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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시 23;1-6. 목자. 막대기. 잔 3. 2020. 7. 12.

작성자이상열|작성시간20.07.11|조회수199 목록 댓글 0

23;1-6. 목자. 막대기. 3. 2020. 7. 12.

 

여러분, 항상 우리가 주의 할 것이 있는데 그 것은 말과 표현입니다. 세상 사람이든지 신앙인이든지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말과 표현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행동도 조심해야지요. 그런데 건강해 보이는 사람한테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요즘 어디 아픕니까? 무슨 걱정 있습니까? 라고 하면 이 표현을 듣던 상대방의 가슴이 덜컥합니다. 힘들어 보이더라도 좋아 보입니다. 얼굴이 좋아졌습니다. 생생한데요. 이렇게 말하고 표현해 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입장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많이 세월이 흘렀네요. 그래서 그런지 폭삭 늙으셨어요. 그러면 상대방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어느 분이 저한테 아니 얼마나 힘드세요? 성도님들을 돌보고 섬기시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그러면. 마음이 사실 편하더라도 아 정말 어려운 일이 있어 보이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위하여 말을 해도 허물이 안 되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허물이 안 되는 말은 결혼식장에 가서 신랑, 신부를 치켜 주는 말과 표현입니다. 좀 시원찮은 사람이라도 어떻게 저렇게 멋있는 신부를 만났노. 참 멋진 신랑 구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정말 잘 어울린다, 멋있다! 이런 말은 허물이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표현은 물건을 샀을 때입니다. 이미 돈을 주고 샀습니다. 물건을 사고 난 이후에 물건을 산 사람이 좀 어때요? 라고 하면 그때, 잘 샀어. 좋네요. 그러면 되는데, 옷을 사고 이 옷 어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잘 어울리고, 멋있네. 그런데 그것도 옷이라고 돈 주고 샀니? 몸 메가 아깝다 그러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는 표현과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늘 여러분을 사랑하고 늘 지키시고 늘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로 부터 무시함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무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 일이 없고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생각한다는 말이 영어로 무엇입니까? think입니다. 말하기에 앞서서, 행동하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think를 철자대로 풀어서 의미를 부여하면 ttruth, 과연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 진실 된 것인가? 잘못되고 거짓된 것은 아닌가? hhelp 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내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 깊이 생각 하는 것입니다. iimportant입니다. 이 것이 중요한 일인가? 인생의 길에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nnecessary로 이 말을 지금 꼭 해야 하는가? 이 행동을 지금 꼭 해야 하는가? 그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필요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kkind입니다. 친절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지, 친절한 행위인지를 생각하면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부터 세상을 떠 날 때까지, 왕위를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양위를 할 때까지, 블레셋의 아기스에게 망명 할 때 까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유다를 비롯한 통일 왕국의 왕이 될 때까지 이렇게 think를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위가 되시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합니다. 나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요한복음 3:16절 다음으로 유명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와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 할 때에 이 시23편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군인 복무를 위하여 군대를 입대할 때와 사랑하는 자녀들이 결혼할 때와 아끼는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생할 때와 병상에 있을 때에도 이 말씀으로 시작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제일 많이 읽고 외우고 들었던 말씀이 시편 23편입니다. 그러면 이 23편의 첫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해답이라는 선언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함을 받을 필요가 없고 무시를 당할 그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1절 이후의 말씀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해답이 되시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선언을 했는데 그 선언에 대하여 어떤 축복이 임합니까?

 

1.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신앙인에게는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한마디로 부족하고 모자라는 세상입니다. 물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하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에 따라 채울 수 있는 것으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이나 물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가지면 만족할까요? 1억 엔 이나 10억 엔, 100, 1조 엔을 가지면 만족할까요? 유산 상속과 재산의 분배로 얼마나 형제자매들이 법정 싸움을 합니까? 얼마 전에 일본에서도 개정된 상속법이 통과가 되었습니다. 싸움을 하니까? 정리를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물질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누릴수록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세상 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과 보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짐승은 먹을 것 있고 잠자리 있으면 만족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무엇이 부족하다고 잠 못 자고 끙끙대며 고민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배불리 먹고, 제 주인이 옆에 있으면 그냥 제 집에 들어가잡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사업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아도 참 만족이 없습니다. 왜요? 인간은 소중한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의 만족이 없을 때 세상의 무엇을 가지고도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참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인간이 겉으로 보기에는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양처럼 매우 약한 존재입니다. 약간 상한 음식만 먹어도 탈이 나고, 날씨만 추워도 감기 걸리고, 손톱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몸에 열이 나고, 혈관이 조금만 막혀도 동맥경화에 걸리고, 조금만 혈압이 상승해도 고혈압, 뇌출혈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양이 목자를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2.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하나님을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신앙인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2-3,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무엇입니까?

