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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정원 - 성북동.,삼청각(三淸閣)

작성자선경나라|작성시간17.06.23|조회수834 목록 댓글 0

드라이브코스 북악스카이웨이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하늘한마당~하늘한마당~다모정~

북악팔각정~북악스카이웨이 2교( 6.96㎞ 2:30 h 도보거리)

이 길이 2007년 개방됨으로써 산책 명소가 태어나게 되었다.


한성대입구역을 출발하면 하늘한마당까지 한동안 오르막이고,

이후로는 편안하게 찻길 옆으로 조성된 숲길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 중간에 잠시 비껴나가 있는 ‘하늘전망대’는 북악산 일대 전망대.


정릉북한산숲제험장,북악스카이웨이 봄 나들이...

 북악스카이웨이길 탐방

서울의 로키산맥, 북악스카이웨이! 


1968년 ’ 김광섭 시인이 ‘성북동 비둘기’를 쓴 그 해에

'북악스카이웨이'는 '승용차 전용도로'로서 개통되었다.


비둘기로 상징되는 자연을 깎아서 만든 길,

북악스카이웨이는 청와대 보안상의 이유로

수십 년간 일반인 산책 및 출입이 금지되었다.


서울 북악산 팔각정과 북악스카이웨이...서울시 종로구  


..................북악 스카이웨이...............

1968년 9월에 개통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동 창의문(자하문)~성북구 정릉동 입구' 도로.|

경복궁의 진산을 이루는 북악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어져 있고 11.8㎞, 폭 10~16m 2차선 도로.


높이 342m인 도로 정상에는 북악팔각정휴게소.

북악산과 서울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자하문 ~ 정릉 아리랑고개' 10km는 관광도로.

자동차로는 30분 이내에 관람 가능한 코스이다.


창의문 옆길을 통해 창의문쉼터라는 곳에서 표찰을 받고 시작

북악산길은 성북구민회관 앞까지 코스이며 총 6.8km의 산책로.

팔각정은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쯤에 서울의 전망대이자 휴식처.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길 쉼터에는 다양한 운동기구와 정자.

약 10km 길이 산책로 및 관광도로는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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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세검정·정릉·삼청공원·경복궁·국립중앙박물관 등

이 도로는 '자하문~인왕산길', '정릉~성북동길'과 이어진다.


서울 북악산 팔각정과 북악스카이웨이...서울시 종로구 


경복궁의 진산을 이루는 북악산 북쪽 능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어졌으며 총길이 11.8㎞, 2차선 도로.


1968년 9월에 개통되었으며, 도로의 굴곡이 매우 심해

도로변에 반사경과 수은등 등의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서울가볼만한곳: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공원의 밤 

팔각정에서 바라본.,북한산자락 평창동

북악스카이웨이로 드라이브!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 추천: 자유로, 북악스카이웨이, 과천대공원길 

                                                                            팔각정 2층에서 바라본.,서울 도심.

북악스카이웨이 처음으로 다녀왔어용~ 


해발342m 도로 정상에 북악팔각정휴게소가 있어

북악산과 서울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관광도로 남쪽으로 옛 성터가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주변에는 세검정· 정릉· 삼청공원·

경복궁·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있다.


자하문 쪽에서는 인왕산길과,

정릉 쪽에서는 성북동길과 연결.

 

성북동 야경 

                                                                                              성북동 야경.


....................성북동(城北洞).....................

조선시대 도성수비를 위한 어영청 북둔(北屯)이

도성 북쪽에 설치되어 있던 데서 유래된 동명이다.

성북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 때는 한성부 東署 숭신방 동소문외계 성북동.


1911년 4월 1일 일제는 한성부를 격하시켜 경기도에 예속.

5부8면제를 실시하여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성북동이라 칭.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행정구역을 개편 축소.

종래 숭신방 ‘숭’ & 인창방 ‘인’을 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로 경성부에 재편입되어 성북정.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 區制度가 실시될 때 동대문구.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이 우리나라 식 동명으로 바뀌면서 성북동.

