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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3(1254). 재악산(載嶽山 = 載岳山) 산명 복원(復元) 홍보 자료 (작성중)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19.03.02|조회수100 목록 댓글 1

★1233(1254). 재악산(載嶽山 = 載岳山) 산명 복원(復元) 홍보자료 (작성중)

 

□ 영남알프스의 주산(主山) 재악산(載嶽山)

□ 밀양의 주산(主山) 재악산(載嶽山)

□ 밀양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재악산(載嶽山)

□ 임진왜란(龍蛇 7년) 삼대사(三大師) 聖戰을 모독하는 천황산(天皇山)

□ 일제(日帝)에 짓밟힌 재악산(載嶽山)

□ 울산 사람 이유수의 天皇山日式名說考察에 짓밟히는 재악산(載嶽山)

□ 護國聖地 표충사(表忠祠).표충사(表忠寺)를 모독하는 천황산(天皇山)

□ 재악산(載嶽山) 산명의 수난사

□ 조작된 載藥山靈井寺古蹟(靈井寺 창건설화)에 근거한 재약산(載藥山)

□ 울산의 치밀하고 은밀하고 끈질긴 재악산(載嶽山) 말살 정책 공개

□ 또 조작, 고속국도 14번 “白馬山 터널”이 왜 “載藥山 터널”인가?

□ 손흥수.도재국의 33년간의 재악산(載嶽山) 복원 활동


<참고 사항>

본 글은 데스크탑(PC)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작성한 문서입니다

 

재악산(載嶽山)은 표충사를 중심으로 한 원형(둥근 형태)의 산군(山群 : 산 덩어리)입니다이러한 "원형(圓形)의 산군(山群)"을 이해하지 못하면 본 게시판의 수많은 글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가 본 글은 대략 1번 ~ 70번 까지 전체 글의 분량은 시의도(示意圖)와 함께 대략 200페이지가 넘게 이미 작성해 두었습니다

이미 작성한 글을 수시로 계속해서 추가로 연결하여 등재할 것입니다

 

한글파일에 산군의 시의도(示意圖)는 한글파일을 그대로 출력하여 책으로 제본이 용이하도록 작성했습니다

 

특히 필자(도재국)가 손흥수 선생과 함께

재악산(載嶽山) 산명 복원운동을 33년간 전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일반 사람들이 "원형의 재악산군"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미봉을 載藥山으로

香爐峰을 香爐山으로 조작해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

 

하면서, 독립된 산군으로 나누기(산군 쪼개기)로 하여

제2봉을 載藥山, 향로봉을 향로산으로 하여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굳히는 반대 세력의 계략에 말려들면서도

말려드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또 이해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제가 조작한 天皇山(제1봉)과

일제가 조작한 載藥山(제2봉)으로 굳히기 하는 계략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파일에는

"각 번호별 글"의 다음에 "載嶽山群 示意圖"를 계속해서 붙여 나갈 것입니다

전부 붙이면 마지막 글까지 "거의 비슷한 示意圖"가 70장 정도 붙을 것입니다

이만큼 산명(山名)이 헝컬어지고, 걸레처럼 해어지게 만든 단체와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도리어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태입니다

 

2017년 년말부터

손흥수와 도재국은 서울에 계시는 "정대재 선생"과 함께

"재악산(載嶽山) 산명 복원 범국민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응원.지도.지원을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지금 정부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있습니다

 

※산군(山群, 山 덩어리)의 형태

- 한 개의 능선이 둥글게 형성된 원형(圓形) : 재악산(載嶽山)

- 여러 개의 능선이 이리저리 뻗은 부정형(不定形) : 설악산

- 한 개의 능선이 길게 뻗은 일자형(一字形) : 지리산

- 한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독립형(獨立形) : 한라산, 백두산

 

일제(日帝)는 1925년에

남한 지역에 무려 "20개가 넘는 天皇山"을 조작하여 만들었습니다

황국신민화의 상징으로 민족의 산명을 천황산으로 조작한 희대의 산명 조작사건의 대표적인 것이 "일제가 조작한 밀양 표충사 뒷편의 天皇山(제1봉)과 載藥山(제2봉)"입니다

한민족 우리 모두는

일제가 조작한 산명을 없애는데 대동단결로 참여해 주십시오

정부와 국민과 민족의 총력 대응으로 일제 잔재를 청산합시다


1. 민족의 산, 밀양과 영남알프스의 主山 載嶽山(載岳山)

