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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수정] 기고문(2) [ 작성중 ] 10/23 현재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19.10.23|조회수315 목록 댓글 0

. 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 考察) (한글 워드 문서)


출처 : 蔚山鄕土史硏究會 1998년 발행 第9집(輯) 蔚山鄕土史報 


天皇山日式名說 考察 (李有壽)

  

=== 목 차 ===

1. 머리말

2. 東國輿地勝覽의 기록

3. 輿地圖書의 기록

4. 輿地圖의 山名

5. 文獻備考

6. 大東地志

7. 天皇山과 載藥山 

 

[ 이유수 기고문 "1. 머리말" ]

고을 서쪽은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흘러 수다한 명산들이 솟아 있다. 白雲山을 필두로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天皇山 들이 그것이고,

밀양 쪽으로는 載藥山이 있고, 또 옛산 이름으로 穿火峴이란 산도 있었다.

이러한 산들은 다 명산 답게 신령스러운 산의 뜻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이들 가운데 天皇山은 일본색이 짙은 산이라 하고, 또 그 산을 天皇山이 아니라 載藥山이라 하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密陽쪽에서 싹트더니 울산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사회적으로 지정된 요지군(窯址群)이 그 산에 있기 때문에 자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산이다.

그러므로 옛부터 불러오던 穿火峴을 비롯하여 天王山, 天皇山, 載藥山 등은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과연 天皇山이란 일본 이름인가 하는 것을 잠시 살펴 보고, 가마터들의 소재지도 載藥山에 있는지도 아울러 훑어볼까 한다.

 

[ 이유수 기고문 "2. 東國輿地勝覽의 기록" ]


[ 사진 30 (위) ] 한글의 옛글 표시 (蔚山鄕土史報 50, 51, 52, 53 페이지) 


○현전하는 地誌가운데 경상도지리지는 경상도 조에서 태백산등 11개의 명산을 등재하였고, 彦陽縣 條에는 鎭山으로 獻山과 名山으로 鷲棲山 밖에는 실어놓지 않았으며, 세종실록지리지는 彦陽縣에 鷲棲山, 密陽府에 華嶽. 靈井山 등이 보일뿐 간략한

그러나 東國輿地勝覽에서는 비교적 자세한 기록 방식을 취하여 여러 산들이 올라 있어 이것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彦陽縣, 高巘山, 在縣北十里鎭山, 鷲棲山 在縣南二十里 一名 大石山, 石南山 在縣西十二里, 穿火縣 在縣西二十八里 密陽府界, 夫老山 在縣南五里, 松洞 在縣北二里

密陽府, 華嶽山 惑屯德山 在府北十九里 鎭山, 推火山 在府東五里, 琵瑟山 在豊角縣西北三十里, 牛齡山 在府西十里, 載嶽山 在府東四十一里, 萬魚山 載府東二十里, 慈氏山 在府東十五里, 龜齡山 在守山縣北十五里, 實惠山 載府東三十一里, 穿火峴 在府東九十三里, 胡法山 在府西北三十七里, 鈴峴 在府西十五里, 羅峴 在府西十五里, 高巖山 在府西九里, 龍頭山 在府東四里.

이에 두 고을의 산을 검토하여 보면 彦陽縣西 28里의 穿火峴과 密陽府 東93里의 穿火은 그 위치나 거리 등으로 보아 같은 산이라는 알 수 있는데, 더구나 彦陽의 穿火은 密陽府界라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載嶽山의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彦陽과의 경계에 있는 穿火嶺이 府東 93里라 한데 대하여, 오늘날의 지도상에 나란히 있는 載嶽山은 府東41리에 지나지 않아 52리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穿火峴이 가지고 있는 그 산의 뜻은 무엇인가 한번 구명하여 볼까 한다.

穿火峴은 ◆(1)」의 한자 바꿈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2)은 「(3)」등으로 互轉되는 「神」의 옛말로 「王」의 古訓 「尼叱今, 寐錦 내지 上監」에 그대로 쓰였는데 그 借字로는 「解慕, 蓋馬, 乾馬, 金馬, 儉, 錦, 今, 黑, 熊」 등이었다고 하였다 [❶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이와 같은 견해에 따라 「穿」은 그 뜻이 「구무」이니 그 준말 「굼」은 곧 神 또는 王의 옛말◆(4)」으로 봄직하다. 또 「火」는 ◆(5)」으로 보고자 한다. (6)」은 광명 또는 국토의 뜻으로 古史에 「發, 伐, 弗,  沸, 不, 夫餘, 夫里, 火, 原, 平, 坪, 評, 赫, 昭, 明,」 또는 「白, 百, 伯, 貊, 泊, 朴, 瓠」등 자로 國名, 地名, 族名 人名 등에 借字됨은 주지의 사실이라 하였다 [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이렇게 神明하다는 뜻을 가진 지명은 穿火縣의 인근에서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즉, 肝月山 神佛山과 박어리산 火穿(登億)등이 그러하며, 배내(利川) 또한 그러한 것이다.

배내의 「배」도 ◆(7)」이 변한 말이라 한다 [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그런데 지금과는 달리 彦陽에서 密陽으로 넘어가고, 密陽에서 彦陽으로 오는데는 모두 穿火峴을 통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彦陽邑에서 동과 남, 북으로는 大路가 열려 있었고, 서쪽으로는 小路가 穿火峴을 넘어 密陽으로 통하고 있었다. [❹輿地圖書 彦陽縣之地圖]. 

이와 같은 험준한 산길을 가고 옴에는 남달리 길손들의 마음에는 이 산을 畏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8)」라는 이름이 생겨 났을 것이다.

 

[ 이유수 기고문 "3. 輿地圖書의 기록" ]

여지도서라 함은 영조 36년(1760)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圖와 書로 이루어진 것인데 여지승람을 보완 개수한 것이다. 

 이 여지도서에 수록된 언양과 밀양의 관계되는 산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彦陽縣, 穿火峴 在縣西二十八里 密陽境卽石南山西麓.

密陽府, 穿火嶺 在九十三里 來自淸道雲門山, 載嶽山 在府東四十里 來自穿火峴.

위와 같은 여지도서의 기록을 본다면 載嶽山은 오늘의 載藥山과는 분명 그 위치가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또 載嶽山의 설명에 來自穿火嶺이라 하여 載嶽山은 穿火嶺으로부터 흘러온 산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載嶽山은 밀양 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편으로는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載嶽山의 산명에 대하여 梁柱東의 그럴듯한 해설이 있어 살펴 볼 만한다.

그는 宰嶽山(慶尙道地誌 咸昌)과 採藥山(永川南 저?역 뫼) 助藥島(조약섬) 등이 모두 小石의 뜻 「◆(9)」의 借字라 하였다 [❺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載嶽山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어느 산과 대비하여 작은 산(小山)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지 모르겠다.


[ 이유수 기고문 "4. 輿地圖의 山名" ]

여지도는1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지도이다, 이 여지도는

書는  없고 圖만 있을 뿐인데 彦陽縣圖를 보면 밀양과 경계에는 단지 石南嶺만 있을 뿐 종전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密陽府圖에는 언양쪽에 伽智山, 石南嶺이 있고,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王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일명 그렇게도 불러온 것으로 짐작된다.

하늘(天)의 原語 「◆(10)」을 火로도 借字되었으니 火가 天으로 변한 것이고 또 神의 原語 「◆(11)」도 王으로 互轉함을 볼 때 天王이란 산명은 「◆(12)」을 倒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天王을 말하여 山神이라 하는 견해가 있다.

우리 민간 신앙에 山神을 在天에는 天王이요, 下山에는 山王이라 한다 하여 山神이나 天王이나 山王이 모두 같은 일신동체라 하였다. [❻金鍈遂 智異山聖母에 就하여].

그러하므로 天王山이라는 것은 天王이 하늘에서 내려 계시는 山이라 하여 天王山이라 한 것이며 옛 사람들은 하느님이 인간세계에 내려오실 때 제일 높은 산에 내려

그러니 高山은 下界로 내려 오는 사다리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왔다.

肝月山의 최고봉 丹鳥峰도 언양지방 사람들은 이를 왕배이(王峰)라 하여 왔다.

天王山이란 산명은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智異山 산신의 所住峰을 天王峰이라 하였고, 俗離山 산신의 소주봉도 天王峰, 伽倻山 山神의 이름을 正見天王, 俗離山 神名을 大自在天王이라 한다.

이 天王이란 말은 하늘의 임금으로 다분히 불교색을 띄고 있는 말이다.

◆輿地圖 密陽府 (이 위치에 사진이 있음). 

     

[ 이유수 기고문 "5. 文獻備考" ]

文獻備考에서도 언양과 밀양의 산천을 볼 수 있다.

언양현에서는 여전히 서쪽 28리 되는 곳에 穿火峴이 있다.

한편으로는 밀양부 條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載嶽山 在四十里 有金剛庵 巖壑奇勝 左右瀑布 遊賞坌至 臼淵 在穿火嶺下 周百餘尺.

위와 같은 기록을 보았을 때 여전히 載嶽山은 밀양 동쪽 40里에 있고 金剛庵이라는 절이 있다.

한편으로는 穿火峴의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구연 條에서 臼淵이 穿火峴의 아래에 있다 하여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臼淵은 오늘날의 호박소로 보여진다.




[ 이유수 기고문 "6. 大東地志" ]

古山子 金正浩가 꾸며낸 大東地志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볼 수 있다.

彦陽縣, 嶺路 穿火峴 西二十八里 密陽界,

密陽府, 載嶽山 東四十五里 靈井寺 金剛庵 巖壑奇勝 左右有瀑布, 穿火 東九十三里 彦陽界, 載嶽川 源出穿火西流 經載嶽之入于凝川.

大東地志에서는 다른 地誌들과 마찬가지로 언양이나 밀양 모두가 각기 穿火峴을 기록하고 있고, 그 위치나 거리가 다름 없다.

반면에 밀양에서는 載嶽山과 載嶽川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載嶽山을 설명하되 靈井寺와 金剛庵이 있고 좌우에 폭포가 있다 하였다. 또 載嶽川은 穿火峴에서 서쪽으로 흘러 載嶽山을 지나 凝川으로 들어간다 하였다. 그러므로 穿火峴은 載嶽山의 동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별첨한 大東輿地圖 자세히 본다면 穿火峴은 市界에서 迦智山의 가지가 南走한 것을 알 수 있고, 載嶽山은 密陽府 안에서 東西로 뻗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大東輿地圖 密陽都護府(사진이 이 위치에 있음). 


사. 이유수 기고문 "7. 天皇山과 載嶽山"


이제까지 다섯가지 자료를 가지고 天皇山名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山이라고도 부르다가 天皇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天皇山이라는 것이 日式名일까 하는 것을 검토해야 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일제시대에 그렇게 고쳐졌던 이름이었을까?

신라는 물론이고 조선조에도 대륙에서 일어났던 帝國들의 황제 諱를 피하여 이쪽 이름을 고치는 일이 없지 않았다. 한 예를 들면 신라 太宗의 왕호가 당나라 太宗 皇帝의 帝號와 같다 하여 이를 고치라는 일이 있었다. 

神文王때 당의 고종이 사자를 신라에 보내어 이르기를 나의 聖考는 魏徵 李淳風 등의 현신을 얻어 서로 心德을 화합하여 천하를 통일하였음으로 太宗 皇帝라 하였거니와 너의 신라는 해외의 작은 나라로 太宗의 칭호를 사용하여 天子의 名器를 참람히 함은 그 뜻이 不忠하니 속히 고치라 하였다. [❼三國遺事 太宗春秋公].


이때 神文王은 글을 올려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聖臣 김유신을 얻어서 삼국을 통일하였음으로 太宗이라 한 것이라 변명을 하였더니 당나라 高宗이 그 글을 보고 전에 자기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부르짖어 三十三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유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책에 적어 둔 것을 생각하여 꺼내어 보고는 놀래기를 마지 아니하며 다시 사람을 보내어 太宗의 칭호를 고치지 아니해도 좋다하여 어려움을 모면 하였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 당시 국제 관례가 이러하였는데도 일제때 식민지였던 朝鮮의 한 작은 山의 이름을 그들의 王名과 같은 天皇山으로 붙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러한 일은 불경하다 하여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면 天皇山名의 등장은 일단 大韓帝國 시대의 소산으로 보고자 한다.

신라는 祀典을 정하매 스스로 唐나라에 대하여 諸侯國으로 자처하여 大祀에 天地祭를 지내지 아니하고 다만 국도 중심의 가장 주요한 神山 3곳만 大祀에 편입하였다.

또 朝鮮에 와서도 天에 대한 제사가 논란 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가적인 祀神에 있어서 天子國과 맞설 수 없으며, 諸侯의 禮에 준하여 祭天儀禮였던 圓丘祭의 폐지를 보았다.

이는 자기 비하를 말하는 것이며, 자주와 독립의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조선조는 그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말기에는 동학농민항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청나라와 일본의 두 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여 그 결과 청일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 청나라 세력은 물러나고 일본세력은 강화를 보았으나 그 뒤 러시아 세력이 들어와서 차츰 친일파를 몰아내고 친러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나라에서는 자주 자존의 국민의식이 발흥하여 1897년에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光武, 왕을 皇帝, 황제의 자기 표현을 朕이라하여 독립국가로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圓丘壇을 설치하여 祭天儀式도 행하였다.

이때의 皇帝라는 王稱은 진시황이 제정한 것이었지만은 중국 태고 때의 三皇의 皇과 五帝의 帝를 서로 땄던 王稱이었다. 이 무렵 민간에서도 독립정신이 무르익어 1896년에는 독립협회에서도 서울에 독립문을 세울 정도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라 안에 이와 같은 독립의 기운이 펴져나갈 때 天王山이라고 불러왔던 산 이름도 天皇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俗離山의 天王峰도 天皇峰이라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天皇이란 것은 중국의 三皇 가운데의 天皇氏로써 三皇의 으뜸가는 존재였던 것인데, 三皇은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인 것이다.

그런데 오랜 文化圈이 같았던 중국 태고의 神 天皇氏를 따온 이름일지언정 오랑캐視 하여 왔던 섬나라 日王의 칭호를 따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載藥山을 검토해 볼까 한다. 이 載藥山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가지 地誌에 나타난 載嶽山 바로 그것으로 50여리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인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穿火峴 또는 穿火嶺.天王山이라 하던 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靑良面의 靈鷲山이 靑凉山 또는 文殊山이라고도 하다가 현행 지도상에는 文殊山과 南巖山으로 분화된 것과 같은 류일 것이다.

 

아. 이유수 기고문 "8. 맺는말"


이제까지 여러 각도로 天皇山名의 과연 日本名인가 검토하여 보았으나 日本王名과는 우연의 일치일 뿐 이는 중국의 三皇中 天皇氏에서 따온 것으로서 자주적인 입장에서 山格을 높인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즉, 天王山을 天皇山으로 높혔던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요구됨을 덧붙여 본다.  

1) 경솔한 산명의 교체는 피해야 하지만은 설사 바꾼다고 가정하더라도 본 이름이었던 天王山으로 되돌아감이 바람직하다.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2) 載藥山으로 고쳐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載藥山이 두 곳에 있는 격이 되며, 영영 山名을 없앨 경우에는 1189m의 高山이 1115m이 載藥의 屬山이 되는 것도 천년 가까이 불러온 산의 내력을 전도하는 것이 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3) 窯址群은 天皇山에 있으니 山名을 바꾸지 않는 한 고쳐 부를려고 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주)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의 위 글에 있는 한글로 변환이 잘 되지 않는 "옛글 : ? 표시 등"과 각 쪽별 하단에 기재된 "주서(注書)"와 "고지도(2개 : 輿地圖와 大東輿地圖)"는 사진으로 찍은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확대한 輿地圖와 大東輿地圖는 아래 항목의 검토 의견에 자세하게 올려 놓았으므로 같이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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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천황산일식명설고찰 검토 의견서


1. 손흥수.도재국의 머리말


가. 山名과 봉우리 명칭에 제1峰, 제2峰 표시 사유

○손흥수.도재국이 본 기고문을 적어면서 아래와 같이 수없이  언급하는 載嶽山(제1봉),  載岳山(제1봉),  獅子峰(제1봉), 天王峰(제1봉), 天皇山(제1봉), 載藥山(제1봉), 載藥山(제1봉), 載藥山(제2봉), 須彌峰(제2봉)의 명칭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제1봉과 제2봉을 다르게 불렀다. 그래서 시대별로 다르게 불러온 제1봉과 제2봉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산명 또는 봉우리 명칭의 앞 또는 뒤에 필요한 경우에 위의 괄호 안과 같이 "제1봉 또는 제2봉"으로 적는다.

○다시 말하지만 위와 같이 제1봉 또는 제2봉을 표시하는 이유는 시대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위정자 (爲政者) 등이 재임할 때 영향을 받아 각 봉우리에 붙여진 산명에 따라 제1봉 또는 제2봉의 명칭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위의 "위정자(爲政者) 등" 이란 왕조(王朝), 靈井寺(절)의 주지, 밀양시 무안면 表忠祠(表忠祠堂)의 대표자, 밀양시 단장면 表忠祠(祠堂)의 대표자, 表忠寺(절)의 주지, 조선총독부 총독, 사당(서원)의 대표자, 유림의 간부, 해당 지역의 군수.시장.광역시장.도지사, 국가(국립지리원, 국토지리정보원) 등을 말한다.

○위와 같이 제1봉 또는 제2봉을 같이 기록하지(병기 倂記) 않으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시대에 따라 이 두 개의 산에 대한 어느 명칭이 제1봉 또는 제2봉에 해당되는 지를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고, 또 위와 같이 기록하지 않으면 34년째 이 2개의 산에 대해서 조사.연구하고, 산의 현장을 직접 오르내리고 있는 손흥수와 도재국 조차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혼란의 책임은 산명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해 놓은 위에 언급한 위정자들 때문인데, 그 위정자들과 그 후대의 책임자들은 아무도 산명을 바로잡을려고 노력하지 않음에 대해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본 기고문은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산명(山名)과 봉(峰)우리 명칭의 옆(앞 또는 뒤)의 수백 곳에 제1봉(峰) 또는 제2봉(峰)을 표시함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특히 표충사에서 2017년에 일주문과 산문에 제1봉이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이라고 현판을 붙여놓고, 또 표충사삼층석탑에서 1995년에 출토된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일명 改修塔記碑)를 2017.10.31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하고 나니까 돌연 제2봉인 수미봉을 載嶽山(載岳山)이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인터넷 등에서 유포되고 있다. 이는 이유수 씨가 1998년에 쓴 천황산일식명설고찰에서 제2봉이 載嶽山(載岳山)이라고 언급한 이후에 22년 동안 거의 수면 아래로 묻힌 그 주장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017년에 개수탑기비의 보물 지정과 산문과 일주문에  載嶽山(載岳山) 현판을 부착하기 이전까지 표충사 등이 제1봉을 재약산(載藥山)으로 주장하던 것과는 상반된 주장이다. 문화재청이 載嶽山(제1봉 載岳山) 산명이 새겨진 개수탑기비를 국가보물로 지정하고 , 또 표충사가  산문과 일주문에 載嶽山(載岳山) 이라는 표충사의 배산(配山)의 명칭을 바로잡아 현판에 편액하였데도 제2봉이 載嶽山(載岳山)이라는 주장이 갑자기  유포되고 있는 것은 표충사가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엉터리 소문을 유포하고 있을까!!! 삼척동자도 짐작을 할 것이다.