1949년 8월 13일 동대문구를 분리하여 성북구를 설치할 때 성북구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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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심우장과 성북마을 


최순우옛집-선잠단지-길상사-이종석별장-심우장

- 이태준가옥 : 4km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성북동 뒷골목 역사· 문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코스.

 

혜곡 최순우, 만해 한용운, 상허 이태준 등 역사·문화 관련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며, 선잠단지, 길상사, 서울성곽,

이태준 가옥 등을 통해 역사, 종교, 건축양식도 함께 볼 수 있는 곳.


서울 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 ! 

상허 이태준 가옥(수연산방)

서울 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 !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 '상허 이태준가옥' 

성북동 전통찻집 - 수연산방 (상허 이태준가옥) 

이태준 가 (상허 이태준 가옥)를 다녀오다! 

이태준 가 (상허 이태준 가옥)를 다녀오다!

이태준 가옥, 성북동 수연산방(壽硯山房)  


서울 가볼만한 곳 : 길상사(吉祥寺) - 대원각- 꽃무릇 

                                                                                                      성북동 길상사.

법정 스님과 길상사 이야기 


길상사는 1960~80년대까지 3대 요정 대원각이 절이 된 곳.

대원각을 기증한 길상화(본명 김영한)는 월북시인 백석과의

실제 러브스토리를 그린 수필 <내사랑 백석> 저자로서 유명.


사찰은 '무소유' 저자 법정 스님이 세웠고

그가 오랜기간 머물렀던 공간이기도 하다.

매월 3,4째 주말 템플스테이 02-367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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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승려 만해 한용운이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주위의 도움으로 마련한 곳.

만해의 옥중기록 유품, 그가 심은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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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가옥은 <달밤>, <돌다리>, <황진이> 작가 고택.

‘수연산방’이라 이름 짓고 현대소설 작품들을 집필했던 곳.

1900년대 개량한옥이며 찻집 ‘수연산방’으로개방되어 있다.


설, 추석 명절 당일 휴관 02-764-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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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길을 올라가다가 성북2동주민센터 건너편에 있는

덕수교회를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한옥이 한 채 나온다.

서울민속자료 제10호 지정 전통 한옥(구한 말, 이종석 별장).


이종석별장은 마포 젓갈장수로 대부호가 된 상인.

1900년대 별장으로 사랑채 비슷한 별채와 안채, 행랑채

그당시 부유한 대상인의 생활상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별장은 새우젓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1900년 여름 별장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왕족의 별장을 매입한 것이라는 설도 전한다.


우스갯소리처럼 내려오는 말로 성북동에는

‘하늘이 내린 부자’들이 모여 산다고 전한다.

그런 곳에 이종석이 집도 아닌 별장을 지었다.


이재준, 이태준 가옥 Re 

                                                                               이종석 별장(이재준 가옥)

이재준, 이태준 가옥 Re 

이재준, 이태준가 Re 

이재준, 이태준가 Re 

이재준, 이태준가 Re 

5월 23일에는... 

성북동 이종석 별장 

이재준, 이태준 가옥 Re 

성북동 이종석 별장 

성북동 이종석 별장 


이종석(1875~1952)은 조선말 마포나루 강상대고

그중에 한 사람으로 마포에서 배를 가장 많이 가졌고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모든 양곡의 유통에도 관여했다.


사재를 털어 현재 송파구 오금동 보인고등학교 전신

보인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자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 말엽, 한강변 강상대고 영향력이 짐작간다.

문득 무더운 여름날에 성북동 별장을 찾았을 이종석.

그당시 한양의 속살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간장이나 소금 만으로는 음식의 깊은 맛을 내기가 어렵다.

그럴 때 서울 사람들은 젓갈. 새우젓을 유난히 많이 사용한다.

특히나 서울은 새우젓을 이용한 요리 가짓수가 새우 수만큼 많다.


김장할 때도 새우젓을 주로 사용한다.

깍두기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호박볶음을 할 때도 새우젓.


생태를 찔 때도 새우젓을 살짝 얹고,

닭볶음탕도 새우젓으로 양념을 한다.


