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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울진현.,울릉도 & 독도

작성자선경나라|작성시간17.08.30|조회수1,465 목록 댓글 0

우산국에서 휴가 보내는 중에 들렀습니다.


'한국의 섬'은 남북한 합쳐 4394개
 남한 유인도 473개, 무인도 2876 개

서남해안 섬 대부분 육지에서 분리된 것.


그러나, 울릉도 & 독도는., 화산섬이다.


울릉도는 1만년 전까지 분화했던.,화산섬.

약250만년전 해저 용암분출로 생성되었으며

청동기 또는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


우리나라 섬에는 왜 뱀이 많이 살까?


천적이 줄면서 뱀 개체수가 늘었기 때문.

독수리· 매 등 맹금류와 오소리·족제비 등이

뱀의 천적인데 모두 희귀종이 돼버린 때문이다.


모든 섬에 뱀이 많은 건 아니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라서 뱀이 없다.

국내 유일하게 뱀이 없는 섬.,울릉도.


뱀을 일부러 가져가지 않는 한

뱀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인 화산섬.


그러나, '화산섬' 제주도는 뱀이 많다.

제주도는 옛날에 한반도와 이어졌던 육지.

울릉도는 해저산맥 대륙붕에서 솟은 화산섬.


'울릉도~ 독도'는 수심

2000m 거대한 해저산맥.


한반도 자연사 - 수심 2000미터 거대 바다산맥 [울릉도~독도] 진화실험실

한반도 자연사 - 수심 2000미터 거대 바다산맥 [울릉도~독도] 진화실험실


울릉도와 독도는 다른 해저 산들과

옹기종기 모여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울릉도는 수심2000m 바다 속에서부터

수면 위로 1000m 가량 솟은 화산체이며

직경 20~25km 한라산 규모를 숨기고 있다.


독도는 거대한 화산의 평평한 정상부에

텔레비젼 중계탑처럼 뾰죽하게 솟아있다.

460만년전 울릉도 크기 수중화산으로 탄생.


독도는 지난 250만년 동안

전체의 99%가 깍여나간 셈.


지질학적으로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독도.

그러나, 독도는 수만년 내 사라질 염려는 없다.


울릉도는 '140만년전~1만년전'까지 5차 화산 분화.

마지막 화산활동은 9300년전~6300년 전에 일어났다.

마그마가 빠져나간 분화구가 무너지면서 생긴.,나리분지.


[울릉도] 북면 - 나리분지

                                                                           울릉도 북면.,나리분지

[울릉도 관광지] 울릉도 배편 - 울릉도 나리분지


현포, 남서, 저동리에서는 고인돌,

무문토기청동기시대 유물 발굴.


울릉도 곰바위,관음도,남서리 고분군

고인돌

울릉 현포동고분군(경상북도 기념물73호)

울릉도 현포동 고분군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현포리 고분군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공유] 울릉도여행 - 1박2일 국내여행

울릉도-독도 역사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현포리 고분군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경상북도 기념물 제 73호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경상북도 기념물 제 73호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울릉도 현포리 고분군

울릉현포동고분군 (鬱陵玄圃洞古墳群)

현포동 고분군

울릉현포동고분군 (鬱陵玄圃洞古墳群)

울릉현포동고분군 (鬱陵玄圃洞古墳群)

울릉도 남서리의 고분군

울릉도 남서리 고분군

울릉도 남서리의 고분군

울릉도 남서리 고분군 전경

울릉도 남서리 고분군 전경

울릉도 남서리의 고분군

울릉도 향토사료관,우산국의 전설

울릉도 향토사료관,우산국의 전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우산국이 있었는데,

512년(지증왕 13년) 6월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


고려 때까지 조공 관계가 계속되다가 11세기 초

여진의 침구(侵寇)를 받은 우산국 사람들이 본토로

도망오고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고려 직할 구역이 된다.


1407년(태종 7년) 3월 쓰시마 도주는 사신을 파견

토산물을 헌납하고, 납치해 간 포로를 송환하면서

울릉도에 쓰시마 사람을 이주시키어 살게 해서

쓰시마 도주가 다스리게 해 줄 것을 청원했다.


