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9;18-24. 라마나욧에 있나이다. 2019. 3. 17.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울과 다윗, 그리고 선지자 사무엘의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물론 바로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요나단과 미갈과 사울의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들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로서 자기 나름대로 이스라엘 왕국 초기의 역사를 주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19;1절에 사울 왕이 그 아들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실제로 사울 왕이 직접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던집니다. 사울과 다윗은 지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이며,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라마나욧에 피신하여 숨었는데 이렇게 피신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라마에 기거하고 있는 사무엘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라마나욧에 숨었다는, 사무엘을 찾아 갔다는 이 사실을 알려줍니다. 정확하게 더 이상 피할 수 없도록 콕집어서 가르쳐 줍니다. 이에 사울 왕이 다윗을 추격하여 라마나욧으로 오지만 두 사람 다 자기 스스로 해소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의 현실이라는 올가미에 묶인 채 무엇에 쫓기면서도 어떤 해결책이 없었으나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 라마나욧이라는 장소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이끌려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그 곳이 라마나욧 입니다. 두 사람은 라마나욧에서 은혜를 입습니다. 그 라마나욧의 은혜는 선지자 사무엘이 주도하는 나욧이라는 선지학교, 신앙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은혜가 됩니다. 사울과 다윗이 라마나욧의 은혜를 덧입습니다. 그러면 라마 나욧에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참가하여 어떤 은혜를 받고 어떤 체험을 하게 됩니까?
Ⅰ. 먼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삼상1;1,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입니다. 오늘 다윗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무엘을 찾아 라마에 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잡아오기 위하여 사울 왕의 용사들을 라마에 파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명을 받고 그곳에 간 사울의 사자들은 하나 같이 성령에 감동되어 선지자들과 함께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자기가 직접 라마에 가게 되었는데 사울 왕도 역시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성령에 감동되어 버렸습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을 찾았을 때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고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라마 나욧은 악한 시험에 들린 사람,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찾아가는 은혜의 장소가 됩니다. 사울 왕이 목적을 가지고 라마나욧에 왔습니다. 그러면 사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울은 본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9:2에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사무엘상 9장에 사울이 자기 집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하여 사환을 데리고 여러 곳으로 다니던 중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 갑니다. 그래서 사울이 산당에서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는데 사무엘은 그 전날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기스의 아들 사울이 자기에게 올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대로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그 내용은 곧 잃어버린 암나귀는 집에 돌아왔다는 것과 그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삼상10;1, 식사를 마친 후 사울을 따로 불러 그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을 맞추며 왕이 될 것을 선언합니다. 그 후 10;10, 사울은 성령에 감동되어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고 사람은 누구의 지도를 받느냐? 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고 사무엘의 손을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때는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이 되어 예언을 하는 등 성령의 은사를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당시 베냐민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지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작은 베냐민지파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왕이 된 사람입니다.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1-1.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왕은 은혜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다음 군대를 모집하여 블레셋과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상13;13, 사울은 선지자를 기다리다가 불안한 나머지 자기가 직접 번제를 드렸는데 이 일로 인하여 사무엘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는 또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에 자기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삼상15;9,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를 통하여 그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은 죽이거나 불태우라고 명령했는데 사울은 명령을 받고도 욕심이 발동한 나머지 살찌고 좋은 짐승들을 숨겨 놓고, 아말렉의 아각을 살려 줍니다. 사울 왕은 또 삼상15;12, 갈멜에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립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사무엘도 사울을 찾아가서 15;23,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저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귀한 말씀을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과 사무엘과 다윗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1-2. 순종하지 않고 듣지 않는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무엇이 찾아올까요? 악신입니다. 사울 왕은 악신에 사로잡혔습니다. 유다1;6에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다고 합니다. 히6;4-6, 은혜를 받은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던 사울이 그 지위에서 버림을 받고 패가망신하는 길로 치닫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신이 떠나가고 오히려 악신에 사로잡힙니다. 사무엘상 16:14에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에게 악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악신에게 사로잡힌 사울은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만 합니다. 자기를 도와주고 이스라엘을 구했던 그래서 사울 왕의 왕권을 든든하게 했던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단창을 던집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여러 차례 군사를 풀어 토벌 작전을 폅니다. 사울은 삼상22;18, 놉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찾아가서 다윗을 은신시키고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과 제사장의 가족, 에봇을 입은 사람 팔십 오명을 한꺼번에 죽입니다. 젖먹이와 어린아이들도 죽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은 사람이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사울이 이런 일들까지 할까요? 악신이 들었기 때문이고 악신에 의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문제를 지닌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듣지 않는 사람은 악신이 찾아옵니다. 세상이 찾아옵니다.