새우젓 웃더께 푹 끓인 것에 김칫국물 자박자박 부어 만든

칼칼한 찌개를 저녁상에 내는 것도 서울사람의 음식문화다.


새우젓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음식문화에서 그 연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서울 음식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담백한 정도의 간.

또 모양을 작고 예쁘게 만들고 양념을 곱게 다져 쓴다.


규서총서 -"서울 음식은 맛깔스럽고,

알뜰하고, 어여쁜 솜씨”가 있다고 기록.


요리 연구가들이 꼽는 서울의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달며, 뒷맛이 깔끔.

 

서울의 입맛에 안성맞춤이었던 새우젓.

수많은 서해 사람들을 마포로 불러들였던

새우젓 도가는 서울에서 옛 추억으로 남았다.


마포종점에서부터 줄지어 있던 가게는 인근으로 흩어졌고,

마포 전차 종점에서 한강까지 걷던 길은 자동차가 내달린다.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 맞추듯 마포 옛모습을 그려본다.


강변북로 굽은 도로가 새우의 굽은 등처럼 보이고,

한강 물비린내가 새우젓 도가 냄새처럼도 느껴진다.

마포나루, 전철 종점, 그때 그 풍경을 다시 그려 본다


.........마포 새우젓장사 & 이종석..................

"마포 사람들은 맨밥만 먹어도 싱겨운 줄 모른다."

전국 소금배와 젓갈배가 마포나루로 모여들기 때문.

서해안에서 올라온 새우젓장사들로 종일 붐볐던 마포.


'마포 새우젓장사'로 부자가 된 사람이 급증하자

도성 바깥인데도 은행 지점이 두 곳이나 들어섰다.

젓갈과 소금상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이 염리동.


젓갈류 보관 옹기를 굽는 동네.,'독막, 동막' 용강동.

김장때 아현동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마포 새우젓 냄새.


전차 화물칸을 따로 만들어

당시 새우젓독을 날랐던 시장이

오늘날, 남대문시장, 동대문 시장.


염리동 소금길로 떠나는 걷기여행 

마포나루에서 소금,젓갈을 대규모로 취급하던

상인들은 '마포염해여각'으로 불렀는데 여각은

부피가 큰 품목을 취급하기에 커다란 보관 시설과

우마차 등 운송수단을 갖춰어야  했기에 규모가 컸다.

 

그래서 일반 객주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여각.

18세기 이후 경강상인(京江商人)의 전신이 이들.


조선시대 - 경강상인 조선소.,밤섬. 

조선시대 상인들의 모습 : 동아시아를 장악하던 인삼무역…정부는 외면했다  

정조 당시.,배다리

3기 민유정 (경강상인) 


새우 젓은 반찬 뿐만 아니라

김치 담그는 조미료로도 인기.

1년 내내 수요가 끊이지 않았다.


음력 정월 그믐부터 4월 사이 잡은 새우로

담근 풋젓이 살이 연하고 희어서 인기였다.

그중 2월에 담근 것을 동백하젓이라고 했다.

5월의 오젓과 6월의 육젓, 7월 차젓도 별미였다.


8월에 담근 추젓은 잡새우들이 섞여 있어

모두 삭힌 뒤 김장 떄나 다음해 젓국에 썼다.


9~10월의 동백젓, 동짓달의 동젓,

눈처럼 흰 백하젓, 분홍빛 건댕이젓.

.

서울사람은 진한 멸치젓보다

담백한 새우젓을 더 좋아해서

무더위에 지친 여름에는 양념한

새우젓만으로 입맛을 되찾기도 했다.


성산동렌트카/마포렌트카/공덕동렌트카/합정동렌트카/염리동렌트카/마포구렌트카 마포구의 자랑거리는?  


경강상인 황포돛대 7척까지 왕래.

농바위 부근., 밤섬의 맑은 모래밭.

아스라히 저녁 짓는 마포나루 연기. 


우리나라 전통정원 - '경강상인 조선소' 밤섬. 