조선 태종은 이를 거절했다.

조선 초기 왜구의 노략질로

많은 섬 주민이 피해를 입자

1416년(태종 16년) 조정에서는

섬의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 정책(空島政策)을 실시하였다.


이듬해 울릉도(당시 이름 무릉도) 주민 3명을 이주시킨 후

여러 차례 무릉도 일대의 주민을 조선 본토로 이주시켰다.


그 후 섬에 몰래 들어간 조선 사람이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빈 섬에 들어간 일본인에게 밀려났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사람들이 들어가본 일이 있으나 역시

왜의 분탕질을 당해 정착하지 못하였다."

 

"근자에 들으니

왜노가 기죽도를

점거했다는데,

'기죽도'라고,

혹 말하는 것은

곧 울릉도이다.”


세종 때에는 종종 도망한 사람들을 벌한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에 속하며,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 동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맑은 날에는 멀리 바라볼 수 있고,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불렀다'고 기록.


1614년(광해군 6년) 6월 쓰시마 도주는

서계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울릉도를 둘러봐야 하니 길안내를 해달라 부탁.

조정은 이를 거절하고 경상감사와 동래부사에게

울릉도의 일본인 왕래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1618년 도쿠가와 막부는 오타니 집안과

무라카와 집안에게 울릉도 도해면허를 줬다.

그 집안 사람은 울릉도와 일본을 왔다 가며 조업했다.


1692년 3월 무라카와 집안이 울릉도로 갔을 때

조선인이 무라카와 도구로 전복잡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조선인에게 나가라고

말하려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본 사람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막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막부는 “저쪽이 잘못을 깨닫고 철수할 것이다”

라는 답변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안용복 문제 등 충돌이 생기고 나서 막부는

1696년 일본인에게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다.


1787년 프랑스 라페루즈 탐험대는

울릉도를 최초로 실측하여

 '다줄레(Dagelet)'라는

명칭으로 지도에 포함.


고종 21년(1884년),

임금의 명에 따라서

울릉도를 개척하였다.


서정희 '불타는 청춘' 울릉도 화보..50대 맞아?


우산국(于山國)은 삼국시대 경북 울릉군

'울릉도와 부속섬'을 다스리던.,고대국가.


51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나무로 깎은 사자를 배에 싣고

"따르지 않으면, 풀어놓겠다."고 위협하여 신라에 복속되었다.

고려 초기까지 조공관계로 지속되다가 930년 합병. - 삼국사기 -


"우산국(于山國)의 별명이 울릉도(鬱陵島) "- 삼국사기


卷四 智證麻于十三年夏六月條

于山國征服、歳以土宜爲貢、于山國、在溟州東海島、或名鬱陵島、

地方一百里、恃嶮不服、伊喰異斯夫、爲何琵羅州軍主、謂于山人愚悍、

難以威來、可以計服、乃多造木偶師子、分載戰船、抵其國海岸、誑告曰、

汝若不服、則放此猛獸踏殺之、國人恐懼則降

.

서정희 '불타는 청춘' 울릉도 화보..50대 맞아?


우산국은 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6월조와 같은 책 권44 열전 이사부조에 첫 등장.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

 

우산국은 고려 현종조의 기록에 다시 나온다.

이러한 기록으로는 유래를 알 수 없는.,우산국.

우산국은 울릉도 토착 원주민에 의해 건국되었다.


신라가 계교로써 겨우 복속시킬 정도로

동해를 무대로 존재한 해상강국.,우산국.


우산국은 512년(지증왕 13) 신라에 복속.

해마다 정기적으로 신라에 토산물을 바쳤다.

이는 삼국이 집권 국가로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주변 지역과 맺은 복속 관계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지증왕 13년조에 의하면,

우산국은 면적이 사방 100리에 불과하나

지세는 험난하고 사람들은 용맹하여 신라

군주(軍主) 위력으로도 항복시키지 못했다.


이 내용으로 볼 때 군사적 강국이고

수준 높은 해양문화 보유국인.,우산국


6세기 초 우산국은 이사부(異斯夫)의 침공,

즉 신라의 강압적인 타협 요구를 받아들여

신라에 공물을 헌납하는 조건으로 화의 성립.


