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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방직

2015년 소방직 한국사 5번 : 초기 국가 부여와 고구려

작성자백준기|작성시간20.02.23|조회수421 목록 댓글 0


5. 다음 지도의 ()() 국가의 공통점으로 옳은 것은?


() 제사장인 천군이 관할하던 지역을 소도라고 불렀고 신지·견지 등이 정치적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 특산물로 말, 주옥, 모피가 생산되었다.

() 부족장을 가()라고 불렀으며 왕권이 미약하였다.

() 씨족사회의 풍습으로 족외혼이 이루어졌다.

 

 

정답:

 

* 초기 국가 부여와 고구려

 

() 부여: 가장 북쪽인 만주 지방에 자리하였던(길림, 농안)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대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따로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다. 가들은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고, 수해나 한해를 입어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다.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껴묻거리와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부여의 풍속에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12월에 열렸다. 이 때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다. 풍습, 법률이 고구려와 유사해서 형사취수제 풍습이 있었으며,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하게 하고,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하는 등 매우 엄격하였다. 산업은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 등이 유명하였다

 

() 고구려: 부여와 마찬가지로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다. 그리고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혼인 풍습으로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인 서옥제라는 풍속이 있었다.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삼한에는 신지, 견지, 읍차, 부례 등의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다(제정분리).

 

동예는 족외혼(族外婚)을 엄격하게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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