨이단풍나무·

자작나무· 유럽졸참나무·잎갈나무 등.


3번째로 고산지대의 경우

고도가 낮은 곳은 자작나무 숲

높이 올라갈수록 젓나무와 산소나무


수목한계선 위로는 

나무와 목초지가 있다.


한편 또다른 식물구는

지중해성기후대 안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여름에 가뭄으로 인해

구근식물은 죽고, 건생식물이 잘 자란다.


프랑스에 서식하는

비교적 큰 포유동물로는

붉은사슴·노루·멧돼지가 있다.

알프스 산맥 고지에는 영양류

샤무아와 야생염소가 서식한다.


삼림과 들에는 토끼를 비롯한 각종 설치류가 있다.

육식동물로는 여우, 사향고양이류, 희귀종 유럽살쾡이

외래 조류종 분포지의 북쪽 경계선에 해당하는 남프랑스

홍학류· 이집트민목독수리· 장다리물떼새·벌잡이새류·파랑새류.


프랑스 지도, 프랑스 상세지도,프랑스 일주 코스지도 


프랑스 농촌 지역은 전통적으로 강우량이 많고

경작 어려운 토지를 산울타리로 구획한 보카주

그밖에 지중해 지역은 산울타리 없이 블록 모양.

 

구획된 땅뙈기들을 특징으로 하며, 산간지역에서는

양지바른 계곡 비탈면의 경작지인 아드레와 숲으로

덮힌 냉습한 비탈의 경작지인 위바크로 구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는

농업을 대규모화·기계화하기 위해

흩어져 있는 작은 농장들을 보다 큰

구역으로 통합하는 계획을 실행했고,

동시에 수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

함으로써 촌락의 성격이 바뀌었다.

.

보다 인기 있는 지역에서는

버려진 농가들이 별장으로 팔렸고,

또다른 곳은 농민들이 도시 통근자가 되어

창고와 가축우리를 차고와 같은 용도로 개조했다.


정부는 도시 발전에 대해서는

양면 전략을 취해 파리를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릴·보르도·마르세유와 같은 도시를 지역

발전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도시계획)


...............마르세이유.........................

지중해에 면해 있는 프랑스 제1의 항구도시

론 강 하구 부근에 있다. 지중해 연안의 유럽,

북부 아프리카, 근동, 중동 지역, 인도양 및

태평양 연안의 아시아 지역에서 북해 연안의

서부 유럽으로 가는 물자 유통의 적환점이다.

 
마르세유는 자유도시의 성격이 강했는데

BC 1세기 로마 군대에게 점령당한 후에도

그런 성격이 유지. 그후 여러 세기에 걸친

침체기 이후 10~14세기에는 프로방스의

자작 가문 지배하에 들어가 독립성이

강한 도시로 성장했다.


15세기 프로방스가

프랑스 왕국에 통합된 이후에도

마르세유는 중앙과 분리된 행정체제를 유지.

 
1800년 프랑스 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

마르세유를 부슈뒤론 주의 주도로 지정했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의 경제·사회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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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자유여행) 노트르담 드 라가드 대성당 (Basilique Notre-Dame-de-la-garde)

마르세유


프랑스 대도시 중 역사가 가장 깊은 마르세유.

BC 600년경 소아시아의 포카이아 지방에서 온

그리스 선원들에 의해 마살리아로 건설된데서 유래.


마살리아인들은 해안과 내륙을 따라

무역 거점을 확산시켜 나갔으며.,오늘날

니스·아를·앙티브·아그드·라시오타' 도시를 건설


'마르세유와 최대의 무역경쟁 대상' 

카르타고가 로마 10세기에는 프로방스

16세기 종교전쟁 동안 종교가 로마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앙리 4세를

왕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절대군주제를 반대해 일어난

1648~53년의.,프롱드 내란


19세기 후반에는 마르세유가

북아프리카 해적의 정벌(1815~35),

알제리 정복(1830), 수에즈 운하 개통(1869)

등에 힘입어 '제국의 항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 간선도로, 기념물

등은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심각했던 용수문제는 뒤랑스 강

물을 끌어오는 계획(1837~48)이

성공적으로 완료됨에 따라 해결.


나폴레옹 통치 한때 대륙봉쇄령에 의해

상업 활동이 크게 위축된 적도 있었으나

나폴레옹 3세때 강력한 공화국 형태를 유지.


..................나폴레옹................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귀족으로 시작해

프랑스 혁명 샤를마뉴 나폴레옹 전쟁민법

현대전에까지 영향을 끼친 군사전략가였다.

.


코르시카 출신 하급귀족

파리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프랑스 육군 포병 소위 임관.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눈에 띄게 지위가 올랐고

제1차제2차 대프랑스 동맹, 1799년에 쿠데타.

제1통령 나폴레옹 전쟁 스페인 무장시민들과의 싸움


1812년 대육군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제6차 대프랑스 동맹 파리

1815년 6월에 워털루 전투 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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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오툉·브리엔·파리에서 학교를 다녔다.

1785년 아버지가 운명하자 16세에 가장 역할을 했다.


파리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포병장교를 위한

훈련기관 라 페르(La Fere) 연대에 포병소위로 임관,

발랑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전략, 전술 책을 많이 읽었다.


볼테르와 루소의 작품도 많이 읽었으며,

프랑스 서유럽 개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군사적 팽창에 가장 큰 열정을 쏟았다.


그가 몰락했을 때 프랑스 영토는

1789년 혁명 때보다 줄어들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다스린 제2제정이 막을 내릴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그는 역사 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서 존경받았다.


...........나폴레옹의 최후.........

브라질 해안에서 3,500km 떨어진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

연합군이 나폴레옹 유배지로 이곳을 선택


엘바 섬에서와 같은 탈출 사건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비상조치.

그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절해 고도.

나폴레옹 유형지까지 따라간 사람들로는

총보좌관인 베르트랑 백작, 몬트론 백작,

글루고 장군, 한때 수상이자 비서였으며

저술가인 라스카스 백작 등이 있다.


베르트랑과 몬트론은

각각 아내를 동반했고

그 외에 시종장인 마르샹을

비롯해 하인 10여 명도 함께였다.

1815년 10월 15일,

프랑스 · 이탈리아의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세인트헬레나 섬에 도착했을 때의

나폴레옹은 비록 유배라고는 하지만

활기 있고 건강했으며 규칙적인 생활.


아침 9시에 일어나서 10시에 아침 식사

한때 비서 라스카스에게 자신이 구술하는

것을 받아쓰게 했다. 저녁 7시에 식사를 하고

11시까지 고전을 읽다가 잠드는 것이 그의 일과.

이렇게 정력적이고 활동적인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 유배 5년 반 만에 사망했다.

그는 명대로 죽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자신이 사망한다면

자신의 죽음이 정상적이 아니며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나는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으며,

영국의 소수 권력 집단과 그들이

고용한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된다.


나폴레옹의 재기를 위한 노력은

백일천하(실제로는 95일)로 끝나고,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 정권이 무너진 뒤

유럽의 각국은 프랑스 혁명 정신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복잡해진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15년 6월에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회의.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 주도로 열린

이 회의는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

나기 전의 유럽으로 되돌려 놓기로 결정한 것.


그 결과, 각국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억압했고,

그리스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불러왔다.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로 보는 프랑스 05. 바스티유 감옥 

                                                                                                      바스티유 감옥


프랑스 파리 동편에 '중세시대 요새' 바스티유

17,18 세기에 부르봉 왕조 전제정치의 상징이자

국사범 감금장소였으며, 프랑스혁명 이념의 상징.


17세기에 국사범 감옥으로 처음 사용한 리슐리외 추기경.

매년 40여명의 죄수들이 왕의 명령인 '구속영장'으로 억류.

한번 억류되면 달리 호소할 길 없었던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몽테크리스트 백작이

감옥 창안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앞바다 풍경.


