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1-9. 잊지 말아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모세 2026. 6. 14.
요즘 마음이 많이 힘 드시지요? 끝없는 전쟁과 함께 기름 파동으로 인한 삶의 여러 가지 영향 때문에 얼마나 불안 하십니까? 없음에 대한 불안이 우리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더하여 한국은 격화되는 선거 뒷이야기와 노조의 파업과 성과급, 그리고 커피 회사 이야기까지,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요에 대한 해택을 누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막막함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사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마음 둘 곳이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허무함과 막막함과 불안이 삶의 전부를 채우고 있습니다. 여유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의 배후는 무엇일까? 걱정이 되어 책도 뒤적이고 전문가의 견해도 들어보고 유튜브를 들으면서 새로운 내용이 있나 살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시대일수록 신앙인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여러분, 세상의 일을 아무리 알고 싶어도 다 알 수가 없고,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세상이라는 늪에 빠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세상의 사건과 일로부터 눈과 귀와 입을 분리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것이 눈과 귀가 거룩해지고 선포하는 입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방법은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을 바라보면 십자가 너머의 세계가 보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내가 가야만 하고 감당해야 하는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세상의 사건과 현상과 세상의 일의 결론이 주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 곳은 저 높은 곳이고,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 있는 곳이고, 하나의 천, 둘에 만으로 갚으시는 곳입니다.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허락하신 복을 받는 곳입니다. 어두움과 앞을 가리는 그 어떤 장애물 가운데에서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더라도 땅과 하늘이 닿는 사다리가 보이는 곳입니다. 아낙 자손이 거주할 지라도 넉넉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삿6: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보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과 정성을 모아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여러분, 세상이 불안하고 복잡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저 높은 곳, 하나님께로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잡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부르시고 맡기신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3장의 말씀을 전재로 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마지막 해에 요단 동편에서 1년 동안 치른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나라 세 나라는 손대지도 말고 욕심도 부리지 말고 통과하라 하셨지만 강력한 나라 바산은 내가 너희에게 붙였으니 들어가서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말씀대로 세 나라는 싸우지 않고 통과하였지만 바산과 싸워서 60개의 큰 성을 빼앗았습니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기름진 땅을 소유한 강력한 나라이었습니다. 그 성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이었고 군사들도 용감했으며 바산 왕 옥은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에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목표이기 때문에, 요단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기름지고 넓은 땅을 차지했는지, 이곳을 그냥 두고 지나가기가 싫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적해야 하는데, 목적하지 않았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해야 하는데 여기가 좋사오니 마음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이곳을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열두 지파 중 두 지파에게 나눠주고도 남아 반 지파에게 더 줄 만큼 대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주신 내용과 세상의 좋은 것에 마음을 둔 이 내용을 전재하면서 모세가 출애굽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복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주 간곡한 마음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신4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신명기 4장의 말씀이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왜 중요할까요? 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규례와 법도라고 표현합니다. 규례와 법도가 무엇입니까? 규례와 법도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해 놓은 규칙입니다. 여러분, 정하여 놓은 규칙이 왜 필요합니까? 어떤 단체에 들어가면 그 단체가 정해 놓은 규례와 법도를 따라야 그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전을 보장합니다. 약속에 따라 복을 받고 승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삶 속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내용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입니다. 여러분, 양이 울타리를 벗어나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인 규례와 법도를 벗어나면 위험해집니다. 모든 것의 표적이 됩니다. 우는 사자가 먹잇감을 찾는 자리가 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위하여 99마리의 양을 울타리에 두고 찾아 나서야 하는 수고와 사랑이 따라야 살아 돌아 올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인 지식이나 철학이 아니라 내 삶의 현장에서 반드시 따르고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에 마음이 먼저 갔습니다. 현상이 중요했습니다. 모세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보면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을 가르칩니다. 4:2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입니다. 권면이 아닙니다. 명령은 설득이나 타협이나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명령에 대한 반응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냐 거역이냐 입니다. 그렇다면 왜 명령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협을 했습니다. 요단 서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1절,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생사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명령, 지키면 이 세상에서도 살고 영원히 사는 강력한 생명의 명령입니다.
6절,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되고 지식이 생깁니다. 그래서 삶의 경영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와 지혜로 이스라엘을 지켜냈습니다.