○산명과 봉우리 명칭을 한글과 한문(漢文)으로 같이 적거나 漢文으로만 적는 이유는 재악산(載嶽山)과 재약산(載藥山)이 한글 또는 한문(漢文), 시각적으로 발음적으로 비슷하여 많은 사람에게 혼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재악산(載嶽山)과 재악산(載岳山)은 같은 산명인데 한문이 다른 것은 嶽의 약자(略字)가 岳이기 때문에 嶽(岳) 자(字)가 붙은 雪嶽(岳)山.冠嶽(岳)山.母嶽(岳)山.雉嶽(岳)山.黃嶽(岳)山.楓嶽(岳)山(金剛山) 등등 악(嶽) 자(字)와 악(岳) 자(字)를 혼용해서 사용하므로써 정자(正字)와 약자(略字)를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필요한 때에 괄호 안에 같이 적었음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평가(요약)

①이유수 씨가 쓴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민족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載嶽山(載岳山,제1봉)의 사자봉(제1봉) 위치를 부정하고 있고, 또 독도(讀圖) 내용이 사실과는 다르게 하여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 혼란스럽기 때문에 손흥수.도재국은 여러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글의 분석과 검증을 비슷하지만 중복적으로 다양하게 하는 점을 서두에 밝힘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②이유수 씨가 쓴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요지는 다음(❶~❺)과 같다.

❶50페이지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해석하면서, "이에 이 두 고을의 산을 검토하여 보면 彦陽縣西 28里의 穿火峴과 密陽府東 93里의 穿火嶺은 그 위치나 거리 등으로 보아 같은 같은 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더구나 彦陽의 穿火峴은 密陽府界라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載嶽山의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彦陽과의 경계에 있는 穿火嶺이 府東 93里라 한데 대하여 오늘날의 지도상에 나란히 있는 載嶽山은 府東 41里에 지나지 않아 52里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❷52페이지 : 輿地圖書를 해석하면서 "위와 같은 輿地圖書의 기록을 본다면 載嶽山은 오늘의 載藥山과는 분명 그 위치가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또 載嶽山의 설명에 來自穿火嶺이라 하여 載嶽山은 穿火嶺으로부터 흘러온 산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 때의 載嶽山은 密陽 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편으로는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라고, 했다.     

❸53페이지 : 輿地圖를 독도(讀圖)하면서 "한편으로는 密陽府圖에는 彦陽쪽에 伽智山, 石南嶺이 있고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에서 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王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일명  그렇게 불러 온 것으로 짐작이 된다" 라고, 했다. 

❹57페이지 : 天皇山과 載藥山, "이제까지 다섯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천황산명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천화현 또는 천화령이 일명 천왕산이라고도 부르다가 이것이 천황산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했다

❺59페이지 : 天皇山과 재약산(載藥山), "다음으로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載藥山을 검토하여 볼까 한다. 이 재약산(載藥山)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 가지 지지에 나타난 재악산(載嶽山) 바로 그것으로 50여리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인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천화현(穿火峴) 또는 천화령(穿火嶺). 天王山이라 하던 산괴(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山峯)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속산(屬山)으로 로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②평가(요약) :

❶이른바 "천황산일식명서고찰"은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논문이라기 보다는 이유수 씨 자신의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를 적어놓은 글에 불과하며, 이유수 씨가 스스로 제시한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을 종합하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 제1봉인 사자봉의 위치로 명백하게 기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있다. 그의 글의 중요한 일부는 특이하게도 주로 “ ~ 하면 ~ 일 것이다. ~ 짐작이 간다.  ~ 모르겠다.” 라는, 가정(假定)으로 시작하여 여러 고문헌의 종합적이고도 연결된 전개가 부족한 상태에서 가정(假定)으로, 또는 부정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본 글의 목적은 載嶽山의 위치를 규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한 글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옛글로써 지명의 유래를 전개하여 적용시키려 하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이해하기 곤란하고,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산과 지맥은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는데, 지리문헌에 거리 등이 잘못 적혀 있는 것을 자기 주관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지에 기록된 글을 또 주관적으로 해석하므로써 일반인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글이 작성되어 있다. 

❷그의 글은 우리 민족의 천여년(千餘年)이 넘게 사용하고 수많은 지리문헌에 증명되어 온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 제1봉이다 라는 것을 부정하고, “제2봉(수미봉)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했다

❸이는 동시에 민족의 귀중한 지리문헌에 기록된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라는, 것을 1998년에 한 순간에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❹참으로 안타깝다.

❺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사랑하는 손흥수. 도재국. 정대재 등은 지역민과 국민. 민족의 힘을 모아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天皇山)을 척결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의 영원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을 복원하는데 신명을 바칠 것이다.



2.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고문헌별(古文獻別) 검토 의견


가. 이유수 기고문 "1. 머리말"


고을 서쪽은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흘러 수다한 명산들이 솟아 있다. 白雲山을 필두로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天皇山 들이 그것이고,  밀양 쪽으로는 載藥山이 있고, 또 옛산 이름으로 穿火峴이란 산도 있었다.

이러한 산들은 다 명산 답게 신령스러운 산의 뜻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이들 가운데 天皇山은 일본색이 짙은 산이라 하고, 또 그 산을 天皇山이 아니라 載藥山이라 하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密陽 쪽에서 싹트더니 울산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사회적으로 지정된 요지군(窯址群)이 그 산에 있기 때문에 자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산이다.

그러므로 옛부터 불러오던 穿火峴을 비롯하여 天王山, 天皇山, 載藥山 등은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과연 天皇山이란 일본 이름인가 하는 것을 잠시 살펴 보고, 가마터들의 소재지도 載藥山에 있는지도 아울러 훑어볼까 한다.

 

가. 이유수 기고문 "1. 머리말"에 대한 검토.의견


●1-01.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위에서 “고을”이란 옛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속현이었던 언양현(彦陽縣)을 가리킨다.


●1-02.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이유수 씨의 이 항목의 글은 언양현(彦陽縣)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다

옛날이나 지금도 두 고을 사이의 경게계는 태산에 의해 변함없지만 옛날의 密陽府와 彦陽縣의 경계의 산들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 글을 보면 "고을의 서쪽"이라고 언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양 쪽으로" 라는 글이 뒤에 잇따라 나오므로 얼핏 보기에는 "백운산을 필두로" 라는 글은 언양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라고 보인다. 이처럼 짧은 문장 하나에도 선입감이 그렇게 들도록 하면서 글을 시작하면 곤란하다. 

언양현을 기준으로 보이도록 표현한 “白雲山을 필두로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天皇山 들이다”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는 이유는 백운산(白雲山)은 조선시대에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에 속했으며 언양현에는 경계에도 접하지 않았다. 현재에도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에 속하는 산으로 울주군 상북면과는 경계에도 접하지 않는 밀양시 영역(領域) 안의 산이다. 이러한 산을 대부분 彦陽縣 영역의 산으로 보여지게 나열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1-03.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天皇山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조선시대에 위의 산들은 어느 군현에 속했는지 또는 경계에 접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알아본다.

고헌산(高獻山)은 경주부(慶州府)의 산내(山內)와 언양현(彦陽縣)의 경계에 있다.

백운산(白雲山)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전 구역이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영역 안에 속한다.

운문현(雲門峴)은 운문산(雲門山)으로 알아본다. 운문산은 청도군과 밀양도호부의 경계에 위치하며, 언양현에는 접하지 않는 산이다. 이유수 씨가 산을 소개하면서 왜 고개의 명칭인 운문현(雲門峴)으로 설명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밀양에서는 옛날부터 운문현(雲門峴)보다는 “아랫재(고개)”라는 지명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옛날에는 아랫재는 도래재(回嶺)과 함께 밀양 표충사와 청도 운문사를 연결하는 산중대로(山中大路)에 있는 큰 고개였다. 운문산은 운문사(雲門寺)의 남쪽에 있으며 배산(配山) 명칭을 산문에는 호거산(虎踞山)으로 편액했다. 운문산과 호거산은 산명은 다르나 같은 산이다.

석남산(石南山)은 국립지리원에서 현재 가지산(迦智山)으로 지명고시했다. 가지산(迦智山)은 불교적인 색채를 띠는 산명이다. 가지산(迦智山)은 밀양도호부와 청도군, 언양현의 경계에 있다.

능동산(陵洞山)은 하나의 독립된 산군(山群)이라기 보다는 재악산(제1봉,載嶽山) 정상에서 穿火峴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위치하며 뚜렸한 산봉우리 모양이 보이지 않고 또 인근의 산군과 뚜렸한 구분이 좀 모호하다. 손흥수와 도재국은 능동산(陵洞山)의 산명 유래를 알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알 수가 없다.

간월산(肝月山)은 언양현에 속한다.

신불산(神佛山)은 언양현(현재는 울주군 상북면)과 양산군의 경계에 있다.

취서산(鷲棲山)을 국립지리원에서 영축산(靈鷲山, 영취산)으로 변경했다. 이 산은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배산(背山)으로 언양현과 양산군의 경계에 있다 


●1-04.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❶천황산(天皇山)은 민족 왕조의 지리문헌에 전혀 기록되지 않은 일제가 조작한 산명으로 없애야 할 산명이다. 또 재약산(載藥山) 또한 위작된 재약산영정사고적에서 나타난 산명으로 왕조의 지리문헌에는 등재되지 않은 산명이다. 그래서 이유수 씨가 우리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산들과 같이 이 두 산을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❷이유수 씨가 나열한 여러 산 중에서 天皇山의 본래 산명은 천여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이다.

❸위 ❷의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은 1839년에 密陽府 무안 영취산(靈鷲山, 밀양과 창녕의 경계에 있는 산임) 동록의 백하암 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기허대사의 신위를 모시던 표충사(表忠祠:사당)를 영정사 주지였던 월파천유(月坡天有)가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載嶽山(載岳山) 靈井寺”로 옮기면서 산명을 載嶽山(載岳山,제1봉)에서 載藥山(제1봉)으로, 절의 명칭을 영정사(靈井寺)에서 표충사(表忠寺)로 변경했는데, 산명의 유래를 위작(僞作)된 소위 재약산영정사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載藥山(제1봉) 은 우리 왕립지리문헌에 등재되지 않은 산이다.

❹월파천유가 변경한 제1봉 載藥山을 또 일제가 식민통치를 하면서 1925년에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조선의 관리와 백성을 일제 天皇의 신하와 백성으로 만드는 정책)를 위해서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배산(配山)을 빼앗긴 표충사에게 조선 제3대 총독(사이토 마코토)은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載藥山으로 조작하여 표충사의 배산으로 삼게 했다. 식민지 조선의 사찰 주지 임명권을 틀어쥔 총독의 명을 표충사의 대처승 주지는 거역할 수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표충사는 제2봉을 배산으로 삼았다. 즉, 조선 총독이 하나의 산군(山群)인 재악산군(載嶽山群)의 최고봉을 천황산(天皇山,제1봉, 해발 1189.2m)으로 조작하고, 산덩어리를 둘로 나누어 새로운 산군(山群)인 재약산군(載藥山群)을 만들어 그 산군의 최고봉인 수미봉(해발 1119m)을 재약산(載藥山,제2봉)으로 조작해버렸다. 최고봉에 붙었던 載藥山(제1봉)이 결국은 일제에 의해 제2봉인 수미봉으로 밀려버렸다.

❺1961년 정부(국립지리원)은 일제가 조작한 지명을 바로잡고, 국토개발을 위한 수준점과 지명정비를 위해 전국적으로 약 20만 건의 지명을 정비하여 최종적으로는 약 15만 건을 지명고시하면서 일제가 조작한 산명을 그대로 취하면서, "산명의 유래"는 누가 보아도 맞지 않고 이해하기 힘들게 조작해 버렸다. 즉, 제1봉은 "주변에서 제일 높은 산이므로 천황산(天皇山)"이라 했다. 제2봉은 위작(僞作)된 재약산영정사고적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재약산(載藥山)이라 했다. 일제 잔재지명을 정비한다면서 도로 일제식 지명을 법적으로 완전히 고착시켜 버린 비극의 사건이었다. 재약산영정사고적이 위작(僞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음 호(號)에서 밝힐 것이다.

❻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 산명의 비극의 연속은 계속되었다. 1998년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 선생(이하 “이유수 씨”라 칭한다)이 한민족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소위 말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 천황산이 일본식 명칭인가를 고찰한다)이라는 논문(以下 약칭 "글" 이라고도 칭한다)을 작성하여 천황산(天皇山)이 우리 민족의 산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주된 내용은 “대한제국시대에 민족의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천왕산(天王山)의 격(格)을 높혀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을 천황산(天皇山)으로 했다” 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대한제국의 역사기록 그 어디에도 없다. 한민족에게는 일제 천황의 수하들로부터 36년간 참혹한 식민지 강탈과 강제징용 등으로 우리 민족 수백만명이 사상(死傷)을 당하고 천문학적인 민족자산을 강탈당했다. 천황(天皇)이라는 말만 들어도 글자만 보아도 치가 떨린다. 이런 "天皇"이라는 글자를 민족의 고유한 산명인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을 대신하여 天皇山(제1봉,해발 1189.2m)으로 했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다. 만약에 이전부터 천황산 산명이 있었다면 척결해야 할 판국에, 일제가 조작한 이 천황산 산명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심 고취"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다. 이유수 씨의 그러한 주장을 울산의 향토사학계와 관계(官界) 등의 일부 사람들이 믿고 있다.

❼2015.12.4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산하 국가지명위원회 회의에서 울산 측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밀양시 지명위원회와 경상남도 지명위원회에서 인정한 제1봉의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을 천황산으로 심의하여 인정한 국가지명위원회 위원 11명의 행위를 규탄하며, 그 심의를 손흥수.도재국.정대재 등은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어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 산명복원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 산명복원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2015. 12. 4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 산명을 인정해주신 4분의 위원님께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


●1-05.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載嶽山(天皇山) 산군은 백운산 산군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크고 산의 높이도 거의 다 1000m 이상이다. 현재의 행정구역 체계 하(下)에서의 백운산과 같이 있는 인근의 산의 경계와 높이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백운산(白雲山), 891m, 경남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에 위치함.

②석남산(石南山)→가지산(迦智山), 1240m, 경남 밀양시 산내면,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에 위치함.

③운문현(雲門峴)→운문산(雲門山), 1188m, 경북 청도군 운문면,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에 위치함.

④천황산(제1봉,天皇山)→재악산(제1봉,載嶽山,載岳山), 1189m,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에 위치함. 일제가 조작한 산명임, 이유수 씨가 산명유래를 대한제국 때 독립심을 높이기 위해서 천황산으로 했다 라고 또 조작함.

※정상은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 1-1번지에 위치함.

⑤능동산(陵洞山), 983m, 경남 밀양시 산내면,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에 위치함.

⑥재약산(제2봉,載藥山)→수미봉(제2봉,載藥山), 1119m,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에 위치함. 일제가 1925년 하나의 산군을 두 개로 나누어 재약산(제2봉)으로 조작했음. 1998년경 이유수 씨가 載嶽山이라 조작함.

⑦신불산(神佛山), 1159m,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경남 양산시 하북면의 경계에 위치함. 

⑧고헌산(高獻山), 1034m,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상북면,경북 경주시 산내면

⑨취서산(鷲棲山)→영축산(靈鷲山.영취산), 1081m, 경남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삼남면의 경게에 위치함.

⑨-1,간월산(看月山), 1037m,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함.

⑨-2, 따라서 “백운산(白雲山)을 필두로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 天皇山 들이 있다”를

"載嶽山(제1봉,소위 천황산)을 필두로 “白雲山, 高巘山 雲門峴, 石南山, 陵洞山, 肝月山, 神佛山, 鷲棲山들이 있다”로 표현해야 적절한 표현이 된다. 손흥수.도재국이 보기로는 이유수 씨의 표현은 밀양 쪽에 명산(名山)들이 별로 없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의 모든 왕립 지리문헌에는 載嶽山(제1봉)이 밀양도호부 영역 안의 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06,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❶이유수 씨는 또 “밀양 쪽으로는 載藥山이 있고 ~” 라고, 적었다.

❷소위 재약산(載藥山)은 재악산군(載嶽山群) 속의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에 딸린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말한다.

❸이유수 씨는 “또 옛산 이름으로 穿火峴이란 山도 있었다” 라고 적었다. 이는 참으로 잘못된 표현이다. 바로 적어려면 “옛 고개의 이름으로 穿火峴이 있었다” 라고, 해야 한다. 고개(嶺.峴.峙)를 산(山)으로 적어면 안된다. 

 

●1-07.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는 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이들 가운데 天皇山은 일본색이 짙은 산이라 하고, 또 그 산을 天皇山(제1봉)이 아니라 載藥山(제1봉)이라 하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②위에서 “근자”란 이유수 씨가 이 "글"을 쓴 1998년경으로 보이며, 그 당시는 밀양시와 표충사.경상남도가 일체가 되어 제1봉인 載嶽山(소위 天皇山,제1봉)을 載藥山(제1봉)으로 변경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당시 밀양시와 표충사.경남도는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역사적인 수많은 증거를 정확하게 조사하지도 않은 채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과 제2봉인 수미봉(소위 載藥山)을 통털어서 재약산(제1봉,載藥山)으로 변경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무렵 밀양시가 보고한 지명변경신청서에 경상남도지명위원회가 제1봉이 載藥山도 天皇山도 아니고 載嶽山(載岳山)이라고 주장하였데도 불구하고 경남도에서 최종적으로는 제1봉을 載藥山으로 심의하여 국립지리원에 보고를 하였으나 중앙지명위위원회가 결국에는 제1봉은 天皇山이고 제2봉은 載藥山이라고 울산 측의 주장을 인정하였다. 이 당시에 밀양시와 경상남도지명위원회가 제1봉과 제2봉을 통털어 載嶽山(載岳山)이다 라고, 최종적으로 심의.확정하여 국립지리원에 보고를 하였더라면 아마도 그 때에 제1봉은 載嶽山(載岳山, 獅子峰), 제2봉은 수미봉(須彌峰)으로 산명이 복원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③이 당시 손흥수 씨는 밀양시에 “제1봉이 載嶽山(載岳山, 獅子峰), 제2봉은 수미봉(須彌峰)” 이다. 라고, 여러 번 주장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경남도청까지 찾아가서 같은 주장을 했으나 그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8. 이유수 "머리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는 또 “이와 같은 주장은 密陽쪽에서 싹트더니 울산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사회적으로 지정된 요지군(窯址群)이 그 산에 있기 때문에 자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산이다” 라고, 했다.

②이유수 씨는 위에서 “密陽쪽에서 싹트더니” 라는, 내용은 "1995년경 부터 제1봉과 제2봉을 통털어 載藥山으로 변경하기 위한 밀양시와 표충사. 경남도의 행정행위 시작을 말한다.  손흥수.도재국의 여러 의견에서 그러한 행정행위의 잘못을 지적하므로 참고 바란다.

