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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소방직

2019년 소방직 한국사 15번 : 백남운과 신채호

작성자백준기|작성시간20.01.17|조회수147 목록 댓글 0


15. (), ()를 주장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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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조선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은 가령 지리적조건,인종학적 골상, 문화 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소의 차이는 인정되더라도, 다른 문화 민족의 역사적 발전법칙과 구별되어야 하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 법칙에 의해 다른민족과 거의 같은 궤도로 발전 과정을 거쳐왔다.

()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상태를 서술할지라. 민족을 빼면 역사가 없으며 역사를 빼어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지니, 오호라 역사가의 책임이 그 역시 무거울진저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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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여 조선상고사를 저술하였다.

() 유물 사관의 영향을 받아 사회 경제 사학을 내세웠다.

() 진단학회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였다.

 

 

정답:

 

* 백남운과 신채호

 

() 1930년대에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등을 저술한 백남운(1895~1974),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일원론적) 발전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 민족주의 역사학자 신채호(1880~1936)는 일찍이 대한협회 회보에 역사와 애국심’(1908)을 기고하며 역사를 애국심의 원천으로 이해하였고,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일제에 의해 주권이 침탈당하게 되자 나라를 구한 위인의 전기와 외국의 건국의 역사서를 번역하여 민족의 독립의지와 역사의식을 높이고자 을지문덕전, 최도통전, 이순신전, 이태리건국삼걸전 등을 저술하였다. 국권피탈 후에는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1929,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의 일천년대 제일대 사건으로 파악), <조선상고사>(1931,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파악)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는 고대사에 살아 숨 쉬는 자주적·주체적인 민족 고유의 사상인 낭가 사상의 존재에 주목하고, 이러한 정신을 되살려 민족독립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병도(1896~1989)는 문헌 고증을 강조하며 손진태 등 여러 국학자들과 함께 진단학회를 조직하여 실증주의 사학을 발전시키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1859~1925), 1884~1919년의 독립투쟁의 역사를 다룬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를 저술하여 국혼, 국백 사상을 역설하며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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