 

2-1.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영혼이 소생이 되는 것, 되 살아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생이 되려면 소생이 되는 통로가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소생은 푸른 초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동 지방에는 풀밭이 거의 없습니다. 몇 십분 달려도 겨우 가시 달린 싯딤 나무 몇 그루를 발견할 수 있을 뿐, 가도 가도 끝없이 광야와 사막이 펼쳐집니다. 풀이나 나무는, 물이 고여 있는 오아시스나 물이 흐르는 계곡 근처에 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곳은 헐몬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요단강이 흐르는 줄기입니다. 요단 동편과 서편의 주변입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의 시혼과 옥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부유했습니다. 오죽하면 르우벤, ,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서편으로 넘어가지 않고 요단 동편에 살겠다고 모세에게 간청을 했을 까요? 다시는 이런 옥토를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 결국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결국 요단 동편의 시혼과 옥이 통치하던 옥토를 분배 받습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은 어떻습니까? 더 좋은 땅이고 옥토였습니다. 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에스골 골짜기에서 두 어깨에 메고 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풍족한 땅입니다. 그래서 아낙자손이 살았고, 견고한 성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곳을 차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는 이 곳을 요단 온 들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양인 저와 여러분들을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소생이 되었습니다.

 

2-2. 목자 되신 하나님은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하나님이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신앙인을 의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양은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양은 완고한 동물이어서, 종종 엉뚱한 짓을 잘 합니다. 한 입밖에 되지 않은 풀을 욕심내고, 가파른 낭떠러지 가까이 가고, 강물에 빠지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모르는 움푹 들어간 곳에 가서 혼자 뒤집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가 넘어져서 뒤집히면 배에 가스가 바로 차는데, 가스의 압력으로 몸이 퉁퉁 부어오릅니다. 그래서 호흡장애를 일으키고 먹은 풀을 소화하지 못해 배가 딴딴해 집니다. 뒤집힌 상태로 그냥 두면 더운 날에는 30분 이내에 죽습니다. 왜 그런가요? 양은 뒤집히면 절대로 혼자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동할 때는 반드시 목자가 앞에서 양들을 인도하고 막대기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실 때 이렇게 하셨습니다. 40; 11절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 도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앞에서 양들을 인도하는 것처럼 앞장서서 다윗을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문제의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지금 광야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까?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서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다윗을 인도해주신 그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약속을 하신 데로 크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고 요단강이 멈추는 경이로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의 무서움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셔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로운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그런 은혜가 지속적으로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하나님이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신앙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십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일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은 핸디캡이 많은 동물입니다. 양은 독수리처럼 큰 날개도 없고 사자처럼 무서운 발톱도 없습니다. 황소처럼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뿔이나 독사처럼 무서운 독도 없습니다. 양은 자기를 방어할 어떠한 무기도 없습니다. 또한 양의 눈은 극심한 난시이고 방향감각이 무뎌서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 집도 못 찾아가는 특이한 동물입니다. 양만큼 핸디캡이 많은 동물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약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핸디캡이 많은 양이기 때문에 선한 목자를 만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양이 목자를 만나면 푸른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 먹을 수 있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어디입니까? 히브리 원어 상으로는 깊은 어두움의 골짜기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특히 예루살렘에서 사해로 내려가는 유대 광야에 가파른 골짜기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이 지역 한 계곡의 길이는 7km에 달하며 양쪽 협곡의 높이는 450m이상의 높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바닥은 많은 경우 비로 침식되어 수렁을 이룹니다. 만일 양이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면 이런 무서운 협곡에 떨어져 죽음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목양할 때에 각 처소의 지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형세파악이 되어있습니다. 어디로 인도해야 안전하고 빠른 길인지를 압니다. 그러니까? 양이 스스로 걷지만 자기의 걸음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의 발걸음과 인도함에 따라 움직입니다. 왜요? 양은 똑똑하지만 순하지만 고집이 세고, 다른 동물에 비하여 모자라고 상황 파악이 부족하고 경험되어진 것을 잘 잊어버리고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뿐입니다. 그래서 무리로 삽니다. 자기 목자의 음성만을 듣습니다. 