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울주군 상북면 지곡, 오산, 지화, 안몰, 신리, 지내, 화천, 명촌, 일동 ] <3>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15.07.22조회수90 목록 댓글 0★469.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울주군 상북면 지곡, 오산, 지화, 안몰, 신리, 지내, 화천, 명촌, 일동 ] <3>
☆
(주)도재국 :
이 글은 원래 본 카페의 "자료실 게시판"에 있던 것을, 설명 글을 추가하여, 2018.1.1 본 게시판에 게재를 한다
☆
한국의 마을제당 국립민속박물관 2003
(상북면 지곡, 오산, 지화, 안몰, 신리, 지내, 화천, 명촌, 일동) (이천리 無)
☆
(주)도재국 : 재악산 정상 부근의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조(條)가 없다는 것은
재악산 즉, 울산측이 말하는 소위 천황산 정상부에는 제당이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본다
☆
「한국의 마을제당」이란 책은
2003년도에 우리나라 읍.면별, 마을별(마을,들판,산정 등 총망라)로 제당을 조사하며 펴낸 책이다
☆
재악산군(載嶽山 = 재악산 산 덩어리)은 밀양시 단장면과 울주군 상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1189.2 미터 정상부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 1번지”에 위치한다
☆
필자(도재국)와 손흥수 선생은 수십년 동안 재악산(載嶽山) 정상을 여러 차례 같이 올라, 정상부와 그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사람의 허리춤 정도 높이의 돌무더기는 있었지만, 제당(祭堂 = 제사를 지내는 서낭당 또는 당집)은 없었다
☆☆
그런데 울산측은 옛날부터 재악산 정상에 제당이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다. 필자(도재국)와 손흥수 선생이 조사해 본 결과, 재악산 사자봉 정상에 산꾼들(등산하는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 주먹만한 돌 한 개씩을 던져 모아진 사람의 키보다 낮고 허리춤 높이 정도의 조그마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 돌무더기에 최근에 어떤 단체가 사람을 많이 동원하여, 그 작은 돌무더기를 덮어 크다랗게 쌓아놓고, 이것을 무슨 제당이라고 주장하고, 또 사진을 찍어 선전하고 있다
☆
원래의 돌무더기
원래 이 자리에는 "위 사진의 돌무더기"보다 더 작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
위장한 제당(돌무더기)
최근에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쌓은 큰 돌무더기를 제당이라 거짓 선전하고 있다 (위)
☆
울산측은 "거짓 제당"을 국가지명위원회 심의 서류로 제출
이 "거짓.위장 제당"을 울산측은 국가지리정보원에 "천황산 산명의 증거"로 제출했다
☆
2015.12.4 국토지리정보원 소속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지명심의를 할 때, 울산측은 이 돌무더기 사진을 제당이라고 울주군과 울산광역시 지명위원회 심의 서류에 포함시켜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했다
☆
앞의 여러 글에서 필자(도재국 )는 주장하기를 「산속의 제당은 주로 "서낭당"이라는 형태로 산의 정상이 아닌, 산의 고개(안부 : 鞍部)에 있었는데, 정상이 아닌, 고개(鞍部)에 위치했던 이유는 옛날부터 오일장을 보러 가거나, 연락, 소통 등을 위해 산길을 갈 때는 산길을 따라 오갔는데, 그 산길은 요즘으로 치면 도로의 역할을 했다
☆
그래서 옛부터 사람의 왕래가 많던 산길을 "산중대로(山中大路)"라 불렀다, 그래서 산길은 특별한 지형으로 산의 정상(頂上 : 제일 높은 곳)을 반드시 통해야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 때만 높고 험한 산의 정상을 통해서 간다
☆
재악산군에는 옛부터 산중대로가 여러 갈래 있었다
●즉, 단장면 삼거리마을에서 얼음골쪽, 운문사 방향으로 넘어 갈려면, "도래재" 라는 높은 고개(안부)를 넘나들었다
●표충사에서 양산 통도사로 오가려면 칡밭고개를 이용했다
●표충사에서 배내마을을 오가려면 지금의 “재악산 사자평고산습지”의 중간 지대를 통과하여 오갔다
●표충사에서 언양으로 가려면 사자재(獅子峙 또는 獅子嶺)를 넘나들었다. 울산측의 사람들에 의해서 재악산을 천황산으로 조작하고, 또 정부에서 제1봉을 천황산으로 조작한 후로부터 사자재는 천황재 또는 천황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
재악산군은 밀양과 울산의 경역에 대체로 놓여있는데, 밀양측 경역에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그 정상도 밀양쪽에 위치하지만, 요즘은 울산쪽 등산객들이 밀양쪽 등산객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또 울산쪽에서 설치한 산림 입간판(등산로, 산명, 고개명, 산악안전 간판 등)이 훨씬 많기 때문에 수많은 등산객들은 울산측이 주장하는 산 관련 지명(地名 : 명칭)대로 불려져 사용.굳어졌다
☆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설명하면, 표충사에서 언양 방면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사자재를 넘어 사자봉 정상의 동록(약 7~8부 능선 : “사자평 북쪽 평원”으로 칭함)을 따라 평평한 능동산 정상을 거쳐, 배내고개(북쪽 배내고개)를 지나, 석남사 입구를 통과하여, 언양으로 오갔다
☆
단, 얼음골에서 언양을 오갈 때는 반드시 천화령(穿火嶺, 일명 석남고개)를 넘나들었다☆그래서 표충사와 언양을 오갈 때는 반드시 사자봉 정상이 아닌, 사자재(울산측이 칭하는 소위 "천황재")를 넘나들었다.
