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18 세기 후반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가 나타났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하였으므로 이들을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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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북학파 실학 사상의 대두는 병자호란 이후 굳어졌던 화이론적 명분론에서 탈피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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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자는 18 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 그는 우서를 저술하여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고, 사농공상의 직업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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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원의 농업론: 농업에서는 토지 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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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원 (1694~1755)
우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물을 비교하여 전반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무위도식하는 양반들을 농, 공, 상으로 전업시키고, 신분제 개혁을 통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준화와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농업론: 농업에서는 토지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고 하였다.
상업론: 상업자본의 육성을 위하여 상인 간의 합자를 통한 경영 규모의 확대와 상인이 생산자를 고용하여 생산과 판매를 주관할 것을 주장하였다. 국가가 물자의 낭비와 가격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 대상인 :학교, 교량, 방위시설 등 지역사회 발전에 참여할 것을 주장
* 세과사와 같은 상업세 징수기관을 두어 국가의 재정 수입을 높일 것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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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의 실학 사상은 18 세기 후반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 의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의 혁신과 문벌 제도의 철폐, 그리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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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1731~1783) : 담헌서, 담헌연기(청나라 기행문), 임하경륜, 의산문답, 주해수용 등 저술
임하경륜
성인 남자들에게 2결의 토지를 지급할 것과 병농일치의 군대 조직을 제시.
놀고 먹는 선비들이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것과 교육, 인재 등용 등 사회 개혁을 주장
의산문답
서양의 과학 사상을 소개. 북경 여행을 배경으로 의무려산에 숨어사는 실옹과 조선의 학자 허자 사이에 대화체로 지금까지 믿어 온 고정 관념을 상대주의 논법으로 비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지구의 1일 1주 회전설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우주 무한론을 주장하고,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다른 별들에도 우주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등 파격적 우주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자연관을 근거로 화이의 구분을 부정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였고, 기술의 혁신, 문벌제도의 철폐, 성리학 극복, 화이관 탈피 등이 부국강병의 요체라고 주장하였다.
주해수용: 수학의 체적법, 삼각법을 연구하였고, 과학을 말기가 아닌 정신의 극치라고 평가하였으며, 서양에서 천문학을 발달시킨 원동력은 수학과 관측 기구였다고 서술하였다.
농수각(사설 천문대)
자신의 집안에 호수를 만들고 그 가운데 농수각이라는 정자를 세워 그 안에 혼천의 등의 천문기구,
서양식 기계시계인 후종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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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고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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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1737~1805)
과농소초: 수리 조항의 설정과 토지 소유 문제를 우리나라 농서로서 처음으로 다루었으며, 농구를 독립된 항목으로 처음 서술하고 조선 고유의 농구가 갖는 기능과 장점을 기술하여 우리의 농구를 보급하려고 노력하면서 경영과 기술적 측면의 개선을 통하여 농업생산력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과농소초에 전제 개혁론을 담은 한민명전의(토지 소유 상한선을 설정하는 한전론)를 첨가하였다.
양반 비판: <양반전>과 <호질>에서 양반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였고, <허생전>에서는 중상론과 해외무역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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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실학 사상은 그의 제자 박제가에 의하여 더욱 확충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등을 역설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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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소비관
비유하건대, 재물은 대체로 샘과 같다. 퍼내면 차고, 버려 두면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女紅)이 쇠퇴하고, 쭈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工匠:수공업자)이 도야(陶冶:기술을 익힘) 하는 일이 없게 되면 기예가 망하게 되며, 농사가 황폐해져서 그 법을 잃게 되므로, 사농공상의 사민이 모두 곤궁하여 서로 구제할 수 없게 된다. 〈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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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1750~1805)
북학의: 항목별로 시대의 당면한 문제를 논하면서, 청의 문물도입이 부국강병임을 강조
상공업 발전 방안
청과 통상을 강화하고, 수레 선박의 이용, 벽돌 이용, 신분제 타파를 주장하였다.
검소보다 소비를 권장하여 생산을 자극 (소비와 생산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
양반 상업종사 강조
상은 사민의 일이요, 사농공 3자는 모든 유무를 상통해야 한다.
개국통상을 주장
국제 교역을 하여 자원의 이용과 수급을 조절함을 주장하였다. 이는 유득공, 이덕무, 이규경, 강위, 최한기 등으로 계승되고, 다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이동인으로 연결되었다.(개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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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기를 전후하여 크게 융성하였던 실학 사상은 실증적, 민족적, 근대 지향적 특성을 지닌 학문이었다. 특히, 북학파 실학 사상은 19 세기 후반에 개화 사상으로 이어졌다.