③이유수 씨는 “또 사회적으로 지정된 요지군(窯址群)이 그 산에 있기 때문에 자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산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載嶽山(제1봉 載岳山, 獅子峰) 정상에서 능동산으로 가는 능선 쪽의 지금의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의 동쪽 능선에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요지군(窯址群)이 있는데, 이 요지군(窯址群:도자기를 굽는 가마터)의 사적 명칭이 "천황산 요지군(天皇山窯址群)"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④산명이 일제식으로 조작되어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방치하니까 조작된 산명에 부속된 국가사적지의 명칭마저 일제식 명칭을 사용하게 되어 손흥수.도재국은 수십년 동안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⑤이유수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와 같은 주장은 密陽쪽에서 싹트더니 울산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

⑥사실상 이 당시에 대부분의 울산 사람들도 제1봉의 산명인 天皇山이 일제가 조작한 산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1995년경부터 밀양시와 표충사.경남도가 載藥山으로 변경하려는 계획에 많은 울산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었다.

⑦제1봉을 울산 측이 天皇山이라 주장하고, 밀양시와 표충사.경남도는 載藥山이라 주장하는 가운데 손흥수와 도재국 두 사람이 載嶽山(載岳山)이다 라고, 주장하니 손흥수.도재국 단 2명의 載嶽山 산명복원운동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3파전은 두 골리앗과 다윗(◇손흥수.도재국)의 싸움 꼴이었으나, 손흥수와 도재국은 載嶽山(載岳山) 산명을 복원하기 위해서 두 개의 거대한 두 개의 세력에게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 등에 증거를 제시하고, 밀양향토사연구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밀양이야기" 책과 개인적으로 작성한 전단지 등으로 홍보하고 수십년간 만나는 사람마다, 모이는 장소마다  오늘날 까지 산명복원을 위해 34년째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⑧골리앗이란 제1봉을 天皇山으로 주장하며 제1봉의 載嶽山을 부정하는 100만 명의 시민을 가진 울산 측과  제1봉인 載嶽山을 부정하며 제1봉을 載藥山이라 주장하고 동조하는 "밀양시청 +표충사 +경남도청 +밀양시민 + 경남도민 + 전국 불교신도 + 표충사 신도 + 재악산을 등산하는 전국의 등산객 + 밀양의 각종 사회단체 등"의 수백만명의 시.도민과 국민을 말한다. 손흥수와 도재국은 34년째 이 거대한 세력과 맞서 제1봉을 載嶽山으로 복원하기 위해서 일제시대 독립운동보다 더 어렵고 힘들고 처절하게 외롭게 심혈을 기울인 결과 2017년에 표충사 일주문에 재악산 표충사라는 현판을 달게 하는 초석을 마련했고, 또 산문에 재악산문 이라는 현판을 달게 하는 초석을 마련했고, 또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일명 표충사삼층석탑개수비, 약칭 改修塔記碑 또는 改修碑)를 보물 제1944호로 지정하게 하는 초석을 마련하여 결국 표충사와 정부(문화재청)는 사실상 제1봉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복원한 셈이나, 울산 측의 반대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載嶽山(載岳山) 산명 복원이 되지 않고 있어 손흥수.도재국.정대재 등은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나. 이유수 기고문 "2.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현전하는 地誌가운데 경상도지리지는 경상도 조(條)에서 태백산등 11개의 명산을 등재하였고, 彦陽縣 條에는 鎭山으로 獻山과 名山으로 鷲棲山 밖에는 실어놓지 않았으며, 세종실록지리지는 彦陽縣에 鷲棲山, 密陽府에 華嶽. 靈井山 등이 보일뿐 간략한 기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東國輿地勝覽에서는 비교적 자세한 기록 방식을 취하여 여러 산들이 올라 있어 이것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彦陽縣, 高巘山, 在縣北十里鎭山, 鷲棲山 在縣南二十里 一名 大石山, 石南山 在縣西十二里, 穿火縣 在縣西二十八里 密陽府界, 夫老山 在縣南五里, 松洞 在縣北二里

密陽府, 華嶽山 惑屯德山 在府北十九里 鎭山, 推火山 在府東五里, 琵瑟山 在豊角縣西北三十里, 牛齡山 在府西十里, 載嶽山 在府東四十一里, 萬魚山 載府東二十里, 慈氏山 在府東十五里, 龜齡山 在守山縣北十五里, 實惠山 載府東三十一里, 穿火峴 在府東九十三里, 胡法山 在府西北三十七里, 鈴峴 在府西十五里, 羅峴 在府西十五里, 高巖山 在府西九里, 龍頭山 在府東四里.

이에 두 고을의 산을 검토하여 보면 彦陽縣西 28里의 穿火峴과 密陽府 東 93里의 穿火은 그 위치나 거리 등으로 보아 같은 산이라는 알 수 있는데, 더구나 彦陽의 穿火은 密陽府界라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載嶽山의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彦陽과의 경계에 있는 穿火嶺이 府東 93里라 한데 대하여, 오늘날의 지도상에 나란히 있는 載嶽山은 府東41리에 지나지 않아 52리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穿火峴이 가지고 있는 그 산의 뜻은 무엇인가 한번 구명하여 볼까 한다.

穿火峴은 ◆(1)」의 한자 바꿈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2)은 「◆(3)」등으로 互轉되는 「神」의 옛말로 「王」의 古訓 「尼叱今, 寐錦 내지 上監」에 그대로 쓰였는데 그 借字로는 「解慕, 蓋馬, 乾馬, 金馬, 儉, 錦, 今, 黑, 熊」 등이었다고 하였다 [❶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

이와 같은 견해에 따라 「穿」은 그 뜻이 「구무」이니 그 준말 「굼」은 곧 神 또는 王의 옛말◆(4)」으로 봄직하다. 또 「火」는 「◆(5)」으로 보고자 한다. ◆(6)은 광명 또는 국토의 뜻으로 古史에 「發, 伐, 弗,  沸, 不, 夫餘, 夫里, 火, 原, 平, 坪, 評, 赫, 昭, 明,」 또는 「白, 百, 伯, 貊, 泊, 朴, 瓠」등 자로 國名, 地名, 族名 人名 등에 借字됨은 주지의 사실이라 하였다 [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

이렇게 神明하다는 뜻을 가진 지명은 穿火縣의 인근에서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즉, 肝月山 神佛山과 박어리산 火穿(登億)등이 그러하며, 배내(利川) 또한 그러한 것이다.

배내의 「배」도 ◆(7)」이 변한 말이라 한다 [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그런데 지금과는 달리 彦陽에서 密陽으로 넘어가고, 密陽에서 彦陽으로 오는데는 모두 穿火峴을 통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彦陽邑에서 동과 남, 북으로는 大路가 열려 있었고, 서쪽으로는 小路가 穿火峴을 넘어 密陽으로 통하고 있었다. [❹輿地圖書 彦陽縣之地圖] .

이와 같은 험준한 산길을 가고 옴에는 남달리 길손들의 마음에는 이 산을 畏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8)」라는 이름이 생겨 났을 것이다.


나. 이유수 기고문 "2.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검토.의견


●2-01.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도재국은 20여년이 넘은 오래 전에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분류별 >고전국역총서 >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을 6개월 넘게 다운로드한 결과 그 분량이 A4용지(글자크기 12포인트)로 무려 2,300여 페이지에 해당하였다.

②이것을 도재국 본인이 운영하는 “daum cafe 밀양광장(카페지기 도재국)”에 아래과 같이 게시판을 만들어 중앙(朝庭)을 포함하여 전국 334개 군현별(郡縣別)로 그 내용을 올려놓고 사흘이 멀다 하고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지가 어언 20여년이 넘었다.

또 이것을 각 도별(道別)로 책으로 제본하여 개인적으로 소장하면서 또 사흘이 멀다 하고 살펴보고 있다.

 

●2-02.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도재국은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비록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지정은 되지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 도재국의 위와 같은 말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다 읽어본 사람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만큼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인류문화 발전에 모범적인 지리문헌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귀중한 보물이다.

②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은 다음과 같이 편제되어 있다.

❶서    문(序文)

❷경    도(1개)

❸한성부(1개)

❹개성부(1개)

❺경기도(37개 郡縣)

❻강원도(26개 郡縣)

❼충청도(54개 郡縣)

❽전라도(58개 郡縣)

❾경상도(68개 郡縣)

❾-1.황해도(24개 郡縣)

❾-2.함경도(22개 郡縣)

❾-3.평안도(42개 郡縣)

❾-4.발문(跋文)

❾-5. 합계 334개

③민족 최고의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밀양도호부 편에는 영정사의 배산(配山)을 載嶽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영정사는 지금의 표충사 이전의 명칭이다. 위 두 권의 지리문헌과 범우고 등에는 조선팔도의 수많은 절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절의 앞에 배산을 전부 기록해 놓았는데, 그 배산이 전부 그 절이 속한 산군에서 제2봉이 아닌 제1봉을 지칭한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글은 허구라는 것이 증명이 된다.


※참고 : 검은 동그라미 ❾다음에 “다시(-) 부호”를 붙여 1부터 아라비아숫자를 순차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는 한글문서프로그램에서 “글자겹치기”로 “검은 동그라미 숫자”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으나, 이렇게 만든 “검은동그라미 숫자”를 카페 게시판에 붙여넣기를 하면 “검은 동그라미 안의 10부터 숫자”는 변환이 안되므로, 이 기고문의 “❾의 다음 숫자”부터의 모든 숫자는 위와 같이 ❾ 다음에 “다시(-) 부호”를 붙여 아라비아숫자를 1부터 순차적으로 부여함을 양지바라며, “하얀 동그라미도 안의 숫자”도 21부터는 같은 상황임을 알린다.

 

●2-03.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위와 같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유림의 종장(宗匠)이었던 밀양 출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성종대왕의 명(命)을 받아 최종적으로 감수(監修)를 하였으며, 손흥수와 도재국이 34년째 복원할려고 노력하는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의 산명이 기록된 시문(詩文)이 두 편이나 점필재 선생의 문집(文集)에 실려 있다. 즉, 점필재 선생이 지금의 밀양 표충사 뒤편의 제일 높은 산명을 재악산(載岳山)이라 했다. 성종대왕(成宗大王)은 점필재 선생에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감수할 때 특히 “산명(山名) 등에 대해서 잘 살펴보라” 라는, 지시까지 하였다. 선생이 태어난 고향인 밀양도호부의 영정사(靈井寺,표충사의 옛 명칭)의 배산(配山)을 유람하면서 성종대왕의 명(命)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민족의 보물로서 인류의 보물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감수(監修)를 철저히 했을 것이다. 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민족의 명산(名山)으로서 밀양의 명산인 선생의 고향의  여러 산 중에서 가장 큰 산인 載嶽山을 눈여겨 보고 철저히 조사했을 것이다. 이유수 씨가 당시의 점필재 선생이었다면 영정사의 배산이었던 재악산 산명을 지금 자신이 쓴 글에 오늘내리도록 문제가 될 정도로 허술하게 조사하는 않았을 것이다.

②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팔도의 각 군현별로 등재된 산명이 무려 3,000개가 넘는다. 3,000개가 넘는 산명 중에는 이유수 씨가 주장하는 천황산(天皇山)은 단 한 개도 없다. 또 위작(僞作)된 소위 “재약산영정사고적” 속에 등장하는 재약산(載藥山)이라는 산명은 단 한 개도 등재되지 않았다.

이유수 씨가 주장하는 그의 글인 “천황산일식명설고찰” 속에 등장한 天皇山 산명은 1925년 일제가 조작한 산명이다. 그는 1998년경에 그 산명만을 그대로 취하고, 그 산명의 유래를 "민족의 산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가 아주 주관적으로 작명한 허구의 산명 유래일 따름이다.

 

●2-04.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다시 말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팔도의 각 군현별로 무려 3,000개가 넘는 산이 등재되어 있는데, 그 모든 산명은 "제2봉"이 아닌 "제1봉"에 붙여져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지리학자에게 다 물어보아도 똑같은 답이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제1봉"에 산명을 부여하는 것이 기본이고 철칙이기 때문이고, 사실상 한반도 전역의 어느 산군(山群)이라도 "제1봉"에 산명을 붙여 부르기 때문이다.

②사실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이유수 씨는 그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以下 필요에 따라 줄여서 “글”이라고도 칭한다)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왕립(王立) 지리문헌 등에 기록된 “제1봉의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를 지금의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 밀양시에서 2002년경에 載藥山이라고 커다란 돌로 만든 표지석이 있는 곳)"에 해당한다” 라고, 적어놓았다. 참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2-05.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사실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수 씨의 글에서 동국여지승람을 언급하였기에 그의 글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을 수 밖에 없어 아래와 같이 계속해서 검토.분석하여 독자들에게 밝힌다.

②이유수 씨의 글에 “현전하는 地誌가운데 경상도지리지는 경상도 조(條,目次의 項目)에서 태백산 등 11개의 명산을 등재하였고, 彦陽縣 條에는 진산(鎭山)으로 헌산(獻山, 고헌산을 말함)과 名山으로 취서산(鷲棲山, 영축산으로 변경됨) 밖에는 실어놓지 않았으며, 세종실록지리지는 彦陽縣에 鷲棲山, 密陽府에 華嶽. 靈井山 등이 보일뿐 간략한 기록으로 되어 있다” 라고 적어 놓았다.

③도재국 본인도 이러한 고문헌을 소장하고 있기에 위②의 내용은 사실이다.

④이유수 씨의 글에 “ ~ 이에 두 고을의 산을 검토하여 보면 彦陽縣西 28里의 穿火峴과 密陽府 東 93里의 穿火峴은 그 위치나 거리 등으로 보아 같은 산이라는 알 수 있는데, ~” 로 적혀 있는 내용은 손흥수.도재국도 동감이다. 

⑤이유수 씨는 위 穿火峴(해발 755m 정도, 편리상 以下 해발 755m 로 표기한다)을 산(山)이라 적었는데, 山이 아니고 가지산(해발 1240m)과 재악산(제1봉,해발 1189.2m) 사이의 고개(해발 755m)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지산과 능동산(해발 983m) 사이의 제일 낮은 부분인 고개이다.

⑥광의(廣義)의 山 개념에서 보면 고개(嶺.峴.峙)가 山으로 포함되지만 협의(狹義)의 개념에서는 고개가 결코 山으로 포함될 수가 없다. 이유수 씨가 輿地圖의 밀양부 載岳寺와 그 부근을 독도하면서 穿火峴의 위치를 輿地圖에 표기된 天王山과 동일한 위치로 주장하는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천화현(穿火峴)을 산(山)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천화현은 밀양도호부와(밀양시 산내면)와 언양현(울주군 상북면)과의 경계에 위치한다.

밀양쪽에서는 천화현을 일명 천화령.석남령 등으로도 부른다.

穿火峴과 天王山은 절대로 동일 위치가 아니다. 이유수 씨는 이 위치를 주장, 고수하면서 제1봉의 載嶽山을 말살시키고, 제2봉을 載嶽山이라 주장 하는데 천부당 만부당하다.

⑦이유수 씨 글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리고 載嶽山의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彦陽과의 경계에 있는 穿火嶺이 府東 93里라 한데 대하여, 오늘날의 지도상에 나란히 있는 載嶽山은 府東41里에 지나지 않아 52里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재악산(載嶽山)과 금일의 재약산(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⑧손흥수.도재국이 확인한 결과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밀양 관아에서 穿火嶺까지는 93里 라고 적혀 있고, 밀양 관아에서 載嶽山(제1봉)까지는 41里라고 적혀 있다. 

⑨밀양 관아에서 천화령까지의 경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금의 국도 24번 노선과 거의 동일하고, 또 밀양 관아에서 載嶽山(제1봉)까지의 경로는 국도 24번을 따라 밀양시 산외면 금곡삼거리 까지는 같고, 금곡삼거리에서 부터는 지금의 표충로(表忠路)와 거의 동일한 경로로 해서 표충사를 경유해서 載嶽山(제1봉) 정상에 오른다.

⑩따라서 천화현과 載嶽山(제1봉)의 위치와 경로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유수 씨가 “52里(93里-41里)가 차이가 난다” 라는 등식(等式,계산)은 절대로 적용할 수가 없다. 지리문헌과 고지도와 고지도의 주기에 기록된 거리를 살펴보면,

❶동국여지승람 에는 천화현 까지를 93里, 재악산까지 41리

❷여지도 주기 조(條)에는 중동면 후경(後境)까지 제일 먼 곳이 70里,

❸해동지도에는 언양계 까지가 80里 등등 같은 지점까지의 거리를 각각 다르게 적어놓았다.

이유수 씨 게산대로라면 93里에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載嶽山 까지의 거리 41里를 공제하고 나면  52里가 차이가 나는데, 구명을 한 번 해 볼까한다.

손흥수.도재국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밀양부 고나아에서 천화현 까지와 재악산 까지 가는 길이 다르기에  [ 93리 - 41리 = 52리 ] 등식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경로 표시 지도와 거리 환산 지도로 이유수 씨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아래의 2장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52里 만큼을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嶽山 위치(이유수 씨는 이 위치를 穿火峴에서 뻗은 하나의 가지인 支脈으로 칭함)에서 동쪽으로 산괴가 이동하여 간 곳이 수미봉(須彌峰, 밀양시에서 載藥山이라는 큰 표지석을 세워놓은 곳)의 위치라 주장한다. 이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다.

[ 사진 30 (위) ] 다음(Daum) 지도로 천화령 까지 측도한 실질적인 거리 37.81km(95里)

[ 사진 31 (위) ] 다음(Daum) 지도로 載嶽山(제1봉) 까지 측도한 실질적인 거리 26.9km (68里)


●2-06.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載岳山(제1봉)과 금일의 載藥山(제2봉)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②손흥수.도재국이 보면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다

즉,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제1봉)과 금일의 載藥山(제2봉)은 그 위치가 당연히 다르다. 인공위성지도에서 獅子峰(載岳山,제1봉)과 須彌峰(제2봉,載藥山)을 직선으로 거리를 측량해보면 대략 1,600m 이다. 당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이유수 씨가 왜 이렇게 적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재악산은 잘못 표시되었다. 잘못 표시된 위치를 근거로 거리 계산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발생시킨다. 잘못 표시된 것은 그 선에서 더 이상 다른 논리로 대입해서는 안된다.

 

●2-07.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러면 穿火峴이 가지고 있는 그 산의 뜻은 무엇인가 한번 구명하여 볼까 한다. ~ 「(8)」라는 이름이 생겨났을 것이다”

②위의 글은 이유수 씨가 한글의 옛글로써 穿火峴을 설명하고 있는데, "어문학적으로 천화현의 뜻을 규명"하는 것은 "산의 위치를 규명"하는 데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2-08.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밀양 지명의 대사전(大辭典) 격인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에는 穿火山, 穿火峴, 穿火嶺, 穿火面, 穿火山內面 등 천화(穿火)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이유수 씨의 옛글의 어문학적 분석보다 밀양지명고 등에 적힌 천화(穿火)와 관련한 내용이 穿火峴(천화고개)의 위치와 지명 유래를 이해하는데 더 유용할 것으로 본다.