그 손에 들려진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으면 안심을 합니다. 그래서 웅덩이에 빠지고 물에 빠지고 넘어집니다. 각기 제 길로 갑니다. 이 것이 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닙니까? 인생의 도처에 이런 골짜기와 협곡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골짜기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발달한 산업이 바로 보험업입니다. 건강을 상실할 두려움 때문에 의료보험이나 건강 보험에 들지요. 집을 잃을 두려움 때문에 주택 보험과 화재보험을 들고, 생명이 언제어디서 끝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생명보험과 자동차 종합보험과 비행기 타기 전에 항공보험과 배타기 전에 선박보험에 듭니다. 유명한 축구선수들은 자기 자신의 신체보험에 가입하고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손가락 보험에 가입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는 협곡에 빠진 양들을 끝이 구부러진 막대이로 목을 감아 건져 올립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양들을 위협하는 늑대나 사자, 들짐승들을 쳐서 쫓아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 여러분을 보호하신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인생의 두려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십니다. 여러분, 잠시 너무 힘들고 고통이 되어서 눈을 깜박일 수는 있으나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눈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과 미래와 내일과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something to do, 해야 할 일이 있고, someone to love, 사랑해야 될 사람이 있고, something to vision for. 비전이 있습니다. 14;12. 내가 하는 일을 저가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을 하리니. 주님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능력을 주셨습니다.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의 출간 된 회고록을 스크랩했습니다. 제목은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입니다. 거기에 보면 He is so full of shit. 직역하면 그는, 트럼프는 완전 거짓말쟁이야, 저잣거리의 언어로 바꾸면뻥치고 있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을 보좌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018년 싱가폴 북미회담 자리에서 볼턴에게 건넨 쪽지의 내용입니다. 세상의 사기를 하는 사람들과 장사를 하는 머리 좋은 사람들, 3 사람이 어리 숙한 시골사람을 속이기 위하여 한 사람은 마음에도 없는 화려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 한사람의 거짓말을 지켜보며 제 거짓말 잘 한다고 쪽지를 주고받으며 낄낄 거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대통령과 미국의 국무장관과 미국 안보보좌관이 북한 김 정은을 싱가폴에서 만났을 때 한 일입니다. 결국 전 세계가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일본 역시 가슴 조이며 바라봤던 소망의 그 자리는 트럼프와 존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의 사기도박 장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의 행태가 경악스럽습니다. 남과 북을 가지고 지들끼리 낄낄거렸습니다. 처음부터 남북의 평화는 단 1%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괜히 코로나19가 일어날까요? 아무 이유가 없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까요? 여러분, 남모르는 고민이 있습니까? 범사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쉬어야 할 때에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와 근심에 사로 잡혀 있습니까?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고통은 결국 나와 나의 다음세대가 떠안게 된다는 사실에 절망하십니까? 그러나 요14;12. 내가 하는 일을 저가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을 하리니. 주님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능력을 주셨습니다.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사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하나님이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여러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되 요14;12처럼 내가 하는 일을 저가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을 하도록 여러분에게 위임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감당하게 하셔서 오늘도 something to do, 해야 할 일이 있고, someone to love, 사랑해야 될 사람이 있고, something to vision for. 비전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4. 풍성한 사랑으로 인생과 인생의 길에 하나님이 해답이라 고백하고 선언하는 신앙인을 천국까지 동행하여 주십니다. 5 -6.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런데 동행을 하시면서 그냥 동행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십니다. 기름으로 머리에 부으시는데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동행하시는데 평생입니다. 그래서 주의 집에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특별히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신다는 표현은 포로로 잡혀온 적군들 앞에서 여는 승전축하 잔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잔치를 베풀 때 VIP 손님이 오면, 손님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발라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승전축하 잔치를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향기로운 기름을 가득히 차고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동행을 하시면서 여러분을 VIP, 최고로 취급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철저하게 사랑으로 대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녀 된 저와 여러분들을 VIP 취급을 해주십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악한 마귀로부터 끝까지 보호해주시고 선하심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 나라까지 동행하여 주십니다. 양이 울타리에서 편히 쉬듯이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선하심이 무엇입니까? 선하심은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고 항상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이 무엇입니까? 인자하심은 한 번 택하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회하는 사람의 4가지. 