몽테크리스트 백작의 감옥 창문안에서 내다본 바다 


마르세이유

이프 섬 감옥에서

본.,몽테크리스트 섬


#3 마르세유 여행 이프섬(이프성) 가는 법


...............이프(if) 섬.........

마르세유 근처.,지중해 작은 섬.

1524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왕이

이곳에 성을 세웠는데 나중에

국사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이 성은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대뒤마'의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1844~45)

의 무대가 되어 유명해졌다.

......................................


마르세이유의 이프섬, 노틀담 대성당 (프랑스)

이프 섬


.......샤토 디프....

 이프 섬에 있는 교도소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트 백작'의 배경.

......................................


마르세유 옛 항구에서

유람선이 운항하고 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줄거리


........몽테크리스트 백작......

1845년 알렉상드르 뒤마 소.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인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


이제 겨우 스무살이지만

선주 모렐 씨에게 인정받아

모렐 상회의 주력선 파라옹 호

선장으로 취임하게 되고 약혼녀

메르세데스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약혼식장에서

나폴레옹에게 협력한

혐의로 체포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파라옹 호 일등 항해사

당시, 나폴레옹과 친분이

있었던 모렐 선주 부탁으로

엘바섬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데스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반역죄로 밀고한 것.


그후, 분노와 울화로 점철된

11년 간 샤토 디프 감옥 생활.

당테스는 이송된 이프 성의 차가운

돌바닥에서 운명의 전환을 맞게 된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 지식인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암살되기 전

숨겨놓은 재산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

그후 당데스는

으로 죽은 파리아 신부의

시신과 자신을 바꿔치기하여 탈옥


수 차례 시도끝에 보물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당테스,


막대한 재화로 몽테크리스토 섬의

소유권을 차지한 후 전부터 구상해온

밀무역 기지를 조성해 수수께끼의 인물

"선원 신밧드(암굴왕)"로 명성을 쌓게 되고,

이탈리아에서 백작 작위까지 얻게 된다.


은인에게는 보답을,

원수에게는 파멸을!

당테스의 새로운

행보가 시작된다.


............

............


옥중에서 파리아 신부라는 늙은 죄수를 알게 되고

그 신부가 당테스에게 음모의 수수께끼를 풀어 설명

당테스는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오랜 감옥생활 동안에

신부로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고, 또한 몽테크리스토 섬에

매장된 보물의 비밀을 듣는다. 신부가 죽었을 때 그 시체로

가장해 탈옥한 당테스는 매장 보물을 찾아내어 손에 넣는다.


그러고 나서

이름을 바꾸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미 14년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굶어 죽었고,

선주(船主)이자 은인인 모렐은 파산 직전이었다.


한편 당글라르는 대은행가이자 남작이 되었고,

페르낭은 메르세데스를 아내로 삼고 육군 중장인

모르세르 백작이 되었으며, 빌포르는 검찰총장으로

각각 출세해 파리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당테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증오심과 막대한 재력, 신부로부터

전수받은 교양을 무기로 부조니 신부, 윌모어 경, 뱃사람 신드바드,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의 인물로 변장해서 신출귀몰하며 은인 모렐을

파산에서 구해 주고, 나아가 세 사람에 대한 복수를 착실하게 준비한다.

파리 사교계의 명사가 된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세 사람의 가족을 끌어들이면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계획을 실현해 나간다. 세 사람은 이유도 모르는 채

차츰 자신이 궁지에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모르세르는 에스파냐 전쟁에서

은인과 성을 적에게 팔아넘졌던 배신 행위가 폭로되고,

당테스의 비밀을 알게 된 아내 메르세데스와 아들로부터

버림받은 데다 당테스까지 나타나게 되자 괴로워하다가 자살


빌포르는 계속되는 가족의 독살 사건에다가

영아를 살해했던 옛 악행이 폭로되고, 그것이

당테스의 복수라는 사실을 알자 미쳐 버린다.


당글라르는 당테스 책략에 걸려 파산 뒤에

산적에게 유괴되어 굶주림의 고통과 공포를

한참 동안 맛본 다음 당테스 앞에 무릎 꿇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머리는 희게 변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복수를 모두 끝낸 당테스는

결백한 모르세르 아들과 메르세데스를 구하고,

빌포르의 딸과 모렐의 아들을 결혼시킨 다음에

그의 재산을 그들에게 주고 바다 저편으로 떠난다.

“뒤마의 모든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은 없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이 뒤마의 작품을 읽는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뒤마의 이 소설은 인기를 끌어

'삼총사'와 함께 유명한 걸작으로 파리 시민 및 

전세계인을 열광케 한.,'몽테크리스트 백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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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감옥

바스티유 감옥


1789년 7월 14일 7죄수 만이

투옥되어 있던 바스티유 감옥에

군중들이 몰려와서 감옥 소장에게

무기와 탄약을 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로네가 피신한 것을 알자

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

이 사건은 구체제의 종말을 상징.

1880년에 매년 7월 14일을

'바스티유 기념일'로 지정.


"7월 14일이여, 영원히!"와

 "바스티유 감옥을 철거하라!"

구호와 함께 행진· 연설·불꽃놀이

등 국경일 이날 축하행사를 벌린다.


바스티유는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요새이며 감옥이었다.


봉건제도의 상징이자 투옥과

고문이 자행되는 악마의 소굴.

군중들이 두려워하던 곳이었고

심지어 귀족들조차 철거를 요구.


[세계미스테리] 바스티유 감옥의 철가면


봉건제도 압제와 전제의

상징 바스티유 감옥이었다.


바스티유에서 요새 수비대와

무장 군중들 간에 전투는 치열했다.

이 전투로 많은 군중들이 피흘렸으나, 

1789년 7월 14일 군중들이 바스티유 점령.


루이 16세는 신하에게 물었다.

"그곳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인가?"

그러자 리앙쿠르 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그것은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옵니다."


7월 16일.,루이 16세는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하고

 파리에 들어와 혁명을 상징하는 3색모자 장식을 받았다.

이것으로 국왕은 혁명을 인정, 봉건제도 왕정은 사실 상 종식.


이때 파리를 자치적으로 통치하는

자치위원회 '파리 코뮌'이 결성되어

왕정과 협의를 통해 합법절차를 추진.


군중들의 무법적인 행동은 통제할 수 없었다.

군중들은 이 무렵 재판도 없이 국무장관 풀롱을

가로등에 매달아 죽이고 그의 사위도 학살하였다.

법률이 잠자자 인간 야성들이 굴레를 벗고 날뛴 것.


농촌에서도 폭동이 발생하여 귀족을 습격 약탈 방화.

귀족들이 외국 군대를 불러들이려 한다는 소문 때문에

농민들의 움직임은 더 과격해지자 귀족들은 8월 4일 단언.


"이번 폭동은 소수 귀족들이 특권을 고집하는데서 비롯

되었으므로 유일한 묘책은 봉건적 특권의 포기에 있다."


국민의회 의원들은 이 주장을 듣고 감격하여 귀족들을 찬양.

귀족들은 수렵권, 강제사용권, 기타 독점이권의 포기를 선언.

그래서 어느 제 3 신분 의원은 다음과 같이 감격하여 외쳤다.

.

"오, 프랑스인은 위대한 국민.

프랑스는 진정 위대한 영광을 가졌다.

프랑스인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가!"


8월 11일 추기경 파리 대주교가 십일조 세금 포기를 선언했다.

하나의 정치 체제가 이렇게 급속히 자멸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1789년 8월에 이르러, 왕정은 소멸되었고 전국에서 혁명을 환영.


프랑스 국기의 의미, 대표 삼색기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하는

프랑스 삼색국기(三色國旗)


2007.7.6. 부산에서 열린 월드컵 A조

프랑스와 우르과이 축구 경기에서

프랑스 서포터즈 한국응원단.


프랑스 국기와 태극기의 절묘화 조화 

대한민국 문화영토의 끝은 어디일까? - 프랑스 파리 한류열풍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한류열풍(소녀시대) 공연

한류열풍 파리점령 

[한류열풍/코리안커넥션/플래시몹] 유럽에서 비춰진 Spotlight, ‘한류’ 

■ 프랑스 지도.와, 에펠탑, 개선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  

                                                                                                           2017.5.8


에마뉘엘 장미셀 프레데리크 마크롱(1977. 12. 21~ ).

