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26권 > 경상도(慶尙道),
[밀양도호부 密陽都護府]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이 글을 만든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남알프스의 주산(主山)인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 해발1189.2미터)은 원래의 산명입니다
② 이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사자봉 獅子峰, 제1봉)을 1925년에 일제(日帝)가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③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 载岳山 = 사자봉 獅子峰)을 위와 같이 조작하고,
④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는 재약산(載藥山)"으로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⑤ 본 블로그와 카페는 제1봉인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으로 복원하고, 제2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하기 위해
⑥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산명(山名)의 증거를 찾아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⑦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을 많이 홍보해 주시기 바라오며, 많은 지도,편달,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및 카페 운영자 도재국(都在國, 닉네임 레나, 소나무바다)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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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악산(載岳山) 증거 요약서(연명부 작성용)○ 연번 : 14
○ 정식 명칭 :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26권 > 경상도(慶尙道),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 요약 명칭 :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밀양도호부 산천(山川) 조(條)
○ 내용 요약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26권 경상도(慶尙道)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기록
○ 산(山)지명 등 : 載岳山
○ 년도(시기) : 1530년
○ 참고사항<신증동국여지승람>
- 이칭 별칭 : 동국여지승람
- 유형 : 문헌
- 시대 : 조선
- 성격 : 관찬 지리서
- 편저자 : 이행, 윤은보, 신공제, 홍언필, 이사균
- 제작 시기 : 1530년
- 권수·책수 : 55권 25책
- 소장처 : 규장각 도서
<정의>
1530년(중종 25)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홍언필(洪彦弼)·이사균(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
<내용>
55권 25책.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서이다. 이 책은 세 차례의 수교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원래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 50권으로 편찬되었다.
내용은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 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서문·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찬수관직명·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임사홍·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 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이 지도는 본래 지지를 읽는 데 참고가 되도록 첨부한 안내도였으므로 지도학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순수한 자연현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지에 지도를 첨부함으로써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정확한 인식을 달성하려 한 점은 이전의 지리지에서 한 걸음 발전한 것이다.
내용은 각 도의 연혁과 총론·관원을 적은 후, 목·부·군·현의 연혁, 관원·군명·성씨·풍속·형승·산천·토산성곽·관방(關防)·봉수·누정·학교·역원·교량위치·불우·사묘·능묘·고적·명환(名宦)·인물·시인의 제영(題詠) 등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이후에 증보된 것은 신증으로 밝혀져 있다. 인물 속에는 효자·열녀가 포함되어 있다.
군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특히 강조된 내용은 연혁·성씨·산천·역원·고적·인물 등이다. 연혁에서는 시대에 따른 각 군현의 지명 변화, 행정구역의 변천 과정 등을 밝히고 있다. 성씨는 토성(土姓)·내성(來姓)·속성(續姓)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으며, 역사상 유명한 학자·고승·충신·무장·효자·열녀 등을 다룬 인물조와 관계가 깊다.
산천조는 명산·하천·바다·호소·나루터 등의 위치를 읍을 기준으로 거리와 방향을 기록하였으며, 시문으로 과거의 경관을 묘사하였다. 역원제와 봉수제는 왕명의 전달, 긴급 군사 정보의 송부, 공무 여행자와 관물 수송 등 봉건 전제군주제 하에서 행정상의 중추신경 구실을 했던만큼 매우 중요시되었다.
봉수와 역원의 위치는 읍을 중심으로 방위와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역은 찰방역과 일반역으로 나누었다. 찰방역의 경우 그 소속 역명을 열거하였으며, 주요 역원은 그 시설과 연혁 등이 기술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조세·인구 등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1906년 후지가미(淵上貞助)가 활판본 A5판으로 인쇄하였고, 1912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60년대에는 서울대학교소장본을 바탕으로 한 영인본이 동국문화사에서 나왔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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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후의 밀주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저본으로 하여, 뜻있는 지방민들에 의해 필사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본 밀양도호부 편은 우리 밀양 향토사 발전은 물론, 산천을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출처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분류별 > 고전국역총서 > 신증동국여지승람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6권 > 경상도 慶尙道 [6]
■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國譯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편 일부를 "원문(原文)" 그대로 다음과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2001. 10월부터 "한국의 산하" > "산행정보게시판"을 통하여 "재악산(載嶽山)"에 대해 글을 올려 드리고 있는 경남 밀양의 도재국입니다.
