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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누가복음 5:1~11.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지라라고 믿는 사람은? 2014. 8.21

작성자이상열|작성시간14.09.20|조회수106 목록 댓글 0

누가복음 5:1~11.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지라라고 믿는 사람은? 2014. 8.21

 

누가복음은 바울과 같이 전도활동을 하였던 누가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누가는 예수님과 같이 활동하였던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바울의 전도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바울과 같이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누가는 바울에 의해서 전해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더 잘 알고 싶었습니다. 누가는 그의 직업이 의사였기에 의학적 관점과 과학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보는 틀이 있습니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본 것을 분석을 하고, 분석한 내용들을 종합하고 취합을 합니다. 그리고 맞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러니까? 누가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이, 직업이, 전공이, 그를 이끌고 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전문성이 그 사람을 이끌고 갑니다. 그래서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은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바로 알고 정확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믿음의 확실함으로 설 수 있도록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누가 복음을 보냅니다. 그래서 눅 1;1-3 에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나중에도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보내는데 먼저 보낸 글에 대하여 언급을 합니다. 그리고 보낸 글의 내용과 함께 목적도 밝힙니다. 보세요. 누가가 누가복음을 영감으로 기록을 하면서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확실함을, 이런 표현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는 의학적, 과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보아도 그냥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몇 가지인데, 구세주를 강조하고, 기도를 강조하고, 말씀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복음은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세주시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라는 틀에서 보고 구세주라는 틀에서 분석을 하고 구세주라는 틀에서 종합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만 구원하심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을 넘어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이십니다. 내 자신과 내능력과 내 지혜가 구세주가 아니라, 예수님이 구세주 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모든 일과 백성들의 요구 앞에서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기도문이 여기에 나오고, 스스로 새벽미명에 기도하셨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습관처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우리 신앙의 기초임을 강조합니다. 구세주인 예수를 통해서 기도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 끊임없는 기도, 계속적인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 받고, 기도를 통해서 그 날의 삶을 규정짓고, 기도를 통해서 원대한 소망을 이루고, 기도를 통해서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출신이, 배경이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문제가  소망과 비전이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해답은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문제 해결도 주님에 대한 간구로 답이 됩니다.  기도가 누가복음의 강조 부분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예고가 있습니다. 이때 천사 가브리엘은 눅1:20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그리고 마리아는 말씀 앞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때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성령에 감동되어 선포합니다.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강조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진다는 확신입니다.