2017년 5월 7일선거에서.,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당선

에마뉘엘 마크롱(39세)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은 '24세 연상'.


1977년생으로 39세 마크롱이 14일 취임하면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될 예정.


우리나라 나이로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25세.

'중학교 은사이자 친구의 어머니'.,브리짓 트로노.

15살이던 당시 마크롱에게 브리짓 트로노는.,첫사랑.


마크롱이 15살일때

둘은 예수회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프랑스 역사 상에서 최연소 대통령.,마크롱(39세).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부인., 브리짓 트로노(64세)

2007년 결혼때 브리짓 트로노는 이미 3자녀를 둔 54세.


아들 한명은 마크롱보다 2살 형이고

나머지 한명은 마크롱보다 3살 어리고

딸 한명은 중학교때 마크롱과는 같은 반.


딸 1977년생 로랑스는

새 아빠 마크롱과 동갑.


마크롱은 이 세 자녀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스분석] 좌·우에 지친 프랑스, 제3의 길 택했다 


마크롱의 어머니는 자신보다 4살이 어린 며느리를

"사랑스럽다. 나에게는 며느리 라기보다.,친구 사이."


2014년 마크롱이 경제장관을 맡았을때

부인은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뒷바라지.


제5공화국 출범 이래 최초로

기성 정당 출신이 아닌 대통령.

'프랑스는 향후 어떻게 변화할까?'


친유럽연합(EU) 성향 마크롱은 ‘유로존 독자 의회’ 도입 제안.

EU 문제점을 고쳐 잔류하자며 “유럽 보호 아래 더 강한 프랑스”

.

경제정책 면에서는 유연근무제 도입, 공공영역 일자리 12만개 감축,

주택 과세 일시정지 등 친시장적 공약을 제시, 인권과 환경 분야에서는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이민자 지원을 제안하는 등 진보 성향.


마스트리흐트 조약 - 유럽연합에 대한 조약 


마크롱 당선자는 강한 EU를 건설하겠다는 입장.

“유럽과 유럽 시민들의 연결고리를 재건하겠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당선자, 24살 연상부인 및 파격적인 가족관계 


프랑스 새 대통령에 선출된 에마뉘엘 마크롱(39).

부인 트로뉴(64)는 영혼의 동반자, 최고의 대변자.

두 사람은 20년전 아미앵 사립고교에서 처음 만났다.


15세 마크롱은 40세 프랑스어 교사였던 트로뉴와

연극 동아리에서 함께 희곡을 쓰며 사랑에 빠졌다.

브리짓 트로뉴는 이미 3명의 자녀를 둔 기혼자였다.


마크롱의 부모는 이에 놀라 아들을 파리로 보냈지만,

마크롱은 반드시 트로뉴와 결혼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이후 트로뉴는 결국 이혼하고 2007년 마크롱과 결혼한다.

.

두 사람 사이에는 친 자녀가 없지만,

트로뉴가 전 남편 사이에 둔 세 자녀와

손주 7명을 마크롱은 가족이라고 말하고

 트로뉴 자녀들도 마크롱을 ‘대디’라 부른다.

 

마크롱은 트로뉴가 '영혼의 동반자'이자

지적인 친구이자 협력자라고 말하곤 한다.

 

마크롱은 1차 투표 직후에 이어 이번 결선 승리 후에도

트로뉴 손을 붙잡고 무대에 올라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배우자는 사생활을 지키며

정치 무대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로뉴는 남편에게 정치적 조언자 역할도 하고 있다.


마크롱 승리 


이번 대선전에서도 유세에 동행해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남편의 연설문 작성도 도왔다.


남편을 돕기 위해 2015년 교단을 떠난 트로뉴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남편이 당선되면 영부인으로서

청년 문제에 집중하고 교육 문제를 위해 싸울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고, 마크롱 역시

트로뉴에게 영부인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파리 6일 정복하기 !!   

                                                                                                           


파리.



프랑스 지도,비행시간 >파리 지도,지하철 노선도< 

파리 6일 정복하기 !!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Montmartre)  

                                                                                  몽마르트르., 사크래쾨르 성당


'몽마르트르'는 산이 없는 파리에서 유일한 언덕이다.

아름다운 골목들이 많아 영화 CF, 드라마 등에 자주 등장.

한국 드라마 '파리의 연인' 그리고 영화 '아멜리에' 배경무대.


.............몽마르트르(Montmartre :  순교자의 언덕).................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며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말의 지명.

로마 점령 시기인 서기 250년 생 드니 성자가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부 생드니 성당까지 걸어갔다는 전설.


또한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피카소, 고흐 등이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한 곳.

파리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골목이 있는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파리의 낭만을 한껏 느낄만한 곳.


프랑스 파리 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종교적 분위기와 시대에 따른

미술사조 흐름을 간직한  문화· 예술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

또한 오늘날, 주거지역이기도 하면서 역사·문화적 중심지이기도 하여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길을 거닐고 싶어하는 관광객이 꼭 들르는 곳이다.


창작과 예술의 장소로,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들

영화 촬영현장을 볼 수 있으며 밤에는 환락가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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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살아있네~ 

몽마르트르 살아있네~ 

몽마르트르 살아있네~ 

몽마르트르 언덕 

몽마르트르 언덕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몽마르트르 언덕 

생 뱅상 묘지(시메띠에르 생 뱅상, Cimetière St. Vincent) 


몽마르트르 언덕의 포도밭 근처에 있는 생 뱅상 묘지는

포도밭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서 '생 뱅상 묘지'라 명명.

묘지 규모는 작지만, 몽마르트르 예술인들이 좋아하는 지역.


유명 예술인들이 많이 묻혀 있는데

'벽을 드나드는 남자' 소설가 마르셀 에메.

몽마르트르 거리의 구석구석을 그림으로 남긴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등이 잠들어 있다.


생 뱅상 묘지(시메띠에르 생 뱅상, Cimetière St. Vincent) 

여자 혼자 간 프랑스 파리여행 - 몽마르트르 (사랑해 벽, 사크레쾨르 성당, 2015년 1등 한 바게트) 


파리에서의 본격적인 여행은

몽마르트르 언덕을 깃점으로 하여

파리의 연인들을 감상하면 보다 즐겁다.


파리의 연인들 


외국의 관광객들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파리의 연인들.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


파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이다.

특히, 연인(戀人)들의 모습이 아름다운.,파리.

'파리의 연인'은 파리의 3대 관광자원 중.,No 1.

.

파리의 연인들 


파리의 연인들은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때 생동감이 훨씬 더 아름답다.

'찬란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야 맞을까?'


결혼 적령기가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지구촌. 

파리는 유럽에서도 활기 넘치는.,연인들의 천국. 

'혹시, 출산 장려를 위한.,정책의 일환이 아닐까?'

.

윤써의 유럽 여행기 (5) - 파리, 연인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도시 

[마케팅 사례] 발렌타인데이 인 파리, 연인들을 위한 로맨틱 프로모션  

파리의 연인들 

파리의 연인들 

블랙베리 9700 배경화면 연인들:) 

고백데이, 사랑하는 연인들의 사진입니다 

효연·제시카·서현, 에펠탑서 한컷 '파리의 연인들' 

유럽, 기차로 여행해야 하는 9가지 이유 

서유럽팩키지여행-프랑스 파리여행#3-에펠탑과 몽마르뜨언덕  

에펠탑 (Tower Eiffle) - 빨강아크릴의 파리 여행기 Part.02 

[공유] 연인들 

파리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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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들 

파리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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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여행-정리편] 파리의 연인들... 

파리의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곳@퐁 데 자르 Le Pont des Arts 

[공유] [파리여행/프로젝트] 파리의 연인들 그리고 파리의 사진가. 