[낙동정맥과 영남알프스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재악산(載嶽山) 관련 글의 목표(目標)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천황산(사자봉, 해발 1189m)] ⇒ [재악산(載嶽山, 사자봉, 해발 1189m)] 으로
□ [재약산(載藥山, 수미봉, 해발 1108m)] ⇒ [수미봉(해발, 1108m)] 으로 환원(개명)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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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편과 재악산(載嶽山) | ||||
| 제 목 : 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편과 재악산(載嶽山) |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 위치
동으로는 양산군(梁山郡) 경계까지 49리, 언양현(彦陽縣) 경계까지 93리,
남으로는 김해부(金海府) 경계까지 47리,
서쪽으로는 영산현(靈山縣) 경계까지 38리,
북으로는 청도군(淸道郡) 경계까지 31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8백 12리이다.
■ 건치연혁
> 본래 신라의 추화군(推火郡)인데, 경덕왕이 밀성군(密城郡)으로 고쳤다.
> 고려 초에는 그대로 부르다가,
> 성종이 밀주 자사(密州刺史)로 고쳤고,
> 현종이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로 일컬었고,
> 충렬왕 원년(1274)에, 이 군 사람 조천(趙仟) 등이 수령을 죽이고 진도(珍島)의 반적(叛賊)에 호응했으므로 낮추어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하여 계림(鷄林)에 붙였다가, 뒤에 밀성으로 불렀고, 11년에 높여서 군(郡)으로 하였다가, 얼마 안되어 또 낮추어 현(縣)으로 했고,
> 공양왕이 증조할머니 박씨(朴氏)의 고향이므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높여서 부(府)로 하였다.
> 본조 태조 때에 도로 밀성군으로 하였다가, 뒤에 중국에 입조(入朝)한 환자(宦者) 김인보(金仁甫)의 고향이므로 다시 높여서 부(府)로 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 태종 때에 도로 군(郡)으로 하였다가,
> 뒤에 준례에 따라 도호부(都護府)로 하였다.
■ 속현
> 수산현(守山縣) : 부에서 남으로 40리에 있다. 본래 천산부곡(穿山部曲)인데,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으로 하였고, 현종 때에 부에 내속(來屬)하였다. 은산(銀山)이라고도 한다.
> 풍각현(豊角縣) : 부에서 서북으로 50리에 있다. 본래 상화촌현(上火村縣)인데,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고, 현종 9년(1668)에 내속하였다. 유산(幽山)이라고도 한다.
■ 신증(新增)
지금 임금 13년(1518)에 부(府)의 사람으로 그 아버지를 죽인 자가 있어서 낮추어 현으로 하고, 부의 땅을 갈라서 청도(淸道)ㆍ경산(慶山)ㆍ영산(靈山)ㆍ현풍(玄風) 등의 읍(邑)에 나누어 붙였다가, 17년에 복구하였다.
■ 군명(郡名)
추화(推火)ㆍ밀성(密城)ㆍ밀주(密州)ㆍ귀화(歸化)ㆍ응천(凝川)ㆍ밀산(密山).
■ 형승(形勝)
> 긴 내를 굽어 당기고 넓은 들을 평평히 머금고 있다 : 김주의 기문에 있다.
> 큰 강이 비껴 흐르고 늘어 선 봉우리가 겹쳐 에워쌌다. : 성원도(成元度)의 영남루시의 서문에 있다.
> 먼 봉우리는 하늘에 떠 있고, 긴 강은 뉘어(練) 놓은 듯하다. : 권람(權擥)의 덕민루기(德民樓記) 기문에 있다.
>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요, 잇닿은 봉우리와 겹친 봉우리이다. : 권기(權技)의 소루기(召樓記)에 있다.
■ 산천(山川) ★
> 화악산(華嶽山) : 둔덕(屯德)이라고도 하는데, 부의 북쪽 19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
> 추화산(推火山) : 부의 동쪽으로 5리에 있다.
> 비슬산(琵瑟山) : 풍각현의 서북 30리에 있다.
> 우령산(牛齡山) : 부의 서쪽 10리에 있다.
> 재악산(載嶽山) : 부의 동쪽 41리에 있다★
> 만어산(萬魚山) : 부의 동쪽 20리에 있다.
> 자씨산(慈氏山) : 부의 동쪽 15리에 있다.
> 귀령산(龜齡山) : 수산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고려 인종이 여기에 태(胎)를 묻었다.
> 실혜산(實惠山) : 부의 동쪽 31리에 있다.
