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세대] 그들이 몰려온다 - 탈이념, 깃발은 내려지는가
[헤럴드경제 2005-01-17 12:26]
“대자보는 이젠 가라” 취업 벽보만 빼곡히 학교앞 인문서점 문닫고… 휴게실선 사상논쟁 대신 ‘미니홈피’ 자랑만...
‘블로그(BLOGㆍBe a Liberal & Open Generation) 세대’의 힘이 캠퍼스와 대학가 주위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386 세대’의 캠퍼스 상징물은 최루탄, 이념서적, 대자보였다. 그러나 2005년 캠퍼스는 인문과학서점이 퇴조하고, 대자보가 게시물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루탄과 이념서적이 사라져가는 공간을 개인과 개방, 자유를 앞세우는 블로그 세대만의 코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①2005년, 캠퍼스, 탈(脫)이념의 풍경들 #1. 고려대 앞 안암동-PC방, 만화방 그리고 이념의 퇴조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문 건너편 집현서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시서적으로 빽빽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점 사장은 “지난 1985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그때 데모가 엄청 심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2~3일만 가게 문을 열어도 이념서적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 지금보다 장사가 잘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념서적을 찾는 학생들이 지금도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도 이념서는 갖다 놓기 무섭게 팔렸고 주문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찾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려대 주변 이념서적 판매 서점들은 다 사라졌다는 게 집현서점 여사장의 설명이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을 읽어냈던 대학가의 인문과학서점의 퇴조는 고려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려대를 대표했던 인문과학 전문서점, 장백서원은 이미 문을 닫았다.
인문과학서점이 사라진 고려대 앞 가게의 풍경들은 이념의 상징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80년대 아지트 역할을 했던 전통주점이나 고갈비집이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 호프집, PC방, 편의점, 바(BAR), 비디오방, 만화방 등이 들어서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스러진 자리를 실용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2. 나는 이제 다시는 안암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캠퍼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대자보. 그러나 대자보의 흔적을 대학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방학 기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토익 특강이나 면접 안내문 같은, ‘세상’보다는 ‘나’와 관련 있는 게시물이 대자보 대신 빼곡히 게시판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대 학생회관으로 들어가 봤다. 1층부터 5층까지 동아리방 주변을 훑어봐도 대자보는 없다. 1층 현관에 “국보법 연내 폐지하라”라는 반가운(?) 대자보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뿐, 대자보에 관심을 두는 눈길은 많지 않다.
학생 휴게실로 들어가 봤다. 남녀 학생 5명이 모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옆에 앉아 귀동냥을 했다. “어제 싸이 홈피에 졸라 이쁜 사진 올려놨는데 봤어?”로 시작한 대화는 이내 토익, 학점, 취업문제로 번졌다. 옆 테이블의 남학생 3명은 점심시간 후 가졌던 스타크래프트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 “9드론 하면 어떡해. 수비가 안 되잖아. 썽큰은 하나 박아 놓고 시작해야지.” 학생들의 잡담을 뒤로 한 채 고대 신문사가 들어선 건물 2층으로 갔다. 고대신문사 입구에 동판으로 제작한 1995년 8월 28일 ‘1240호’신문이 눈에 띈다.
고려대 85학번 ‘야초(野草)’의 글. 냉전(冷箭ㆍ뼈를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을 비유)이라는 칼럼.