해외패션블로그_파리의연인들(style and the city) 

해외패션블로그_파리의연인들(style and the city) 

파리의 연인들* 


프랑스는 식수는 물론이고 생활용수가 귀한 나라.

석회질 성분이 많은 물이라 생활용수로 부적합하다.

그 물로 목욕을 자주 할수록.,피부 노화현상이 가속화.


우유 목욕, 오일 마사지 등은 

상류층 여성만 할 수 있을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산층 여성일 경우, 꿈도 못꿀 일.


프랑스 여성은 20대가 지나면

이미 피부에 노화현상이  시작되어

가급적 목욕 횟수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래서, 몸에서 풍기는 체취가 몹시 심한 편이다.

때론, 악취에 가까운 체취를 숨기려고 향수를 사용.

프랑스가 셰계적으로 향수가 유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샤넬향수추천.샤넬코코마드모아젤.샤넬샹스.향수는 뿌리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이다. 


'향수계 시조새' 프랑스 코코 샤넬 No.5.,'마릴린먼로 잠옷'.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 목욕을 자주할 수 없는 .,생활환경.

파리의 연인들은 몸의 체취를 가리려고 향수를 잠옷처럼 사용.


여성도 향수를 많이 사용하지만

남성도 향수를 많이 사용하는 편.


샤넬향수광고 no.5 빈티지 스타일까지 

.

보통, 부부 침실 하나에 

욕실 겸 드레스룸은 2개.


화장실은 부부 사이라도 해도 각각

자신 만 누릴 수 있는 프라이버시 공간.

누구에게도 감추고 싶은., 자신 만의 체취.


부부 사이에도 화장실은 함께 사용하지 않는.,문화.

손님 방문객일 경우에라도 휴대용 변기 지참이 예의.

파리 여행을 할때는 화장실 사용하기가 가장 불편하다.


아무리 다급한 경우라 해도

친한 사이라 해도 눈치도 없이

"화장실 좀 쓰자." 요구하면.,무례.


마치 '벗은 몸을 보여달라.'는

몰염치한 무례 쯤으로 받아 들인다.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파리에서는 개인 가정집에 초대 받았을 경우에

속을 비우고 가거나, 일회용 기저귀 지참이 예의.

그래서, 가급적이면, 레스토랑에서 만나는게 좋다.


파리의 다양성 

                                                                                                    구 파리.,에펠탑


...............................에펠탑........................................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 라 뚜르 에뻴(la Tour Eiffel).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때 세워진 구조물.

비행기에서도 세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설계 에펠탑.

원래는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계획이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철덩어리’라 하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

예술과 문학계 명사들의 반대가 심해 1909년 철거될 위기.


다행히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

철거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건물 전체가 철골 구조로 되어 있고 그래서 강한 바람에도

13cm 이상 흔들리지 않고, 탑을 위험에서 잘 고정시켜 준다.

또한 철골 구조물이기에 더운 여름에는 15cm가 더 길어진다.


탑 꼭대기 높이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포함하여 320m이고,

3층까지 총 1,652 계단이 있고, 2천 5백만 개의 못이 있다.

총 무게는 10,000톤이고 4년마다 도색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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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5 Avenue Anatole France, Champ de Mars 75007

Mètro : 6호선 비르 아켐(Bir Hakeim) 역에서 도보 5~7분.


엘리베이터: (2층) 일반 9유로, 12~24세 7유로, 4~11세 4.50유로

이용: (6월 중순~8월) 09:00~24:45 / (9월~6월 중순) 09:30~23:45

엘리베이터 요금 : (2층) 일반 9유로, 12~24세 7유로, 4~11세 4.50유로


파리의 야경..라데팡스 

                                                                                         파리.,'신 도심' 라데팡스.

...........................라데팡스..........................

Mètro: 1호선 라데팡스(La Défense) 역에서 하차.

현대적인 파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라데팡스.

 

미테랑 대통령 때 만들어진 파리 서쪽에 있는 신 도심

라데팡스는 현대식 건물들로 가득 들어서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고전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파리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서 파리지앵들의 이주는 거의 없었고, 집값의 하락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사는 라데팡스는 파리에서 메트로로 10분 거리.


라데팡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신 개선문인데,

최상층 전망대에서는 개선문, 콩코르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을 일직선으로 볼 수 있는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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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프랑스 파리 1일차 . (라 데팡스)신 개선문 

프랑스 파리의 입체복합도시 라데팡스

                                                                                                       라데팡스

프랑스 파리의 추억                                                                                                    

프랑스 정치 · 경제 · 교통 · 학술 · 문화의 중심지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면적은 다른 나라들의 수도와 비교하면 좁은 편이며,

둘레 36km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로 둘러싸여 있다.

"파리장"은 환상도로 안 성안에 사는 시민들을 의미한다. 


파리는 프랑스 전체의 0.25%에 불과한 면적인데

이곳에 프랑스 전체 인구의 약 6분의 1이 모여 있다.

따라서 파리는 세계 제 4위의 인구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센 강이 남동쪽에서 들어와 생 루이 섬과 시테 섬을 지나

북쪽으로 크게 곡선을 이루며 남서쪽 거쳐 시외로 나간다.

파리 동쪽으로는 뱅센느 숲, 서쪽으로 불로뉴 숲이 이어진다.


연평균 기온은 10℃, 1월 평균 기온 3℃,

7월 평균 기온 19℃로 연일 생활하기 적당.

프랑스 시간은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 +1시간.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다.

프랑스는 여름에는 해가 무척 길고,

겨울은 해가 무척 짧아 섬머타임 실시.


섬머타임 때는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7시간이 된다.

3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전 3시를 기준으로 바뀌어서,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전 3시를 기준으로 되돌아온다.


파리에서 한국 시간을 빠르게 계산하려면,

보통 때는 +4를 해서 밤낮을 바꾸면 되고,

섬머타임때는 +5를 해서 밤낮을 바꾸면 된다.


프랑스는 2002년부터

유럽 12개국 공통 화폐인

유로(€, euro)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철마다 화장실이 있지는 않지만,

요즘은 파리 시에서도 무료 화장실을 많이 만들었다.


길거리 조립식 화장실은 한 사람이 이용하고 나면

소독과 청소를 하기 때문에 아주 청결하진 않더라고

비교적 나쁘진 않게 이용할 수 있고 전부 무료로 바뀌었으며,

문 오른편으로 파란불이 들어와 있을 때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볼일을 보고 난 후에는 물을 내리는 것이 따로 없고

나와서 문을 닫으면 그때 물이 내려가면서 청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왔다고 바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파리에서 조심해야 할 지역..........

1. 레알 지역 : 파리의 중심이지만 교통의 중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며 특히 외곽 지역에

사는 가난한 젊은 아이들도 많이 모이니 특히 주의할 것.


이 지역은 특히 윤락가도 있어 너무 늦은 시간이나,

너무 자세하게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을 것을 권한다.


2. 몽마르트 : 사크레쾨르 성당 아래에서

실을 묶어주는 흑인들을 조심하자.

손목만 보여 주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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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여행의 시작 센강 유람선 바토무슈    

센강 유람선 & 무랑루즈.

바즈 루어만의 화려한 영상미의 백미 물랑루즈 


프랑스 파리에서의., 야간 투어 명소.

센강 유람선 타기 & 무랑루즈 쇼 관람.

둘 중 하나 만 선택하라면, 망설이게 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뮤지컬 '마타하리' 백그라운드 소개 2편. 1차 세계대전과 물랑루즈 


1917년 파리 교외에서 총살된.,마타하리.

당시 2중간첩으로 활동했던 전설적인 무희.

그녀의 첩보전 활동무대로도 유명한.,무랑루즈.


마타하리(여명의눈동자,혹은 이중간첩) 


1940년 6월.,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파리에서 무랑루즈 쇼를 관람하는 사진.