①산군(山群)의 형태는 원형(圓形), 일자형(一字형), 독립형(獨立形), 부정형(不定形) 등이 있다

②여러 개의 산봉우리가 합쳐서 한 개의 산군(山群)을 형성하며, 재악산군(載嶽山群)은 원형(圓形)의 산군(山群)에 해당한다. 산명은 제일 높은 봉우리에 한 개의 산명만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③載嶽山은 시계 방향으로 獅子峰, 須彌峰, 觀音峰, 文殊峰, 香爐峰, 筆峰 중에서 최고봉인 獅子峰에 載嶽山이라는 산명 한 개를 부여했다. 須彌峰을 載藥山, 香爐峰을 香爐山 등으로 山名을 부여한다면, 載嶽山窘보다 훨씬 큰 설악산군(雪嶽山群)은 20개 이상의 산명을 붙여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따라서 설악산은 최고봉인 大靑峰에 단 한 개의 산명인 雪嶽山을 부여했다. 산을 함부로 나누면 안된다





산군(山群)의 여러 봉우리 중에 최고 높은 봉우리에 산명(山名) 1개를 붙임(1山群 1山名 부여 원칙)


따라서 사자봉에 載嶽山, 天王峰에 지리산, 大靑峰에 설악산, 가지산은 그대로 가지산, 한라산과 백두산은 최고봉에 天池 등의 둘레에 별도의 각 봉우리 명칭이 山 전체를 대표하기가 곤란하여 그대로 산명만 붙였다


天王峰은 불교의 四天王에서 유래했다

1925년 일제가 제작한 "5만분의 1 지형도"에 갑자기 등장한 20개의 天皇山은 일제의 天皇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리산의 天王峰은 표충사 뒷편의 天皇山과는 전혀 다른 산명이다

이런 혼동은 대학교수들 조차도 혼동한다.

그래서 필자(도재국)는 그런 교수들을 만날 때마다 설명을 해주면

"예. 그렇습니까" 하면서 전부 고개를 끄득이면서 수긍을 한다
















일제가 1개의 산 덩어리를 2개의 산덩어리로 나누어 산명을 조작해 버렸다(위)





일제식 지명을 청산하고 6.25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복구.건설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지명을 정비하면서 일부 지명이 불실한 조사로 일제식 지명을 정부가 인정하는 어이없는 대 참사가 발생했다(위)






울산 사람 이유수는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자기 중심의 사고로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글을 통해 일제가 조작한 산명의 유래를 민족의 산명이라고 조작해 버렸다(위)



2. 민족의 산, 밀양과 영남알프스의 主山 載嶽山(載岳山)  

=== 원형(圓形)의 재악산군(載嶽山群) 시의도(示意圖) ===


★獅子峰 :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함-----------------






3. 울산 측이 주장하는 天皇山과 載藥山

①울산 측은 재악산군(載嶽山群)을 나누어(조작하여) 2개의 산군(天皇山群, 載藥山群)으로 주장하는 상황에서 밀양시가 2000년대 초반에 香爐峰에 香爐山 표지석을 세움으로써 향로산군(香爐山群)을 따로 만들어줌으로써 울산의 산군(山群) 나누기(쪼개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형국이 되었다

②須彌峰을 載藥山, 香爐峰을 香爐山, 獅子坪을 沙自伐(沙者伐), 載嶽山窯址群을 天皇山窯址群, 載嶽山獅子坪濕地를 載藥山산들늪濕地, 白馬山터널을 載藥山터널, 嶺南알프스山峰을 蔚州7峰으로 부르면 부를수록 제1봉은 載嶽山도 아니고 載藥山도 아니고, 天皇山으로 굳히게 되는 책략을 울산은 은밀하고, 꾸준히 추진하는데 밀양은 전혀 모르고 있다. 밀양의 主山과 正體性을 말살당하는 는 큰 문제가 있다




4. 신라시대 : 제1봉⇒載嶽山(載岳山)

①訥祗王(417~ 458) 때 墨胡子 신라에 불교 전래, 532년 금관국 仇亥王 신라에 항복

②불교 국가로 불교적 봉우리 명칭이 생기고 산명 출현 추정

③석탑 출토 시대별 여러 계층의 성보유물로 寺名과 配山(背山) 연계하여 載嶽山으로 추정

④문화재청, 표충사삼층석탑 聖寶유물[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改修탑記碑, 改修碑) 등 34점] 분석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을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獅子坪을 사용하면 제2봉 載藥山이 須彌峰으로 바뀌며, 제1봉은 載嶽山으로 됩니다