그로 인해 우산국은 한 때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나

궤멸되지는 않았으며, 그 이후 도리어 더욱 융성하기 시작.


신라가 우산국을 공격한 목적도 완전소멸하려 한것은 아니며,

동해안 지역으로의 고구려의 남하와 동예의 침략 등을 방어하고,

신라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우호적 동맹세력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


당시 신라가 동해안 지역을 계속 확보하고

고구려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군사 외교적으로

해상 세력국가 우산국과의 연대를 최우선이었다.


우산국도 신라의 선진문화를 자국문화에 접목.

발전시켜 해상 국가로 더욱 강성할 수 있었으며,

통일신라 문화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울릉도 고분군은

지증왕 이전에 것이 아니라

6세기 이후 통일신라시대 축조.


고분의 양식과 도질 토기 등

출토 유물들은 신라 양식이다.


이것을 감안할 때 우산국은

지증왕 이후 신라에 귀복함으로써

신라의 인적·물적 지원 하에 더욱 더

강한 해상력을 확보하여 동해 해상권 장악.


따라서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후에도

독도 및 그 근해는 물론이고, 우산국이 정벌한

대마도까지 우산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3 동래현 산천조에 실려 있는

대마도 기록 중에서 대마도가 “옛날에 계림[신라]에 예속,

어느 때부터 일본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은

비록 후대의 사료이지만 그에 대한 방증의 한 예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우산국이라고

칭했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울릉도 지역에는 오늘날까지

우산국의 종말을 아쉬워하는

애련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우산국과 대마도―왜인의

혼인 동맹을 상징하고 있는 우해왕과

왕비인 풍미녀의 혼인이 주목된다.


우산국과 대마도―왜인의 혼인 동맹은

왜구의 노략질을 근절하기 위해 그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하고 맺어진 동맹으로, 그후 양국은

일정 기간 화평를 누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전설에 의하면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신라가 외적 방어, 즉 여진의 침략과 고구려의 압박 등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즉, 신라가 당시 명주와 한동해 일대에서

여진의 침략을 차단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해상 세력이었던 우산국과 공동 방어망의 구축이

요구되자, 강제적 수단으로 양국의 동맹 체제 형성을

이룩하기 위해 우산국을 정벌하였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우산국 명칭은 확인된다.

우산국은 고려에 방물을 바치고 있었다.


이것은 우산국이 고려와 문물을 교류하고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지속하겠다는 의사표시.


우산국은 여진과 왜구 등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고

한반도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자체 발전을 도모.

고려에 적극적으로 귀부(歸附)의 의사를 밝힘으로써

그 자립의 기틀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입장에서도 우산국은 한동해로 침범하는

여진족과 왜구 등의 외적을 방어하는 방파제적

구실을 했기 때문에 양국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1018년(현종 9)~1022년(현종 13)에 우산국은

동북 여진의 침략을 받아 그 존립 기반을 상실.


현종 때 여진족 피해는 우산국뿐만 아니라

동해안 일대의 19읍에 걸칠 만큼 광범하였다.


이때 해당 군현 주민들에 대한

조세 감면 등의 조처가 단행되었으나

우산국의 경우는 그에 관한 기록이 없다.


이것은 우산국이 고려의 군현 체계 속에 포함되어

조세와 역역을 부담하는 군현민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여진족의 침략으로 우산국은 자립할 수 없는 상황.


주민 대다수가 고려에 망명

고려 군현에 편적 되었으며,

농기구 지원의 명목이지만

고려의 관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


우산국2

                                                                                                    울릉도

울릉도 여행 - 우산국 기행(4)


그 과정에서 우산국 명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우산국4


“우산국이 日 오키나와 지배했다”


오키나와 전신 류구국(琉球國)은

우산국 주민 이주로 세워진 나라.,說.


.............................................

513, 514년 우산국 주민 1000여명이

일본 남단 오키나와 섬에 정착한 뒤

12c 말까지 670년간 25대 왕위 유지.