독일군이 프랑스 점령후 보았던 파리의 물랑루즈 쇼[WW2 German Army France Invaded seen that Paris Moulin Rouge Show] 

유명했던 무랑루즈 칸칸댄서들 

내 인생의 절정기 ㅡ 파리 무랑루즈 무희들과 

프랑스 여행.....파리 '개선문' '무랑루즈' 

무랑루즈 OST (Come What May - Ewan McGregor & Nicole Kidman) I OST 

극장식 식당 '무랑루즈'를 기억하시나요? 

무랑루즈의 무희들 

휴일엔 파리에서 무랑루즈 디너쇼 정도는 봐줘야 되지 않겠어요? 

무랑루즈.. 

휴일엔 파리에서 무랑루즈 디너쇼 정도는 봐줘야 되지 않겠어요? 

 K팝에 열광한 파리의 밤..유럽 소녀팬 함성에 공연장 떠나갈 듯


샤이니, 방탄소년단,

FT아일랜드, 블락비 등

한류 스타들이 출연한 공연.

.

2016년 6월2일 파리에서

한국 K팝에 열광하는 유럽 소녀들과

프랑스 국빈방문 중 박근혜 대통령도 관람.


K팝에 열광한 파리의 밤..유럽 소녀팬 함성에 공연장 떠나갈 듯 


2016년 6월 2일 저녁 한류 인기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린., 파리 아코르 호텔 아레나.


1만 명이 넘는 유럽 각지에서 온 10∼20대 여성 팬들은

이날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세 시간 동안 껑충껑충 뛰며

한국에서 온 가수들에게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불란서 파리 (Paris) 2 


프랑스 파리 도심의 랜드 마크.,에펠탑.

파리 여행 중 방향을 잃어도.,길잡이 역활.

밤에도 불빛이 훤하게 비춰 길찾기가 편하다.


[나침반]소쿠리패스, "파리 봄 여행 가면 센강 유람선 반값에 타세요" 

                                                                센 강변의.,파리 시청.


파리 시는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유서 깊은 문화 유산이

8만마리 비둘기 배설물로 인한 건축물 부식 등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둘기의 개체수 통제.


도심 동쪽 20구의 한 공원에

2만 유로(2천760만원)를 투입하여

200 마리 up 수용 가능한 비둘기집 설치.


파리 시는 관리회사 직원을 동원해

대형 비둘기집 둥지에서 알을 찾아내

일주일에 한 번 심하게 흔들어줌으로써

비둘기가 부화하지 못하게 한다는 계획.


입스 몽타소 환경담당 부시장은

"우리는 파리 시에서 비둘기를 모두

다 쫓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면서

"건축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비둘기

개체수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시가 비둘기 퇴치에 나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덫을 놓아 비둘기를 포획한뒤 죽이는 방식을 도입.

당시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 중단한 적이 있다.


세계 주요도시들은

'날개 달린 쥐'로 불리며

대도시 골칫거리로 전락한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서 이미

다양한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있다.


심차 펠더 미국 뉴욕 시의원은 지난해 11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는 1천달러

벌금 부과를 골자로 하는 비둘기 퇴치안을 제안.


로스앤젤레스 시는 비둘기 불임약을 시범적으로 살포.

스위스 바젤 시는 비둘기의 알을 수거하고 가짜 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개체수를 눈에 띄게 줄이는데 성공.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시는

관광명소 산마르코 광장에서

비둘기 모이 판매금지를 결정.


근래 들어서는 비둘기의 배설물로 농경지는 물론

문화 유적, 빌딩, 주택가 등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잡식성이기 때문에 먹이가 있는 곳이면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들이 먹다 버린 고열량 먹이를

먹음으로써 몸집이 커지고 배설물 배출로 건축물 등이 훼손.

깃털 속에 수많은 세균이 자라 도시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고대부터 인간이 '평화의 상징'으로 여긴 비둘기.

오늘날, 도시 미관을 해치는 퇴치의 대상으로 전락.


옛날에 노아의 방주를 띠우고

하나님이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지구의 대홍수가 끝나갈 무렵에

비둘기가 저지대의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오자 대홍수가 끝났음을 안 노아.


이때부터 비둘기는 큰 재난이 끝난 후

평화를 알려주는 반가운 새가 되었단다.

이후 증오와 분노를 가지지 않은 평화의 새.

 

1,2차 세계대전 때 비둘기는

세계 평화에 큰 기여을 했다.

 

전쟁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가 군사정보를 알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뒤 비둘기들은 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전세계에 인식되고 있는.,비둘기.


비둘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짝을 바꾸지 않으며

1년에 2~8차례 번식해, 다정한 연인의 상징이며

옛부터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새로 여긴.,비둘기


부화된 새끼가 둥지에 머무는 기간은 30일 쯤.

이때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여서 키우는데,

유두가 아닌 젖샘에서 나오는 젖으로 키운다.


파리 시는 1980년대부터

비둘기 먹이에 피임약을 섞어

비둘기 퇴치를 위해 애써왔지만

워낙 왕성한 변식력 때문에 골치거리. 


세느강변의 연인 

세느강변

에피소드 #2 세느 강변 

생 루이섬의 세느강변


세느 강변에 앉아 파리바게트를 잘게 부셔서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하늘을 나르던 새들이 내려와 앉아 먹고 간다.


내 손바닥 위에 내려앉아서

빵 부스러기를 먹는 새들과

한참 같이 놀다보면.,참 좋다.


'혹시, 여기가 천국 아닐까?'


미드나잇인파리 색감이 너무 예쁘다  


센강 수위는 1910년 대홍수 때 8.62m를 기록

1955년 7.12m, 1982년에 6.18m까지 올라갔다.

2016.06  센강 범람으로 루브르 박물관 등 비상.

 

프랑스 중북부를 흐르는 길이 776km.,센강.


디종 근처 랑그레 고지(高地)에서 발원하여

트르와, 파리, 루앙 거쳐 영불 해협으로 나간다.

철도 건설 전에는 내륙수로(內陸水路)로서 역할.


[프랑스 파리] 파리 연인들의 약속 - 퐁네프다리 


센 강변에 멋지게 자리잡고 있는 파리 시청은

17세기 시공회당이었는데 1871년 화재로 전소.

지금은 다시 복구되었는데 파리시청 앞 광장은

예전에는 교수형, 화형 등을 집행하던 곳이었다.


2010년의 마지막 날, 파리 시청 앞 광장 


이 광장에서 사형당한 사람은

1610년 앙리 4세를 암살한 리바이악

(François Ravaillac) 외 수많은 사람들.


당시, 리바이악은 사지가 네 마리 말에 묶여 처참하게 죽었다.

하지만 지금 시청 앞 광장은 여름에 모래밭, 겨울에 스케이트장,

평소,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며, 일년 내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987년 세계조경인 연합회(IFLA) 모임이

파리에서 열렸을때 파리 시장이 초대하여

파리시청에서 열린 환영 연회에 참석했다.


IFLA 일본 대표단원 중에서 여성들은

기모노 예복 차림으로 참석해 인기가 높았고

연회는 샴페인과 포도주 파티로 흥겹게 시작되어

환영 연회는 딱딱한 격식을 생략한 점이 인상 깊었다.


파리 시장도 각국 대표단 테이불마다 찾아가

건배를 제안하며 환영인사를 나누어 참 좋았다. 

프랑스 파리 다운 손님 대접 방식인듯 여겨진다.

.

[파리스냅 / 파리 웨딩스냅] 프랑스 파리 시청결혼 


요즘, 파리 시청 결혼식.

파리시민은 물론 여행객

외국인들도 결혼식이 가능.


작은 결혼식도 가능하다.

결혼 축의금이 없는 대신에

하객들이 선물을 놓고 간다. 


[이안포토] 파리스냅 파리웨딩스냅 파리시청결혼식 허니문스냅 파리에펠타워_Rm신부님 

결혼 반지

예물 교환

모두 생략.


파리 결혼식 청첩장 

파리 시청.,결혼식 청첩장.

[파리스냅 / 파리 웨딩스냅] 프랑스 파리 시청결혼 

파리 부시장.,주례.