9. 조선시대(全 期間) : 제1봉⇒載嶽山(載岳山)

①★150. 東國輿地勝覽보다 먼저 1458년 간행된 海印寺 장경(藏经, 大藏經)에 재악산(載岳山)을 기록

②재악산(載岳山)이 최초로 기록된 王立文獻은 1481년 조선시대에 완성한 「동국여지승람」

③신라시대 표충사삼층석탑 [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石塔, 改修탑記碑, 改修碑) 등 34점] 분석

④여러 종류의 비문(개수탑기비, 庚子甲補月碑)과 영정사에서 간행한 불교경전(法華經,圓覺經) 왕립불교문헌(梵宇攷 등)과 고지도(대동여지도 등)



 

 

10. 조선시대(1839년) : 제1봉⇒載藥山

①영정사 주지 月坡天有가 1839년 “靈鷲山 表忠祠”를 “載嶽山 靈井寺”로 옮기기면 산명을 載藥山로 조작하고, 절 명칭을 表忠寺로 변경(載嶽寺.靈井寺의 千年 寺名을 表忠寺로 변경)

★獅子峰 :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을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함


◆載藥山 조작을 위한 서류 : 載藥山靈井寺古蹟(소위 영정사 창건설화)

◆載藥山靈井寺古蹟을 작성한 사유 : 朝庭의 賜額書院 및 賜額祠堂 훼철(毁撤) 방지

◆최초 작성 : 太虛南鵬 禪師, (유언 등으로 후세 법손 월파천유 때인 1839년경에 세상에 공표)

◆사액사당 존속 목적 : 조정의 사급위토의 수조권을 사당에서 확보, 보솔군 지원, 유림세력 확보

◆表忠祠의 영정사 이전 목적 : 사액사당의 朝庭.儒林 등의 지원을 영정사(表忠寺) 重創에 이용




11. 대한제국(1897~1910) : 제1봉⇒載嶽山(載岳山)

①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韓日議定書 체결, 乙巳條約, 외교권 박탈, 헤이그 만국평화회담 밀사행동 방해. 살해협박, 고종황제 강제퇴위시키는 등 일제의 대한제국 말살행위는 극심했다

②1905년에 대한제국 한성부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정치와 군사 관련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대한제국 정부에 섭정을 하였고, 조선총독부의 모체가 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에서는 대한제국 황제 밑에 일본제국 정부의 대표자로 1명의 통감을 두어, 한일의정서 이후 제한되던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통감이 지휘·감리하게 하였다.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만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주재하도록 하였으며, 개항장 및 기타 지역에 이사관을 두어 통감 지휘 하에 일본 영사가 관장하던 일체의 직권 및 협약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관리하게 하므로써 대한제국의 병탄을 진행시켰다.

★獅子峰 :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을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함




12. 일제 강점기(1925년) : 제1봉⇒天皇山, 제2봉⇒載藥山

①일제(日本帝國)는 최초로 하나의 산인 載嶽山을 두 개의 산(天皇山과 載藥山)으로 나누어 버렸다

②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탄한 일본제국은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제1봉인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조작하여 일제 天皇에게 奉獻하고, 표충사의 배산(配山)이 없어지자 친일 帶妻僧 주지를 꾀어 제2봉인 須彌峰을 載藥山으로 조작하여 표충사의 배산(配山, 背山)으로 삼게 했다.

③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작성한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표기해 놓았다. 표충사 주지 월파천유가 제1봉을 載藥山으로 조작했지, 제2봉을 載藥山으로 조작하지 않았기에 제2봉을 최초로 載藥山으로 조작한 자는 그럴 듯한 文化統治를 내세운 일제 조선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였다.

★獅子峰 :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을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13. 日帝가 최초로 하나의 山을 2개의 山으로 분할 : 제1봉⇒天皇山, 제2봉⇒載藥山

①일제(日本帝國)는 최초로 하나의 산인 載嶽山을 두 개의 산(天皇山과 載藥山)으로 나누어 버렸다

②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탄한 일본제국은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제1봉인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조작하여 일제 天皇에게 奉獻하고, 표충사의 배산(配山)이 없어지자 친일 帶妻僧 주지를 꾀어 제2봉인 須彌峰을 載藥山으로 조작하여 표충사의 배산(配山, 背山)으로 삼게 했다.

