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한제국의 광무개혁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옛 것을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것을 참작한다.’라는 구본신참의 원칙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하였다.
② 황실 재정을 담당하는 내장원의 기능을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황실 주도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였다.
③ 재정 확보를 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는 문서인 지계를 발행하였다.
④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 제도의 근대화를 꾀하였으며,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고 교육 개혁을 추진하였다.
정답: ④
* 광무개혁(1897~1904)
대한제국은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원칙 아래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 제국은 국가의 자주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와 재정 확충, 상공업 육성에 주력하였다. 원수부를 설치하여 황제가 군사권을 장악하고 황제 호위 부대를 증강하였으며, 장교 양성을 위해 무관 학교를 설립하였다.
특히, 황실 재정 확대를 도모하여 기존의 내수사를 더욱 강화시켜 개편한 내장원은 광무개혁 당시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으로서 왕실의 보물(寶物)·세전장원(世傳莊園) 뿐만 아니라 삼정((蔘政)·종목(種牧)·광산(鑛山)에 관한 일까지 관장하였다. 그리하여 국가 전체의 재정 기관인 탁지부에 정부 관원의 봉급 자금을 빌려줄 만큼 커졌다.
또한 조세 수입을 늘리고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해 양지아문(1898)을 설치하여 양전 사업을 하고, 지계아문(1901)을 통하여 근대적 토지 소유 문건인 지계를 발급하였다.
상공업을 진흥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하여 섬유, 운수, 광업, 철도 등의 분야에서 근대적 공장과 회사의 설립을 지원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서북지역 간선 철도인 경의선(서울-신의주, 본래 1896.7 프랑스가 부설권을 얻어냈으나 자본조달에 실패하여 1899년 6월 대한제국에 반납되었다) 부설과 관련하여 궁내부 산하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였다(1900.9).
또한 근대적 과학 기술을 일으키기 위해 우무(郵務)학당, 전무(電務)학당, 의학교, 상공학교, 광산학교, 외국어 학교 등을 세워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④ 2차 갑오개혁(1894.12~1895.7) 때에 재판소를 설치하여 지방관의 사법권을 배제하였으며, 교육입국조서(1895.2)를 반포하여 관립교육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