파리/일상/파리웨딩/파리시청결혼식/파리레스토랑/고든램지레스토랑/트리아농/베르사유/봉막쉐 

파리/일상/파리웨딩/파리시청결혼식/파리레스토랑/고든램지레스토랑/트리아농/베르사유/봉막쉐 


파리에서 만찬 식사시간은

약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한국인의 식사 습관과 큰 차이.


채소 한점 썰어먹고는.,한참 이야기.

고기 한점 썰어먹으면서.,한참 이야기.

샴페인 한모금으로 목을 적시며.,또 한참.


만찬에 초대받으면

무한 인내심이 필요. 

.

[파리스냅 / 파리 웨딩스냅] 프랑스 파리 시청결혼 


파리 시청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언제든.,결혼식이 가능.

그래서, 파리는 연인들의 천국일까?


[이안포토] 파리스냅 파리웨딩스냅 파리시청결혼식 허니문스냅 파리에펠타워_Rm신부님 

파리는 화려한듯 보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사치스러운듯 보이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파리 시민들 생활도 본 받을 만큼 검소하다.


속옷도 닳아 헤어질 때까지 입고

겉옷도 유행이 지나가도록 입지만

그 자연스러운 패션이 더 아름답다.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파리 패션.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신이.,원동력.

수백년이 지나도 큰 변화 없는.,파리.


파리 시청

                                                            파리 시청 앞., 광장.

파리 시청앞 광장, 스케이트장으로 변신 

파리 시청앞 광장, 스케이트장으로 

파리 시청 앞 광장에서.,연인들의 키스.

2015.2.9 파리 클래식투어 / 루브르 박물관 / 파리시청 / 콩코드광장 / 파리둘쨋날


파리의 연인들은

그 모습 그대로가

세계적인 관광자원.


파리가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다정한 연인들의 데이트 모습을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연인들의 천국.,파리.


20명의 감독이 만든 5분간의 사랑 이야기들* 사랑해,파리 (Paris, Je T'Aime) 

파리의 연인들 

무랑루즈 

무랑루즈 

불란서 파리 (Paris) 2 

파리 에펠탑 & 마르스 광장.

마르스 광장 (파리) 


파리는 BC 3세기 말에

센강의 시테 섬에 있는 취락

파리시 갈리아 부족이 거주했다.


로마인이 들어왔을 때 파리시 부족은

자체의 금화폐주조소를 갖고 있을 만큼이나

부유했고 조직적이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전기(BC 52)에서 "섬 주민들이 로마인에게

항복하기보다 도시를 불태워버렸다."고 기록하였다.


1세기에 루테티아는

로마의 도시로 발달하여

센 강의 좌안까지 확장되었다.

곧은 거리들과 광장· 목욕탕· 원형투기장

등 공공건물들은 전형적인 로마 유형이다.


2세기말에 이민족이 연달아 침략하기 시작.

강 좌안의 도시는 3세기 중엽에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섬으로 도피 두터운 성벽을 쌓았다.


4세기초부터 이곳은 파리로 알려졌으며,

이무렵 그리스도교가 전래된듯 여겨진다. 


파리 그린벨트의 어제, 오늘, 내일 La ceinture verte de Paris au XXIe siècle – Hier, aujourd'hui, demain ? 


파리 도심 순환도로 주변은.,그린벨트 지역.

파리 도심에 사는 도시민들은 일명.,"파리 장."

서울에 비교하면 사대문안에 사는.," 장안 사람."


서울특별시 '롤 모델 도시'.,파리.

박정희 대통령 당시 그린벨트 도입.


파리의 그린벨트는 대부분 시민공원으로 사용.

파리 시민들은 그린벨트 제도에 만족도가 높다.

토지를 수용할 때도., 토지 싯가의 2~3배로 보상.


.............................................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보상비.

이주를 한후 적응할때까지.,보상비.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싯가.,보상비.

................................................


대대로 터전을 잡고 살아온 주민들도 만족해 하며

이주 후 새 환경에 적응도 감래하며 싯가 보상에 만족.

그래서, 파리시민들은 파리 시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편.


토지수용에 대해서 최우선 충분한 보상 정책.

시가 수용한 토지를 시민들이 만족할 만큼 활용.

파리 시민들도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세금 내는 그 이상으로

혜택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파리 관광수입은., 유럽에서 No 1.


무랑루즈-차차차 

불빛이 예쁜 파리를 그린 레온 코르테스 


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 파리는 프랑스 수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로,

1989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 크기의 1/6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볼거리 많아 짧게 스쳐 지나가기엔 아쉬운 곳.


파리는 센 강을 기준으로 우안과 좌안으로 나뉘며,

우안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좌안은 교육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 세느강변 


파리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테 섬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발전한 도시이기 때문에 지금도 파리는

센 강의 시테 섬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행자들도 시테 섬을 중심으로 파리를 둘러보게 되며,

19세기 인상파 흔적과 고풍스러운 역사를 느낄 수 있고,

패션과 문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불빛이 예쁜 파리를 그린 레온 코르테스 

불빛이 예쁜 파리를 그린 레온 코르테스 


2,000년 전 센 강에 있는 섬에 세워진 파리.

영국 해협에 센 강 어귀로부터 내륙으로 375km

파리 시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나간 교외.


파리 대도시권은 약 2,118㎢에 이른다.

파리 분지 비옥한 농업지역의 중앙에 있고

일드프랑스 지방에 속한 8개주 가운데 하나이다.


라데팡스 야경...최고^^ 


파리는 프랑스 수도이며

파리의 신도시는.,라 데팡스.

서울에 비유하면 강남에 해당.


구(舊) 파리는 서울 "강북"에 해당.

수백년 역사를 지닌 건축물의 외벽들.

내부 수리는 가능해도 외벽은 그대로 보존.


파리 겉모습으로는.,신구(新舊)가 공존.

파리 내면의 모습은.,매년 최첨단을 추구.


파리에서 가볼만한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명소로는

베르사유 궁전 & 루브르 박물관.


전세계 각국의 궁전과 박물관 유물 유적 대부분

"국민들의 혈세를 먹는 하마"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파리 시민에게는 재정자립도 일등공신 관광수입원이다.


그래서, 센강에 대홍수가 날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대피하기 위해

파리 시민들이 생업을 젖혀두고.,자원봉사. 


굳이, 애국심(愛國心)에 호소하지 않아도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애향심(愛鄕心).


유럽 최고의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질투심 때문에 만들어졌다. 

 


베르사유 궁전.



유럽 최고의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질투심 때문에 만들어졌다. 


불어 Château de Versailles

프랑스 베르사유에 있는.,왕궁.


베르사유는 원래 파리의 시골 마을 중 하나였다.

궁전이 세워진 후 자치권을 가지는 파리 외곽도시.

원래는, 왕이 사냥할 때 머무는 여름 별장이었던 곳.


파리근교여행 - 베르사유궁전정원 그리고 분수쇼


파리 시에서 남서쪽으로 22km 떨어진 도시 베르사유.

17세기 루이 14세 건립후 100년 이상 프랑스 왕들이 거처.

국사를 처리한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혁명 최초의 중심 무대.


베르시유 궁전의 정원들은 앙드레 르 노트르 걸작품

유럽에서 방문객들이 가장 많은 사적지 중 하나이다.

원래, 연회장으로 건립되었지만 국사를 처리하는 정청


당시 왕실에 딸린 인원이 약 2만 명이었는데

약 1,000명 조신이 4,000명 수행원과 함께 거주했고

약 1만 4,000 병사와 종복들은 별채 건물과 마을에 배치.


1671년에 건립된 마을은

1715년 루이 14세가 죽었을 때

그 인구가 무려 3만 명이나 되었다.


루이 15세는 선왕이 시작한 건축사업을 계속하였으며,

베르사유 궁전은 사치스런 왕실생활의 상징물이 되었다.