2. 다윗입니다. 다윗은 10년 이상을 도망을 다녀야하고 지금도 고난을 받는 다윗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친 이후에 사울의 부름을 받고 그의 측근에서 왕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의 1000부장과 군대장관을 지내다가 갑자기 사울왕의 적이 됩니다. 여러분, 다윗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빚진 사람과 환난 당한 사람과 마음에 원통한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한 번도 사람을 이용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도 다윗이 사울 왕의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 사울이 악신의 충동을 받아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손에 든 단창을 던졌습니다. 이 죽음의 사태에서 다윗은 몸을 피하여 집으로 달아났는데 곧 이어 사울왕의 군대가 급습을 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은 사울 왕의 딸 미갈의 도움을 받아 밧줄을 타고 창밖으로 도망하여 그 길로 라마 나욧에 갔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을 받으며 이스라엘 전역에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에 은신을 합니다. 다윗은 별 다른 이유 없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6:1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분부하시기를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새의 말째 아들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상 16:13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었다고 합니다. 선택함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으면 당연히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이 됩니다. 그래서 신약, 행 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역사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정이 지금 사울 왕에게 10 년 이상 도망을 다녀야하고 억울함을 받게 되는 다윗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마1;1,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사람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졌고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주님의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나요?
2-1. 다윗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고전10;3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는 왕이 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삶의 목적을 두고 거기에 매진합니다. 삼상 17:26에 보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에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 되었어도 자기의 명예나 권위를 높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오직 그 말씀과 법도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시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 하나이다. 고백을 합니다. 시119:133,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지키고 아무리 어렵고 고통이 되더라도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목적과 목표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다윗은 그 이후로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됩니다.
2-2. 다윗은 의로운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현실에서 주어지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는 고난의 의미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울 왕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사람들이 행하는 과오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선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의롭게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3:1에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얼마나 세상이 불의하고 얼마나 악한 사람이 많이 있으면, 얼마나 악한 사람이 집요하면 이런 사실로 기도를 합니까? 다윗은 그의 평생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것 같은 고난의 날들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안위해주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은 다윗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100배의 복을 받는 것은 그냥 되어지지 않습니다. 막10;30, 세상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자녀와 전토가 100배나 복을 받되 박해도 겸하여 받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이 이런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까? 사순절 기간 동안 이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고 결국에는 다윗처럼,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과 비전이 이루어지는 그래서 온전한 주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이제 오늘 본문 은혜의 장소 라마 나욧입니다. 라마나욧이 어떤 곳입니까?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언제 어디서나 그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상16;13, 사무엘이 거처하는 곳은 라마에 있는 고향집이었습니다.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입니다. 그곳에는 사무엘을 추종하는 선지생도의 무리가 있었고 사무엘은 그들을 세워가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곳으로 도망을 왔습니다. 왜 이곳으로 왔을까요? 다윗이 도피한 라마 나욧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8km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이곳은 군사적인 요새도 아니고 상업이 번창한 경제적인 중심지도 아니고 시골의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작은 라마가 유명하고 은혜가 있는 도시 라마가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인생의 가장 위기의 순간에 이런 작은 마을, 라마로 도피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에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으로 선지학교가 세워져 있었고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은혜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가장 뜨겁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다윗이 안전한 곳을 찾지 않았습니다. 멘토 사무엘을 찾았습니다. 다윗은 가장 지혜로운 결정을 하는데, 숨을 곳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장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을 찾았습니다. 사람을 찾았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 산성에서 칼과 창으로 보호받는 것보다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과 함께하면 하나님과 사무엘이 지켜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과 선지자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잡으려고 온 사울의 전령들과 사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에 온 사울과 전령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려 하심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을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칼과 창으로 보호하심보다 더 큰 능력이 있음을 증거하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도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장소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그의 사자들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하여 라마에 왔지만 결국 그들도 사무엘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 속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소년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미래의 왕으로 안수를 받은 기록은 사무엘상 16장에 나옵니다.