18 세기 후반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가 나타났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하였으므로 이들을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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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북학파 실학 사상의 대두는 병자호란 이후 굳어졌던 화이론적 명분론에서 탈피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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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자는 18 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 그는 우서를 저술하여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고, 사농공상의 직업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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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원의 농업론: 농업에서는 토지 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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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원 (1694~1755)
우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물을 비교하여 전반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무위도식하는 양반들을 농, 공, 상으로 전업시키고, 신분제 개혁을 통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준화와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농업론: 농업에서는 토지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고 하였다.
상업론: 상업자본의 육성을 위하여 상인 간의 합자를 통한 경영 규모의 확대와 상인이 생산자를 고용하여 생산과 판매를 주관할 것을 주장하였다. 국가가 물자의 낭비와 가격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 대상인 :학교, 교량, 방위시설 등 지역사회 발전에 참여할 것을 주장
* 세과사와 같은 상업세 징수기관을 두어 국가의 재정 수입을 높일 것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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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의 실학 사상은 18 세기 후반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 의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의 혁신과 문벌 제도의 철폐, 그리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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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1731~1783) : 담헌서, 담헌연기(청나라 기행문), 임하경륜, 의산문답, 주해수용 등 저술
임하경륜
성인 남자들에게 2결의 토지를 지급할 것과 병농일치의 군대 조직을 제시.
놀고 먹는 선비들이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것과 교육, 인재 등용 등 사회 개혁을 주장
의산문답
서양의 과학 사상을 소개. 북경 여행을 배경으로 의무려산에 숨어사는 실옹과 조선의 학자 허자 사이에 대화체로 지금까지 믿어 온 고정 관념을 상대주의 논법으로 비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지구의 1일 1주 회전설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우주 무한론을 주장하고,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다른 별들에도 우주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등 파격적 우주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자연관을 근거로 화이의 구분을 부정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였고, 기술의 혁신, 문벌제도의 철폐, 성리학 극복, 화이관 탈피 등이 부국강병의 요체라고 주장하였다.
주해수용: 수학의 체적법, 삼각법을 연구하였고, 과학을 말기가 아닌 정신의 극치라고 평가하였으며, 서양에서 천문학을 발달시킨 원동력은 수학과 관측 기구였다고 서술하였다.
농수각(사설 천문대)
자신의 집안에 호수를 만들고 그 가운데 농수각이라는 정자를 세워 그 안에 혼천의 등의 천문기구,
서양식 기계시계인 후종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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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고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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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1737~1805)
과농소초: 수리 조항의 설정과 토지 소유 문제를 우리나라 농서로서 처음으로 다루었으며, 농구를 독립된 항목으로 처음 서술하고 조선 고유의 농구가 갖는 기능과 장점을 기술하여 우리의 농구를 보급하려고 노력하면서 경영과 기술적 측면의 개선을 통하여 농업생산력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과농소초에 전제 개혁론을 담은 한민명전의(토지 소유 상한선을 설정하는 한전론)를 첨가하였다.
양반 비판: <양반전>과 <호질>에서 양반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였고, <허생전>에서는 중상론과 해외무역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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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실학 사상은 그의 제자 박제가에 의하여 더욱 확충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등을 역설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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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소비관
비유하건대, 재물은 대체로 샘과 같다. 퍼내면 차고, 버려 두면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女紅)이 쇠퇴하고, 쭈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工匠:수공업자)이 도야(陶冶:기술을 익힘) 하는 일이 없게 되면 기예가 망하게 되며, 농사가 황폐해져서 그 법을 잃게 되므로, 사농공상의 사민이 모두 곤궁하여 서로 구제할 수 없게 된다. 〈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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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1750~1805)
북학의: 항목별로 시대의 당면한 문제를 논하면서, 청의 문물도입이 부국강병임을 강조
상공업 발전 방안
청과 통상을 강화하고, 수레 선박의 이용, 벽돌 이용, 신분제 타파를 주장하였다.
검소보다 소비를 권장하여 생산을 자극 (소비와 생산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
양반 상업종사 강조
상은 사민의 일이요, 사농공 3자는 모든 유무를 상통해야 한다.
개국통상을 주장
국제 교역을 하여 자원의 이용과 수급을 조절함을 주장하였다. 이는 유득공, 이덕무, 이규경, 강위, 최한기 등으로 계승되고, 다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이동인으로 연결되었다.(개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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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기를 전후하여 크게 융성하였던 실학 사상은 실증적, 민족적, 근대 지향적 특성을 지닌 학문이었다. 특히, 북학파 실학 사상은 19 세기 후반에 개화 사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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