[☆ 주(도재국) : 실혜산은 지금의 가지산(迦智山)입니다]
> 천화령(穿火嶺) : 부의 동쪽 93리에 있다.
[☆ 주(도재국) : 천화령은 지금의 석남령(석남터널)이며, 재악산군과 가지산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으로 노선버스로 오시면 이곳에서부터 가지산 또는 재악산의 등산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지금의 밀양시 산내면은 원래의 명칭이 천화면(穿火面)입니다. "천화(穿火)"란 지세(산세 등)가 너무 깊고 험하여 불로서 수목을 태워 뚫고 길을 내어 지나간다는 뜻과 옛날에 화산이 뚫고 솟아올랐다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 호법현(湖法峴) : 부의 서북 37리에 있다.
> 영현(鈴峴) : 부의 서쪽 15리에 있다.
> 나현(羅峴) : 부의 서쪽 15리에 있으며, 아현(阿峴)이라고도 부른다.
> 고암산(高巖山) : 부의 서쪽 9리에 있다. 그 남쪽에 일현(日峴)이 있다.
> 용두산(龍頭山) : 부의 동쪽 4리에 있다.
> 율림(栗林) 서쪽: 응천(凝川)의 남쪽 기슭에 있다.
> 운례수(運禮藪) : 부의 남쪽 6리에 있다.
> 마암(馬巖) : 부의 6리에 있다. 바위가 응천으로 쑥 들어가서[斗入] 모양이 물을 마시는 말[馬]과 같은 까닭에 이름지었으며, 그 아래에 깊은 못이 있다.
> 해양강(海陽江) : 부의 남쪽 34리에 있다. 일명 뇌진(磊津)이고, 김해(金海)와의 경계이다.
[☆ 주(도재국) : 해양강은 지금의 낙동강입니다]
> 응천(凝川) : 부의 남쪽 성(城) 밑에 있다. 그 근원이 둘인데,
- 하나는 청도군의 동쪽에 있는 운문산(雲門山)에서 나오고,
- 하나는 풍각현의 북쪽에 있는 비슬산에서 나와서 청도군 유천역(楡川驛) 곁에 이르러 합류하여
- 부의 성(城)의 남문(南門)을 지나 해양강으로 들어간다.
[☆ 주(도재국) : 응천은 밀양강의 옛 명칭을 말합니다]
> 월영연(月盈淵) : 부의 동쪽 7리에 있다. 재악의 물이 추화산 동쪽에 이르러 응천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 주(도재국) : 월영연은 밀양시 용평동에 소재한 여주이씨 한림 이태(월연공)를 기리기 위한 향사인 지금의 월연정 앞의 밀양강입니다]
> 수산진(守山津) : 수산현에서 서쪽으로 1백 보 가서 있다.
> 구연(臼淵) : 천화령 아래에 있는데, 둘레가 1백여 자이다. 폭포가 돌에 떨어져 움푹 파여서 못의 모양이 꼭 절구와 같은 까닭에 이름 지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 "용이 있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가뭄에 범의 머리를 집어넣으면 물을 뿜어서 곧 비가 된다." 한다.
[☆ 주(도재국) : 구연은 지금의 시레 호박소입니다]
> 삽포(鈒浦) : 부의 동쪽 51리에 있다.
[☆ 주(도재국) : 지금의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 후사포리 일대입니다]
> 우도(牛島) : 응천 가운데에 있다.
> 내진천(來進川) : 내진향(來進鄕)에 있다. 근원이 화악산에서 나와 수산진으로 들어간다.
> 용진(龍津) : 부의 남쪽 36리에 있다. 수산진의 하류이다. ○ 정이오(鄭以吾)의 시에, "8월의 용진 강물이 평평하고, 물가[渚]가 맑고 모래가 희어서 눈이 더욱 밝네. 물을 거슬러 곧바로 올라가니 밀물이 멀어지고, 양 기슭의 푸른 산이 길손을 전송하네." 하였다.
> 양량지(陽良池) : 양량부곡(陽良部曲)에 있다.
■ 봉수(烽燧)
① 남산 봉수(南山烽燧) : 부의 남쪽 15리에 있다. 남으로 김해부의 자암산(子巖山)에 응하고, 북으로 추화산에 응한다.
② 추화산 봉수(推火山烽燧) : 남으로 남산에 응하고, 북으로 분항(盆項)에 응한다.
