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45회

4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24번 : 임진왜란의 전개과정

작성자백준기|작성시간20.01.19|조회수837 목록 댓글 0





정답:

 

* 임진왜란의 전개과정

 

1592414, 정명가도를 내걸고 왜군이 부산진과 동래성으로 침략해 오자, 첨사 정발과 부사 송상현 등이 힘껏 싸웠으나 막지 못하고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그 후, 왜군은 세 길로 나누어 북쪽으로 쳐들어왔다. 중앙에서는 선봉으로 순변사 이일을 보내었으나 상주에서 패퇴하자, 충주에서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며 북상을 막으려 하였으나, 이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4.28). 왜군이 한양 근처에 육박하자 선조는 의주로 피란하였다(4.30~6.22). 왜군은 6월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북상하여 한반도 전역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였다.


조선은 육전에서와 달리 해전에서는 곳곳에서 왜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5.4), 이어서 거북선과 판옥선을 앞세워 사천, 당포, 한산도 앞 바다(한산 대첩, 1592.7) 등 여러 곳에서 승리를 거두며 제해권을 장악하여,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라도 곡창 지대와 황해안을 지킬 수 있었다.


한편,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경상도 의령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싸워 이겼고, 김시민은 진주에서 적군 2만 명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장렬히 전사하였다(1592.10).


수군이 승리를 거두고 의병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무렵, 요청한 명의 원군까지 도착하여 조선은 왜군에 반격을 가하여 평양성에서 조.명 연합군은 크게 승리하며 탈환했으나(1593.1.6), 벽제관에서 일본군은 명군을 대파하여(1593.1.27) 위기에 빠졌다. 다행히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행주대첩, 1593.2) 위기에서 벗어나 4월 말에는 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한성 복귀), 경상도 해안 지방으로 밀려난 왜군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휴전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3년간을 끌어 오던 화의 교섭이 실패하자, 왜군은 다시 공격해 왔다(정유재란, 1597.1). 임진년과 달리 화의 기간에 조선군도 군비를 잘 갖추고 명군과 협조하여 왜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 물러났던 이순신이 다시 기용되어 명량에서 왜군을 대파하였다(1597.9, 12척으로 133척을 물리침).

마침 도요토미가 사망하고 전세도 불리해지자 왜군은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이순신은 퇴각하는 왜군을 노량에서 격멸하였으나,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며(1598.11.19) 전쟁은 끝이 났다.

 

광해군 때에 명의 요청으로 후금을 토벌키 위해 심하(深河)에 강홍립과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적당히 싸우다 항복하는 중립외교를 펼쳤다(1619).

 

정묘호란(1627) 때에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특히, 정봉수는 철산의 용골산성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