1837년에 궁전을 복원한.,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모든 영광' 기념박물관으로 개조


1870년에 파리를 침공한 독일군이

베르사유를 그들의 본부로 사용했으며,

1871년 독일 황제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프랑스-독일의 평화조약 체결 후 8년 동안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의회 의사당으로 이용

1875년 제3공화국의 헌법이 이곳에서 반포되었다.


제3공화정과

제4공화정의 대통령들이

이곳 베르사유에서 선출되었다.


연합국과 독일 사이의

베르사유 조약(1919) 체결 장소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  복구되고 현대화.

.

베르사유 시는

지방행정 중심지이며,

파리 시의 교외주거지이다.


관광명소가 된 궁전은

외국 원수들이 묵는 곳.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랜 구역인

사토리에 생루이 대성당이 있고

북쪽 신시가지 르셰스네 노트르담 교회.


베르사유는 육군 병원과 육군 공병·포병 학교가 있는

중요한 군사도시이자 상업과 교육 중심지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으로는 증류주 제조업, 피혁업, 시장용 원예업

등 아름다운 정원에 부속된 원예학교(1874)가 있다.


솔, 여행 기록장 _ 파리 베르사유궁전 &amp; 정원 

베르사유 궁전 정원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정원] 여의도만한 땅에 펼쳐놓은 태양왕의 절대권능 

[베르사유궁전 정원] 여의도만한 땅에 펼쳐놓은 태양왕의 절대권능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프티 트리아농/마리 앙투아네트의 영지 #2일 (2) 

[베르사유궁전 정원] 여의도만한 땅에 펼쳐놓은 태양왕의 절대권능 

[유럽여행/파리] 베르사유궁전 정원


프랑스에서는 햇볕이 귀한 편이므로

날씨 맑은 날에는 어디에서나.,일광욕.

남녀노소 가리지않는 노출에 꺼리낌 없다.


[ 프랑스 여행 ] 베르사유 궁전 / 정원 / 샹젤리제 벨기에 홍합요리 LEON DE BRUXELLES , 레옹 드 브리쉘

유럽 최고의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질투심 때문에 만들어졌다. 

>프랑스 파리 여행< 파리 베르사유 궁전/베르사유 궁전 가는법/ 베르사유 궁전 정원 

나홀로 유럽여행_파리3일차!!베르사유궁전/명품베르사유투어/베르사유궁전 정원/베르사유궁전맛집 


17세기 루이 14세 건립 당시에는

외부의 적이나 침입자를 경계하여

궁전 정원에 숨을 은신처를 없애려고

정원수를 토피아리(topiary)로 깎았단다.


궁전을 애워싸고 있는 자연 숲과

궁정 정원의 영역 경계선을 알리는

베르사유 궁전의 토피아리 정원양식.

.

 토피아리(topiary)는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식물을

다듬어 동물 모양, 구형, 하트 모양 등의 형태로 만든 것.

상록관목, 회양목· 사이프러스· 주목 로즈메리·감탕나무 등.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친구가 발명

1세기부터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토피아리는 작은 회양목을 다듬고

이후 원뿔형· 원주형· 나선형 형태로 손질.

 

18세기에 토피아리는 '나무이발술'로 불리게 되었으나

이 기술 정원사들은 나무석공술· 관엽조각술이라 불렀다.

17세기 말~18세기 초 토피어리 유행이 절정에 이르렀으나

그 이후로는 이른바 자연식 정원이 등장함에 따라 쇠퇴했다.


그러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양식은

인위적인 토피아리(topiary) 양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자연식 정원 양식을 고수하는 영국과

인위적인 정원양식을 고수하는 프랑스와는 대비된다. 


프랑스 정원양식은 '좌우동형' <<평면기하학식>>

영국식 정원양식은 <<자연 풍경식>>으로.,분류하며

유럽 정원양식은 로마 <<노단식>>에서부터 유래된 것.


(유럽배낭여행/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 관람 * / 파리 안녕 ㅠㅠ  

(유럽배낭여행/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 관람 * / 파리 안녕 ㅠㅠ 

(유럽배낭여행/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 관람 * / 파리 안녕 ㅠㅠ 

2014.0418 파리_베르사유궁전, 정원 

2014.0418 파리_베르사유궁전, 정원 

2014.0418 파리_베르사유궁전, 정원 

2014.0418 파리_베르사유궁전, 정원 


베르사유 궁전 정원양식은

좌우동형 정형화된 형태로서

여심(女心)을 사로잡는 편이다.


'퍼즐 맞추기' 형태의 정원

'미로 길찾기' 형태의 정원.

'숨을 곳 없는.,형태의 정원.'


화장실이 없다는 [베르사유 궁전] 

제92회 3.1절. 3.1운동 전개과정 1 2011.3.1. 


1682년 루이 14세가 파리에서 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겨,

1789년 왕가가 수도로 돌아갈 것을 강제될 때까지

프랑스 앙시앵 레짐 시기, 권력의 중심지였다.


유럽 최고의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질투심 때문에 만들어졌다. 


바로크 건축 대표작품.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 그리고

로페라거울의 방으로 유명하다.


베르사유 궁전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이런거 있었으면... 

거울의 방 

솔, 여행 기록장 _ 파리 베르사유궁전 &amp; 정원 


거울의 방은 벽과 천장이 거울로 된 길이73m의 방인데

1차 세계대전을 형식적으로 마무리지었던 베르사유 조약

1919년 6월 28일에 이 방에서 이루어졌으며 베르사유 궁전은

한번에 2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안뜰을 둘러싸고 있다.


안뜰에 대트리아농소트리아농 등 작은 궁전들이 있다.

또한 1783년 이 안뜰에서 세계 최초의 열기구가 떠올랐다.


베르사유 궁전이 실제로 궁전으로서 사용된 기간은 매우 짧고,

1715년 루이 14세 사후, 루이 15세는 곧 파리로 궁전을 옮겼다.

훗날 빌헬름 1세 즉위식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베르사유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궁전 정원(쁘띠 트리아농)의.,화장실.

루이16세 왕비.,마리 앙뚜아네뜨 변기.


마리 앙뚜아네뜨를 재조명한다 


..............마리 앙뚜아네뜨..............

1755 11월 2일 ~ 1793 10월 16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막내딸로 ,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결혼.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38살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에서 처형

..............................................................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

1662년 루이 14세가 대정원 착공.

1668년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뤘다.

정원 쪽 주랑을 '거울의 방' 회랑으로 만들었고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민 것.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을 위해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살게했고

당시 이 궁전에는 약 5천 명이 살았다.

게란트가 쓴 <화장실 문화사〉에 의하면

프랑스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루브르를 버리고

베르사유로 온것도 배설물로 가득찬

루브르를 피해서였다는 것이라고도 한다.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던 것일까?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단다.
심지어 봉지에 변을 보고 창밖으로 던지기도 했단다.


그래서, 방 구석의 으슥한 곳에

커텐을 치고 이동식 변기를 마련.


그로부터, 베르사유 궁전의 방문객들은

휴대용 변기 또는 일회용 기저기를 지참.

옛날이나 지금이나 프랑스는 물이 귀한 편.


물 값이 워낙 비싼 편이라

물로 목욕하기 어려울 정도.


물에 석회 성분이 많기 때문에

물로 목욕을 자주하면, 노화가 촉진.

프랑스 사람들은 물로 목욕을 꺼리는 편.


그래서, 오일 마사지로 목욕을 대신.

그리고나서, 온 몸에 향수를 바른다.

그래서, 향수 산업이 발달한.,프랑스.


샤넬 No 5.

제2의 피부.

마릴린 몬로.


프랑스는 식수보다

맥주가 값이 싼 편이다.


여행객은 갈증을

캔맥주로 달래다가

배탈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공동화장실을 찾기가 힘들고

개인 화장실 빌려쓰기도 어렵다.


개인 주택에서도

부부가 전용 화장실을

각각 따로 사용할 정도이다.


부부 간에도 각자의 전용 화장실은

상호 신성불가침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다.

초대받은 손님도 일회용 기저귀 지참이 에치켓. 