“…안암을 떠난 이후 나는 영원한 실향민이다…자랑스런 아우야…어제는 냉막걸리에 고갈비가 먹고 싶었다. 그것도 마마집에서 숟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이다. 그런데 마마집은 이미 자취도 없어져 버렸더라. 막걸리 쉰 냄새로 늘 쾨쾨했던 마마집은 우리의 해방구였다. 인생에서 가장 지적 갈증에 시달리게 마련인 대학 초년생 시절. 볼 만한 책은 모두 금서였고,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불법이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불온시당했던 때.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마마집에서 목놓아 금지곡을 부를 때였다…내게 안암의 막걸리와 마마집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다…고향에 돌아와 보면 고향은 이미 없었다…아우야…나는 이제 다시는 안암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고대신문 박설수 편집국장은 “학생들은 취업이나 영어 등에 관심이 가장 많다. 이념적 사고나 과거 대학신문에서 담았던 거대 담론 등은 거의 사라졌다”며 “이념은 사라졌고, 다만 반전운동 등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3. 사회과학서적이 놓였던 자리가 휴게실로(?) 연세대에선 최근 각종 사회과학서적을 열람할 수 있었던 ‘생활도서관’이 없어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연세대 부총학생회장 이혁(25) 씨는 “원래 ‘노수석 열사 기념도서관’으로 만들어졌던 생활도서관은 다양한 이념서적을 모아놓은 공간이었지만, 정작 대부분의 일반 학우들이 이용하지 않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게 됐다”며 “차라리 이곳을 학생 휴게실로 만들거나 동아리방으로 활용하는 것이 많은 학우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이른바 ‘운동권’에 갖는 부정적인 시각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한 학생과 마스크를 쓴 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학생의 사진. ‘6ㆍ10 항쟁’의 상징이었던 이한열의 한 장의 사진이다. 연세대에서는 이한열 군을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린다. 그런데 지난해 추모제 행사기간 중 누군가가 이한열 씨의 대형 그림영정을 찢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운동권을 표방했던 당시 총학생회는 이 사건이 일종의 이슈가 될 것이라고 봤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인문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여ㆍ25) 씨는 “그때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범인을 색출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사실 그 자체가 운동권이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쇼’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총학생회는 ‘영정 훼손은 민주주의의 뜻을 해치고 고귀한 열사의 넋을 유린한 파렴치한 행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론이란 있을 수 없을 듯했던 이 사건은 예기치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 ‘영정 훼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제안하기 전에 그 사람들이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해서 영정을 훼손했는가를 잘 생각해 보라’부터 심지어 ‘한총련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작극’이란 말까지 돌 정도였다.
특별취재팀=전창협 정경부 차장(팀장) 김형곤(정경부) 안효조(산업2부) 한석희(증권부) 허연회(사회문화부) 장창민(산업1부) 권로미(산업2부) 이태경(생활경제부) 유지영(사회문화부) 기자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16&article_id=0000160718
[헤럴드경제 2005-01-17 12:26]
“대자보는 이젠 가라” 취업 벽보만 빼곡히 학교앞 인문서점 문닫고… 휴게실선 사상논쟁 대신 ‘미니홈피’ 자랑만...
‘블로그(BLOGㆍBe a Liberal & Open Generation) 세대’의 힘이 캠퍼스와 대학가 주위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386 세대’의 캠퍼스 상징물은 최루탄, 이념서적, 대자보였다. 그러나 2005년 캠퍼스는 인문과학서점이 퇴조하고, 대자보가 게시물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루탄과 이념서적이 사라져가는 공간을 개인과 개방, 자유를 앞세우는 블로그 세대만의 코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①2005년, 캠퍼스, 탈(脫)이념의 풍경들 #1. 고려대 앞 안암동-PC방, 만화방 그리고 이념의 퇴조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문 건너편 집현서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시서적으로 빽빽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점 사장은 “지난 1985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그때 데모가 엄청 심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2~3일만 가게 문을 열어도 이념서적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 지금보다 장사가 잘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념서적을 찾는 학생들이 지금도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도 이념서는 갖다 놓기 무섭게 팔렸고 주문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찾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려대 주변 이념서적 판매 서점들은 다 사라졌다는 게 집현서점 여사장의 설명이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을 읽어냈던 대학가의 인문과학서점의 퇴조는 고려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려대를 대표했던 인문과학 전문서점, 장백서원은 이미 문을 닫았다.
인문과학서점이 사라진 고려대 앞 가게의 풍경들은 이념의 상징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80년대 아지트 역할을 했던 전통주점이나 고갈비집이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 호프집, PC방, 편의점, 바(BAR), 비디오방, 만화방 등이 들어서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스러진 자리를 실용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2. 나는 이제 다시는 안암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캠퍼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대자보. 그러나 대자보의 흔적을 대학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방학 기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토익 특강이나 면접 안내문 같은, ‘세상’보다는 ‘나’와 관련 있는 게시물이 대자보 대신 빼곡히 게시판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대 학생회관으로 들어가 봤다. 1층부터 5층까지 동아리방 주변을 훑어봐도 대자보는 없다. 1층 현관에 “국보법 연내 폐지하라”라는 반가운(?) 대자보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뿐, 대자보에 관심을 두는 눈길은 많지 않다.
