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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5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번 : 웅진 천도(475)와 관산성 전투(554) 사이의 역사적 사실

작성자백준기|작성시간22.01.09|조회수247 목록 댓글 0

정답: ④

 

* 웅진 천도(475)와 관산성 전투(554) 사이의 역사적 사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밀리던 백제는 개로왕 때에 한성을 점령당하고 왕이 죽임을 당하자 아들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475).

백제는 5세기 후반 동성왕(479~501) 때부터 다시 사회가 안정되고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혼인하여 동맹을 강화하여(493, 결혼 동맹)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무령왕(501~523)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백제 중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어 성왕(523~554)은 대외 진출이 쉬운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538),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면서 중흥을 꾀하였다.

성왕은 중앙 관청과 지방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진흥하였으며, 중국의 남조와 활발하게 교류함과 아울러 일본에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성왕은 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신라와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부분적으로 수복하였지만(551) 곧 신라에게 빼앗기고(553), 성왕도 신라를 공격하다가 구천(관산성, 충북 옥천)에서 전사하며 나제동맹은 결렬되었다(554).

 

① 미륵사지 석탑으로 유명하며 한국 최대의 사찰지인 익산 미륵사는 서동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 2년(601)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② 백제 멸망 후 복신과 흑치상지(임존성), 도침(주류성) 등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며 부흥운동(660~663)을 일으켰다.

 

③ 백제는 침류왕 때에 중국 남조 동진의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다(384).

 

⑤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과 소정방이 이끈 당군은 황음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 의자왕의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당군과 함께 사비성을 함락하였다(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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