4장에 예수님이 성령에 충만하여 광야로 이끌리어 가십니다. 그때 마귀가 유혹을 하는데 3가지를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이 3가지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8:3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다’ / 6:13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 6:16‘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특히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다라는 신8:3절에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건강해지고 말씀을 먹어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말씀을 먹어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말씀으로 악한 사탄, 마귀, 어두움의 세력이 떠납니다. 말씀으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으로 영혼이 소생을 합니다. 그런데 요32절의 말씀과 같이  영혼이 건강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집니다. 예수님의 4가지 밭에 씨뿌리는 비유에서 1006030배 결실을 하는 옥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8:15절에 옥토에 대해 예수님이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말씀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를 갖는가? 내 삶에서 말씀을 지키는가? 어렵고 힘들어도 말씀으로 인내하는가? 이것이 옥토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에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과정이 있습니다. 과정 없는 결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첫 출발, 그 과정 속에 가장 먼저 무엇을 끼고 보느냐? 가 중요합니다. 어떤 것으로 보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파란 것으로 끼고 보면 파란 것으로 나옵니다. 3D로 끼고 보면 그 형상과 모양이 나옵니다. 검정으로 끼고 보면 검정이 나옵니다. 색깔을 끼고 보면 그 색깔이 나옵니다. 세상을 신앙으로 보는가? 무엇을 끼고 보는가? 시작이 중요합니다. 이 것이 관점입니다. 그러면 보았으면 어떻게 합니까? 본 그 것을 분석을 해야 합니다. 신앙으로 본 세상, 삶을 분석할 수 있는가? 분석을 못하면 끼고 본 의미가 없어요. 분석을 해야지요. 그런데 분석이 무엇입니까? 분석을 잘 정리 해 놓은 것이 이론입니다. 그 이론은 전개된 상황을 분석으로 세운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론만 있어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이론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론이 똑 같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이론이 있습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창조론이 있고 진화론이 있습니다. 뭐 어디 이것뿐입니까? 갈은 것을 끼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현실에서 분석을 해도 사람마다 제 각각입니다. 그래서 처방도 제 각각입니다. 그래서 세미나에 목을 메면 세미나에 갈 때마다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해답과 진단에 대한 이론이 다 다르니깐요. 어떤 분이 요셉을 위선자라고 합니다. 왜 위선자라고 해석을 하는가? 들어 보았더니 아버지 앞에서 다르고, 형들 앞에서 다르고, 보디발 앞에서 다르고, 감옥에 가서 다르고, 감옥의 사람들한테 다르고, 바로 왕 앞에서 다르답니다. 총리가 되고, 총리 된 이후에도 다르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위대하게 된 것이 그의 처세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이 말씀입니다. 위선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해서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위선자 이론입니다.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상황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아녜요. 위선자였으면 아버지의 심부름을 적당하게 합니다. 형들이 없으면 아버지의 심부름을 그만 두지요. 그런데 세겜까지 가지 않습니까? 위선자면 형한테 하는 것이 달라야 되잖아요?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이 위선자면, 상황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무엇이든지 할 수 있잖아요? 상황에 따라, 여건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른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와 총리가 된 이후에도 달라야 하잖아요? 목적을 이루었으니까? 이런 이론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론이 많으면 이론을 세운 그 사람도 헷갈립니다. 여러분, 요셉을 요셉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요셉을 그 시대에 반드시 사용하시고 쓰셔야 할 인물이기에 세우신 것이고, 또 요셉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성실하게 살았기에 더 크신 축복을 하신 것이고, 또 요셉이 모르고, 배워야 하니까? 알아야 하니까? 고난의 용광로를 통해서 더 위대하고 ,더 큰 인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나중을 위해서... 그러면 여러분,  세운 이론을, 보고 분석한 내용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분석한 내용을, 이론을 종합해야지요. 종합이 안 되면 그 때부터는 안 한 것만 못합니다.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동경으로 갈까? 오사카로 갈까? 그러면 왜 종합이 또 중요합니까?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더 나쁜 것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종합을 하고 끝을 맺습니까? 종합을 하고 그리고 확인을 해야지요. 제대로 되었는지? 잘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하지요. 좌우로 흔들어 보고, 앞뒤로 걸어보고 정확하게 되었는가? 만들어 졌는가? 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셋팅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끼고 보는 것, 본 것을 분석하는 것, 분석을 했으면 종합하는 것, 종합한 다음에 확인 하는 것 이런 중요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 무엇을 끼고 보느냐? 이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작이 잘못되면 과정도, 중간도, 끝과 결과도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잘못되도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으로, 신앙으로, 믿음으로, 말씀으로 세상을 보고, 현장을 보고, 미래를 보고, 비전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5:1~11절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전날 밤 베드로는 밤새 수고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원래 갈릴리 바다는 물 반 고기반이라고 소문난 호수입니다. 헐몬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프랑크톤과 함께 모이는 호수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내리면 고기가 그리로 들어오는 곳이 갈릴리 바다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 밤에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힘없이, 가우뚱 하면서 고깃배를 해변에 대고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배에 올라타셨습니다. 배를 조금 뭍에서 떼기를 청하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끝내시더니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베드로가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갑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왜 베드로가 그물을 내렸을까요? 자기의 배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단서를 답니다. 그랬더니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사실 베드로는 밤새 일하여 몹시 피곤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무것도 잡지 못하여 더 몸도 마음도 지쳤고,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갈릴리 바다와 물고기를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정리하는 것이 헐 다음을 위해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을 합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멧세지는 무엇입니까?