마포 8경의 으뜸 '낙조 속의 돛단배'                    

한양도성의 북문 숙정문(肅靖門) 



숙정문(肅靖門).



한양도성의 북문 숙정문(肅靖門)  

인조반정군은 통과,1.21무장공비는 퇴치한 역사의 현장 창의문(자하문)

북악산 한양도성 성곽길/ 운좋게 바로 오른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명소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일반 시민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던.,'숙정문.

2005년 9월 8일에 국민에게 개방된 숙정문 일대.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어 온 숙정문 일대가 국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숙정문 일대 약 1.1 km 구간이 2006년 4월로 예상.


숙정문 일대 탐방은 청와대 경내를 관람하는 것처럼,

하루 3번, 50명씩 허용되며 미리 방문 신청을 해야한다.

조선 태조가 한성을 축조할 때 세운 4대문 중.,북문(北門).


인조반정군은 통과,1.21무장공비는 퇴치한 역사의 현장 창의문(자하문) 

인조반정군은 통과,1.21무장공비는 퇴치한 역사의 현장 창의문(자하문) 


창덕궁 후원 음골보다 음기가 강했다는.,숙정문.

삼복더위에 냉기가 흐르며 낮에도 어두웠던 음골.

궁궐의 북쪽 끝 숙정문에 보름달 떠오른.,야심한 밤.


숙종 재위 때 궁녀들이 남몰래 찾았다는 곳.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월광욕.

칠흙 같은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야밤에.,심호흡.

.

여인의 들숨과 날숨을 따라

가슴골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달빛을 품고 출렁거리는 가슴골.


들숨을 아래로 내려 음기를 모은 뒤
더 깊은 아래로 흘려내리길 반복한 후
월광욕을 마친 여인이 사라졌다는.,숙정문.


숙빈 최씨가 월광욕후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자
궁중 여인들 사이에서 이곳을 두고  살벌한 쟁탈전.

숙빈최씨가 장희빈의 음기를 이길 수 있었다는.,숙정문.

.

인조반정군은 통과,1.21무장공비는 퇴치한 역사의 현장 창의문(자하문) 


인왕산과 북악산에 호랑이가 출몰하던 시절
여인들의 밤길 나들이는 생명을 무릅쓴 모험.
오직, 염험하다는 숙정문의 음기를 받기 위함.


달밤에 목욕하는 여자 

                                                                                                     창덕궁 음골

여자들의 시새움, 음문과 음골의 대결 


창덕궁 후원의 음골 쟁탈전에서

장희빈에게 밀려난 숙빈과 후궁들이

보름 밤에 장희빈과 주변 이목을 피해
몸종 하나 만 거느리고 찾았다는 숙정문.


'과연, 숙정문의 음기(陰氣)가

'창덕궁 음골' 음기를 이긴걸까?'

.

장희빈 등살에 기를 펴지 못하던 숙빈최씨.

그때, 숙종의 성은을 입어 낳은 아들이 영인군
훗날, 조선 21대왕 영조로 등극했다고 전해온다.

 

서울 여자들 죄다 바람나면 어쩌지? 


숙정문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


...............숙정문(肅靖門) or 숙청문(肅淸門)...........

한양 4대문(大門) 중 하나로서., 속칭 "북대문(北大門)"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

한양도성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성문.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의미가 감겨있는 문 이름이다.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


여인들이 자주 찾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진.,북대문.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 숙청문,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숙정문.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1413년(태종 13년)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의 상소로

숙정문(觀光坊東嶺路) 폐쇄후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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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4대문과 4소문 


1504년(연산군 10년)에는 숙정문을 없애고

오른쪽에 새로이 문을 세우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문을 옮겼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한양도성의 4대문과 4소문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

가뭄때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 접근금지.

2006년 4월 1일 인근 성곽 탐방로 1.1km 구간과 함께 다시 개방.

지금의 숙정문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


숙청문 

[한양도성 이야기] 숙정문 쌀바위 전설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에서 내려다본.,삼청각

북악산-숙정문-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성북동 삼청각 3시간 산책코스 

                                                                             숙정문 성곽에서 내려다본.,삼청각.