학생 휴게실로 들어가 봤다. 남녀 학생 5명이 모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옆에 앉아 귀동냥을 했다. “어제 싸이 홈피에 졸라 이쁜 사진 올려놨는데 봤어?”로 시작한 대화는 이내 토익, 학점, 취업문제로 번졌다. 옆 테이블의 남학생 3명은 점심시간 후 가졌던 스타크래프트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 “9드론 하면 어떡해. 수비가 안 되잖아. 썽큰은 하나 박아 놓고 시작해야지.” 학생들의 잡담을 뒤로 한 채 고대 신문사가 들어선 건물 2층으로 갔다. 고대신문사 입구에 동판으로 제작한 1995년 8월 28일 ‘1240호’신문이 눈에 띈다.
고려대 85학번 ‘야초(野草)’의 글. 냉전(冷箭ㆍ뼈를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을 비유)이라는 칼럼.
“…안암을 떠난 이후 나는 영원한 실향민이다…자랑스런 아우야…어제는 냉막걸리에 고갈비가 먹고 싶었다. 그것도 마마집에서 숟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이다. 그런데 마마집은 이미 자취도 없어져 버렸더라. 막걸리 쉰 냄새로 늘 쾨쾨했던 마마집은 우리의 해방구였다. 인생에서 가장 지적 갈증에 시달리게 마련인 대학 초년생 시절. 볼 만한 책은 모두 금서였고,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불법이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불온시당했던 때.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마마집에서 목놓아 금지곡을 부를 때였다…내게 안암의 막걸리와 마마집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다…고향에 돌아와 보면 고향은 이미 없었다…아우야…나는 이제 다시는 안암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고대신문 박설수 편집국장은 “학생들은 취업이나 영어 등에 관심이 가장 많다. 이념적 사고나 과거 대학신문에서 담았던 거대 담론 등은 거의 사라졌다”며 “이념은 사라졌고, 다만 반전운동 등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3. 사회과학서적이 놓였던 자리가 휴게실로(?) 연세대에선 최근 각종 사회과학서적을 열람할 수 있었던 ‘생활도서관’이 없어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연세대 부총학생회장 이혁(25) 씨는 “원래 ‘노수석 열사 기념도서관’으로 만들어졌던 생활도서관은 다양한 이념서적을 모아놓은 공간이었지만, 정작 대부분의 일반 학우들이 이용하지 않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게 됐다”며 “차라리 이곳을 학생 휴게실로 만들거나 동아리방으로 활용하는 것이 많은 학우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이른바 ‘운동권’에 갖는 부정적인 시각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한 학생과 마스크를 쓴 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학생의 사진. ‘6ㆍ10 항쟁’의 상징이었던 이한열의 한 장의 사진이다. 연세대에서는 이한열 군을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린다. 그런데 지난해 추모제 행사기간 중 누군가가 이한열 씨의 대형 그림영정을 찢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운동권을 표방했던 당시 총학생회는 이 사건이 일종의 이슈가 될 것이라고 봤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인문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여ㆍ25) 씨는 “그때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범인을 색출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사실 그 자체가 운동권이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쇼’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총학생회는 ‘영정 훼손은 민주주의의 뜻을 해치고 고귀한 열사의 넋을 유린한 파렴치한 행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론이란 있을 수 없을 듯했던 이 사건은 예기치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 ‘영정 훼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제안하기 전에 그 사람들이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해서 영정을 훼손했는가를 잘 생각해 보라’부터 심지어 ‘한총련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작극’이란 말까지 돌 정도였다.
특별취재팀=전창협 정경부 차장(팀장) 김형곤(정경부) 안효조(산업2부) 한석희(증권부) 허연회(사회문화부) 장창민(산업1부) 권로미(산업2부) 이태경(생활경제부) 유지영(사회문화부) 기자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16&article_id=000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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