③ 분항 봉수(盆項烽燧) : 부의 북쪽 20리에 있다. 남으로 추화산에 응하고 북으로 청도군의 남산에 응한다.
■불우(佛宇)★
> 영정사(靈井寺) : 재악산(載嶽山)에 있다★
[☆ 주(도재국) : 영정사는 현재의 표충사(表忠寺)의 전신입니다]
> 만어사(萬魚寺) : 만어산에 있다.
> 안수사(安水寺) : 종남산(終南山)에 있다.
> 봉천사(鳳泉寺) : 화악산(華嶽山)에 있다.
> 용천사(湧泉寺) : 비슬산(琵瑟山)에 있다.
> 영은사(靈隱寺) : 남산(南山)에 있다.
[☆ 주(도재국) : 불우란 사찰(절)을 말합니다]
■ 신증(新增)
<종묘>
> 김종직(金宗直)의 묘 : 지동(池洞)에 있다.
[☆ 주(도재국) : 여기서 지동이란 마을은 현재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못골마을로 보이며, 김종직의 고향은 부북면 제대리 못골마을 안의 한골마을입니다]
<고적>
> 귀화 부곡(歸化部曲) :
고려 원종 12년(1271)에 군(郡) 사람 방보(方甫)ㆍ계년(桂年)ㆍ박경순(朴慶純)ㆍ박평(朴平)ㆍ경기(慶祺) 등이
장차 진도(珍島)에 있는 삼별초(三別抄)에 호응하려고
부사(副使) 이이(李?)를 죽이고 드디어 공국병마사(攻國兵馬使)라고 일컬으며
군현(郡縣)에 이첩(移牒)하고, 그 무리를 보내어 청도 감무(淸道監務) 임종(林宗)을 죽이니,
청도 사람들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술을 먹여서 취하게 하여 섬멸하였다.
또 군 사람들을 소집하여 일선 현령(一善縣令) 조천(趙仟)을 함께 모반하게 하니, 조천이 따랐다.
금주 방어사(金州防禦使) 김훤(金?), 경주 판관(慶州判官) 엄수안(嚴守安) 등이 와서 토벌하자, 조천이 곧 손일(孫逸)과 함께 방보 등을 꾀어 죽이니, 반적이 드디어 평정되었다.
대간(臺諫)들이 읍호(邑號)를 낮출 것을 여러 번 청했으나, 권세를 쥔 사람이 읍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고 늘 막았다. 충렬왕 2년(1276)에 이르러 대간이 다시 극론(極論)하여, 비로소 귀화부곡으로 낮추어 계림(鷄林)에 붙이고 소복별감(蘇復別監)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 두야보(豆也保) 부곡 : 일명 도련(道連)이라고도 하며, 풍각현(豊角縣)에 있다.
> 이동음(伊冬音) 부곡 : 일명 금산(金山)이라고도 하며, 부의 남쪽 20리에 있다.
> 금음물(金音勿) 부곡 : 부의 동남 15리에 있다.
> 내진향(來進鄕) : 일명 통가(通駕)라고도 하며,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 운막향(雲幕鄕) : 세상에서 백족(白足)이라고 부르는데, 부의 남쪽 25리에 있다.
> 신포향(薪浦鄕) : 곧 삽포(鈒浦)이다. 섶[薪]과 삽은 사투리로 서로 비슷하다.
> 저대(楮代) 부곡 : 부의 북쪽 7리에 있다.
> 오정(烏丁) 부곡 : 부의 서쪽 6리 있다.
> 평릉(平陵) 부곡 : 부의 동북 15리에 있다.
> 음곡소(陰谷所) : 부의 서쪽 25리에 있다.
> 고매(古買) 부곡 : 청도군 동촌(東村)과 경주 서촌(西村)에 넘어 들어가 있으며, 부에서 95리 떨어졌다.
> 곡량촌(谷良村) 부곡 :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 파서방(破西防) 부곡 : 부의 남쪽 30리에 있다.
> 근개(近皆) 부곡 : 부의 서쪽 25리에 있다.
> 양량(陽良) 부곡 : 부의 북쪽 10리에 있다.
> 밀진현(密津縣) : 일명 죽산(竹山)이라고한다. 김부식(金富軾)이 말하기를, "경덕왕이 개명하여 밀양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했는데, 지금 상세히 알 수 없다.