그러니까? 늙어 능력이 없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4가지를 늘 믿음가운데 되새겨야 합니다. 그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왜 좀 더 열정적으로 살지 않았는가? 여러분, 다윗은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경주자처럼 살았습니다. 다윗은 한 순간도 쉼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망을 다닙니다. 애매하게 누명을 쓰고 10년이 넘도록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을 다닌 사람입니다. 일부러 죽게 만들려고 블레셋 용사의 양피 100명을 요구 했지만 다윗은 200 명의 양피를 가져옵니다. 사울이 던진 단창에 맞을 뻔 했습니다. 그럼에도 악신이 걸린 사울 왕을 치료해줍니다. 라마 나욧으로 도망을 가고, 사울 왕이 쏜 활에 죽을 뻔 하고 놉 땅으로 도망을 가고, 자기가 물리친 블레셋 땅으로 망명하여 들어갑니다. 삼상 21;13, 에서는 다윗이 미친체하고 대문짝을 그적거리고 침을 일부러 수염에 흘리기도 했습니다. 삼상22;1 아둘람 동굴로 피신을 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환난을 당하고 빚을 지고 마음에 원통한 불쌍한 사람들 400명이 다윗에게 옵니다. 혼자서 도망을 다니기도 힘이 드는데 이들은 바로 600명이 되어서 유다 땅 헤렛 수풀로 도망을 합니다. 도액이라는 에돔 사람에게 배반을 당합니다. 그일라로 피신을 합니다. 십 황무지로 도망을 하고 다시 마온 황무지로 도망을 합니다.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어려운 일을 당하며 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죽음의 현장과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인생길이 이스라엘과 유다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길로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두 번째는 즐거움과 행복을 왜 결정하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즐거움과 영원한 행복을 소원만 하고 실제로는 현실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능력이 없고 죽을 때가 되면 은 그 때서야 좀 더 즐거움과 행복에 서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여러분,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것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내용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넘볼 수 없는 원수의 눈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원수의 눈앞에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평생 잊지 못할 즐거움입니다. 내 잔이 넘치는 삶을 원수의 눈앞에서 보여줍니다. 얼마나 행복입니까? 다윗은 항상,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즐거움과 행복을 결정하고 그 즐거움과 행복의 결정이 나중에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다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달란트를 끊임없이 사용했습니다. 다윗만한 시인이 없고, 다윗만한 작곡가가 없고, 다윗만한 연주가가 없고, 다윗만한 연출가가 없고, 다윗만한 장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행복에 관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윗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살아 있는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이었습니다.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좀 더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행복을 결정하시는 그래서 평생 동안 주의 집에 영원히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 번째는 왜 좀 더 사랑하지 않았는가? 다윗은 늘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했습니다. 용병을 사랑했습니다. 민족을 뛰어 넘어 사랑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헤어질 때는 삼상20;41-42, 다윗과 요나단이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하고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 부둥켜안고 심히 우는데 다윗이 더욱 심히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표현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데 여호와께서 영원히, 영원히 너와 나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너의 자손에 계실 것을 약속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늘 사랑이 깊었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 이었습니다. 삼상22;1 아둘람 동굴로 피신을 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환난을 당하고 빚을 지고 마음에 원통한 불쌍한 사람들 400명이 다윗에게 옵니다. 혼자서 도망을 다니기도 힘이 드는데 이들은 바로 600명이 되는데도 다윗은 이들을 사랑하고 어렵고 힘이 들지만 이끌고 갑니다. 결국 이런 사랑 때문에 계획한 뜻하신 왕의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것 뿐이 아닙니다.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고 왕의 자리에서 죽이려고 했던 아들, 압살롬을 사랑하고 살려 주고 안부를 늘 걱정합니다. 배반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아비가일을 사랑합니다. 시므온을 사랑하고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을 왕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도록 배려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늙어 능력이 없기 전에 좀 더 마음을 다하여 배려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그 사랑의 결과로 여러분의 삶이 부요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네 번째는 왜 모든 것에 좀 더 감사하며 살지 않았을까? 세상의 사람들은 늘 불평하고 불만을 표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늘 감사했어요. 죽음 앞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6;5, 사망 중에서 주를 기억할 사람이 누구이며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감사를 하지 못하고 찬양을 하지 않을지라도 다윗은 하나님께 늘 감사를 했습니다.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를 했으면 이렇게 당당할까요? 다윗은 사람에게도 감사를 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지은 시편 모도가 감사이고 찬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동행할 때 좋은 것을 주시고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책임을 지신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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