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미래의 왕으로 안수를 받았다 하여 곧바로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십 수 년에 걸친 혹독한 시련의 기간을 거쳐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 왕은 다윗을 해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울 왕의 눈을 피하여 떠돌이로 숨어 다니던 다윗이 영적 지도자였던 사무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사무엘은 온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은퇴 이 후 고향인 라마로 내려가 한적한 생활을 할 나이에 사무엘은 오히려 더 보람되고 더 중요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욧이란 공동체를 고향 라마에 세워 전국에서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민족의 나갈 길을 하나님께 묻는 일에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세운 그 공동체가 라마에 있었기에 라마 나욧이라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다니다 자기를 찾아 온 다윗을 라마 나욧으로 맞아들여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며 장래 지도자가 될 훈련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라마 나욧에 몸을 의탁하여 있다는 정보가 사울 왕에게 올라가자 사울 왕은 정예 군사 3천명을 풀어 다윗이 그 공동체에서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렸습니다. 18-19, 다윗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다윗이 그곳에서 사무엘의 영적 멘토를 받으며 사무엘 선지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다윗은 밖에서 지키는 군사들이 알기 전에 그곳에서 도망하여 아둘람 굴로 옮겼습니다. 라마나욧이나 아둘람 굴은 은혜의 장소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임재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신약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 공동체입니다. 여기에는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서 이질적인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마 나욧에 사울과 다윗처럼 반목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어떤 장소에서나, 어떤 종류의 사람이 모였을지라도 예수 이름으로 연합되는 곳에 임재하시고 그들 속에 역사 하십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는 비전교회가 라마나욧이고 아둘람 은혜의 굴인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의 공동체에서 주의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그런 은혜의 비전교회가 되시고 그 주신 감동으로 세상을 이기며 고난을 벗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1. 하나님의 신이 역사 하는 곳, 라마나욧 입니다. 20절,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사울이 다시 사자를 보내었을 때도 성령에 사로잡혔고 세 번째 보낸 사자들도 전과 똑같이 성령에 감동되어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예언을 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 자신도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예언을 했으며 24졸,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다는 속담까지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성령이 주도하는 예배당이고 여러분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성향이나 그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면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고전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울과 전령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은 더 영적인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심지어 신접하는 여인에게 찾아가서 점을 치기도 합니다. 사울에게 라마 나욧의 체험은 잠시 영적인 분위기에 휩쓸렸을 뿐입니다. 영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목적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하나님의 임재는 거품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 한다고 단번에 모든 것이 변화될 수도 있지만 자기자아와 고집이 있는 사람은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늘 은혜의 장소에 있어야 하고 늘 은혜의 사람과 함께해야 합니다.
3-2. 과정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라마나욧 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하나님께서 임재 하십니다. 성령이 주도하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라마 나욧은 성령에 감동된 무리들로 은혜가 충만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피난 온 다윗의 무리나, 악신에 사로 잡혀 미친 사울의 무리나, 모두가 다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부터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구별 없이 모두가 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신령한 세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행 16:25-31, 옥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부를 때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죄수를 지키던 간수가 등불을 들고 와서 바울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부르짖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수감된 빌립보 감옥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구원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라마 나욧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당신이 쓰시는 사람들을 다루시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것이 무엇입니까? 광야를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가나안의 광야를 헤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기까지 40년간 미디안광야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 역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환상을 본 바울도 다소에서 은거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대부분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은 광야의 시간을 거칩니다. 이유는 자기열정, 이전의 자기고집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열정에 빠지면 길을 잃습니다. 자기열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일을 자기의 일로 바꿔버립니다. 모든 일을 자신이 했다고 여깁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로 시작된 것을 자기열정으로 자신의 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잘못됨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공격을 피하여 라마로 갔습니다. 라마에는 사무엘이 만든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욧 입니다. 다윗이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욧에서 살았다는 표현을 합니다. 여기에 쓰인 단어 야샤브는 거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곳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사무엘의 제자학교에서 광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광야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주입된 이념과 종교적 신념까지도 부수고 버리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과정이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오히려 자기열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길을 잃게 되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뜻을 외치면서도 자기 열정으로 일을 하고, 하나님 나라를 외치면서 자기 나라를 구축하고, 자기의 진리, 자기의 신념을 위하여 죽도록 싸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런 믿음은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왜요? 자신을 버리는 광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광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마나욧의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나의 상식으로, 나의 경험으로, 내 스타일로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광야의 과정을 거치는 그래서 온전히 주님의 사람으로 더욱 복된 공동체, 비전교회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