○ 지금 살펴보건대, 권근(權近)의 《사략신라지리(史略新羅地理)》에는, 추화(推火)의 주(注)에 밀양이라 하고, 상약(尙藥)의 주에 영산(靈山)이라 하고, 추포(推浦)의 주에 밀진(密津)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영산에서 남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멸포(蔑浦)가 있는데, 밀[推]과 멸(蔑), 밀(密)은 사투리의 음이 같으므로, 이것이 그 땅인 듯하다.
더욱이 고려 때에 영산ㆍ계성(桂城)이 모두 밀양의 영현(領縣)이었으니, 이 땅도 밀양에 붙었던 것은 분명한데, 상고할 곳이 없다.
> 수산제(守山堤) : 수산현에 있는데, 둘레가 20리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고려의 김방경(金方慶)이 이 뚝을 쌓아서 밭에 물을 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군량(軍糧)을 갖추었다." 한다. 못 가운데에 죽도(竹島)가 있는데, 세모마름ㆍ연ㆍ마름ㆍ귀리가 멀리까지 가득하다.
세종 때에 물길을 트고 수문(水門)을 설치하여 나라의 둔전(屯田)으로 하였다가, 뒤에 봉선사(奉先寺)에 내려주었다.
성종 때에 다시 나라의 둔전이 되었다.
> 병구(兵區) : 부의 남쪽 5리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김훤이 조천을 토벌할 때 병영을 주둔시킨 곳이다." 한다.
> 영원사(瑩原寺) : 자씨산(慈氏山)에 있다. 고려의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중 보감(寶鑑)의 비명이 있다. ○ 절에 선조루(先照樓)가 있다. 이문화(李文和)의 시에, "선조루 안에서 중이 좌선하니, 밝은 마음과 자취가 둘이 서로 알맞네. 어느 해에 한 갈대[一蘆] 위로 바다를 건넜던가. 오늘날 쌍수(雙樹) 앞에서 불경(佛經)을 뒤적이는구나." 하였다.
> 엄광사(嚴光寺) : 실혜산(實惠山)에 있다.
> 만어산 경석(萬魚山磬石) : 산중에 한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이 모두 종과 경쇠 소리가 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화했다." 한다. 세종 때에 채굴하여 경쇠를 만들었으나 음률에 맞지 않아 드디어 폐지하였다.
> 장군정(將軍井) : 객관의 동북쪽에 있다. 샘물이 맑고 차며,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차다. 그 깊이가 10여 척은 되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세속에서, "김석(金碩) 장군의 우물."이라 한다.
> 삼랑루(三郞樓) : 부의 남쪽 30여리에 있다. 응천(凝川)이 강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 고려 중 원감(圓鑑)의 시에, "호수 위에 청산이요, 청산 아래 누각이로다. 아름다운 이름이 길이 물과 함께 흐르네. 물가의 가게는 달팽이 껍질을 늘어놓은 듯하고, 물결 쫓아 바람 받는 배에는 바람개비가 춤추네. 상자(桑?)에 연기 깊어 천리가 저물고, 마름꽃과 연꽃이 늙어 온 강에 가을빛이로구나. 낙하 고목(落霞孤鶩)은 낡은 말일세. 새 시 지어 경치 놀이를 적노라." 하였다.
> 추화산 고성(推火山古城) : 산꼭대기에 석성이 있는데, 둘레가 2천 3백 60척이고, 안에 샘이 둘, 못이 하나 있다.
■ 비고
<연혁>
중종 13년(1518)에 현으로 강등시켰다. : 부(府)의 땅을 갈라 청도(淸道)ㆍ영산(靈山)ㆍ경산(慶山)ㆍ현풍(玄風) 등의 읍으로 나누었다.
17년에 다시 승격시켰다 : 선조(宣祖) 33년(1600)에 방어사(防禦使)를 겸하였다가 이듬해에 파했는데, 37년에 다시 겸했다.
인조(仁祖) 7년(1629)에 파하고 19년에 토포사(討捕使)를 겸했는데 현종조(顯宗朝)에 파했다.
<고읍>
> 밀진(密津) : 지금 영산현 남쪽 34리이다. 멸포(蔑浦)는 곧 현의 땅이다. 본래 신라의 추포(推浦)인데 죽산(竹山)이라고도 한다. 경덕왕 16년에 밀진으로 고쳐 밀성군(密城郡)의 영현을 삼았고 고려 초에도 이에 속했다.
> 수산(守山) : 남쪽으로 40리이다. 본래 천산 부곡(穿山部曲)이며, 은산(銀山)이라고도 한다. 고려 초에 수산으로 승격하고 현종 9년(1018)에 내속하였다.