③일제의 표충사 배산 부여는 허울좋은 이름뿐이었고, 일주문의 현판은 일제와 대처승에 의해 “천황산 표충사”로 달게 했고, 일제 천황을 숭배하고 상징하는 천황산과 친일의 일부 신도들의 표충사 중창 시주비에는 시주자의 이름이 돌로 뭉개져 있다.

★獅子峰 : 울산 사람들이 獅子峰을 절대 사용안하는 이유를 밀양 사람이 알아야 함




14. 대한민국(1961년) : 건설부 국립지리원(제1봉⇒天皇山, 제2봉⇒載藥山 지명고시)

①정부는 일제식 지명을 없애고 6.25전쟁으로 파괴된 국토를 개발하기 위해서 수준점과 해발고를 연계한 지명 15만 건을 고시하는 작업을 단행했다 ②지명조사는 건설부(국립지리원)⇒시.도⇒시.군⇒읍.면.동⇒면서기⇒마을이장⇒里長.유지.村老.사찰주지등을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경제개발 제일주의와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 등에 의해 일제식 지명이 대한민국 법으로 제정되는 비극을 낳았다. 즉, “제1봉⇒天皇山, 제2봉⇒載藥山”이 일제가 조작한 줄도 모르고 법으로 굳혀버렸고, 이 비극이 또 이유수의 해괴한 논문으로 소위 天皇山을 민족의 산명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참고 사항>

본 글은 데스크탑(PC)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작성한 문서입니다


재악산(載嶽山)은 표충사를 중심으로 한 원형(둥근 형태)의 산군(山群 : 산 덩어리)입니다
이러한 "원형(圓形)의 산군(山群)"을 이해하지 못하면 본 게시판의 수많은 글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가 본 글은 대략 1번 ~ 70번 까지 전체 글의 분량은 시의도(示意圖)와 함께 대략 200페이지가 넘게 이미 작성해 두었습니다

이미 작성한 글을 수시로 계속해서 추가로 연결하여 등재할 것입니다


한글파일에 산군의 시의도(示意圖)는 한글파일을 그대로 출력하여 책으로 제본이 용이하도록 작성했습니다



특히 필자(도재국)가 손흥수 선생과 함께

재악산(載嶽山) 산명 복원운동을 33년간 전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일반 사람들이 "원형의 재악산군"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미봉을 載藥山으로

香爐峰을 香爐山으로 조작해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


하면서, 독립된 산군으로 나누기(산군 쪼개기)로 하여

제2봉을 載藥山, 향로봉을 향로산으로 하여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굳히는 반대 세력의 계략에 말려들면서도

말려드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또 이해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제가 조작한 天皇山(제1봉)과

일제가 조작한 載藥山(제2봉)으로 굳히기 하는 계략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파일에는

"각 번호별 글"의 다음에 "載嶽山群 示意圖"를 계속해서 붙여 나갈 것입니다

전부 붙이면 마지막 글까지 "거의 비슷한 示意圖"가 70장 정도 붙을 것입니다

이만큼 산명(山名)이 헝컬어지고, 걸레처럼 해어지게 만든 단체와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도리어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태입니다


2017년 년말부터

손흥수와 도재국은 서울에 계시는 "정대재 선생"과 함께

"재악산(載嶽山) 산명 복원 범국민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응원.지도.지원을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지금 정부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있습니다


※산군(山群, 山 덩어리)의 형태

- 한 개의 능선이 둥글게 형성된 원형(圓形) : 재악산(載嶽山)

- 여러 개의 능선이 이리저리 뻗은 부정형(不定形) : 설악산

- 한 개의 능선이 길게 뻗은 일자형(一字形) : 지리산

- 한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독립형(獨立形) : 한라산, 백두산


일제(日帝)는 1925년에

남한 지역에 무려 "20개가 넘는 天皇山"을 조작하여 만들었습니다

황국신민화의 상징으로 민족의 산명을 천황산으로 조작한 희대의 산명 조작사건의 대표적인 것이 "일제가 조작한 밀양 표충사 뒷편의 天皇山(제1봉)과 載藥山(제2봉)"입니다

한민족 우리 모두는

일제가 조작한 산명을 없애는데 대동단결로 참여해 주십시오

정부와 국민과 민족의 총력 대응으로 일제 잔재를 청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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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레나 | 작성시간 26.06.09 載嶽山窘은 오기이며

    載嶽山群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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