구한 말, 유흥음식점은 1909년 개점되며 관기제도 폐지.

궁중 기녀들이 요정에 모여들어 영업이 점차 번창하기 시작

6·25 전쟁 때 북한군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철수때 불태워졌다.


조선시대 - 관기(官妓) 


요정은 객실과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고

유흥업 종사자가 손님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드는 것이 일반 대중음식점과는 다른 점이다.


8·15광복 전 서울에는 명월관(明月館)을 비롯

국일관(國一館)·송죽관(松竹館) 등이 있었는데,

정치운동가· 기업인· 상인들이 주로 출입하였다.


조선시대 - 관기(官妓) 


요정의 주석(酒席)에는 권번(券番) 출신 기생이

한복을 입고 창 잡가·노랫가락 등 가야금병창으로

또는 검무· 남무(男舞)·북춤 등으로 주흥을 돋우었다.


8·15광복 후 권번에서 교육받은 기생들은 거의 사라지고

대개가 단순히 술을 따르면서 말벗이나 희롱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화초기생(花草妓生)이 요정의 새로운 풍속도를 펼쳤다.


그러나 요정에 대한 당국의 억제에 따라

한때에는 비밀요정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요정의 접대부는 주인과 약정에 따라

술시중 댓가인 화대를 받을 뿐 고정급이 없다.

이 점은 마담· 멤버· 웨이터 등도 마찬가지이다.

 

마담은 매상액의 20∼30%,

웨이터는 접대부 팁의 20%

정도를 자기 몫으로 갖는다.


따라서 업주와 접대부, 접대부와 마담 등

중간 매개자는 수입목적으로 상호 공생관계

한편, 손님에 대해서는 상호기생 관계에 있다.


1983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요정 수는 총 878개.

그러나 그후 요정은 예전 기능을 점차 상실하여

기생도 없어지고, 대부분 전통음식점으로 변했다.


1970년대 대표요정 대원각·삼청각도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 폐쇄되었다.


서울성곽 밖에서 바라보기_김신조루트,북한산 형제봉 능선  

                                                                                      성곽에서 내려다본.,삼청각

서울성곽 밖에서 바라보기_김신조루트,북한산 형제봉 능선 

                                                                      삼청각에서 바라본.,'숙정문 & 성곽'

빈대떡 신사/한복남 

                                                                삼청각 후문

비밀요정 삼청각의 변신 

우리나라 전통정원 - 성북동.,삼청각(三淸閣)   


삼청각(三淸閣)은 한자 이름 그대로

도심에서도 가장 맑은 기운을 지닌 곳.

1970년대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삼청각.


삼청터널 가까이 있는 소슬대문은 대단히 화려.

특이하게도 헛기둥이 허공에 앞뒤로 두개씩 있다.

문의 뼈대를 형성하는 '수직구조재' 샛개둥인걸까?


'기둥서방' 의미를 연상케 하는.,헛기둥.


삼청각(三淸閣)에는 두개의 출입문이 있다.

하나는 자동차를 주차하고 출입하는 문이고

또 하나는 걸어서 소슬대문으로 출입하는 문.


'남대문(南大門)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지 앞섶이 풀어진 상태를 쑥스럽지 않게

알려주려 배려하는 말로 사용하는.,'남대문'.

활짝 열린 숭례문을 두고.,"남대문이 열렸다."


조선시대 양녕대군 필체 현판이 걸려있던.,남대문.

세종대왕이 형님 양녕대군을 마중나왔다는.,숭례문.

양녕대군의 풍류에 비유하는 은어이기도 한.,"남대문."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3대요정' 삼청각의 남대문.

남대문은 삼청각이 요정 정치 산실임을 일깨워주는듯.


삼청각 

[공유] 간송미술관, 길상사, 삼청각, 수연산방- 성북동의 하루 


북악산 숙정문 등산로에서 걸어 내려오면

삼청각 뒤로 출입할 수 있는.,남대문(南大門)

삼청각(三淸閣) 정문으로 들어오면.,일화당 본채.