②천화현(穿火縣,해발755m)은 산(山)이 아닌, 밀양부(密陽府)와 언양현(彦陽峴)사이에 있는 고개 즉, 볼록 솟은 산(山)이 아닌,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의 가장 낮은 푹 꺼진 안부(鞍部)를 말하며, 이 고개를 언양현(彦陽縣) 쪽에서는 천화현(穿火縣)이라 하고, 밀양부(密陽府) 쪽에서는 석남령(石南嶺) 또는 석남고개라 하는데, 그 이유는 지금의 밀양시 산내면을 옛날에는 천화면(穿火面) 또는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이라 했고, “고개마루의 명칭의 설정 기준”은 가는(向하는) 방향에 있는 특정한 지명을 지칭한다. 언양에서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므로 천화현(穿火峴) 또는 천화령(穿火嶺)이다. 또 밀양에서 언양으로 넘어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상징물이 영남의 대찰(大刹)로서 비구니승(比丘尼僧)의 대표적인 사찰인 석남사(石南寺)이며, 그래서 석남고개 또는 석남령이라 한다. 

③여기서 천화령(穿火嶺) 또는 천화현(穿火峴)은 언양현에서 밀양부(밀양도호부) 쪽으로 넘어 오면서 밀양부(密陽府) 경내(境內)의 대표적인 지명 또는 지형물을 목표물로 지칭하는 것이며, 그 특정하는 지명은 천화(穿火)이며, 이 천화(穿火)의 지명 유래가 어디서 왔는지를 규명하면, 태고적에 이 지역에 화산이 분출(穿)하여 불(火)이 하늘로 치솟았다. 즉, 화산(火山)이 뚫고 나왔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이에 기인하여 천화현(穿火峴) 또는 천화령(穿火嶺)의 지명 유래가 명백하게 확인되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수 씨는 이상하게도 “옛 한글”에서 어문적(語文的)으로 찾고 있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본다.

④“천화(穿火)”는 밀양도호부 관내의 엄연한 옛 지명이기 때문이며, 손흥수.도재국은 이 지역의 향토사학자로서, 언양현의 옛 지명을 참고하면서, 언양현(彦陽峴)과 밀양부(密陽府)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의 경계의 천화(穿火)의 지명 유래를 조사해 왔다.

이런 것은 향토사학자로서 기본 상식인데, 누구든지 이를 모르거나, 아니면 억지로 감추고, “옛 한글의 어문학적 접근”을 거론하여 천화면(穿火面 또는 穿火嶺)을 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

  

●2-09.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사진 31 (위) ] 다음(Daum) 지도로 천화령 까지 측도한 실질적인 거리 37.81km(95里)



[ 사진 32 (위) ] 다음(Daum) 지도로 載嶽山(제1봉) 까지 측도한 실질적인 거리 26.9km (68里)

  

 지도(측도 구간 및 경과지)로 측도한 거리

○ 밀양부(密陽府) 관아(官衙) ~ 천화현(穿火峴) : 37.81 km  (약 95里) 

○ 밀양부(密陽府) 관아(官衙) ~ 재악산(제1봉,載嶽山) 정상 : 26.90km (약 68里)  

○위와 같이 현대의 과학적 방법에 대략 접근하여 거리를 인공위성사진을 인터넷으로 대략 측도해 보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천화현(穿火峴)과 재악산(제1봉,載嶽山) 정상까지의 거리”가 맞니, 안맞니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진다.

따라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載嶽山과 밀양부(密陽府) 관아(官衙)와의 거리가 차이가 난다고 해서 “그 산이 그 산이 아니다” 즉 “그기에 그려진 載嶽山(제1봉)이 지금의 소위 天皇山(제1봉)의 위치가 아니다” 라는 식의 접근과 단정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교, 분석, 측도한 여러 지도가 아래 "속성"에 있다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9fn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edge=F&contentval=000n2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2-10. 이유수 “동국여지지승람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주장 ]

『穿火峴』은 [ 사진 30 ]의 『◆(1)』의 한자 바꿈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神明』 하다 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 『穿火峴』이다

❸천화현이나 천화령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 알맞지 않다.


[ ①손흥수.도재국 의견 ]

❶천화현. 천화령 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에서 이곳 뿐인 고유지명이다. 

❷지명은 보통명사가 아닌 특정한 지역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제정되고 쓰여지고 불려져야 한다.

❸이유수 씨 주장대로 한다면 "穿火峴"을 "神明한 고개" 즉 "神明峴"으로 제정되고 쓰여지고 불려져야 한다.  21세기에 一千餘 年 전의 신라시대 이두 독법으로 지명을 옛글로 유사한 글자로 借字하여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 이유수 기고문 "3. 여지도서의 기록"


여지도서라 함은 영조 36년(1760)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圖와 書로 이루어진 것인데 여지승람을 보완 개수한 것이다. 

이 여지도서에 수록된 언양과 밀양의 관계되는 산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彦陽縣 穿火峴 在縣西二十八里 密陽境卽石南山西麓.

密陽府 穿火嶺 在九十三里 來自淸道雲門山, 載嶽山 在府東四十里 來自穿火峴.

위와 같은 여지도서의 기록을 본다면

載嶽山은 오늘의 載藥山과는 분명 그 위치가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또 載嶽山의 설명에 來自穿火嶺이라 하여 載嶽山은 穿火嶺으로부터 흘러온 산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載嶽山은 밀양 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편으로는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載嶽山의 산명에 대하여 梁柱東의 그럴듯한 해설이 있어 살펴 볼 만한다.

그는 宰嶽山(慶尙道地誌 咸昌)과 採藥山(永川南 저?역 뫼) 助藥島(조약섬) 등이 모두 小石의 뜻 「◆(9)」의 借字라 하였다 [❺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載嶽山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어느 산과 대비하여 작은 산(小山)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지 모르겠다.


다. 이유수 기고문 "3. 여지도서의 기록"에 대한 검토.의견


●3-01. 이유수 “輿地圖書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密陽府 穿火嶺 在府九十三里 來自淸道雲門山.

輿地圖書의 원문에 위①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穿火嶺이 淸道 雲門山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맞으나, 그 중간에 石南山(迦智山)을 경유해서 穿火嶺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원문을 바로 기재를 하면 다음 ②와 같다

穿火嶺 在府九十三里 來自密陽淸道界雲門山密陽淸道彦陽界石南山.

석남산을 생략하고 천화현으로 적은 것은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에 山中大路를 통할 때 고개(穿火峴)를 중시하여 그렇게 적은 것 같으나, 지맥이 연결된 상황을 적을 때는 태산(泰山)으로서 명산(名山)인 石南山을 생략해서는 안된다.

●3-02. 이유수 “輿地圖書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사진 33 (위) ] 여지도서(輿地圖書)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제1봉 재악산(載嶽山) 말살"


①천화령 ~ 능동산 ~ 載嶽山(제1봉 사자봉, 소위 천황산) ~  수미봉(제2봉, 소위 載藥山) 구간은 9.85km (25里)이다

②지리문헌인 “輿地圖書”를 잘못 해석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울산향토사보 52페이지 위에서 첫째(1)줄부터 열한번째(11)줄 까지에 보면

“載嶽山 在府東四十一里 來自穿火嶺“의 문장이 있는데,

이유수 씨는 “載嶽山은 穿火嶺으로부터 흘러온 山이다“ 라고, 하면서

그 아래에 부연 설명으로 “載嶽山은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③위 의 41里는 착오로 잘못 기록된 거리이다. 바로 측도하면 다음과 같이 밀양부 관아에서 제1봉인 재악산(사자봉, 현재 소위 天皇山 표지석 위치) 정상까지 68里가 된다.

[ 사진 32 (위) ] 다음(Daum) 지도로 載嶽山(제1봉) 까지 측도한 실질적인 거리 26.9km (68里) 참조.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岳山 부근의 마을에 가서 모든 주민에게 다 물어보아도 그 위치나 주변에는 載岳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즉, 載岳山 표시가 잘못되었는 증거이다. 따라서 41里는 잘못된 거리이다.

따라서 輿地圖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바른 해석이 된다.

❶載嶽山(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岳山)은 穿火峴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 穿火峴에서 이어진 지맥(능선)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작은 지맥(능선)의 한 위치에 載岳山이 있다. ("흘러온"을 "이어진"으로 해석해야 한다)

❷오늘날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  오늘날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수미봉)은 穿火峴에서 이어져 온 지맥(능선)에 있다.  載藥山(수미봉)은 載嶽山(사자봉 = 제1봉)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3-03. 이유수 “輿地圖書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양주동 씨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❶載嶽山의 산명에 대하여 梁柱東의 그럴듯한 해설이 있어 살펴 볼 만한다. 그는 宰嶽山(慶尙道地誌 咸昌)과 採藥山(永川南 저?역 뫼) 助藥島(조약섬) 등이 모두 小石의 뜻 「ㅈ?악」의 借字라 하였다 [❺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宰嶽山(慶尙道地誌 咸昌)과 採藥山(永川南 저?역 뫼) 助藥島(조약섬) 등이 모두 小石의 뜻을 가진 이유를 손흥수와 도재국은 이해 할 수가 없다.

❸“載嶽山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어느 산과 대비하여 작은 산(小山)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지 모르겠다.” 라는, 말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❹이유수 씨는 소석(小石)을 “작은 산”이라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載岳山 山名의 유래를 밝혀 정립한 경일동계(敬一東溪)의 동계집(東溪集)에는 “載岳山은 백두산에 뿌리를 두고 백두대간을 따라 뻗어내려 청도.밀양. 언영. 밀양땅을 휘감는 거대한 산”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선사(大禪師)인 경일동계(敬一東溪)의 동계집(東溪集)에는 載嶽山이 작은산(小石)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산인 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백두산(白頭山)에서 유래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 민족의 명산인 제1봉인 載嶽山을 어떻게 말살하고 , 어떻게 폄하하는지, 또 얼마나 허구인지를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유수 씨는 59페이지 맨 끝 줄에 소위 천황산(실재로는 제1봉인 載嶽山임)을 큰 산으로 묘사하고 있다(제2봉 1115m를 높은 봉우리로 보았으므로 소위 천황산은 1189.2m 더 큰 산이다). 사실은 제1봉 재악산은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위치하며 제일 큰 산이다.

그런데 조약섬 등이 소석(小石)의 뜻 "?악"의 借字라 하면서 載嶽山도 “작은 산”이라는 데서 유래 했는지 모르겠다. 했다. 

이 山이고 저 山이고 간에 山은 자기 위치에서 한발짝도 이동없이 서 있다. 그래서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천화현에서 유래했으니까 작은(小石) 데서 유래했다 라는 것을 비교하는데 이런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유수 씨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글(양주동씨의 글 등)을 인용해서 또 스스로도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부정적(否定的)이고도 가정법(假定法)적인 결론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다


라. 이유수 기고문 "4. 여지도의 山名"


여지도는1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지도이다, 이 여지도는 書는  없고圖만 있을 뿐인데彦陽縣圖를 보면 밀양과 경계에는 단지 石南嶺만 있을 뿐 종전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密陽府圖에는 언양쪽에 伽智山, 石南嶺이 있고,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王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일명 그렇게도 불러온 것으로 짐작된다.

하늘(天)의 原語 「◆(10)」을 火로도 借字되었으니 火가 天으로 변한 것이고 또 神의 原語 「◆(11)」도 王으로 互轉함을 볼 때 天王이란 산명은 「◆(12)」을 倒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天王을 말하여 山神이라 하는 견해가 있다.

우리 민간 신앙에 山神을 在天에는 天王이요, 下山에는 山王이라 한다 하여 山神이나 天王이나 山王이 모두 같은 일신동체라 하였다. [❻金鍈遂 智異山聖母에 就하여]

그러하므로 天王山이라는 것은 天王이 하늘에서 내려 계시는 山이라 하여 天王山이라 한 것이며 옛 사람들은 하느님이 인간세계에 내려오실 때 제일 높은 산에 내려 오시는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러니 高山은 下界로 내려 오는 사다리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왔다.

肝月山의 최고봉 丹鳥峰도 언양지방 사람들은 이를 왕배이(王峰)라 하여 왔다.

天王山이란 산명은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智異山 산신의 所住峰을 天王峰이라 하였고, 俗離山 산신의 소주봉도 天王峰, 伽倻山 山神의 이름을 正見天王, 俗離山 神名을 大自在天王이라 한다.

이 天王이란 말은 하늘의 임금으로 다분히 불교색을 띄고 있는 말이다.

◆輿地圖 密陽府 (이 위치에 사진이 있음) 


라. 이유수 기고문 "4. 여지도의 山名"에 대한 검토.의견

[ ●4-01.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의 글에는 “여지도는 1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지도이다, 이 여지도는 書는  없고 圖만 있을 뿐인데 彦陽縣圖를 보면 밀양과 경계에는 단지 石南嶺만 있을 뿐 종전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라는, 글은 맞다.

②이유수 씨는 “한편으로 密陽府圖에는 언양쪽에 伽智山, 石南嶺이 있고,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라고 적고(읽고, 讀圖하고) 있다

③그런데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라고 말한데 대해서는 잘못 적고 있다. 왜야 하면 輿地圖의 密陽府圖에는 “穿火嶺의 자리에 天王山이 있는 것이 아니고, 天王山 자체가 載岳山이다. 이 載岳山은 지금의 제1봉인 獅子峰의 위치이다.

다시 말하면 穿火嶺의 위치는 密陽府圖上의 석남령 위치이고 이것을 더욱 명확하게 확인해주는 것이 밀양부도상의 彦陽界 라는 기록이다. 천화현을 석남령이라고도 불렀다. 같은 고개이다.

④穿火嶺이 石南嶺이고, 天王山이 載岳山이라는 더욱 명백한 증거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 중인 원문자료, 해동지도(海東地圖)의 밀양부의 中二同面(지금의 밀양시 단장면) 영역에 기재된 載岳寺, 天王山, 中初同面(지금의 산내면) 영역의 石南嶺, 彦陽界 등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지명 다음에 “界”를 붙이면 주로 그 위치에 고개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도 하나만 보더라도 이유수 씨가 천황산일식명설에서의 천황산이 민족의 산명이라는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 증명된다. 이유수 씨는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된 밀양부 관아에서 천화현 까지 거리 93里를 주장하지만, 동국여지승람 등 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이 있는 것이 이 해동지도이다. 해동지도에는 밀양부 관아에서 彦陽界까지를 80里로 기록하고 있다. 93里도 확정된 숫자가 아닌 것이다. 인공위성지형도 등으로 측도하면 95리가 나온다. 여지도 주기 중동면 후경은 70리로 기록하고 있다. 제각각 다르다.

80里 증거 해동지도 등 속성 :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mr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029&listnum=20

⑥여지도(輿地圖) 밀양부(密陽府) 재악사(載岳寺) 부분 확대

[ 사진 34 (위) ] 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輿地圖, 繪畵式, 密陽府, 載岳寺 영역, 편집:프린트스크린, 80% 축소.


위 여지도 등의 자세한 지도 있는 곳(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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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고지도의 좌상(左上) 載岳寺,天王山,彦陽界,迦智山 부근의 지명은 다음과 같다

中東面(지금의 丹場面), 載岳寺(지금의 표충사), 篁竹田(황죽전,지금의 표충사 대밭), 제1봉인 天王山(지금의 사자봉 위치로 載嶽山 정상임), 中初同面(지금의 山內面), 石骨寺(석골사), 彦陽界(언양계, 밀양부와 언양현의 경계 지점), 石南嶺(석남령,석남고개,천화령), 伽智山(가지산)


[ ●4-02.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輿地圖의 “密陽府 注記”과 輿地圖 密陽府 地圖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❶“재악산(載岳山) 선재봉산(船材封山) 주회오십리(周回五十里) 거부오십리(距府汚十里” 즉, 載岳山에 배를 만드는 목재를 식재.관리하는 봉산이 있는데, 封山의 둘레가 五十里나 되고 밀양부 官衙에서 五十里나 떨어져 있다“ 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도 봉산의 둘레가 50里라는 것과 관아까지 거리가 50里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같은 수치가 나왔는지, 아니면 어느 한 개가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국 334개 군현(郡縣)에서 제출받은 군현도(郡縣圖)가 334장이나 되고, 그러한 334개의 군현도를 일정한 기준에 의한 1장의 군현도로 다시 작성하고, 또 일정한 기준에 의한 지지[地誌, 줄여서 지(誌)]를 작성하다 보니 위치를 그린 지형물이나 거리 등이 오류가 날 수가 있는 것이다.

❷地誌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밀양부 관아에서 載岳山까지 41리(四十一里)로 적혀 있는 것이나

❸고지도상의 載岳山 위치 오류를 보면

❹둘(2) 다 그 당시 고지도(古地圖)나 지지(地誌)를 제작하고 편찬할 때 혼선으로 인하여 정확한 조사가 되지 않았다고 보인다.

❺고지도나 지지를 보면 필사(筆寫)를 한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이 잘못된 거리를 기록한 지지나 잘못 그려진 고지도를 후세(後世, 관청의 관리, 私人으로서의 향토사학자 등)가 그대로 빼껴 적어 계속해서 이런 오류가 생겼을 것이 명백하다.

❻이리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문헌비고와 대동여지도 등등에 같은 오류가 반복적으로 생겨났다고 보여진다.

※속성 참고 : 여지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밀양부 재악사(載岳寺,표충사 옛 명칭) 부분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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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3.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는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❶위 말이 “이유수 씨의 無知 또는 실수인가?”

❷위 말이 “이유수 씨의 고의적인 조작인가?”

○ 위 두 가지에 대해서 손흥수.도재국은 수십 번을 생각을 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그분에게 지금 물어 볼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글의 모든 면을 종합해 보면 고의적으로 조작했다고 보여 진다. 왜야하면 그분이 언급하는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여지도 등을 전부 훑어보면 민족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모든 산은 해당하는 하나의 산군에서 제1봉을 지칭하며, 이러한 지리문헌에 기록된 載嶽山(載岳山)은 밀양 표충사 뒷산의 제1봉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떠한 지리문헌에도 제1봉을 제쳐두고 제2봉 또는 제3봉 등을 산명으로 절대로 기록하지 않는다.

 

[ ●4-04.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는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라는 조작을 필두로 제1봉인 載嶽山(載岳山) 말살과  동시에 載岳山의 제2봉 이동을 주장하는 글이 소위 말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다.

②제1봉 載嶽山(載岳山) 말살을 하는 주된 증거가 그의 글인 “4. 여지도의 산명”條의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王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일명 그렇게도 불러온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글이다.

③여지도에서는 천화령과 천왕산의 위치가 분명히 다르므로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④“穿火嶺이 天王山에서 오늘의 天皇山名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

○천화령은 태고적부터 천화령 그 자리에 있다.

○천왕산(제1봉 載岳山)은 태고적부터 천왕산(제1봉 載岳山) 그 자리에 있다.