 

1.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들이 오늘 우리를 비웃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합리적인 사람이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오늘 합리적인 사람이 본문을 통해서 절망을 배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실패와 허무 가운데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 사실이 정답인줄 알고 살아 왔는데 그 것이 삶의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당연히 되어져야할 그 상황에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반 상식이 먹히지 않습니다. 객관적 진리가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내리면 당연히 그물 속에 고기가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상식, 그 진리, 그 전문적 능력이 현실화 되지 못하고 다음을 약속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이 등장을 합니다. 등장하신 예수님께서 실패의 베드로의 배를 이용해서 대중들과 베드로에게 말씀을 증거하십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아도 되는 일인데 그 되는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갈등하는 것도 이것 아닙니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들이 당연히 적용이 되어야 하는데, 적용이 되어서 아름다운 결과가 산출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향하여 이야기와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우리를 비웃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수고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물 반 고기반이라고 소문난 호수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 밤에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대하여 정통한 어부입니다. 전문가이고, 선장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는 사람입니다. 합리적방법론의 프로입니다. 이론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경험이 있습니다. 생태학적으로, 관념적으로 압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유업입니다. 오감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성공인생의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도, 해산의 고통에 따르는 수고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정리하고 싶고, 그물을 씻는 것입니다. 한심과 두려움과 걱정이 앞을 가립니다. 잘못 던졌나? 그물을 잘못 들어 올렸나? 무엇이 잘못 되었나? 그물을 씻습니다. 한숨을 지면서 .... 여러분, 노력하면 된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노력하지 말고, 열심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도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으로 상황에 대하여 확신을 얻고, 그 위에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다음으로 미루었던, 확실치 않았던, 수고 했지만 얻지 못했던 결과를, 다시 시작한 바로 그 때에  얻습니다. 이것이 반전을 이루게 되는 베드로입니다. 여러분, 지식과 경험, 생태학적으로 관념적으로 직관적으로 다 아시지요? 살아온 경험이 풍부하지요? 그런데도 되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 때문에,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지만 얻은 것이 없기 때문에 힘이 드십니까? 한 마리도 못 잡아서 걱정이 되십니까? 수고의 열매가 없으므로 낙심이 되십니까?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 오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실패와 낙심한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시119;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곤란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도다. 주의 말씀이 베드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60:4절에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여러분, 지금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기대하며 다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주님이 친히 내가 하겠다입니다. 그러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은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질 줄 믿습니다.’입니다. 이것이 지금 베드로에게 힘이 되며 소망이 되는 반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45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적용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로 그물을 던지면서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처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고, 말씀을 쫒아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습니다. 남은 2014년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주셨던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 ”

 

2. 오늘 본문이 주시는 두 번째 멧세지는 무엇이든지 혼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도, 승리도, 아름다운 결과도, 위기의 극복도, 고난의 지남도, 무거운 멍에의 벗음도 혼자서 아니 됩니다. 오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비웃음을 일순간에 날려 버립니다. 깊은 곳은 물고기가 없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6절에 보면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찍어지는지라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의 달지 말고, 전 적으로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으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한 번 더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제자들이 다시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바라봄의 원칙을 앞세워서 앞을 보고 신나게 가다가 아무것도 없을 때는 이미 배운 도적질 못 버린데요, 예수님이 보이는 육체로 없으니까? 보이지 않으시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인식을 하고 자기의 살길을 찾습니다.  어부로 사는 것은 3년 전만해도 베드로의 몸에 베인 일입니다. 배운 것 어부라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다가오셨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처음제자로 부를 때의 깊은 데가 아니고 지금은 배의 오른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수가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깊은데, 오른쪽이 해답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깊은 곳이 해답이 아닙니다. 오른 편이 해답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해답이고 레마의 말씀이 해답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영감을 받아 사업을 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모나미 볼펜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 모나미 볼펜이라는 회사의 회장이 송삼석이라는 사람입니다. 송 회장이 사업이 힘들고 고전하고 있을 때에 요21장에 나오는 말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153마리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 영감을 받고 모나미 153을 만듭니다. 모나미 153이 모나미 회사의 브랜드가 됩니다. 말씀대로 사업을 하면 복이 있을 것이며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나니 153볼펜을 만들었습니다. 이 볼펜은 40년동안 한국의 대표 볼펜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삶의 그물에 물고기가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많이 잡게 했을까요? 지금까지 없던 물고기가 왜 그곳에 있다가 베드로의 것이 다 되었을까요? 3사람의 동료를 부르고 같이 나눌까요? 여러분, 결과는 혼자서 갖는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려고 하는 것, 교만을 넘어서 무지입니다. 같이 가야합니다. 무엇이든지 혼자는 아니 됩니다. 쉬는 것도 혼자 있는 것은 외롭습니다. 오죽하면 하와를 만드셨습니까? 독처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혼자는 아니 됩니다. 나 때문에 이웃이 좋아져야 되고, 나 때문에 이웃이 행복해야 합니다. 성공도, 비전의 이룸도, 위대한 산출도 혼자는 아니 됩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나한 자신도 힘이 들었는데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의지하여 순종을 하면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주류, 주도자가 됩니다. 이 것이 두 번째의 멧세지입니다.

