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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작성자철인 28호|작성시간12.07.21|조회수369 목록 댓글 0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정약용)

 

㉠ 역사사실의 인식 기준 : 기술과 산물 관심 → 이용후생과 부국강병, 백제의 벼농사와 가야의 철과 해운으로 초기 고대문화 선진성 지적          ������ 이익의 ‘시세’보다 과학적 기준 부여

㉡ 삼한 정통론(남인계통)을 문헌고증적 입장에서 부정 → 학문적 입장에서 당파성 극복

㉢ 반도 중심 사관, 발해사 연구 발전1)

㉣ 백제의 첫 도읍지가 서울이라는 것, 발해의 중심지가 백두산 동쪽이라는 것을 고증

우리나라 고대사를 이원적으로 파악(전공역사 10년 기출 문제 관련)

 

(정약용 부분 설명 내용) 둘째 우리 고대사를 이원적으로 파악하였다. '강역고'에서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교체기에 열수(한강)이북은 조선이라 하니, 즉 한무제의 사군지역이다. 열수 이남은 한국이라 하며 진국이라고도 하였다. 즉 동쪽의 삼한 지역이다" ('삼한총고')라고 하였다. 한강 이북이 (고)조선이며 한강 이남이 삼한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고조선과 삼한이 병립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조선의 영역은 대체로 한강 이북과 압록·두만강 이남 지역으로 보았다...(중략)....둘째 역사인식 체계는 삼한을 한강 이남, 고조선을 압록강 이남으로 보아 우리의 고대사를 고조선과 삼한의 이원체계 및 한반도 중심으로 파악하였고, 종족적인 면에서는 원래 동이족에 고조선 지역에는 중국의 기자 무리, 삼한 지역에는 진나라 사람이 유입되고 이적시되는 예맥계까 부분적으로 추가되었다고 보았다. 화이관 면에서는 종족적·지리적 화이관은 철저기 극복했지만 문화적 화이관은 남아 있었다.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권 273p-274


1) 예맥족 - 부여․고구려, 조선족 - 기자, 한족 - 백제․신라로 보았고, 이 중에서 한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등 반도중심

사관을 가졌다. 삼한설은 한백겸의 입장을 따르고 있으며, 발해에 대한 치밀한 지리고증을 바탕으로 해서 발해사 연구를 발전

시켰다. 이는 유득공․박지원 등 북학파 학자들이 고조선과 발해의 중심지를 요동지방에 둔 입장을 비판한 업적이기도 하다. 한

국사특강 462p-4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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