17세기 파리는 
비라도 오게 되면

온 거리가 오물로 넘쳐

오물이 묻지 않기 위해서
높은 굽의 신발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

창문에서 날아오는 변이

머리에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몸에서 나는 배변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몸에 뿌렸기에 향수가 발달되었다.
  

사람들이 정원에서 자꾸 볼일을 보자

참다 못한 베르사유의 정원 관리인들은
'에티켓(etiquette)이란 출입금지 표지판을

정원 입구에 세웠는데 예의 범절을 의미하는

'에티켓'이란 말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궁전 숲 운하, 정원 등 (총면적 2400만평),

궁전 규모는 약 2만 평에, 방은 2000여 개.

베르사유 궁전과 규모 비슷한 부속건물.,포함.


베르사유 궁전 부속건물에는

마사, 개 사육장, 동물원,창고 등

만명 정도가 거주하며 일했다고 한다. 


근래, 베르사유 궁전에

레스토랑이 들어서고나서

그 곁에 공동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그곳을 이용하려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


프랑스 화장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생리현상이 다급할 경우에

차마 말못할 곤욕을 겪기 일쑤.


워낙, 물이 귀한 곳이라

옷에다가 실례할 경우에

씻을 물조차 없어 난감하다.


일회용 기저귀는

프랑스 여행 필수품.


[펌] 루브르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파리여행/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가다 :)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

원래, 바이킹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 궁전으로 새롭게 개조되었다.


이어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전시.

나폴레옹 1세가 수많은 전쟁을 통해 약탈한 예술품 등.

나폴레옹 3세 때 1852년 북쪽 갤러리 완성 후 미술관 모습.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1793년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전시.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


[파리여행/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가다 :)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림들 

루브르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루브르박물관 관람하기~ 

프랑스 파리여행 < 루브르박물관 라이언게이트로 10초만에 입장! 드넓은 루브르박물관 관람하기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여행의 하이라이트 루브르박물관 관람~ 

파리 유럽여행 ,루브르 박물관 2편 황금비율 밀로의 비너스(Venus) 

파리 유럽여행 ,루브르 박물관 2편 황금비율 밀로의 비너스(Venus) 

루브르 박물관 예술품도 폭우에 잠시 피신 

파리명소 미리보기 - # 2 ( 루브르 박물관 ) 

파리여행 루브르박물관 후기!!! 

파리여행 루브르박물관 후기!!! 

[프랑스] 나에게 너무 어려웠던 파리 루브르 박물관 

[파리여행 2day] 루브르박물관: Louvre Museum 그냥wing 

서유럽 투어 2일차 - 파리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 궁전으로 개조되었고,

이어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등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 개조.


하지만 루이 15세(Louis XV)가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고 나서

루브르는 주인 없는 궁전으로 방치.


나폴레옹 1세가 루브르 궁전에 관심갖고

미술관으로서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으며,

나폴레옹 3세가 1852년 북쪽 갤러리를 완성.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후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 박물관 앞에

건축가 I.M. 페이(Ieoh Ming Pei)의 설계로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대변신을 하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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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시간.............
(월, 목, 토, 일) 09:00~18:00

(수, 금) 09:00~22:00까지,

(12월 24~31일) 09:00~17:00까지
화요일, 1월 1일, 5월 1일, 11월 11일, 12월 25일 휴관


..............................입장료...........................
12유로 (들라크루아 미술관) ,나폴레옹관 : 13유로
나폴레옹관 들라크루아 미술관 루브르., 통합 16유로
10월~3월 첫째 주 일요일, 7월 14일 무료(나폴레옹관 제외)


......................찾아가는 길.....................

Mètro : 1, 7호선 팔레 루아얄 뮈제 드 루브르

(Palais Royal Musée du Louvre) 역에서 1분.


1호선 튈르리(Tuileries) 역에서 도보 1~2분
1호선 루브르 리볼리(Louvre Rivoli) 역에서 도보 1~2분
7호선 퐁네프(Pont Neuf) 역에서 도보 2~3분

버스 : 21, 24, 27, 39, 48, 67, 68, 69, 72, 81, 95번

.....................................................................



덧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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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지도 


............지중해...................

총 21개국이 지중해에 접해있다.

<유럽> 에스파냐, 프랑스, 모나코, 이탈리아,

몰타 (섬나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그리스, 터키, 키프로스 (섬나라)


 <아시아> 터키,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가자 지구(팔레스 타인)

<아프리카>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대항해 미니(mini),북해와 지중해 도시 지도 



서쪽의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대서양,

동쪽의 다르다넬스 해협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 해, 흑해와 연결된다.


마르마라 해는 지중해 일부

흑해는 별개의 바다로 본다.


남동쪽 수에즈 운하를 통해

홍해와도 연결되는.,지중해.


지중해 연합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제안으로 설립,

2008년 7월 13일파리 시에서 첫 정상 회의를 가졌다.


유럽 연합과 지중해 연안국으로 구성된 지중해연합은 총 43개국.

과거 로마 제국을 연상시킬 만큼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


[Issue&Topic]43개국 묶은 거대 공동체…성공은 ‘글쎄’ - 시험대 오른 지중해연합의 내일 


...........지중해연합(地中海聯合).............

 프랑스어: Union pour la Méditerranée

지중해 연안 43개국이 결성한 국가 연합이다.

지중해 연안국과 유럽 연합(EU) 국가로 구성.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제안되어

2008년 7월 파리에서 첫 정상 회의를 열었다.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이 난항에 부딪히자,

사르코지가 대안적 방법으로 지중해 연합을 제시

터키는 이를 처음에 거부했지만 지중해연합 가입이

유럽 연합의 대체가 아니라는 점을 보장받고 터키가

가입을 승낙함에 따라 지중해 연합이 출범할 수 있었다.


지중해 연합의 가입국은

2008년 7월 현재 43개국이고,

인구로는 7억 6500만에 이른다.


지중해 연안국에만 국한되는 사르코지 첫 제안과 달리,

유럽 연합 소속국이 참여하였다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지중해 연안국에만 한정될 경우

유럽 국가가 분열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EU의 회원국을 모두 포함했기 때문이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반발이 컸다.

당초 44개국이 예상되었으나, 리비아가 불참 선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는 “지중해 연합이

아랍과 아프리카의 단결을 저해하는 신식민주의 구상”.


2008년 7월 13일,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열린

지중해 연합 정상회의에는 유럽 연합(EU) 27개국과

중동· 북아프리카·동유럽 국가 16개국 등 모두 43개국

정상과 지도자들 또한 UN 반기문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첫 회의에서 사르코지는 회원국 간 실용적 협력 강조,

환경 오염과 지중해 수로 문제를 협상 의제로 삼았다.


그러나, 중동 문제와 같은 예민한 현안은

주요 의제로 설정 않았으며 정상회의는 2년에 한 번

의장국은 지중해 이북·이남 국가가 한 나라씩 공동으로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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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로방안 | 작성시간 17.05.11 파리의 관광을 컴에 앉아서 덕분에 잘했습니다...
    이곳저곳은 많이 갔다왔는데...파리는 아직인데...
    파리의 연인들은 사랑표현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하는 모습들이 정겨운데..
    우리나라의 연인들이 하는 지하철의 사랑표현은 왜 눈살이 찌푸리는것인지..
    나의 관념이 잘못된것 일까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선경나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5.13 .
    15살 남학생과 39세 여교사가 사랑에 빠졌다면?
    훗날, 그 남학생이 39세에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
    그 여교사가 2017. 5. 14.,'퍼스트 레이디' 예정자.

    답글을 읽고나서
    본문 머릿글 부분에
    그 스토리를 수정 보완.

    프랑스는 남녀 사생활에 관대한 편이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존중하는듯.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한 나라인 것 같아요.

    정성껏 답글 달아 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관념의 잘잘못을 어찌 논할 수.,있겠습니까?
    답글에 사진 넣는 방법 좀 가르쳐주시면, 감사~~
    .
    배우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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