○천년이 넘는 우리민족의 불교사를 보면 유명한 사찰은 절을 품고 있는 짝이 되는 배산(配山)을 절의 명칭 앞에 붙인다. 배산(配山)을 절의 뒷산이라는 뜻에서 배산(背山)이라고도 한다. 제2봉이 아닌, 제1봉이 배산이다. 아래에는 제2봉이 하나도 없다. 전부 제1봉이다. 이와 이유수 씨가 본 글에 제시한 지리문헌인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대동여지도와 왕명에 의해 발간한 조선시대 모든 현존 및 폐사된 사찰의 명부를 적은 조선시대 범우고 등에 적은 모든 載嶽山(載岳山)은 전부 제1봉을 지칭하며, 국립지리원이 1961년 최초로 고시하고 국토지리정보원이 2002년 다시 지명고시한 제2봉으로서 수미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이유수 씨의 소위 천황산일식명설 고찰이라는 글 전체가 거짓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판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흥수.도재국이 계속해서 글을 적는 것은 그의 거짓이 어떠한가를 생생하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배산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덕숭산(德崇山) 수덕사(修德寺)』『토함산(吐含山) 불국사(佛國寺)』『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팔공산(八空山) 은해사(銀海寺)』『모악산(母嶽山) 금산사(金山寺)』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지리산(智異山) 화엄사(華嚴寺)』『두륜산(頭輪山) 대흥사(大興寺)』『도솔산(兜率山 : 禪雲山) 선운사(禪雲山)』『설악산(雪嶽山) 신흥사(新興寺)』『총본산(總本山) 조계사(曹溪寺)』『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황악산(黃嶽山) 직지사(直旨寺)』『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등운산(登雲山) 고운사(孤雲寺)』『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한라산(漢拏山) 관음사(觀音寺)』『운악산(雲嶽山) 봉선사(奉先寺)』등이다.


[ ●4-05.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여지도 밀양부 천왕산(天王山)에 건물 2동(棟)이 그려져 있다. 이 절이 재악사(載岳寺)이다. 이 절이 지금의 표충사다. 위[●4-05]의 배산과 같이 사찰을 들어서는 첫 문이 사천왕문(四天王門)인데 여기에 세워져 있는 네(4) 분의 사천왕(四天王)에서 유래하여 일시적으로 天王山으로 불려졌다. 海東地圖에도 마찬가지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도에는 天王山이 載嶽山(사자봉, 제1봉) 위치라는 것이 더욱 명백하게 표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천화현.천화령의 위치가 천왕산의 위치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 천왕산은 북방을 지키는 多聞天王으로서 載嶽山을 일시적으로 부르고 적은 것에 불과하다. 재론의 여지가 없이 표충사 뒷산의 제일 높은 산이 제1봉으로서 載嶽山(載岳山)이다.


[ 사진 35 (위) ] 사자봉(제1봉)이 天王山(제1봉)으로 불려진 유래가 있는 밀양 표충사 사천왕문(四天王門)


[ 사진 36 (위) ] 사자봉(제1봉)이 天王山(제1봉)으로 불려진 유래가 있는 밀양 표충사 사천왕문의 사천왕(四天王)

수미산[須彌山,표충사에서는 대광전의 본존불(本尊佛)을 말함]의 북방을 지키는 사천왕(비파를 든 다문천왕)에서 유래된 사자봉의 또 다른 이름인 천왕산(天王山)과 다문천왕(多聞天王)

사자봉(사자봉)은 표충사의  북방에 해당하는 가장 높은 표충사의 배산(配山:背山)이다


[ ●4-06.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天王山과 天王臺에 대한 의견 :

표충사(表忠寺) 경내(境內)에 있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표충사삼층석탑개수비(表忠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개수탑기비)와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지리서(地理書)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新增東國輿地勝覽)과 고지도(古地圖) 등에는 사자(獅子)의 형상을 한 최고봉인 사자봉(제1봉,獅子峰 해발1189.2m)의 봉우리를 載嶽山(제1봉,載岳山, 여러 가지 지리문헌과 고지도에 따라 嶽 또는 岳으로 혼용해서 사용함)이라 기록하고 불렀던 것이 500년 이상이나 된다.

②조선 중기를 거쳐, 조선 후기에도 변함없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리서와 유적, 고지도 등에 載嶽山(제1봉,載岳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소수의 지리서에는 이 봉우리(제1봉,사자봉 獅子峰)를 천왕산(天王山) 또는 천왕대(天王臺)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사자봉(제1봉,獅子峰)을 표충사에서 바라보아 북쪽 방향에 위치하므로 불교의 사천왕(四天王) 중에서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에서 유래하였으며, 북방의 다문천왕은 도량(사찰)을 지키면서 설법을 듣는다고 해서 다문(多聞)이라 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광명신이 되었으며,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미산(須彌山,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을 말함, 표충사에서는 대광전의 본존불 本尊佛을 말함)의 북쪽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 天王)이 되었다.

표충사 입구의 사천왕문에는 누을 부릅뜨고 비파를 켜는 사천왕과 장검을 든 사천왕 등의 목상(木像)이 있다.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에도 민간에는 불교가 융성했으며 위와 같은 불교의 사천왕(四天王)에서 연유하여 고지도 등에 재악산(載岳山)을 일시적으로 천왕산(天王山) 또는 천왕대(天王臺)로 기록 또는 표시했을 뿐이다.


[ ●4-07.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충청도 “속리산 법주사”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46호인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법주사 홈이지에는 천왕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❶금강문을 통해 깨뜨릴 수 없는 불법의 세계를 지나면 천왕문을 만난다. 앞 5칸 옆 2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앞면 3칸에는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고 양쪽 끝 칸에는 문이 아니라 작은 판창(板窓)을 달았다. 대개 사찰의 금강문은 앞면 3칸 정도의 규모인데, 이처럼 5칸을 마련하고 양옆에 판창을 댄 법주사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로 국내의 천왕문 규모중 가장 크다.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46호로 지정되어 있다.

❷동쪽 세계를 관장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손에 비파를 들고 인간 감정의 기쁨의 세계를 관장한다.

❸서쪽 세계를 관장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서 노여움의 감장을 주관하고,

❹남쪽 세계를 관장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칼을 들고 사랑의 감정을 주관하며,

❺북쪽 세계를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 또는 깃대를 들고 즐거움의 감정을 주관한다.

❻이처럼 인간사를 관장하고 있는 사천왕은 착한 일과 악한 일을 적절한 시기에 판단하여 그에 따른 상과 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천왕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최대의 공경을 올리곤 한다(이상 출처 : 법주사 www.beopjusa.or.kr)

 

[ ●4-08.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載嶽山 天王峰”은 載嶽山 靈井寺(표충사의 옛 명칭)“의 배산으로서 제1봉우리의 명칭이다. 산명이 한 때 天王峰으로 불려지다가 載嶽山 즉, ”載嶽山 獅子峰“으로 변경되었다.

②“智異山 天王峰”은 “智異山 法界寺”의 배산으로서 제1봉우리의 명칭이다

“俗離山 天王峰”은 “俗離山 法住寺”의 배산으로서 제1봉우리의 명칭이다

天王과 天皇은 완전히 다른 단어이다. 天皇山을 민족의 산명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들은 天王과 天皇을 같은 뜻으로 선전하고 있다.

④따라서 이유수 씨가 이 天王峰을 天皇峰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⑤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1925년 제작한 5만분의 1 지형도에 남한 지역에 갑자기 12개의 天皇山 또는 天皇峰을 표시한 것은 일제 天皇을 상징하기 위하여 당시 친일 부역자들과 공모하여 조작한 산명 또는 봉우리 명칭이다.

⑥일제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서 민족고유지명을 없애는 등 온갖 짓을 다했다. 그래서 옛부터 載嶽山(載岳山) 또는 天王峰으로 있었던 산명을 그들의 天皇을 상징시키기 위해 天皇山으로 산명을 조작해 버렸다.

⑦그들이 천황을 상징하기 위한 조작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민족 지리문헌(고지도 포함)에 수없이 등장하는 天王峰 또는 天王山으로 변경했어야 했다. 그런데 일제는 도리어 그 반대로 天王峰을 天皇峰으로 조작해버렸다. 

⑧오래 전에 이를 최초로 조사하여 밀양시청에 제1봉을 天皇山에서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시켜 달라고 민원신청을 한 사람이 서울에 살았던 최병운 씨였다. 그러나 그분의 민원신청은 국립지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좌절되고 말았다. 이러한 그분의 증거서류(공문사본)를 손흥수.도재국이 보관하고 있다.

속성 참조(載嶽山, 智異山, 俗離山)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mq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028&listnum=20



[ ●4-09.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의 "옛글 차자(借字)" 관련 글은 "천왕(天王)"에 한정하여 참고할 뿐이다.

②“金暎遂 智異山聖母에 就하여”의 글은 사찰을 품고 있는 산에 관련된 산신(山神)으로서의 천왕(天王)으로만 참고 할 뿐이다.

③이유수 씨는 “위①② 글의 천왕은 다분히 불교색을 띤다” 라고 하므로써, 이는 사찰의 사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은 불교적인 "四天王 또는 天王山"으로 귀결되어지며, 더 이상 "天皇 또는 天皇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손흥수.도재국의 평가이다.

 

[ ●4-10.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가 여지고(輿地圖) 밀양부 載岳寺와 天王山, 石南嶺, 彦陽界 등의 지명의 위치 등을  "제1봉의 載嶽山(載岳山) 말살"의 이론적 근거로 이용.각색하려는 글을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인정 또는 인용해서는 안된다.  

②이유수 씨가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라는 이유수 씨의 독법(讀法)은 지리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과 태산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라는 자연적인 상태도 부정한 것이다.

③앞에서도 말했지만 輿地圖에 載岳山(제1봉)의 자리에 일시적으로 표시된 天王峰(제1봉) 또는 天王山(제1봉)은 고지도 판각상 위치는 잘못된 점이 없다.

④다만, 이유수 씨가 독도를 오인했거나 일부러 그렇게 왜곡해서 본 것으로 추정된다.

⑤설령 조금 잘못되어 穿火峴 위치에 天王山(제1봉)이 판목에 판각되었다 하더라도, 또 붓 등으로 필사 또는 혜화식 고지도로 그려졌다손 치더라도 天火峴에서 天王山으로 싹트고 움트는 위치(山)로 독도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⑥輿地圖를 자세히 보면 輿地圖의 天王山 바로 옆에 彦陽界가 있는데 그곳이 穿火峴이고, 그 옆에 迦智山이 있다.

⑦재차 언급하지만, 더욱 자세하게 확인하려면 海東地圖 密陽府를 보면 알 수 있다. 輿地圖 보다 더욱 명백하게 제1봉인 載嶽山 위치에 天王山이 표시되어 있다. 穿火峴 위치에 天王山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유수 씨가 본다면 다시는 穿火峴의 위치에 천왕산이 있다 라고 말을 못할 것이다.

⑧이유수 씨 처럼 한 개의 고지도만 보고 천화현의 위치에 天王山이 표시되어 있다 라는 결론을 내리면 산의 위치마저 왜곡 또는 조작된다. 

⑨또 앞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천화현(穿火峴)은 산봉우리가 아닌, 산의 고개 즉, 안부(鞍部)이다. 여기서 천왕산(天王山,제1봉)이라는 위치는 지도를 자세히 보면 지금의 재악산(載嶽山,제1봉) 정상인 사자봉(獅子峰,제1봉)을 말한다. 천화현(穿火峴)은 영원히 별도 위치의 천화현(穿火峴)이고, 사자봉(獅子峰,제1봉)은 영원히 별도 위치의 재악산(載嶽山,제1봉) 정상이다.

⑩산의 푹 꺼진 고개 즉, 안부인 해발 755m의 천화현(穿火峴)이 어찌하여 해발 1189.2m의 재악산(載嶽山,제1봉) 정상이 되나? 이유수 씨의 설명과 이론은 전혀 맞지 않다.

우리의 군현도(郡縣圖)에는 한 지역(군현,郡縣)에서 다른 지역(郡縣)으로 넘나드는 교통의 요지(옛 山中大路의 고갯길)에는 반드시 넘어가는 방향의 군현의 명칭이 적혀 있다. 조선팔도의 334개 군현 대부분의 군현도를 보면 淸道界, 彦陽界, 密陽界, 梁山界 등등 반드시 이렇게 적혀 있다. “00界” 라고 표시한 이곳이 고개길(령嶺, 현峴, 치峙)이다.

海東地圖 密陽府의 石南嶺(穿火峴) 바로 위에 “彦陽界 80里”로 적어 놓았다. 이곳이 천화현이다. 그런데 이유수 씨는 天王山이 적혀 있는 위치가 穿火峴이다 라고 선포하다시피 결정해 놓고 천황산일식명설의 모든 글의 방향을 천황산으로 조작하고 있다. 그 분의 글은 말이 되지 않는 허구이다.

輿地圖에 표시된 天王山 주변의 지명은 中東面(지금의 丹場面), 載岳寺(지금의 표충사), 篁竹田(황죽전,지금의 표충사 대밭), 제1봉인 天王山(지금의 사자봉 위치로 載嶽山 정상임), 中初同面(지금의 山內面), 石骨寺(석골사), 彦陽界(언양계,밀양부와 언양현의 경계 지점), 石南嶺(석남령,석남고개,천화령), 伽智山(가지산) 등이다

❶輿地圖(울산향토사보 54 페이지)의 우측 상단에 "건물이 2채" 그려져 있는데

이 건물이 載岳寺라고 기록어 있다. 이 載岳寺"가 바로 지금의 표충사이다. 載岳寺라는 건물 바로 뒤에 천왕산(天王山)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 산이 바로 載嶽山(載岳山,제1봉)이다. 옛날에는 표충사를 "載岳山 載岳寺"라고, 配山의 명칭을 사찰의 명칭을 차용(借用)하는 예(例)에 따라 載岳寺라 했다.  載岳寺와 황죽전 바로 뒤에 일자형(一字形) 山群의 그림이 있는데 이 산군은 載岳山 정상에서 정승동.정각산을 지나 동천(東川) 변(邊)에 위치한 승학산(乘鶴山)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그리고 돌출한 산군의 그림이 있는데 "天王山"이라고 적혀 있다. 이 천왕산이 제1봉인 지금의 재악산(載嶽山,제1봉)의 사자봉의 표시인데, 그 당시 지도를 목판에 새기면서 실수로 이 위치에 새겨버렸고, 이것을 빌미로 이유수 씨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아주 잘못된 것이다

❷석남령의 바로 우측에 하천이 그려져 있는데 이 하천은 載岳山 북록을 흐르는 북재악천이다. 재악천((載岳川) 본류는 지금의 정각산 남쪽을 흐르는 단장천 본류이다). 이 부근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운문산 서록에서 석골사 쪽의 집수구역(集水區域)과 석골천을 너무 크게 그려 놓았다. 석골사 위치도 너무 동쪽으로 치우쳐 그려놓았다. 그렇게 그려놓으므로써 주변의 위치를 약간 혼란스럽게 했다.

❸가지산은 일명 천화산(穿火山)이라 한다. 가지산과 천왕산(載岳山) 사이가 천화령[穿火嶺 또는 천화현(穿火峴) 또는 石南嶺] 이다. 밀양에서 언양으로 넘어가는 경계(彦陽界)에 있는 고개이다. 천화령의 자리에 지도를 그리는 화공(畵工)이 天王山(제1봉)이라 적어 놓았다. 당시 불교의 사천왕(四天王)과 관련하여 載岳寺(영정사라고도 했음, 후일에는 표충사로 변경했음)의 배산[(配山 : 짝이 되는 산) 및 背山(배산 : 뒷산)]을 天王山이라 기록했다. 계속 강조하지만 이 당시에 화공(畵工)이 載岳山(제1봉)을 일시적으로 天王山(제1봉)이라 적었다.

❹石骨寺는 운문사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밀양의 고찰이었다. 왼쪽으로 약간 더 이동해서 그려야 실재 위치에 맞다

❺실재로는 활성동에 덕성천, 단장면에 감물천. 국전천. 고례천(단장천). 시전천, 산내면에 임고천. 동천. 구만천. 석골천 등이 있다. 이 모든 천(川)을 한정된 지면에 전부 그려넣을 수가 없고, 또 그리다 보면 지금의 하천과 산의 지맥(支脈)을 완벽하게 다 그릴 수가 없다. 하천의 규모가 비슷해도 일부 하천은 목판의 지면 한정으로 생략할 수도 있고, 하천 유하(流下)가 잘못되어 지맥을 잘못 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문제의 재악산으로 이어진 동서지맥(東西支脈)의 중간을 재악천(載岳川 본류, 지금의 단장천)으로 갈라놓았다. 이유수 씨 식(式)으로 문제를 삼는다면 이 동서지맥이 중간에 끊어진 것이 재악산 위치 잘못보다 그 중(重)함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수 씨는 이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완성한 것이 대동여지도이다. 그래서 載岳山(제1봉)의 위치가 서쪽으로 좀 치우쳐 그렸다고 이것을 이유로 지금의 載岳山(제1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❻이유수 씨가 고지도의 독도를 타이트하게(고지도에 그려놓은 상태로 거리상 조금도 틀림이 없이 경직되게) "옛날의 고지도 작성 기술의 한계"를 이해하지 않고 있다.  인공위성 지형도 또는 현실 지형을 고지도와 포개어 그 지형들이 완벽하게 맞지 않고, 또 거리와 지형 등이 조금씩 틀리는 것을 이유로 載岳山(제1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일제가 조작한 天皇山을 지금의 사자봉(獅子峰,제1봉) 위치에 조작해서 설정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❼고지도를 독도할 때는 실재 지형을 자세하게 숙지하여 고지도와 비교하여 독도를 해야 한다. 밀양부의 고지도를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 씨와 밀양의 향토사학자 손흥수.도재국 중에서 과연 누가 더 정확하게 독도하느냐? 당연히 평생을 밀양 현장에서 밀양의 지명을 조사해 온 손흥수.도재국임을 만인은 판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울산의 것은 울산 사람인 이유수 씨가 더 잘 알 것이다. 

❽東川(대동여지도에는 北載岳川임)의 발원지로는 운문산 서록과 가지산 동록, 재악산 북록, 정각산 북록 등이 있다. 大東輿地圖에는 "사진37"과 같이 ② ~  ⑫ ~  ⑧ ~  ①방향인 서쪽으로 흐른다.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재악천 본류(단장천 본류)인데 지맥(산능선)을 넘어 하천을 잘못 그렸다.

❾이유수 씨는 "수미봉(제2봉)의 자리에 載岳山(제2봉)이 있다" 라고, 주장을 했다.  천화현(석남령,천화령은 동일 고개 명칭임)의 산괴(山塊)가 이 자리에 왔다 했다. 이유수 씨의 이 오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전개를 어이없게 했다. 즉, 天王山(제1봉)이 穿火嶺에 있었고, 그 天王山이 남주(南走)하여 지금의 사자봉(제1봉) 위치로 왔고, 또 그 天王山(제1봉)이 대한제국 때 독립심 고취를 위해 天皇山(제1봉)으로 했다 라는 더욱 황당한 논리를 폈다. 이 논리는 대한제국의 지리역사에 전혀 없었던 것을 조작까지 했다. 載岳山(제1봉)이 있었기에 대동여지도에 지금의 단장천과 동천을 載岳川이라 했다. 이유수 씨의 天皇山 주장이 맞다면 대동여지도에 載岳川 대신에 天皇川으로 표시해야 맞다. 우리나라 고문헌(地誌와 古地圖)에 천황천(天皇川)이라는 하천은 전혀 없다. 이로써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허구라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이 된다. 그의 글이 허구라는 증명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여러 증거 중에 한 개의 증거만 가지고도 그의 글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데 그런 증거가 여러 개 계속 나오고 있다.  