당시 우산국 주민들은

마한과 백제, 고구려 계통으로

천손씨(天孫氏) 집단이 류구국 점령

650년간 지배했지만 1187년 왕이 중신에게

살해된 뒤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1609년 일본 에도막부가 류구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류구국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삭제했다.

규슈(九州)에서 오키나와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조작.,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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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삼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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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전남 CBS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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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동부권에서 "독을 던진다"고 말하면
 "돌을 던진다"는 뜻이고 이같은 사투리가
 "'독도'의 어원이 되었다."는 주장이.,제기.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는
울릉군 관할구역에 '석도'를 포함한다고
명시했는데, 이 '석도'가 독도의 다른 명칭이란
일본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반박하고 있다. 

이훈석 대표는 "석도와 독도가 같은 지명이며,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전남 고흥 출신"이라 주장. 
 

고흥 사투리로 '돌'을 '독'이라고 발음하므로
 '독섬' 한문으로 '석도'라거나 '독도'라 표기.
실제로 고흥에는 도화면에 '독섬', 과역면에는
'석도', 금산면에 '독도' 무인 돌섬 세 곳이 있다.

특히 이같은 독도의 '전라도 방언 유래설'은
 구한 말 울릉도 인구 가운데 고흥 출신 주민이
 압도적인 많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고종 때인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이 작성한
 '울릉도검찰일기'에는 "울릉도 주민 140명
그중  고흥 사람이 94명, 순천 낙안사람이 21명
등  전라도 사람이 115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고흥 인근 여수 초도 출신 김충석 전 여수시장도
오래전부터 초도 주민들이 독도를 왕래했다는 주장을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꾸준히 펼쳐온 바 있어 이같은
'독도, 전라도 방언 유래설'은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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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일본' 항로 상에 위치한 우산국.

 

....................우산국(于山國).................
512년(지증마립간 13)에 신라에 복속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산국은 지형이 험준
하여, 험한 지형을 믿고 신라에 복속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을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강릉) 군주(軍主)가 되어
우산국을 병합할 것을 계획했다. - 삼국사기 -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워 
위세로 복종시키기에는 어려우니
계교로 항복시켜야 하겠다"
 
하여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전선에 싣고 해안에 이르러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놓아 밟아 죽이겠다"
 
그러자, 그 나라 사람들이 무서워 항복했다고 한다.
우산국은 신라에 복속된 뒤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

 

발해 남경 ~ 우산국 ~ 신라 금성 ~ 일본 

발해 남경이 북청이고, 신라 금성이 포항이다.

옛날부터, 북청 상인들은 상술(商術)이 뛰어났다.

 

1950년 6.25  전후 이북에서 피난을 나와

대부분 남한 각지에서 맨 손으로.,부(富)를 축적.

'물지게 지고 10리를 쉬지 않고 달린다.'- 북청 물장사.

 

자신은 힘들고 고달픈 물장사를 하여서라도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만큼 높은 교육열.

북청 민요 "돈돌라리"는 '동틀 날이 온다'는 뜻말.

 

북청 사자놀이 

 

북청 사자놀이는 여진족의 풍습에서 유래.

함경남도 북청은 원래 여진족이 살았던 지역.

원래, 북청은 고구려 패망 이후부터는 발해 지역.

 

훗날, 금나라를 세운 발해 민족이.,여진족.

 

.................여진족.,풍습....................

여진은 거의 한민족과 역사를 같이 했으며

민족의 기원이 유사하고 풍습이 비슷하다.

 

1. 온돌을 사용한다

 2. 흰옷을 좋아한다

 3. 선녀와 나뭇군 설화.

 4. 조선과 언어가 유사하다

 5. 채소를 소금에 절여먹는다

 

  여진어로 '치' 란 소금에 절인 채소

  김치(금치) '금나라의 소금에 절인 채소 음식

  

6. 고구려 '고대국가의 구성원'이었던.,여진족

   말갈, 발해, 고려도 여진족의 귀화를 권장했다.

 

7. 원래 한반도 정세가 힘들면  만주로 갔고

    국가 체계가 안정되고나면 한반도로 귀환

    자유가 그리우면, 만주 초원으로 나가 살았다.