<방면>
부내(府內) : 끝은 10리이다.
부내초동(府內初同) : 남쪽으로 처음은 10리이고, 끝은 30리이다.
부내이동(府內二同) : 처음은 30리이고, 끝은 40리이다.
부내삼동(府內三同) : 위와 같음.
부북(府北) : 처음은 30리이고, 끝은 50리이다.
상동(上東) : 동북쪽으로 처음은 15리이고, 끝은 50리이다.
상동초동(上東初同) : 동남쪽으로 처음은 30리이고, 끝은 50리이다.
하동이동(下東二同) : 동쪽으로 처음은 20리이고, 끝은 40리이다.
중초동(中初同) : 동쪽으로 처음은 15리이고, 끝은 80리이다.
중이동(中二同) : 동쪽으로 처음은 25리이고, 끝은 7리다.
중삼동(中三同) : 동쪽으로 처음은 20리이고, 끝은 30리이다.
상남(上南) : 끝은 30리이다.
하남초동(下南初同) : 끝은 20리이다.
하남이동(下南二同) : 끝은 30리이다.
하남삼동(下南三同) : 끝은 50리이다.
상서초동(上西初同) : 처음은 20리이고, 끝은 40리이다.
상서이동(上西二同) : 처음은 30리이고, 끝은 40리이다.
상서삼동(上西三同) : 처음은 30리이고, 끝은 50리이다.
중서(中西) : 처음은 15리이고, 끝은 40리이다.
고미(古彌) : 동북으로 처음은 80리이고, 끝은 1백 20리이다.
내진향(內進鄕) : 다른 이름은 통가(通駕)로, 서쪽으로 20리이다.
운막향(雲幕鄕) : 통속적으로는 백족(白足)이라 한다. 남으로 25리이다.
신포향(薪浦鄕) : 즉 급포(級浦)이니, 아래에 보인다.
이동음 부곡(伊冬音部曲)은 일명 금산(金山)이라 하며, 남쪽으로 20리이다. 지금의 음물 부곡(音勿部曲)은 동남쪽 아래로 5리이다.
오정 부곡(烏丁部曲)ㆍ평릉 부곡(平陵部曲)은 동북쪽으로 15리이다.
고매 부곡(古買部曲)은 청도(淸道) 동남 경계와 경주 서쪽 경계를 넘어 들어갔으며, 동북쪽으로 95리이다.
곡양소 부곡(谷良所部曲)은 서쪽으로 20리이다.
파서방방 부곡(破西防防部曲)은 남쪽으로 30리이다.
근개 부곡(近皆部曲)은 서쪽으로 25리이며,
양량 부곡(陽良部曲)은 북쪽으로 10리이다.
음곡소(陰谷所)는 서쪽으로 25리이다.
<봉수>
성황(城隍) : 즉 추화산(推火山)이다.
백산(柏山) : 남쪽으로 40리이다.
<사원>
> 예림서원(禮林書院) : 명종 정묘년(1567)에 건립하고 현종 기유년(1669)에 사액하였다.
<인물>
> 김종직(金宗直)
자는 계온(季溫)이고, 호는 점필재(人+占畢齋)이며,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벼슬은 형조 판서인데 영의정을 추증하였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 박한주(朴漢柱)
자는 천지(天支)이고,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연산주 갑자년(1504)에 화를 입었다. 벼슬은 헌납이고, 도승지를 추증하였다.
> 표충사(表忠祠)
영종 계해년(1743)에 건립하고 같은 해에 사액하였다.
> 석 휴정(釋休靜)
자는 현응(玄應)이고, 호는 청허(淸虛)라고도 하고 서산(西山)이라고도 하는데, 속성(俗姓)은 최씨이며,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선조 임진년(1592)에 승군(僧軍)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니, 국일자도 대선사 도총섭(國一紫都大禪師都摠攝)의 호를 하사하였다.
> 석 유정(釋惟政)
자는 이환(離幻)이고, 호는 사명(泗溟)이라고도 하고 송운(松雲)이라고도 하는데, 속성은 임(任)씨이고,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벼슬은 지중추부사이고, 사시(私諡)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임진년에 휴정을 대신하여 도총섭(都摠攝)이 된 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었다.
> 석 영규(釋靈圭)
임진년에 중 7백 명을 일으켜 창의(倡義)하였다.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을 따라 왜적을 토벌하다가 금산(錦山)에서 순국하였다. 지중추부사를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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