 

3. 말씀에 대한 순종이 나의 삶을 바꿉니다. 말씀에 순종하였던 베드로에게 임한 진정한 축복은 그의 인생이 바뀐 것 입니다. 예수님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이후 베드로는 이제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어부에서 일약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들어갑니다. 그 것도 예수님의 사역 속에 있는 거룩한 소명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 주님을 따르라는 가장 쉬운 표현이 무엇입니까? 어부는 알지요. 거기에 물고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 되어진 사람을 낚는 어부, 얼마나 이해가 빠르겠습니까? 인생이 바뀝니다. 삶의 영역이 바뀝니다. 삶의 지경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12제자가 되고 또 수석 제자가 되고 나중에는 그리고 행2장에 보면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더니 우리가 어찌할 꼬하면서 회개하며 세례를 받은 사람들3천 명 정도가 됩니다. 이뿐 아닙니다.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의 솔로몬행각에서 설교를 하는데, 이 설교로 믿는 자가 5천이나 더하였다 합니다. 허다한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는 일을 감당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어부였던 베드로, 그러나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하여 번번히 빈손이어서 가난했던 베드로, 이 베드로의 인생이 예수님 안에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사도가 되었고, 교회역사상 1대 교회리더(교황)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인하여 인생이 변화된 사람이 많습니다.

어거스틴은 롬13:13절의 말씀으로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의 지금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됩니다.

루터는 롬1:17절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종교개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앞을 못 보시던 강영우박사는 요9장 예수님의 말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말씀에 소망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국무부 차관보의 자리에 까지 오릅니다.

오늘 우리는 수1: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이 말씀이 내 자신을 지키고, 말씀에 대한 순종이 나의 삶을 바꿉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베드로를 바꾸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의 길이 예수님이고 그의 인생의 진리가 예수님이고, 그의 인생의 생명이 예수님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나를 바꾸고, 나의 인생을 바꿉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바로 그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주님은 아무나 들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 주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의 실행을 통해서 복을 받은 사람을 쓰십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베드로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게바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계속 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배에 오르셨고 자기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에 순종을 하므로서 많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전개를 통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립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그를 떠났던 것을 회개합니다. 여러분, 죄인이 무엇입니까? 당시, 율법으로부터의 부족이고, 결핍입니다. 그 때 이 부족과 결핍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나는 무엇, 무엇이 있어도, 당신한테 비하면 비교할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능, 무지를 깨닫는 성찰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회개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나 들음을 통해서 드러난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너희를 고친사람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들이 출교를 시킬까 두려워 알지 못한다 말을 합니다. 그러나 소경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그분은 선지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여 내가 믿나이다전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고침을 받고, 회복이 된 사람이 담대하게 유대인 앞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까요? 그 것은 주님 안에서 놀라운 체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체험이 언제 일어날까요? 바로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진 것처럼, 소경된 사람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여 실로암 못까지 가서 씻었던 것처럼, 말씀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영적체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용하십니다. 당신의 목적에 맞는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린 모든 분들이 베드로처럼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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