.................................................................

 

여진족 금나라 와 남송시대 

 

명나라 왕조 역사가들은

여진족을 세 분파로 파악

 

건주(建州) 여진

해서(海西) 여진

동해(東海) 여진.

 

북청 사자놀이는 여진족 풍습.

동해여진이 정착한.,함남 북청.

 

북청사자놀이 

 

북청 사자놀이는 삼국시대 기악, 무악이 정착된 가면놀이.

'대륙계, 북방계' 사자무가 민속화된 대표적인 예(例)로 보인다.

북청 지방 일대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여러 마을에서 장정들이 편싸움.

 

달이 뜬 뒤부터 시작된 사자놀이는 15일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16일 이후 유지 집을 돌았는데 먼저 마당으로 들어가 난무를 하면

사자가 뜰로 뛰어들어 안방문을 열고 입 벌리고 무엇을 잡아먹는 시늉

 

다음에는 부엌에 들어가서 같은 행동을 한 뒤에

다시 내정 한복판에 나와서 활발하고 춤을 춘 뒤에

물러날때 주인의 청에 따라 부엌의 조왕신에게 절한다.

 

또 아이를 사자에게 태워주거나

사자 털을 몰래 베어두면 무병장수

그러한 속설이 있는.,북청 사자놀이.

 

금나라 역사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금나라 최초의 지도자는 고려에서 왔다.

신라 왕족이며 고려 건국 후, 만주로 간 것.

 

청나라 역시 '자신들의 뿌리는 신라.'라 한다

청나라 황제의 성씨(姓氏)는 애신각라(愛新覺羅).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자.'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흥겨운가락 신명나게 놀아보세, 북청사자놀이, 고전춤 

 

경북에 속한 동해 상에 있는 섬.,울릉도.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서 137km,

경상북도 포항시에서는 217km 떨어져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94km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217km. 

 

우릉도(芋陵島), 우릉성(羽陵城), 울릉도(蔚陵島),

울릉도(鬱陵島), 우릉도(于陵島), 무릉도(武陵島) 등.

 

울릉도는 죽변에서 동쪽으로 140㎞.

동해 묵호에서 161㎞ 지점에 있으며,

울릉도는 독도에서 92㎞ 떨어져 있다.

 

동경 131°52′,

북위 37°30′

면적 72.9㎢,

 

인구 10,220명(2008년)

행정 : 1읍 2면 25리 체제.

 

>남기자 여행사진<울릉도 최장수 향나무 '용이 승천하는 듯' 

                            세계 최고령., 울릉도 향나무

세계 최고령 향나무 울릉도에 산다 

 

울릉도 도동항 입구 우측 암벽 봉우리 향나무.

울릉도 발전 연구소에서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세계에서 최고령 나무로 수령은 약 5천년~6천년.

 

향나무는 옛부터 제사 때 향료로 널리 쓰여졌고

잡귀를 쫓고 병마를 예방하는 효험이 있다고 하여

동아시아 저지대 국가들에게 향료 원료로 쓰여졌다.

 

5다(五多 :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

3무(三無 : 도둑· 공해 뱀)로 알려진 섬 

해상 관광지로 각광 받는., 오징어 주산지. 


※울렁도 ( 우산국 )여행 1박2일 드로킹※

 

'울릉군'의 군청 소재지는 울릉읍 도동리.

울릉읍·서면·북면 등 1개읍 2개면 9개 동리.

울릉도는 알고보면 의외로 유서 깊은 섬이다.

 

울릉도(독도) 역사에도 신라-고려-조선 시대 불교가 있었다. 

 

울릉도 현포리.,돌무지 돌방무덤.

신석기시대 유물 및 신라 토기의 발굴.

신석기시대부터 뭍과 배로 교류한 흔적이다.

 

고려 태조 13년(930), 후삼국의 주도권이 고려로 넘어가자

우산국은 왕건을 찾아와 충성을 맹세하고 방물(方物)을 바쳤다.

 

고려가 새로운 통일왕조로 등장한 후 우산국은

고려로부터 우산국 혹은 우릉성(羽陵城)으로 불리며,

고려의 외곽 방어선 역할을 수행하며 계속 발전해 갔다.