8절,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세상은 어떻습니까? 공의를 지키는 나라가 없습니다. 힘과 능력으로 힘자랑을 합니다. 세계와 경제와 자원의 패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도 힘과 능력을 자지고 전쟁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산을 물리치고 요단 동편에 머무는 것을 공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힘과 능력으로 권력을 잡으면 길지 않습니다. 또 다른 힘과 능력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그 자리를 내어 놓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는 힘과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힘과 능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 힘과 능력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 규례 안에는 생명싸개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눈높이의 한계로 인하여 먼 미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안목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면 안목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에서 우리 인생의 길을 내려다보시며 그 끝을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이 길로 가면,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살 수 있고 주시는 지혜와 지식으로 의에 이르게 됩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미련과 무지로 분별이 되지 않고 불행해질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무시하거나 거역하거나 귀찮게 여기지 말고 꼭 지켜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합니까요? 순종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감입니다. 4:2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말씀을 가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현상 앞에서 가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감하는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창3:1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마라 하시더냐? 하와가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가감을 합니다. 원죄의 시작이 가감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생겨 명령을 거역하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말씀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3-1. 그러면 말씀을 가감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면,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제시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내가 그 기준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줄이기 위하여 말씀으로 다가오는 만큼 순종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감하기 시작하면, 기준이 내가 되고, 기준이 내가 되면 말씀을 따라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가감의 시작이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입니다.
3-2. 모세는 순종의 방해물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4:9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 되려면 방해물에 대하여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삼간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생각을 자신에게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항상 생각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뭐라 할까? 이렇게 된 것은 너 때문이라는 말에 신경을 씁니다. 외부로 생각을 돌리고 핑계를 대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삼간다는 말은 그 반대입니다. 삼가야 방해물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삼가는 것이 힘들지요? 절제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적한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왕 하20:5.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이 말씀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려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인생의 끝을 선고받습니다. 사망진단이 떨어졌습니다. 그 것도 의사가 아닌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히스기아는 왕으로서,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 사망 진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향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서서 하나님과 마주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길고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경은 그의 눈물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눈물은 히브리어로 딤아(dím‘ah)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감정이 북받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담고 있습니다. 가슴 속에 맺힌 절박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말보다 그의 딤아(dím‘ah)를 먼저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기도를 통하여 역사를 다시 쓰시는 분입니다. 딤아를 보셨습니다. 이 히스기아의 딤아는 간절함과 절박함과 막다름의 눈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타국에서 우리는 종종 이미 결정된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건강의 문제와 삶의 문제와 직장과 사업장, 자녀와 미래의 불확실성, 수많은 상황에서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기도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한숨과 탄식하고 통곡만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문장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딤아(dím‘ah)를 이미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혼자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의 마음을 듣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이미 끝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십니까? 그렇다면 그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마침표를 찍는 분이 아니라 문장을 다시 쓰시는 분입니다. 눈물은 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의 인생을 바꾸고 계십니다.
여러분, 사자성어 하나를 말씀드립니다. 기우멱우(騎牛覓牛)라는 사자성어입니다. 뜻은 소 등에 앉아서 소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미국 뉴저지의 어느 작은 학교에 26명의 아이들이 가장 허름한 교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 그 나이 또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마약을 상습 복용을 했고, 어떤 아이는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린 나이에 세 번이나 낙태를 경험한 소녀도 있었습니다. 이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와 선생님들이 교육을 포기한 아이들로, 말 그대로 문제아들 이었습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이 반을 맡게 될 베라 선생님이었습니다. 수업 첫날,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학교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습니다. 다음 세 명 중에서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판단해 보세요. 그녀는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A : 부패한 정치인과 결탁하고 점성술을 믿으며 두 명의 부인이 있고 줄담배와 폭음을 즐긴다.
B : 두 번이나 회사에서 해고된 적이 있고 정오까지 잠을 자며 아편을 복용한 적이 있다.
C : 전쟁영웅으로 채식주의자이며 담배도 안 피우고 가끔 맥주만 즐긴다. 법을 위반하거나 불륜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선생님의 이런 질문에 학생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만장일치로 C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답변은 뜻밖 이었습니다 절대적 잣대는 기준이 없어요. 여러분이 옳다고 믿는 것이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세 사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A는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이고 B는 영국 제일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며 C는 수천만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에요. 순간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베라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사람을 판단하게 해 주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니까요. 어제의 어둠 속에서 나와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세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소중한 존재이고 얼마든지 주님 안에서 성공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그들의 삶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훗날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며 미래를 창조해 나갔습니다. 어떤 아이는 심리학 의사가 되었고, 어떤 아이는 법관,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중 반에서 가장, 키 작고 말썽쟁이였던 로버트 해리슨 (Robert Harrison) 이란 소년은 현재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촉망받는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잘못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그저 실수일 뿐, 평생을 따라다니는 오점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제 어제의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내일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두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나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적어도 하나쯤은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을 만한 달란트, 장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의 후천적인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입니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