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⑤
*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집터, 돌널무덤과 독무덤 유적, 비파형동검, 송국리식 민무늬 토기)가 가장 유명하고 그 외에 여주 흔암리(탄화미 발견), 서천 화금리 유적(탄화미 창고 발견), 울산 검단리(환호형 촌락터) 등이 유명하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로는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데 사용된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 동검, 의식용으로 사용된 거친무늬 청동 거울 등의 청동기,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고조선과 관련된 유물), 민무늬 토기(대표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다.
청동기 시대는 생산력의 증가에 따라 인구가 늘고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힘이 강한 자가 이것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였다. 생산물의 분배와 사유화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빈부의 격차와 계급의 분화를 촉진하였으며 국가의 성립까지 이어졌다(군장국가). 이러한 계급의 분화는 죽은 뒤에까지도 영향을 끼쳐 무덤의 크기와 껴묻거리의 내용에 반영되었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고인돌은 많은 인원을 동원시킬 수 있는 계급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① 구석기인들은 이동에 편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
② 철기 시대에 들어서 철제 무기와 철제 농기구를 제작하여 사용하며 전투력과 생산력이 크게 증대되었다.
③ 고려 시대에는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되었다.
④ 생산력이 미약한 구석기~신석기인들은 계급없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