의종 11년(1157)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 김유립(金柔立)이

우릉도(羽陵島)를 조사했을 당시에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석불(石佛), 철종(鐵鍾), 석탑(石塔)’ 등 유물 유적 등이 있었다.

 

이것은 적어도 11세기초 여진족의 침입으로 인해

이곳이 황폐화되기 전까지는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웹투어, 3.1절 기념 울릉도(독도) 특가 여행상품 출시 

 

울릉도는 512년(지증왕 13)에 우산국으로 처음 등장.

930년(태조 13) 우릉도, 덕종 때 우릉성, 인종 때 울릉도

고려 때 울릉도(鬱陵島)·우릉도(于陵島)·무릉도(武陵島) 등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하고

독도를 송도(松島: 마쓰시마)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메이지 정권 전후에 마쓰시마(울릉도), 다케시마(독도).

 

조선시대 독도에 30명 가량이 살았다 

독도

[울릉도]울릉도와 독도 사계를 담다

조선시대 독도를 지킨 건 바다사자 

 

'1392년 고려 말~1910년 조선 말'.,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로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 상 강원도 울진현(蔚珍縣) 속해 있지만,

왜구의 거점이라 조선 전기에는.,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한.,속도(屬島).

 

속도(屬島)란 '뭍이나 딸려 있는 섬'.

 

조선시대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사람들을

‘피역(避役)의 무리’로 보고 본토로 이주 시켰으나

그래도, 몰래 울릉도로 들어가 사는 백성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울릉도/독도를지키는 갈매기 

 

1412년(태종 12) 강원도 관찰사 보고에 의하면

11호 60여 명이 거주하였고 소와 말, 논은 없지만,

'콩과 보리를 경작하고 해산물과 과일이 많았다.' 한다.

 

태종세종 연간에는 울릉도에 군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구가 염려되어 읍은 두지 못하고.,쇄환정책을 실시.

울릉도에는 안무사 또는 순심경차관(巡審敬差官)을 파견

섬을 조사하고 본토로부터 몰래 들어간 이들을 이주시켰다.

또한 쇄환정책을 통해 울릉도가 조선 영역 임을 일본에 알렸다.

 

1471년(성종 2) 삼봉도(독도) 조사를 위해.,박종원 파견

1614년(광해군 6) 일본이 울릉도를 의죽도(礒竹島)라 하여

그들의 영토라 주장하고 다음해 울릉도를 조사하려고 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고

'조선과 일본' 양국 간에는 분규가 일어났다.

1693년(숙종 19)과 1694년에는 일본이 울릉도를

죽도(竹島)라 하면서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독도를 지켜낸 조선시대 어부 안용복 

 

1696년 안용복(安龍福) 등이 맹활약하여

울릉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을 종결지었다.

이후, 울릉도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안용복 일행과 일본 어부들의 충돌

조선과 일본 사이에 외교 분쟁이 발생해 안용복이 1차 도일(渡日).
1694년(숙종 20) 삼척첨사 장한상(張漢相)이 울릉도를 수토하였다.

 

‘독도 영웅’ 안용복, 일본에 살아 있다 3 

1696년(숙종 22) 안용복이 2차 도일하여

일본 호키주(伯耆州) 태수와 담판을 통하여

울릉도가 조선 영토 임을 분명하게 인식시켰다.

 

일본은 자국인 울릉도 출어, 벌채.,금지.

서계를 안용복을 통해 조선에 전달하였다.


1882년(고종 19) 검찰사 이규원(李奎遠)

'울릉도 검찰함' 울릉도 개척령을 반포했다.

전석규(全錫奎)를 울릉도 도장(島長)에 임명.

 

그후로부터. 수토정책을 철폐하였고
1883년(고종 20) 주민 16호 54명 이주.

1895년(고종 32) 삼척영장 겸임 도장제(島長制)에서

전임 도장을 임명하고 도장을 도감(島監)으로 개칭했다.

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개칭 후 강원도 편입.

행정 구역을 남면과 북면으로 나눔. 도감을 군수(郡守)로 개정.