  

[ ●4-11.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는 "옛글"로 天王, 天火 峴등을 설명하고 있으나, 일반인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빙성도 없어 보인다. 그는 "천왕산, 천화현 등을 실재 지명에 인용하기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라고 했다.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②이유수 씨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게 옛글을 엮어 설명한 "천화현, 천왕산 등" 보다, 밀양 최고의 지명대사전인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에 기록된 천화(穿火)라는 지명 유래와 또 밀양지의 천화산(가지산) 일대 지질조사 결과를 설명한 내용과 천화와 관련한 행정지명이 변천해온 생생한 사례가 일반인이 휠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③밀양지명고 단장면 편을 보면 中東面(단장면과 산내면의 옛 행정 명칭)을 설명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것이 이유수 씨가 설명하는 지명의 유래와 위치를 이해하고 증명하는데는 백번 천번 낫다.

④밀양시 산내면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17세기 초에 면방(面坊)의 구역을 정비할 때 중동면(中東面, 산내면, 산외면, 단장면)에 편입되었다. 당시에 이웃한 상동면과 하동면(삼랑진읍)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밀양부(밀양도호부)에서 보아서 중동면(中東面)이라 했다.

⑤17세기 초엽에 밀양부(密陽府)의 행정 구역을 정비할 때 중동면(中東面)이 편제되었다. 당시 중동면(中東面)은 지금의 산내(山內), 산외(山外), 단장(丹場)의 세 면(面)을 포괄한 행정구역이었다

⑥산내면에 해당하는 방리(坊里)로는 천화리(穿火里), 벌완(伐宛), 실혜촌(實惠村), 석동(石洞) 뿐이었다. 그 때만해도 언양(彦陽) 고을과 경계를 이룬 천화령(穿火嶺 석남령 石南嶺)의 아래에 취락이 몰려 있었으며, 그 뒤 새로운 방리(坊里)가 생겨 18세기 말에는 오치리(烏峙里), 소고례리(所古禮里), 가라리(加羅里), 용천리(龍泉里), 적암리(赤巖里), 원당리(院堂里), 양지리(陽地里), 음지리(陰地里), 가좌리(加佐里), 양송정리(養松亭里), 미라리(美羅里), 임고정리(林高亭里), 발례동리(發禮洞里) 같은 여러 마을이 면내(面內) 전역(全域)에 자리잡았다

⑦18세기초에는 다시 중동면(中東면)에서 단장면(丹場面)이 분할되어 떨어져 나가고, 지금의 산내와 산외를 합친 구역을 천화면(穿火面)이라 개칭했는데 이는 애초에 이 면의 발상과 중심지가 천화령(穿火嶺, = 석남령 石南嶺)의 아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주)도재국 → 천화면 중에서 지금의 산내면을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 산외면을 "천화산외면(穿火山外面)"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천화면이라 하면 지금은 산내면을 말하며, 당시에 천화면으로 부를 때 면(面)의 중심지는 지금의 산내면사무소 소재지인 송백리 팔풍마을이 아닌, 벌완(伐宛), 실혜촌(實惠村), 석동(石洞) 이었다

 

[ ●4-12.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 ①이유수 씨 주장 ]

하늘(天)의 原語 [ 사진 30 ]의 『◆(10)』을 火로도 借字되었으니 火가 天으로 변한 것이고 또 神의 原語 『◆(11)』도 王으로 互轉함을 볼 때 天王이란 산명은 『◆(12』를 倒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天王을 말하여 山神이라는 견해가 있다.


[ ①손흥수. 도재국 의견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위 이유수 씨의 주장에는 "천왕이란 말을 하늘의 임금으로 다분히 불교색을 띄고 있는 말이다" 이 주장에 한하여 동의한다.


마. 이유수 기고문 "5. 文獻備考"


文獻備考에서도 언양과 밀양의 산천을 볼 수 있다.

언양현에서는 여전히 서쪽 28리 되는 곳에 穿火峴이 있다.

한편으로는 밀양부 條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載嶽山 在四十里 有金剛庵 巖壑奇勝 左右瀑布 遊賞坌至 臼淵 在穿火嶺下 周百餘尺.

위와 같은 기록을 보았을 때 여전히 載嶽山은 밀양 동쪽 40里에 있고 金剛庵이라는 절이 있다.

한편으로는 穿火峴의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구연 條에서 臼淵이 穿火峴의 아래에 있다 하여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臼淵은 오늘날의 호박소로 보여진다.


마. 이유수 기고문 "5. 文獻備考"에 대한 검토.의견


[ ●5-01.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는 문헌비고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라고 적고 있다.

“載嶽山 在東 四十里 有金剛庵 巖壑奇勝 左右瀑布 遊賞坌至 臼淵 在穿火嶺下 周百餘尺“

손흥수.도재국이 살을 좀 붙여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載嶽山은 밀양부 관아에서 동쪽으로 40里 떨어져 있다. 그 산에는 금강암(한계암 부근)이 있고,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산의 좌측에는 층층폭포가 있고, 우측에는 금강폭포가 있어 구경하며 놀기가 좋다. 호박소는 천화령(고개) 아래에 있는데 그 둘레가 백여척이나 된다.”

③“載嶽山 在東 四十里 有金剛庵 巖壑奇勝 左右瀑布 遊賞坌至臼淵 在穿火嶺下 周百餘尺“

위 문장에서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에서 천황산(제1봉)을 작명하고, 재악산(載嶽山,제1봉)을 말살시키는 근거가 허구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제1봉이 천황산이 아니고 載嶽山(載岳山,제1봉)이라는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❶금강암은 載嶽山의 서쪽 산록에 있다. 금강암은 지금의 한계계곡(제1봉인 재악산의 서쪽 계곡)에 있었다. 금강암은 지금의 한계암 부근에 있었다.

❷좌우의 폭포는 옥류동천(玉流洞天,동쪽)과 금강동천(金剛洞天,서쪽)이다

밀양지명고 단장면 편 구천리 시전마을 조(條)를 보면 재악산(제1봉)의 위치가 표충사 뒷산에서 제일 높은 산인 사자봉의 위치라는 것이 애래 [ 밀양지명고에서 전재(轉載)한 글임 ] 와 같이 더욱 명백해 진다.

○한계암(寒溪庵)

표충사 북쪽 금강폭포(金剛瀑布) 옆 벼랑 위에 지은 암자(庵子)이다. 1968년에 이 절에 주석(住錫)한 석정화상(石鼎和尙)이 건립(建立)하였다.

○구내은골(舊內院谷)

표충사의 북쪽 금강폭포(金剛瀑布) 동편 골짜기를 가리킨다. 원래의 내원암(內院庵)이 있던 골짜기라 하여 구(舊)내은골이라 한다.

○청류동(淸流洞)

표충사의 동북쪽, 옥류동천(玉流洞天) 곁에 있는 골짜기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경치가 좋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다.

○도감소(도감수, 都監沼)

표충사 아래쪽 옛날 주차장 강가에 있는 소(沼)의 이름이다. 옥류동천(玉流洞天)과 금강동천(金剛洞天)의 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소(沼)가 비교적 넓고 깊다. 이 근처에서 가장 큰못이라 하여 도감소(都監沼) 또는 도감못이라 한다.

※도감소 마을은 표충사 입구의 상가구역으로 버스종점이다

○칭칭폭포(층층폭포 層層瀑布, 비로폭포 毘盧瀑布)

표충사 남쪽 계곡을 따라 사자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폭포이다. 이 일대의 아름다운 수석(水石)을 일컬어 옥류동천(玉流洞天)이라 하는데, 이 폭포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경관이다. 사자평 끝에서 떨어지는 물이 절벽에 층을 지어 떨어진다 하여 층층폭포라 하였고, 그 아래 소(沼)와 골짜기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비로폭포(毘盧瀑布)라는 일명(一名)도 있다.

○금강폭포(金剛瀑布)

표충사 서쪽 계곡을 따라 서상암(西上庵)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폭포이다. 이 일대의 수석(水石)과 동학(洞壑)을 일컬어 금강동천(金剛洞天)이라 하는데, 이 폭포는 그 대표적인 경승(景勝)이라 할 수 있다. 폭포 떨어지는 자리가 깊게 패어 소(沼)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에는 한계암(寒溪庵)이라는 암자(庵子)도 있다.

⑤사실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2015.12.4 오후에 국토지리정보원의 회의실에서 지명심의를 하면서

⑥우리나의 저명한 지리학자로서 국가지명위원이었던 한 분이 지명심의회에서 “載嶽山(載岳山)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라고, 그 회의에 배석했던 밀양시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 한다.

⑦그러자 한 보따리 증거서류를 가지고 국토지리정보원(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소재)에 출장 간 밀양시 담당 공무원은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는 밀양 표충사 뒷산 중에서 제일 높은 산입니다” 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라고, 했다.

⑧밀양시는 사전에 문서로 載嶽山(제1봉)의 수많은 증거를 경남도를 통해 국토지리정보원에 보고했고, 또 국토지리정보원에도 사전에 직접 수많은 증거를 보고했다. 

⑨회의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 오후 5시경에 밀양시 담당 공무원은 도재국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가 금방 끝났는데, 결과는 제1봉을 天皇山으로 인정하고, 제1봉 載嶽山(載岳山)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라 전화로 알려왔다. 분함을 참지 못하는 절규하는 목소리에 가까웠다. 잇따라 말하기를 경남도청 담당 공무원과 같이 이 자리(국토지리정보원 회의실)에 있는데, 결과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맥이 빠져 밀양으로 바로 내려갈 힘마져 없다" 라고 했다. 이말을 전해들은 도재국과 옆에 있던 밀양의 향토사학자와 밀양문화원 관게자 등도 너무나 실망했다.

"울산측의 天皇山을 인정한 국가지명위원은 11명, 밀양측의 載嶽山(載岳山)을 인정한 국가지명위원은 4명이었다" 했다. 밀양의 載嶽山(載岳山)이 태산 같은 생생한 역사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밀양이 울산에 11대 4로 분패(憤敗)를 당했다.

역사의 정의와 진실 기록을 지지해주시고 밀양측의 載嶽山(載岳山)을 인정해주신 “국가지명위원 4분”께는 저승까지 가서도 깊이깊이 감사를 드릴 것을 맹세하며, 정의와 진실은 살아있다 라는 것을 위안으로 여겼다.

정의가 넘쳐흐르는 21세기 대한민국 대명찬지 세상에 이런 지명심의가 있을 수 있습니까 !!!

⑬손흥수.도재국은 평생 존경했던 그 지리학자 등을 다시는 존경하지 않기로 마음 속 깊이 다짐을 하면서, 2017.12.4 저녁 무렵에 밀양시 삼문동의 옛 밀양공설운동장의 한 켠에 있는 허룸한 막걸리 집에서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載嶽山(載岳山) 복원을 위해 같이 노력했던 밀양의 향토사학자 등 대여섯 분이 같이 않아 분통함의 막걸리를 마셨다.


[ ●5-02. 이유수 “4. 輿地圖의 山名의 기록”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臼淵 在穿火嶺下 周百餘尺

위 문장은 지금의 산군(山群) 구분으로 볼 때는 "載嶽山 산군"에 붙어 있는 명승지가 아니고, 가지산의 명승지이다.

그러나 위 문장이 "재악산 산군"에 붙여 놓은 것은 이 당시에 가지산은 석남산으로 더 많이 불렸지만 백운산. 능동산.  석남산. 운문산 수미봉 등이 재악산(제1봉)에 한 덩어리로 묶여져 載嶽山으로 포용될 만큼 재악산이 크다 라는 것을 증명한다. 경일동계의 동계집의 재악산기(載岳山期)에 거산이라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만큼 재악산은 밀양. 청도. 언양. 양산을 아우르는 큰 산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증거이고, 이 때는 천황산이라는 산명은 존재 자체도 없었다.


바. 이유수 기고문 "6. 大東地志"


古山子 金正浩가 꾸며낸 大東地志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볼 수 있다


彦陽縣, 嶺路 穿火峴 西二十八里 密陽界,


密陽府, 載嶽山 東四十五里 靈井寺 金剛庵 巖壑奇勝 左右有瀑布, 穿火 東九十三里 彦陽界, 載嶽川 源出穿火西流 經載嶽之入于凝川.

大東地志에서는 다른 地誌들과 마찬가지로 언양이나 밀양 모두가 각기 穿火峴을 기록하고 있고, 그 위치나 거리가 다름 없다.

반면에 밀양에서는 載嶽山과 載嶽川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載嶽山을 설명하되 靈井寺와 金剛庵이 있고 좌우에 폭포가 있다 하였다. 또 載嶽川은 穿火峴에서 서쪽으로 흘러 載嶽山을 지나 凝川으로 들어간다 하였다. 그러므로 穿火峴은 載嶽山의 동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별첨한 大東輿地圖를 자세히 본다면 穿火峴은 市界에서 迦智山의 가지가 南走한 것을 알 수 있고, 載嶽山은 密陽府 안에서 東西로 뻗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大東輿地圖 密陽都護府(사진이 이 위치에 있음)


바. 이유수 기고문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검토.의견


[ ●6-01.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彦陽縣, 嶺路 穿火峴 西二十八里 密陽界,

②密陽府, 載嶽山 東四十五里 靈井寺 金剛庵 巖壑奇勝 左右有瀑布, 穿火峴 東九十三里 彦陽界, 載嶽川 源出穿火峴西流 經載嶽之陰入于凝川.

③위 2개의 문장 중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은 載嶽山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載嶽山 東四十五里 靈井寺 金剛庵 巖壑奇勝 左右有瀑布”이다.

④여기에서 이유수 씨가 "대동여지도상에 載岳山 위치가 잘못된 것을 문제삼아 獅子峰의 위치가 載악산의 위치가 아니다 라고 했고, 동국여지승람등에 천화현의 거리가 93里 인데, 載岳山(제1봉) 까지의 거리가 41里로 적혀 있으므로 차이가 52里가 나며, 천화현과 載岳山(제1봉) 가는 길이 "같은 길"로 보고 [ 증거 : 93里 - 41里 = 52里로 규정하여 52里가 차이가 난다고 주장), 또 천화현이 천왕산의 위치이며, 천왕산에서 천황산 산명이 싹이 트기 시작했다.

⑤천화현의 산괴(가지산과 수미봉을 잇는 南北지맥)가 남주하여 수미봉의 위치가 재악산(제1봉)의 위치이다.

⑥천화현의 산괴(사자봉과 승학산을 잇는 산괴 : 東西지맥)이 동으로 50여리를 이동하여 사자봉의 위치가 아닌 수미봉의 위치에 가서 載岳山(제1봉)이 되었다 ] 라는 결정적인 잘못을 뒷받침하는 것이 載嶽山(제1봉)의 위치가 금강암과 좌우 두 개의 폭포가 있는 산이 재악산(제1봉)이라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손흥수.도재국이 중복으로 말하지만 "어떻게 東으로, 南으로 이동하여 제1봉이 아닌, 제2봉에 山塊가 載嶽山(제2봉)이 되는냐?

⑧제1봉인 사자봉에 멈춰서 재악산(제1봉)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누구가 조정하여 제2봉에 멈춰 섰단 말인가? 이것은 이유수 씨가 완벽한 소설을 쓴 증거이다. 

⑨제일 중요한 것은, 울산향토사보 56페이지에 있는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이 표시된 위치이다. 이유수 씨가 천황산일식명설고찰에서 언급한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대동여지도를 전부 종합해서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載岳산의 위치 표시가 밀양부 안에서 서쪽으로 좀더 들어간 쪽(정각산이나 승학산 위치 쯤)에 그려져 있기에 그 분이 언급한 여러 지리문헌과 고지도 등에 게재된 대동여지도상에 표시된 載岳山이 현재의 표충사 뒷산 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그런 이유수의 주장을 믿을 수가 없다.

⑩밀양 사람 전부에게 "지금의 승학산이나 정각산 부근에 載嶽山이나 載藥山이 있느냐?" 라고 물어면 100%가 "그곳에는 載嶽山이나 載藥山이 없다" 라고 말할 것이다.

⑪이것은 대동여지도에 그렇게 載岳山이 표시되고 지리문헌에 그렇게 기록된 것은 실수로 실수로 잘못 표현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이 이렇기에 지금까지 위에 적어 놓은 이유수 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전혀 없다.

⑫그리고 울산향토사보 50페이지 위에서 7~11째줄에 있는 “93里(穿火峴) - 41里(載岳山) = 52里(차이) 라는 등식”도 전혀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다.

⑬또 穿火峴 위치가 天王山 위치라는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⑭또 穿火峴 위치라고 주장하는 天王山에서 天皇山이 싹트기 시작했다(울산향토사보 53페이지 위에서 아래로 6째줄) 라는, 논리도 있을 수 없는 말이다.

⑮또 “산이 싹튼다”는 것도 전혀 말이 안된다.

⑯울산향토사보 56페이지에 있는 대동여지도에 載岳山의 위치가 잘못 그려진 것은 분명하다. 이 위치는 정확하게 보면 정각산 또는 승학산 위치이다. 동천에 인접하므로 승학산(乘鶴山)의 위치라 보면 더 정확할 것 같다. 손흥수.도재국은 고지도(대동여지도 등)를 독도할 때는 타이트하게 독도하면 안된다 라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⑰그러나 이유수 씨는 56페이지에 그려진 載岳山의 위치를 문제삼아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섬이 없이 그의 글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울산측의 일부 사람들이 그의 그 논문(글)을 신봉하고 있다.

⑱사실대로 말하면 “고산자 김정호가 載岳山이라고 표시된 곳에서 동쪽(오른쪽)으로 지맥과 또 끊어진 지맥을 연결하여 천화현의 峴 字 바로 아래의 지맥의 분기점이 이 載岳山의 위치인데 실수를 하여 서쪽인 왼쪽에 그렸으므로 잘못 그려졌고, 실재 위치는 다시 말하지만 峴 字 바로 아래의 지맥의 분기점이다” 라고 인정해버리고, 또 여러 지지(地誌) 등에 기록된 41里 등이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글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글이 될 뿐이다.

이유수 씨가 그 당시에 이렇게 대동여지도를 신축성이 없이 경직되게 독도하여 문제 제기를 하였다면 載岳山과 천화현지맥(이유수 씨가 주장하는 명칭임)을 잇는 동서(東西)의 지맥이 하천에 의해 끊어졌는데 왜 이것은 문제삼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민족의 보물 대동여지도가 “잘못된 재악산 위치”와 “잘못 그려진 동서지맥의 중간에 있는 하천” 이것 뿐만 아니고 밀양부 영역 안에 표시된 38개의 지형, 지물, 지명 중에서 무려 18개나 오류가 발생했다. 이러한 오류는 이유수 씨가 어떻게 보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 ●6-02.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대동여지도 밀양부 영역 안의 38개 지명과 지형 중에서 무려 18개가 잘못 되었다. 이유수 씨처럼 타이트하게(경직되게) 독도하면 대동여지도의 밀양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기해야 할 고지도이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한민족의 영원히 빛나는 보물이다. 어찌 폐기하랴!!! 밀양부 오류율은 47%(18/38)이다. 전국 334개 군현(郡縣)도 밀양도호부와 비슷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이 이렇기에 이유수 씨 식(式)으로 독도하여 따진다면 대동여지도의 조선팔도는 오류율이 엄청나서 아마도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한민족 역사상 만고에 빛나는 영원한 보물로서 보존될 것이다.