☆
옛날 산길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짐을 이고.지고.들고 다녔고, 짐들은 작은 것에서부터 무겁고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특히 오일장을 오가던 장꾼들은 크고 무거운 짐이었다. 그래서 그런 길손들은 산을 넘나들 때 반드시 산 정상이 아닌 낮은 고개(안부)를 넘나들었다. 또 연락을 위해 오갔던 길손들도 연락의 시급함을 감안해서 반드시 시간과 힘이 덜 드는 낮은 고개를 넘나들었다
☆
그래서 여러 목적의 길손들은 그 옛날에 산길을 넘나들면서 호랑이 등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게 해달라고, 갑작스런 뇌성과 번개.폭우 등으로부터 홍수와 산의 무너짐에서 목숨을 보전키 위해서 천지신명께 빌기 위해 산중의 험한 길 중간인 고개마루(鞍部)에 도착하자마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사함의 뜻으로, 또 마지막 남은 산길까지도 안전하게 해달라고 빌면서 주먹 정도 또는 그보다 작은 손바닥 안에 잡힐 정도의 조그마한 돌 하나하나씩을 던져 쌓여진 것이 고개에 있었던 돌무더기이고, 그러한 돌무더기가 사람의 키의 허리춤 정도 높이만 되면 저절로 무너지고, 절대로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쌓이지 않는데
☆
지금 재악산 사자봉 정상의 돌무더기는 많은 사람을 일시에 동원하여 사진에 보이듯이 크다랗게 쌓아놓은 것은, 있지도 않은 사자봉 정상의 제당을 옛부터 있어온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놓은 것이고
☆
2015.12.4 국가지명위원들은 울산측이 제출한 이 엉터리 제당(돌무더기)을 진짜 제당인 양 오인하여, 여기에 산신(山神)을 더 높혀 거짓의 천왕(天王)과 천황(天皇)을 꾸며, 결국은 조작된 천황산이 민족신앙에 의한 산명인 양 인정케 하는 산명유래의 거짓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
이에 필자(도재국)는 밀양시립도서관에 소장 중인 본 도서의 일부를 사진으로 공개하여, 2003년도에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사한 내용을 공개한다
☆
다시 말하지만, 마을의 제당을 조사한 책의 내용은마을 입구 등에 위치했던 “서낭당”만을 조사한 것이 아닌, 그 마을 경계 안의 마을.들판.산.하천변 등 모든 지역을 전부 조사한 것이며, 그렇게 조사한 결과 재악산 정상에 제당 즉, 산신,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옛 사람들이 설치한 제당(돌무더기 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필자(도재국)가 책의 주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사진을 찍어 공개한다☆재삼 말씀드리지만이 책은 밀양시립도서관 자료실에 비치되어 일반인에게 항상 열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
마을의 제당, 서낭당 등도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도 고귀한 역사 유적이다. 이러한 역사 유적을 왜곡.조작하는 것은 죄악(罪惡)이고 이러한 왜곡과 조작을 통해서 산 이름을 조작.왜곡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
[ 참고 사항 ]
사진이 하나의 글에 게시가 불가능하므로 여러 차례 나누어 게재를 한다
☆
-----------------------------
한국의 마을제당(국립민속박물관, 2003년)
[울주군 상북면 지곡, 오산, 지화, 안몰, 신리, 지내, 화천, 명촌, 일동 ] <1>
상북면 시작
상북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