 

1906년 울도군을 경상남도에 편입.
1914년 울도군을 경상북도로 이속.

 

쇄환정책과 수토정책.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는 강원도 울진현 속도

강원감사 지휘와 통제권에 있었으나 쇄환정책 또는

수토정책 틀속에 있어 하나의 군현 단위는 아니었다.

 

호적에 등재된 군현민도 없고

토공도 없으므로 이를 관장할

주수(主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릉도와 독도에는

쇄환정책과 수토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거주민들이 항상 존재하였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피역인(避役人)으로

범법자들이기 때문에.,쇄환과 수토의 대상.

 

조선시대 이들을 현지에 부적하고 주수를 파견하여

군현 단위로 획정하는 것은 강원도감사 소관이 아니고

중앙 정부의 소관이었고 따라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정책

그 결정권은 지방 관청 소관이 아닌 중앙 정부의 업무에 속했다.

울릉도의 파악, 쇄환정책, 수토정책의 실시 여부 및

울릉거민의 쇄환을 위해서 별도의 관리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안무사와 순심경차관이 파견되었다.

 

수토정책이 확립된 숙종조 이후

울릉도에 대한 수토는 2년 또는 3년마다

월송만호와 삼척영장이 교대로 한번씩 하였다.

울릉도를 속도로 거느리고 있는

울진현령 대신 삼척첨사와 월송만호를 파견.

울릉도 수토에 수군 동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있는 삼척과 함께

울릉도에 파견된 월송만호는 평해군의 동쪽 7리에 있는

월송포영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수군만호' 1명이 있었다.


 

유물과 유적

 

 

1. 대풍헌(待風軒)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중심에 위치한

기와집 동사 대청 문 앞에는 ‘대풍헌(待風軒)’이란 편액

대풍헌에는 ‘완문(完文)', '수토절목(搜討節目)’ 고문서 보관.

 

완문은 1811년이나 1871년,

수토절목은 1823년 경이나

1883년 작성된 것인듯 하다.

 

완문은  삼척첨사와 월송만호가 3년에 한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구산포에서 출발하여 그곳으로

돌아오는 행차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고문서(古文書).

 

그들은 순풍을 기다리기 위해 대풍헌에서 머물곤 하였다.

이때 유숙기간이 간혹 길어져서 접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관아에서는 그 경비를 9개 연해 촌락에서 각출하여 충당하였다.

 

그 과정에서 촌락의 동세가 각기 달라 민원이 자주 일어나므로

관아에서 그 해결 방안을 논의해 결정한 내용을 이 문서로 남겼다.

'수토절목(搜討節目) 고문서는 완문에서 정한 각 동의 비용이 많아

지탱하기 어렵다고 하여 각 동 대표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를 적은 것.

 

내용은 상선뿐 아니라 어선과 미역(藿物)을 실은 배가 선적물을 내릴 때,

전국의 해안에서 수세하는 수준의 세(貰)를 받자는 것이다. 민폐를 없애고

울릉도 수토경비를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의 실행조건을 절목으로 만든 것이다.

 

2. 대풍감(待風坎)

울릉도 태하리에는 유인 등대가 있고,

그 아래 대풍령(待風嶺) 또는 대풍감(待風坎)

이 고개 밑은 깊은 바다이며, 배가 많이 드나든 곳.

 

배들을 매어두기 위해 이곳에 구멍을 뚫었다.

바람이 불어야 항해할 수 있는 돛단 범선이기에

조선시대 이곳에서 바람을 기다린다 하여.,대풍령.

 

울릉도 태하향목전망대 및 울릉도등대 해안풍경 

울릉도

日 국회의원도 못 들어간 울릉도, 기자가 들어간 사연은? 


태하리는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하러 갈 때 상륙한 곳.

즉, 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위치한 대풍헌에서

바람을 기다리며 날씨를 보아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출발

 

울릉도 대풍감에 도착하여 수토를 한 후

다시 이곳 구산포 대풍헌으로 귀환한 것.

 

결국, 이곳은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구산포와

연결되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나루였던 셈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1호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 (蔚珍 待風軒 懸板 一括)  

울진 구산리.,대풍헌.

