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①
*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초반)
“ 내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으로” 라는 구호를 볼 때 물산장려운동(국산품애용운동)이다
1919년에 일제가 1923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에서 면직물과 주류를 제외한 모든 상품의 관세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민족 자본은 큰 위기에 부딪혔다. 이에 1920년부터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 운동을 전개하였다.
물산 장려 운동은 이듬해 서울로 확산되었고, 1923년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하였고, 청년 학생 중심의 자작회가 중심되어 ‘조선 사람 조선 사람 것으로’라는 구호 아래 전국으로 번지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물산 장려 운동과 함께 전개된 청년 단체들의 금주 단연 운동, 자작자급 운동, 소비 절약 운동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민족 자본은 물산 장려 운동으로 늘어난 수요를 만족시킬 만큼의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토산물의 가격이 상승하여 영세민의 생활 경제에 압박을 가중시켰다. 또한 물산 장려 운동은 민족의 독립이라는 목표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① 이 운동은 우리 토산품을 쓰고 불가피한 경우 외국물품을 쓸지라도 실용적인 것을 쓰자는 것이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일본상품을 배척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② 국채보상운동(1907, 나라빚 갚기 운동)과 같은 경제적 구국운동이다
③ 우선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주로 자본가나 상인층 등으로,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일부 자신들의 이해문제와 연관된 입장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④ 국산품 애용 수요는 결국 물가상승을 자극하여 국내 부르주아들에게 이익이 집중되었다
⑤ 국산품애용을 하여 경제적 자립을 하자는 취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