[ ●6-03.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이유수 씨의 매우 주관적인 고지도 독도(讀圖)로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논리 전개와 오류로 載岳山(제1봉) 말살과 天皇山으로 조작

먼저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편"을 검증하여 "대동여지도의 밀양부 영역의 오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아본다


[ 사진 37 (위) ] (1)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 전도(全圖) 


①대동여지도(원본의 복사본)의 동그라미 안의 번호와 빨간 산능선[남산(南山)과 우령산(牛齡山) 구간]과 파란 하천구간("사진38"의 제1봉 載岳山 표기 아래의 "

⑤번 ~  ⑱번 ~ ⑲번" 구간)은 손흥수.도재국이 오류를 확인하여 載岳川(단장천 본류)을 바로 그린 것이다(다음 카페 밀양광장에서는 칼라색으로 지형.지물 표시).

※ 위 지도는 책으로 편집할 때는 축척이 커서(글자.부호 등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므로 아래와 같이 4등분으로 지도를 분할.확대하였다.

daum cafe 밀양광장에는 칼라선으로 표기했으나, 본 책에는 흑백선이므로 위와 같이 부연하여 설명한다


[ 사진 38 (위) ] (2)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의 서북 방면 도(西北方面圖 : 청도.무안면.부북.상동면 등)


[ 사진 39 (위) ] (3)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의 동북 방면도(東北方面圖 : 단장.상동.산외면.활성동 등)



[ 사진 40 (위) ] (4)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 서남 방면(西南方面圖 : 하남.초동.동지역.삼랑진 임천리 등)


남산과 우령산 구간은 대동여지도의 잘못 표기된 부분을 빨간색으로 우령산.덕대산.은산 구간과 우령산.종남산.팔봉산.붕어등 구간으로 바로잡아 연결 표기하였다

daum cafe 밀양광장에는 칼라선으로 표기했으나, 본 책에는 흑백선이므로 위와 같이 부연 설명한다.


[ 사진 41 (위) ] (5) 대동여지도 밀양도호부 동남 방면도(東南方面圖 : 삼랑진.상남.단장.동지역 등)


[ ●6-04.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대동여지도 검증  

○손흥수.도재국이 대동여지도의 밀양도호부편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검증했다.

보시다시피 38개 지명과 산능선, 하천 등 지형물을 검증해 본 결과이다

38개 지명 중에 무려 18개가 그 당시 대동여지도 제작 때의 실수로 오류가 확인되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동여지도는 우리 민족의 지리문화재로서 민족의 빛나는 보물로서 천년만년 자손대대로 전승해야할 대상이다

누가 이 민족의 위대한 보물을 폄훼하랴 !!!

위에서 보다시피 대동여지도 밀양부(密陽府)의 오류율은 무려 47%(18개/38개)이다 


[ ●6-05.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조선팔도의 중앙과 군현(郡縣)의 숫자는 다음과 같다
- 경   도 1개
- 한성부 1개
- 개성부 1개
- 경기도 38개
- 충청도 55개
- 경상도 68개
- 전라도 58개
- 황해도 25개
- 강원도 27개
- 함경도 23개
- 평안도 43개
- 합   계 334개  


위의 자료로 대동여지도의 전국 오류 현황을 유추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개 군현당 판각된 지명.지형물 숫자 38개× 334개 군현 = 전국 12.692 개 지명.지형물 × 0.47(오류율) = 전국적으로 대동여지도상 5,965개 지명.지형물의 오류 숫자가 나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동여지도는 우리민족의 영원한 보물이다.

우리는  1861년의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영혼까지 읽지는 못할 망정 선생이 심혈을 기울인 대동여지도 제작의 피와 땀을 폄훼(貶毁)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유수 씨는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載岳山 위치 문제로 "載嶽山(제1봉)이 사자봉(제1봉)의 위치에 없다" 라는 주장은 너무나 잘못되었다.


[ ●6-06.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대동여지도 밀양부 전체 검증 내용

※아래의 순차적으로 ①번~ ㉟번 번호는 [사진36] ~ [사진40]에 표시된 번호와 동일한 번호이며, "★표"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당시에 실수로 잘못된 부분이다.   

①재악산(載岳山,제1봉) : 이 위치는 실재로는 승학산과 정각산의 중간쯤 위치임, 실수로 서쪽으로 들어와서 표시를 했다(이유수 씨의 측도로는 50里 ~ 52里를 서쪽으로 더 들어왔다 했는데, 이 말은 대략 맞다). 당시 고지도를 판각하는 사람이 ★(1)실수로 그렇게 판각을 했다. 본 지도에서 載岳山(제1봉) 위치를 이곳에 그려놓았으므로 이유수 씨는 여기서부터 50里 ~ 52里를 동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의 수미봉 위치인 ⑥의 우측 능선에 갖다 놓고, 이 載岳山(제1봉)을 ②(穿火峴)의 한 가지에서 흘러온 산이라 했다. 50里 ~ 52里가 실측을 한 거리인지 또는 93里-41里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밀양부 관아에서 천화현까지와 載嶽山 까지의 가는 경로가 서로 다르므로 "93里-41里"는 라는 등식은 성립이 안되는 논리이며, 동국여리승람 등 여러 지지와 여러 고지도 등을  확인해본 결과 천화현까지의 거리가 인공위성 실측 95里, 해동지도상  彦陽界 80里,  여지도 注記상 中同面 後境(가장 먼 거리, 천화현) 50里, 관아에서 載嶽山(제1봉) 정상까지 인공위성지도 실측 결과는 68里 등등 제각각 다르다. 載嶽山 정상까지 68里이므로 "93里-41里"는 경로가 다르므로 이 등식(等式)은 성립이 안된다. 또 "동쪽으로 50里 ~ 52里를 이동했다" 라는, 말도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된다.

⑲(서쪽) ~ ① ~ ⑧ ~ ⑫ ~ ④~ ②(동쪽) 구간 하천 :

이 구간은 현재는 동천(東川)인데,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당시에는 재악천(北재악천)으로 불렸음, 그리고 단장천을 재악천(재악천 본류)이라 했음, 울산향토사보(55페이지)의 대동지지(大東地誌) 편을 보면 “載岳川 原出穿火峴西流 經載岳之陰入于凝川 [ 재악천은 원래 천화현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載岳山(제1봉)의 북쪽을 지나서 응천에 들어간다. 여기서 음(陰)은 북쪽을 뜻하며 응천은 지금의 밀양강이다 ] “이다, 로 기록하고 있어, 지금의 동천을 載岳川이라 했다. ⑰번의 좌상(左上, 좌측의 위쪽)에 載岳川이라 한 것은 본류 구간이 고지도상의 ㉜(서쪽, 밀양강과 단장천 합류 지점) ~ ⑲ ~ ⑱ ~ ⑤ ~ ㉛ ~ ⑬ ~㉚(동쪽 밀양댐 부근)의 구간을 흐르는 하천을 말한다. 즉, 지금의 단장천이 그 당시의 재악천(載岳川) 본류이다. ☆北載岳川 중.하류만은 실수없이 그렸다(판각했다)  

②천화현(穿火峴) : 이유수 씨는 이곳에 天王山(제1봉)이 표시되어 있어 이 천왕산(제1봉)에서 산능선이 ⑥번 위치(사자봉,제1봉)로 흘러와서 天王山(제1봉)이 되고, 대한제국시대에 독립심을 높이기 위해 天皇山(제1봉)이라 했다 라고, 주장했다.  

③가지산(迦智山) :   

④구연(臼淵, 호박소) :   

⑤원구천(元九川) 부근 : 載嶽山 서부능선 위치인데 지맥을 이어주어야 하나 ★(2)실수로 ⑤번 위치에서 끊어짐.

⑤ ~ ⑱ ~ ⑨ ~ ⑬ ~ ㉚ 구간 하천 : 단장천, 파란선과 같이 하천을 이어야 하는데 ★(3)실수로 잘못 그림

⑥載嶽山(제1봉 載岳山, 실재 載嶽山 위치) : 능선(지맥) 분기점 : 북쪽(얼음골 방향), 서쪽(정각산 방향), 남쪽(수미봉 방향).

⑦배내고개 능선 분기점 : 배내고개 분기점을 ⑩번(실재 배내고개 분기점임)에 붙여 그려야 하는데 ★(4)실수로 ⑦번 위치에 그림.

⑧산내면 가인리(佳仁里) : 하천⑤ ~ ⑧은 도래재에서 남명쪽으로 흐르는 하천임, ★(5)실수로 ⑨ ~ ⑤ ~ ⑧로 그리면서 “재악산(제1봉) 서부능선”을 넘어 그려 놓았다(물은 산을 못넘는데 실수로 넘어서 그려 놓았다).

⑨표충사.

⑩배내고개 산능선 : 배내고개에서 간월산(看月山) 방향 능선인데 ★(6)실수로 ⑦번쪽에서 산능선 분기점을 그림.

⑪운문산.석골계곡 : 운문산(雲門山)에서 흐르는 석골사(石骨寺) 계곡인데 ★(7)실수로 넓게 그림

⑫산내면 원서리 석골(石骨)마을 부근

⑬단장면 고례리(古禮李), 밀양댐 골짜기

⑭단장면 국전리(菊田里) : ⑭번 아래는 금오산(金烏山)인데 ★(8)실수로 고사산(姑射山, 고야산)을 그림, 실재 고사산은 고사산 능선의 우측에 그려야 함(밀양댐 남서쪽 부근을 고사산이라 함), “고사(고야)9曲”이라 함은 고예리 골짜기이므로 능선의 우측에 산명 표시를 해야 함

⑮단장면 감물리(甘勿里) :

⑯칠탄산(七灘山, 구미마을 뒷산) :

⑰단장면 구미마을 :

⑱단장천(丹場川, 파란선) :

⑱번의 왼쪽의 “남북 山능선”은 실재로는 끊어졌는데 ★(9)실수로 잘 못그려 이어서 그렸음

⑲산외면 금곡(金谷삼거리)

⑳억산(億山, 석골사 뒷편)

㉑석골사, 석골계곡, 이 골짜기의 집수구역을 ★(10) 실수로 너무 넓게 그렸다.

㉒실혜산(實惠山, 산외면 혜산서원 뒷산) :

★(11)실수로 위치가 북동쪽으로 더 갔음, 실재 위치는 ㉔번의 우측임, 이 위치㉒는 실재로는 백암산(白巖山) 위치임, 백암산은 산외면 희곡리와 상동면 도곡리 사이의 산임. 가지산 남쪽과 얼음골쪽의 옛 마을을 실혜촌이라 하며, 가지산을 실혜산으로 부르는데, 이 표시는 정승동 북쪽과 남명삼거리 남쪽의 사이에 있는 산의 명칭이다. 또 산외면 다원마을 뒷산을 실혜산이라 표시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얼음골 안쪽의 고촌(古村)을 실혜촌이라 한다. 따라서 정승동 북쪽의 실혜산과 다원마을 뒷쪽의 실혜산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수가 없다.   

㉓구만산(九萬山), 구만천(하천)이 그려져 있음

㉔낙하산(落霞山, 일명 낙화산 落花山), 산외면 엄광리 뒷산임

㉕비학산(飛鶴山, 산외면 긴늪 뒷산)

㉖만어산(萬魚山) : 실재 만어산 위치는 ㉘번임, ★(12)실수로 잘못 그려졌음

㉗자씨산(慈氏山) : 산성산(일자봉)의 바로 남쪽에 있음, 자씨산성 터가 있음

㉘만어산(萬魚山, 실재 만어산 위치) : 이 위치가 萬魚寺가 있는 萬魚山임, ★(13)실수로 만어산을 용두목 쪽에 그려 놓았음

㉙용두산

㉚배내골 입구인 밀양댐 물머리인 고점교 부근, ★(14)실수로 산능선을 갈라놓지 못했음(배내골의 배내천이 밀양댐쪽으로 들어오는 위치이다).

⑬ ~ ㉚ 구간 : 이 구간은 山능선이 갈라져야 하나 ★(15)실수로 山능선이 연결됨

㉛범도리 아불마을, 미물산, 범도삼거리 부근

㉜단장천과 덕성천(德城川, 활성2통 구서원)이 합류하는 구서원마을 입구

㉝구서원마을 : 구서원마을 골프장, 이 골짜기를 ★(16)실수로 너무 넓게 그렸다

㉞덕대산(德大山) : 실재 위치는 남산(종남산, 옛날에는 南山이라 했다)에서 좌측으로 필자(도재국)가 붉은 산능선을 그은 좌하(左下:좌측의 아래쪽) 능선의 맨 아래 위치이다, ★(17)실수로 ㉞번 위치에 그렸다.

㉟마암산(馬岩山) : 실재 위치는 고지도상의 남산 바로 위 부근(지금의 밀양강의 밀주교의 馬巖山마을 옆)이다. ★(18)실수로 초동면 곡강마을 낙동강변에 그렸다.


[ ●6-07.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대동여지도 검증 결과 오류 개소 

검증 지명 개수 : 38개

오류 지명 개수 : 18개

②대동여지도 제작 과정

❶전국의 각 군현도(郡縣圖)를 지방 관아로부터 취합.

❷ 중앙 관청에서 합동 작업(제작) : 여러  각수(刻手)가 화공이 그림 그림으로 판목(板木)에 조선팔도를 판각.

❸조선팔도의 대동여지도의 판각 필체를 보면 같은 사람이 판각한 것으로 보이는 동일 필체이다. 이는 각수가 동일인이 아닌, 지도를 그린 화공(畵工)이 동일 인물로 보인다. 화공이 그린 지도 그림을 판목에 붙여서 각수가 지도를 새겼다. 라고, 본다. 

❹우리는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혼자서 백두산을 7번이나 오르고 전국을 돌아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라고 배웠으나,

❺실재로는 김정호는 조정의 고위 관료였던 친구 최한기의 도움으로 관청의 어느 작업소에서 대동여지도를 완성시켰고, 전국의 군현(郡縣 : 요즘으로 치면 시.군.구청)에서 올라온(보고된, 제출된) 군현도(郡縣圖, 시.군.구圖)를 가지고 몇몇 사람이 제작을 했기에 처음부터 군현에서 오류가 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취합해서 제작 중에 오류나 생략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로서는 신(神)이 아닌 이상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나무에 판각하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조상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빛나는 민족의 보물이다

③이유수 씨가 지적한 대동여지도 오류 개소수 1건. 

오류 개수 : 1건(載岳山 위치 표시 오류)

- 오류 번호(위치) : ①번

- 오류 지명 : 載岳山(제1봉)

오류 내용 :

- 대동여지도상 ⑥번 바로 위의 지맥(산능선)의 분기점에 표시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①번 위치에 표시함.

- 이유수 식(式)대로 지지(地誌)에 기록된 거리에 의하여 계산을 하면 밀양부에서 천화현까지 거리와 載岳山까지의 거리 차이가 52里(93里-41里) 정도 난다.

④대동여지도가 왜 오류 작성되었나

 그 당시의 제작 기술의 한계

판각 지면의 협소(제한)

현지 지형 조사의 한계

이유수 식(式) 대동여지도 검증의 문제점

○“그 당시의 제작 기술의 한계”에 의한 오류를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적으로 이해.

○“판각 지면의 협소(제한)”에 의한 오류를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적으로 이해.

○“현지 지형 조사의 한계”로 오류난 것을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적으로 이해.

 

[ ●6-08. 이유수 “6. 大東地志"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위와 같은 악(惡) 조건을 무릅쓰고 우리 조상들이 고지도를 만들었다. 이 것은 빛나는 민족문화유산으로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실용적 지리정보 자료였다. 그래서 자손대대로 영원히 전승 보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우리 후손들은 조상이 만든 자랑스러운 고지도를 현재 지형과 맞추어 보아 차이가 나는 것은 위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지도가 현재의 지도나 인공위성지형도와 차이가 나니까 그 때 고지도에 표기한 그 지형.지명 등의 위치가 실재의 지형.지명 등의 위치가 "맞다. 아니다" 를 따지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③그래서 우리는 포용적인 자세에서 고지도를 독도해야(읽어야) 한다. 이유수 씨 식(式)으로 고지도를 독도한다는 것은 고지도의 올바른 독도법이 아니다.

④다시 설명하면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형도와 고지도와 지금의 행정지도와 지형도를 같은 축척으로 해서 서로 포개어서 지형과 지명 등이 일치하지 않거나 거리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해서 고지도에 표시한 그 지명이 현재의 지명이 아니다 라는 식(式)으로 고지도를 보려면 아예 고지도를 보지 않는 것이 낫다. 즉, 고지도를 볼 자격이 없다.

지명심의를 할 때 어떤 지명위원(시.군.구, 시.도, 국가지명위원)이라도 이런 식으로 고지도를 보고 이해하려면 그는 이미 지명위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 된다.


사. 이유수 기고문 "7. 天皇山과 載嶽山"


○이제까지 다섯가지 자료를 가지고 天皇山名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산이라고도 부르다가 天皇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天皇山이라는 것이 日式名일까 하는 것을 검토해야 겠다.

○ 다시 말하면 이것이 일제시대에 그렇게 고쳐졌던 이름이었을까?

○신라는 물론이고 조선조에도 대륙에서 일어났던 帝國들의 황제 諱를 피하여 이쪽 이름을 고치는 일이 없지 않았다. 한 예를 들면 신라 太宗의 왕호가 당나라 太宗 皇帝의 帝號와 같다 하여 이를 고치라는 일이 있었다.

○ 神文王때 당의 고종이 사자를 신라에 보내어 이르기를 나의 聖考는 魏徵 李淳風 등의 현신을 얻어 서로 心德을 화합하여 천하를 통일하였음으로 太宗 皇帝라 하였거니와 너의 신라는 해외의 작은 나라로 太宗의 칭호를 사용하여 天子의 名器를 참람히 함은 그 뜻이 不忠하니 속히 고치라 하였다. [❼三國遺事 太宗春秋公]

○이때 神文王은 글을 올려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聖臣 김유신을 얻어서 삼국을 통일하였음으로 太宗이라 한 것이라 변명을 하였더니 당나라 高宗이 그 글을 보고 전에 자기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부르짖어 三十三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유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책에 적어 둔 것을 생각하여 꺼내어 보고는 놀래기를 마지 아니하며 다시 사람을 보내어 太宗의 칭호를 고치지 아니해도 좋다하여 어려움을 모면하였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 당시 국제 관례가 이러하였는데도 일제때 식민지였던 朝鮮의 한 작은 山의 이름을 그들의 王名과 같은 天皇山으로 붙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러한 일은 불경하다 하여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면 天皇山名의 등장은 일단 大韓帝國 시대의 소산으로 보고자 한다.

신라는 祀典을 정하매 스스로 唐나라에 대하여 諸侯國으로 자처하여 大祀에 天地祭를 지내지 아니하고 다만 국도 중심의 가장 주요한 神山 3곳만 大祀에 편입하였다.