[세종문화회관]★초대이벤트★ 삼청각 런치콘서트 >자미< / 두번째달 / 아나야 / 삼청각 일화당 

                                                                                                                일화당.

.

삼청각(三淸閣)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전통 문화공연장.

1972년 건립되어 1970~1980년 요정정치 산실로 대표되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서 이용.


제4공화국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유신 시절에는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삼청각 무전취식 공무원 퇴출 새롭게 세종문화회관 단장 


1980년대 손님이 줄어들어 1990년대 중반에는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경영난으로 1999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1999년 말, 건물과 부지를 인수한 화엄건설(주)이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관할 성북구청에 건축허가 신청.

문화재 보존여부에 대한 판단문제로 건축허가 결정이 유보.


이후 2000년 5월 22일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모델링 공사.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종로구] 삼청각 (이궁) 


현재,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 6채의 한옥이 있다.

건물마다 원래 이름을 살렸고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 330-115


북악산 자연경관이 병풍처럼 애워싼.,삼청각

별채인 청천당, 천추당, 유하정, 취한당, 동백헌은
연회모임과 각종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변모.


삼청각을 대표하는 건물은 일화당(一和當)이다.

하나로 조화를 이룬 공간이라는 의미의 이 한옥은

남북 대표단 만찬때 남측 이후락 중앙정보부 부장이

북측 대표단과 축배를 들었던 공간으로 잘 알려져있다.

청천당은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던 곳.

삼청각 전체로 보면 별채 쯤에 해당된다.

유하정(幽霞亭)은 북한의 옥류관을 본뜬 곳.

보통 한옥의 경우에 단청에는 연꽃을 쓰는데

유하정은 대통령을 상징하는 무궁화가 쓰였다.


삼청각은 1974년 이후 국빈접대 정치회담장으로 운영.

사실, ‘밀실 정치’가 이뤄졌던 고급 요정으로 활용된 것.

청운각, 대원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곳.


삼청각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건 2000년부터.

서울시가 인수해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

2001년 세종문화회관 운영, 프라자호텔에 부분위탁.


2005년 파라다이스가 민간위탁사로 이곳을 운영했고

2009년부터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삼청각이 위탁운영.

 '봄의 물소리가 들리는 정자'라는.,청천당(請泉堂).
'영원하고  깊은 가을' 뜻말이 담긴.,천추당(千秋堂)  
산기운, 비취빛 서늘함이란 뜻 이름., 취한당(翠寒堂)
그윽한 그늘이 깃든 정자라는.,유하정(幽霞亭)의  뒷길.


삼청각의 풍경 


동녘의 밝은 집.,동백헌(東白軒)
나무에 팔을 기대고 있는., 꼬마장승.


삼청각의 풍경 


'하나로 조화를 이룬다.' 일화당(一和堂)

삼청각 한옥들 중에서 가장 큰 규모.,본채.
일화당 안 뜰의 장승 한 쌍과 멋스러운 담장.


삼청각 무전취식 갑질, 진짜 보기 흉하네요 


일화당 안뜰에서 바라본., 다소니.
일화당 라운지 그리고 와인바., 다소니.
다소니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순 우리말.


상견례 장소 추천_삼청각 


성북동에 위치한 삼청각(三淸閣)은

경복궁 거쳐 삼청터널을 지나 올라가거나

또는 대학로 거쳐 성북동으로., 올라가야 한다


서울 시티투어~~~ 삼청각~~~ 

 

삼청각은 대중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삼청각 


클라라 패션 화보 ♡ 

클라라 

채림 삼청각 결혼식 한복 화보 

전통혼례 삼청각결혼식 다녀왔어요 

[웨딩 뉴스] 중국에이어 서울 삼청각에서 결혼식을 올린 : 채림, 가오쯔치 전통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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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에서 작은 결혼식(스몰웨딩)을 하신 국제결혼 커플 본식촬영 by 주노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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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일화당 결혼식] 내친구 시집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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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돌잔치 돌스냅 By 해브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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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서울 당일치기 계곡] 도심 속 작은 쉼터 성북동 '삼청각'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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