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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무인시대는 신라부흥운동이 진압당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아니면 즐겁게도? 옥의 티는 숨어있었다. 이번에는 신라부흥운동에 관한 옥의 티로써 주제를 삼아보려 한다.
첫째, 신라부흥운동은 민란( 民亂 )이었다. 한번 사극을 잘 살펴보길 바란다. 다시보기도 괜찮다. 옥의 티가 보이는가? 안보인다면 글을 다시 보자. 민란은 천민이나 서민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신라부흥운동의 주체도 역시 농민이었으며 반란의 본질도 민란이었다. ( 단 김사미의 이름으로 봐서는 중들도 약간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
신라 부흥운동과 반란군의 규모가 크긴 하였지만 역시 농민군이었으며 일부는 정예였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규군에 미치지 못하는 농민이다. 게다가 반란 중에는 신라 부흥을 내세워 민심을 지배하고자 한 것도 있었으나,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당시 중앙의 부패와 각지에서 일어난 민란에 편승한 초적( 草賊 ), 즉 좀도둑 비슷한 무리가 일으킨 반란이 대부분이었다.
헌데 사극의 반란군은 어찌된 일인지 모두 정규군의 복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복식은 민란보다는 오히려 북계 정규 전투조직의 반란이었던 김보당의 난이나 조위총의 난에 참여한 반란군에 어울리는 장면이다. 결국 사극에서 실제 신라부흥운동에 나오는 반란군들의 모습은 사극에서처럼 당당한 황룡군의 정예 전투부대들이 아니라 같은 민란인 망이, 망소이의 난처럼 허름한 차림의 백성들인 것이다.
둘째, 신라부흥운동을 이끈 자는 김사미 혼자가 아니었다. 이의민집권기에 일어난 신라부흥운동의 명칭은 통칭 김사미( 金沙彌 )와 효심( 孝心 )의 난이라 한다. 무인시대 사극에서는 김사미의 봉기군만 등장하지만 원래는 이들 외에도 수많은 봉기군이 항쟁을 벌였으며 김사미와 효심은 그 중 가장 세력이 강한 무리의 수령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사극에서는 김사미 홀로 등장하고 효심은 김사미에 비해서 비중이 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시청자들은 김사미만 알고 효심은 모르게 됐으니 이것이 진정한 사극의 폐해가 아닐까? 효심, 참 안됐다.
셋째, 신라부흥운동은 김사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하다시피 반란의 수령은 김사미 혼자가 아니다. 김사미는 1194년 2월 투항하여 참수당하는 운명이 됐으나 역시 언급한 비운(?)의 인물 효심은 12월까지 저항하다가 마침내는 생포되어 이의민집권기의 신라부흥운동은 끝난다.
그러나 최충헌집권기에도 신라부흥운동은 계속 발발하였고 이후 무신정권에는 고구려 및 백제부흥운동도 터져나왔으며 ( 여기서 우리들은 고려 중기에 발생하였던 삼국부흥운동에게서 나말여초에 발발하였던 후삼국의 속편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삼국 부흥운동의 순서가 신라 - 고구려 - 백제인 것을 보아 당시 고려에 남아있던 삼국의 영향력의 크기를 엿볼 수 있다. ) 이러한 고려 중기 분렬의 양상을 끝으로 하여 이후 한민족은 비로소 지역주의 국가를 넘어 동질민족의 의식이 싹트게 된다. ( 삼국 이전 단군신화가 기록된 삼국유사가 이시기에 쓰여졌고 고려 이후 다음 왕조국가의 명칭이 바로 삼국 이전의 시대인 고대왕조 조선에서 유례를 찾은 조선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이리하여 신라부흥운동의 역사적 옥의 티를 살펴보았다.
종반에 어쩌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뭐 어떤가? 옥의 티도 찾고 역사도 한번 알아보고 좋지 않겠는가? 아닌가? 다음 번 이야기에서는 어떠한 옥의 티가 등장하게 될 것인가? 사극의 옥의 티를 검증하는 작업이야말로 시청자의 한 몫이며 사극 도야를 위해 필요한 행동일 것이다.
옥의 티, 그것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추신: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발견한 깜짝 옥의 티!!! 반란진압에서 토벌군의 병마사는 전존걸이 아니라, 바로 최인( 崔仁 )과 고용지( 高勇之 )라는 장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