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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고급 특강

고급 대비 주제별 특강 43: 발해 무왕(대무예)과 문왕(대흠무)의 업적

작성자백준기|작성시간11.01.12|조회수973 목록 댓글 3

출제 빈도: [8회 고급 2번], [4회 고급 9번], [5회 고급 9번], [2회 1급 11번]

 

<개관>

 

 고구려 멸망 이후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은 당의 안동 도호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계속 저항 하였다.

    7 세기 말에 이르러 당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들은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698). 발해의 건국으로 이제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다. 발해는 영역을 확대하여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였다. 비록 그 영역에 말갈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지만,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또는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실이라든지, 문화의 유사성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 때에는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동북방의 여러세력을 복속하고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발해의 세력 확대에 따라 신라는 북방 경계를 강화하였고, 흑수부 말갈도 당과 연결하고자 하였다. 이에, 발해는 먼저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하는 한편, 요서 지역에서 당군과 격돌하였다. 또, 돌궐, 일본 등과 연결하면서 당과 신라를 견제하여 동북 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어 문왕 때에는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면서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하고, 신라와도 상설 교통로를 개설하여 대립 관계를 해소하려 하였다. 발해가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긴 것은 이러한 지배 체제의 정비를 반영한 것이다. 이 무렵, 발해는 이러한 발전을 토대로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발해는 9 세기 전반의 선왕 때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고, 지방 제도도 정비하였다. 이후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그러나 10 세기 초에 이르러 부족을 통일한 거란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오고, 발해 내부에서도 귀족들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어 발해의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고, 결국 거란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926).

 

 

 

<심화>

 

 무왕 (대무예, 인안, 719~737)

 

   (1) 영토 확장에 주력하여 동북방의 여러 세력을 복속하고 북만주 일대를 장악

        : 이러한 세력화대에 신라는 북방 경계를 강화하였고, 발해의 동북방의 흑수 말갈은 당과 연결을 도모하였다. 당은 726년 흑수말갈을 포섭하여 그 지역에 흑수부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흑수말갈족을 감독, 조종하게 되었다 - 이에 무왕은 강하게 반발하여 흑수말갈에 대한 원정을 감행하도록 하였다. 동생 대문예를 보내어 흑수말갈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 공격을 둘러싸고 무왕과 의견 대립을 보이던 대문예가 중국으로 도망하자, 흑수말갈에 대한 공격은 대문예의 소환을 둘러싼 발해와 당의 대결로 전환되었다.

 

   (2) 당에 대한 무왕 대응

        :  발해 무왕 9년(727)에 발해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맺어 신라를 견제하였고, 돌궐과 연결하여 당을 견제하였다. 732년 발해의 해군 장문휴가 당의 산둥 떵조우(등주)를 공격하여 자사를 죽였다 - 발해가 당을 공격하게 되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대문예의 망명사건이었다고 하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발해와 신라의 대결 관계에 있었다.

 

   (3) 당의 대응

        : 신라와 연결 - 대문예를 유주(북경)에 보내어 발해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733년에 당군과 신라군은 각각 발해의 서부와 남부의 국경선을 향해 진공하였다. 그러나 당군과 신라군은 발해군의 반격과 추위로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문왕 (대흠무, 대흥, 733~797) :

     * 당에서 안사의 난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요하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발해는 이때 고려국을 표방하고, 유신을 단행하여 불교의 전륜성왕의 이념

       채택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도 천손임을 자랑하고  황상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정효 공주 묘지에 기록)

 

  (1) 요동반도까지 지배

        : 안록산 난을 계기로 소고구려국에도 힘을 뻗어 요동반도까지 지배

 

   (2) 당과 친선

        : 당과 국교 수립 - 무역, 유학생 파견

 

   (3) 지배체제의 정비

 

       ① 천도

           : 국도를 중경 현덕부(길림성 화룡 서고성)로 옮기고,

             다시 상경 용천부(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으로 옮겼다가

             또 동경 용원부(길림성 혼춘)로 옮겼는데,

             이것은 발해의 국력이 북쪽에서 동쪽으로 신장된 데 연유한 것이었다.

 

       ② 주자감 설치: 유학 교육 기관

 

   (4) 신라와 상설 교통로를 개설(신라도)하여 대립 관계를 해소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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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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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uma-k | 작성시간 12.10.28 이번 17회 고급 [7번] 문제에 나온 문왕의 업적을 미리 다루어 주셨군요 카페지기님!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난니꺼 | 작성시간 15.09.08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승헌 | 작성시간 18.09.2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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