[울진여행] 경북 울진 대풍헌 -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독도(獨島).

 

 

'450만년전~2 50만년' 신생대3기 해저화산활동에 의해 형성.

이는 을릉도 및 제주도의 생성시기보다.,앞선 화산도(火山島).

해저 2천m로부터 시작된 지각활동에의해 융기된 화산성 해산.

 

원래, 독도의 동도와 서도는 한덩어리 화산섬이었으나

풍화, 해식으로 가파르고 날카로운 해식애가 만들어졌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급속한 냉각으로

파쇄각력암이 올라오다가 해수면에서 폭팔 분출.

대기와 접촉하면서 형성된.,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

 

세계 암석학 보고이며 세계적인 지질유적으로 평가된다.

해저화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곳.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독도 주변에는

메탄 고체로 된 천연가스가 대량 매장.

러시아과학원 무기화학연구소에서 발표.

 

이는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숨은 이유.

 

독도는 전술 전략적인 군사요충지이자

양 과학적, 지질학적으로 무한 지하자원.

향후 발생된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곳,

 

포항항만청, 독도등대 일일 등대장 공모 

현재, 독도 등대

독도는 우리땅!! 일본아들은 자주 헛소리!!,,,

독도 등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 세운.,등대터

독도등대 점등식....?

[뉴스경북=포항시]국립등대박물관, 광복70년 특별기획展 - 독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곳 '독도이사부길 63번지' 개최

독도등대 점등식....?

독도.,이명박 대통령

문재인, 독도 등대 방명록

독도 등대 방명록.

독도는 우리땅!! 일본아들은 자주 헛소리!!,,,

동해 : 독도 - 무인등대에서 유인등대로, 동해의 영원한 지킴이 독도등대

동해 : 독도 - 무인등대에서 유인등대로, 동해의 영원한 지킴이 독도등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우편번호는 799-805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

 

독도는 대한민국 땅 

307만(독도) vs 11억(다케시마)..점령당한 '독도 영유권' 

 

독도가 한국땅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독도(獨島)............................

'발해~ 신라~ 일본'을 이어주던 동해 항로 상에 위치

행정구역 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한다.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

 

옛날부터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獨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1952년 1월 18일 독도를 포함한 영해를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으로 선포했다.

 

우리나라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

특히, 한·일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의 대상.

.....................................................

 

독도는 우리땅!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관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묵었던 경북 울진 대풍헌 

조선시대 독도를 지킨 건 바다사자 

바다사자 류.,가지(可支)

[칠레] 펭귄,바다사자,펠리컨들의 낙원 다마스 섬(Isla Damas) 투어 

독도 바다사자를 찾아서 ▷ EBS >하나뿐인지구 신년특집<

독도 바다사자를 찾아서 ▷ EBS >하나뿐인지구 신년특집<

[독도 다시보기]제2화. ‘구호보다 보호’ 독도를 지켜라!

독도 바다사자 멸종을 막기위한 정책적 배려

“日이 멸종시킨 독도 바다사자 돌려주세요”

 

1476년 (성종 7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삼봉도(三峯島).

1794년( 정조 18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가지도(可支島).

 

18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독도의 가지를 마구 포획.

1940년대 멸종 단계에 이르러 사라져 버린.,가지(可支).

1905년 동해 상 가지 포획을 위해 일본 영토로 편입된 독도.

 

1905년부터 8년간 무려 1만 4천마리를 포획하여.,도살.

가죽은 피혁제품, 지방은 기름,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

19세기 초까지 '4 ~ 5만'마리 가지가 독도에서 사라졌다.

 

'1904~1911년' 독도에서 157km 떨어진

 일본 오키 섬의 어부들이 마구 포획한 탓.

 

독도는 조선영토다- 안영복에서 칙령 제41호까지 

10월25일 독도의 날에 알아보는 <독도에 관한 진실 열 가지>- 독도는 영토 분쟁 대상이 아니무니다!!!

독도가 가지는 법적지위(위치)란? - 매년 10월은 독도의 달,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독도가 가지는 법적지위(위치)란? - 매년 10월은 독도의 달,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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