또 朝鮮에 와서도 天에 대한 제사가 논란 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가적인 祀神에 있어서 天子國과 맞설 수 없으며, 諸侯의 禮에 준하여 祭天儀禮였던 圓丘祭의 폐지를 보았다.

○이는 자기 비하를 말하는 것이며, 자주와 독립의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조선조는 그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말기에는 동학농민항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청나라와 일본의 두 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여 그 결과 청일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 청나라 세력은 물러나고 일본세력은 강화를 보았으나 그 뒤 러시아 세력이 들어와서 차츰 친일파를 몰아내고 친러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나라에서는 자주 자존의 국민의식이 발흥하여 1897년에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光武, 왕을 皇帝, 황제의 자기 표현을 朕이라하여 독립국가로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圓丘壇을 설치하여 祭天儀式도 행하였다.

이때의 皇帝라는 王稱은 진시황이 제정한 것이었지만은 중국 태고 때의 三皇의 皇과 五帝의 帝를 서로 땄던 王稱이었다. 이 무렵 민간에서도 독립정신이 무르익어 1896년에는 독립협회에서도 서울에 독립문을 세울 정도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라 안에 이와 같은 독립의 기운이 펴져나갈 때 天王山이라고 불러왔던 산 이름도 天皇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俗離山의 天王峰도 天皇峰이라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天皇이란 것은 중국의 三皇 가운데의 天皇氏로써 三皇의 으뜸가는 존재였던 것인데, 三皇은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인 것이다.

그런데 오랜 文化圈이 같았던 중국 태고의 神 天皇氏를 따온 이름일지언정 오랑캐視 하여 왔던 섬나라 日王의 칭호를 따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載藥山을 검토해 볼까 한다. 이 載藥山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가지 地誌에 나타난 載嶽山 바로 그것으로 50餘里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인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穿火峴 또는 穿火嶺. 天王山이라 하던 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靑良面의 靈鷲山이 靑凉山 또는 文殊山이라고도 하다가 현행 지도상에는 文殊山과 南巖山으로 분화된 것과 같은 류일 것이다.


사. 이유수 기고문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검토.의견


[ ●7-01.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글, [❶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 : “이제까지 다섯가지 자료를 가지고 天皇山名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산이라고도 부르다가 天皇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❶손흥수.도재국] :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 5가지를 전부 살펴봐도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山이다” 라고, 불린 일이 결코 없었다 라는, 것이 각 地誌와 古地圖의 검토와 검증으로 확인되었다. 오히려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을 검토, 판단해 보면 天王山이 天皇山으로 변한 일이 결코 없고, 제1봉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고 제2봉은 재약산(載藥山)이 아니고 수미봉(須彌峰)이다. 따라서 天皇山은 이유수 씨가 개인적인 생각을 작문한 것에 불과하다.


◆그의 글이 "개인적인 작문에 불과하다" 라는, 것을 손흥수.도재국이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입장에서 위의 여러 항목에서 검토,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 "7-02 ~ 7-17"에서 종합적으로 다시 설명하면서 강조한다. 



[ ●7-02.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이유수 씨는 아래의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 위치 표시"와 동국여지승람 등 "일부 지리문헌(地誌)에 載嶽山 在府東41里"를 문제 삼아 언급한 지리문헌에 기록되고 표시된 載嶽山이 제1봉인 사자봉 위치가 아니고, 제2봉인 수미봉의 위치라고 주장하나,  이는 지리문헌(고지도 포함)의 편찬.제작시에 실수로 잘못된 것을 사실인양 고착화시켜  이제까지 다섯가지 자료를 가지고 天皇山名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산이라고도 부르다가 天皇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라는, 것은 고지지의 이해와 고지도 독도의 매우 주관적인 이해와 독도 결과이다. 그래서 대동여지도의 여러 오류를 지도를 그려 다시 설명한다. 현대 지도상의 지명.지형 등의 위치가 고지도의 지명.지형 등과 완벽하지 않는 것이 상당해도 현재나 옛날에도 같은 위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래의 지도로 다시 강조한다.

  

[ 사진 42 (위) ] 이유수(李有壽) 씨의 대동여지도 독도(讀圖) 분석도


[ 사진 43 (위) ]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岳山 위치, 실재 載嶽山 위치, 이유수가 주장하는 載嶽山 위치


①위 검은 선은 지맥(支脈, 능선, 산맥)이다

②위 파란선 중에서 위는 동천(東川)인데 옛날에는 북 재악천(北載岳川)이라 했다. 

③위 파란선 중에서 아래는 단장천(丹場川)인데 옛날에는 재악천(載岳川, 배내골에서 발원하며 載岳川의 본류이다)이라 했다. 이 載岳川은 지금의 밀양댐을 지나서 배내골로 이어진다. 수미봉 오른쪽으로 파란선이 載岳川 본류이다. 載嶽山(獅子峰)의 넓은 집수구역을 휘감아 흐르기에 載岳川이라 했다. 이유수 씨의 주장대로라면 대동여지도에 載岳川은 天皇川으로, 北 載岳川은 北 天皇川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 처럼 이유수 씨의 天皇山 주장은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④위 파란선의 수미봉 동쪽은 단장천의 지천인 시전천(枾田川)이다

⑤수미봉 왼쪽의 붉은 동그라미가 표충사의 위치이다

⑥위 오른쪽의 붉은선은 울주군과 양산시의 경계이다

⑦이유수 씨가 주장하는  논리는 현대식 지도와 대동여지도를 같은 축척으로 두 장의 지도를 포개었을 때 대동여도에 載岳山의 위치가 지금의 載嶽山(제1봉 載岳山) 위치와 다르므로 지금의 수미봉(제2봉)의 위치를 載嶽山의 위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밀양 관할 지역에는 38개의 지명과 지형이 표시되어 있는데, 실재 위치와 맞지않는 것이 무려 18개나 나온다. 오류율이 무려 47%이다. 밀양지역이 이 정도면 조선팔도의 334개의 군현(요즘의 시,군,구)도 거의 비슷하게 오류다. 라고, 본다. 이래도 대동여지도는 민족의 보물이다.


[ ●7-03.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 사진 44 (위) ] "천화현 산괴(山塊)가 남쪽으로 또 그 산괴의 가지(지맥)가 동쪽으로 50里 ~ 52里쯤인 제2봉 수미봉 위치(지금의 載藥山 위치, 해발 1119m)에 이동했다" 라는 것은 조작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載岳山이 승학산과 정각산의 중간쯤에 잘못 표시되어 있다.  그 위치에서 인공위성지도와 현행지도 등을 종합하여 Daum - Kakao 지도에서 거리를 인터넷으로 재어보면 사자봉 까지는 40리쯤(16.16km)이고, 수미봉 까지는 48리쯤(19.37km) 된다. 더 자세한 여러 지도들은 아래 "속성에" 있다

②속성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9fn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edge=F&contentval=000n2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이유수 씨는 지리문헌에 잘못 기록된 것을 사실인양 고착화 하여 천화현까지를 93里, 載嶽山 까지를 41里로 기록한 동국여지승람 등을 근거로 93里 - 41里 = 52里와 인공위성지도로 대동여지도에서 載岳山이 표시된 위치에서 수미봉 까지 대략 계산한 50里 정도를 근거로 載嶽山(제1봉)이 수미봉(제2봉)의 위치라고 주장하나,

밀양 관아에서 천화현까지와 載岳山까지의 경로는 밀양시 산외면 금곡삼거리에서 갈라지므로 "93里-41里=52里" 등식은 성립할 수 없는 등식이고,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다. 

또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岳山 위치에서 동쪽으로 50里 ~ 52里쯤 이동한 수미봉 위치가 載岳山의 위치라고 주장한다 . 만고불변의 山은 인공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저절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래서 이유수 씨의 동쪽으로 50里 ~ 52里쯤 이동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⑥위 지도(사진)들은  자세히 보면 손흥수.도재국의 주장이 맞다는 것이 명백하게 확인이 된다. 이래서 그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글은 또 한번 조작과 허구라는 것이 증명이 된다. 


[ ●7-04.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글, [❶손흥수.도재국] 의견


[①이유수 씨] : “이제까지 다섯가지 자료를 가지고 天皇山名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산이라고도 부르다가 天皇山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❶손흥수.도재국] :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 5가지를 전부 살펴봐도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山이다” 라고, 불린 일이 결코 없었다 라는, 것이 각 지지와 고지도의 검토와 검증으로 확인되었다. 오히려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에는 天王山이 天皇山으로 변한 일이 결코 없고, 제1봉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고 제2봉은 재약산(載藥山)이 아니고 수미봉(須彌峰)이다. 따라서 天皇山은 이유수 씨가 개인적인 생각을 작문한 것에 불과하다.

 

[ ●7-05.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신라는 물론이고 조선조에도 대륙에서 일어났던 제국(帝國)들의 황제 휘(諱)를 피하여 이쪽 이름을 고치는 일이 없지 않았다. 한 예를 들면 신라 太宗의 왕호가 당나라 太宗 皇帝의 제호(帝號)와 같다 하여 이를 고치라는 일이 있었다. 

○神文王때 당의 고종이 사자를 신라에 보내어 이르기를 나의 성고(聖考)는 위징(魏徵) 이순풍(李淳風) 등의 현신을 얻어 서로 心德을 화합하여 천하를 통일하였음으로 太宗 皇帝라 하였거니와 너의 신라는 해외의 작은 나라로 太宗의 칭호를 사용하여 天子의 名器를 참람히 함은 그 뜻이 不忠하니 속히 고치라 하였다. [❼三國遺事 太宗春秋公]

○이때 神文王은 글을 올려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성신(聖臣) 김유신을 얻어서 삼국을 통일하였음으로 太宗이라 한 것이라 변명을 하였더니 당나라 高宗이 그 글을 보고 전에 자기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부르지어 三十三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유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책에 적어 둔 것을 생각하여 꺼내어 보고는 놀래기를 마지 아니하며 다시 사람을 보내어 太宗의 칭호를 고치지 아니해도 좋다하여 어려움을 모면 하였을 정도였던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위를 요약하면 “황제국인 대국(大國) 당(唐)의 고종(高宗)이 신라(新羅)에게 "자기 성고(聖考,죽은 아버지) 태종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지 마라" 라고, 하였다가, 자기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부르짖어 삼십삼천의 한 사람이 신라에서 태어나서 유신(태종 무열왕 김유신)이 되었다" 라는, 것이 자기 책에 적어 둔 것이 생각나서 당(唐) 태종의 칭호를 사용토록 했다” 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또 이유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일제때 식민지였던 朝鮮의 한 작은 山의 이름을 조선 사람들이 그들의 王名(天皇)과 같은 天皇山으로 붙일 수 있도록 일제가 허락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아마 그렇게 했다면 불경하다 하여 일제가 조선 사람들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유수 씨가 글을 어렵게 적었기에 손흥수.도재국은 이렇게 쉬운 글로 변경하였다

[❸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 "하찮은 載嶽山 산명을 天皇을 위해서 天皇山으로 바꾸어 봉헌하려는 조선 백성의 요청이 있었다면 일제가 허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유수 씨가 글을 어렵게 적었기에 손흥수.도재국은 또 이렇게 쉬운 글로 변경하였다

[❹손흥수.도재국] : 나라를 잃은 조선백성이 일제에게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산명을 변경하려는 것을 일제가 받아줄 수 있도록 요청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조선 총독이 앞장서서 강제로 天皇山으로 조작했기 때문에 이유수 씨의 그런 비유 자체가 당이 신라에 피휘(避諱)를 강요한 것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❺손흥수.도재국] : 만약 친일에 부역하는 그 당시의 어떤 조선 백성 또는 관리가 載嶽山을 天皇山으로 작명하여 봉헌하려 했다면 아마도 일제로부터 작위(爵位,벼슬)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불경(不敬)이 아니라 그들은 일제로부터 충성스러운 신민(臣民, 천황의 신하 또는 백성)으로 대접받았을 것인데,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가 먼저 선수를 쳐서 天皇山으로 조작해버렸다.

 

[ ●7-06.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신라는 사전(祀典)을 정하매 스스로 당(唐)나라에 대하여 제후국(諸侯國)으로 자처하여 대사(大祀에) 천지제(天地祭)를 지내지 아니하고 다만 국도 중심의 가장 주요한 신산(神山 )3곳만 대사(大祀)에 편입하였다.

또 조선(朝鮮)에 와서도 天에 대한 제사가 논란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가적인 사신(祀神)에 있어서 천자국(天子國)과 맞설 수 없으며 제후(諸侯)의 예(禮)에 준하여 제천이례(祭天儀禮)였던 원구제(圓丘祭)의 폐지를 보았다.

이는 자기 비하를 말하는 것이며, 자주와 독립의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❶손흥수.도재국] : 위와 같이 천지제(天地祭)를 못지낸 것은 약소국이었기 때문이었다.

 

[ ●7-07.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조선조는 그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말기에는 동학농민항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 ~ ~ 나라 안에 이와 같은 독립의 기운이 펴져나갈 때 天王山이라고 불러왔던 산 이름도 天皇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속리산(俗離山)의 천왕봉(天王峰)도 천황봉(天皇峰)이라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❶손흥수.도재국] : 구한말 열강들로부터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선각자들의 주동으로 자주독립의 기운이 퍼져나갔던 것은 사실이나, 일제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밀양땅에서 독립운동가 또는 민중.백성들 또는 그 조상들이 대한제국시대에 민족의 산명인 제1봉인 載嶽山 산명을 버리고, 일제 天皇과 명칭인 같은 天皇山으로 산명을 고쳐 불렀거나 고쳐 부르도록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손흥수.도재국 등은 이제까지 들은 적이 전혀 없다.

 

[ ●7-08.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❶손흥수.도재국] : 경남 김해군에는 이북면(二北面)이라는 면이 있었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했던 1970~1980년대 엄혹한 시절에 이북(以北, 이 당시에는 북한이라 부르지 않고 주로 북괴 또는 이북으로 불렀다)과 한글 명칭이 같은 면(面)의 명칭을 한글로 적고 소리내어 부르는 것은 사용 목적이 북한을 찬양.동조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예를 들면, 공설운동장 같은 데서 군민 전체가 모여서 邑.面대항 체육대회 때 이북면 팀이 단체로 “이북 이겨라” 라고 외치다든지.

●타향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 중에 “어디 출신입니까?”, “이북면 출신입니다” 를 " 面 字"을 생략하고 “이북 출신입니다” 라든지.

●보안기관 등에서 보안점검으로 이북면사무소에 야간 당직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러 “여보세요 그곳이 어디 입니까? 라고 물어보았을 때, 면사무소 직원이 ”예, 이북입니다“ 등등 여러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이북면의 원래 지명유래는 “김해군의 북쪽에 있는 두 개의 면을 하나로 합쳤다” 라는, 뜻에서 "이북면(二北面)"이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북한보다 이북(以北)으로 많이 불렀다. 여러 문제로 인해서 1984년 이북면(二北面)을 한림면(翰林面)으로 변경했다. 사실이 이러했기 때문에 이북면의 경우보다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에서 보면 이북면의 개명(改名)은 약과에 불과했고, 일제 잔재인 天皇山을 없애는 것은 너무나 크고 시급하고 당연한 일이다.

 

[ ●7-09.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나라 안에 이와 같은 독립의 기운이 펴져나갈 때 天王山이라고 불러왔던 산 이름도 天皇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俗離山의 天王峰도 天皇峰이라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❶손흥수.도재국] : 속리산의 天王峰을 그런 뜻에서 天皇峰으로 변경한 적이 결코 없다. 속리산 정상에는 오래 전에 세운 "天王峰"이라는 돌로 된 표지석이 아직도 서 있다. 짐작으로 "속리산 천왕봉"까지 인용하면 안된다. daum cafe 밀양광장에는 속리산 정상에 "天王峰"이란 돌로 된 표지석의 사진을 올려 놓았다. 

 

[ ●7-10.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이 天皇이란 것은 중국의 三皇 가운데의 천황씨(天皇氏)로써 삼황(三皇)의 으뜸가는 존재였던 것인데, 三皇은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인 것이다. 그런데 오랜 文化圈이 같았던 중국 태고의 神 天皇氏를 따온 이름일지언정 오랑캐시(視) 하여 왔던 섬나라 日王의 칭호를 따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중국대륙에서 침입해 왔던 외적(外敵)을 오랑캐라 불렀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 쳐들어오는 외적(外敵)을 倭寇 또는 倭賊, 倭敵, 日帝皇軍으로 불렀다. 일본에서 쳐들어오는 외적(外敵)을 "오랑캐" 라고 부르는 것은 이유수 씨의 글에서 처음 본다.

중국 삼황인 천황씨(天皇氏)를 따왔다면 이유수 씨가 오랑캐 나라 천자국(天子國)의 피휘(避諱)를 언급한 앞(울산향토사보 57페이지)의 입장이 이 말과는 상반되어 이유수 씨가 피휘의 대상국과 논조가 갈팡지팡하여 일관성이 없다.

 

[ ●7-11.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다음으로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載藥山을 검토해 볼까 한다. 이 載藥山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가지 地誌에 나타난 載嶽山 바로 그것으로 50餘里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인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穿火峴 또는 穿火嶺.天王山이라 하던 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山峯, 앞위 문맥을 살펴보면 이 山峯은 須彌峰을 말하는데, 이유수 씨는 절대로 須彌峰이라 칭하지 않음은 제2봉을 載嶽山으로 조작하기 위한 술수로 보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이것은 대동여지도에서 지금의 獅子峰인 제1봉 載嶽山 위치인 지맥의 분기점에서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載嶽山이라는 글자가 표시된 지점까지의 지맥을 말하는데,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면 지금의 獅子峰에서 도래재와 政丞洞, 正覺山을 지나 乘鶴山까지의 능선을 말함)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재약산(載藥山)은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에 나타 난 載嶽山이 바로 그것으로 50餘里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이다” 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가만히 있는 산이 발도 없는데 어떻게 50里로 이동하나? 참으로 황당무계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산괴의 이름 없던 산봉(山峰)이 어떻게 수미봉 위치에 딱 맞추어 이동하나? 이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또 산이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사자봉과 수미봉의 직선거리가 1,600m 정도이므로 이유수 씨의 말도 않되는 논리대로라도 이동한다고 치면, 사자봉 위치에 이동했을 수도 있고, 또 수미봉 위치에 이동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해서 정확하게 수미봉의 위치에 이동했단 말인가? 너무나 어니없는 논리이고 어이없는 주장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穿火峴 또는 穿火嶺. 天王山이라 하던 산괴(山塊)의 이름 없었던 山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대동여지도상에는 載岳山이라고 표시된 지맥을 말함)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를 달리 위와 같이 표현한다" 라는 위의 주장도 맞지 않다. 그 이유는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천화현과 사자봉을 지나서 수미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한 지맥인 일명 재악산지맥(載嶽山支脈)과 지금의 사자봉의 위치인 지맥의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승학산 까지 이어진 일명 승학산지맥(乘鶴山支脈)과는 지맥 자체가 다르다. 또 “대동여지도상에 있는 載岳山이라는 지맥을 따서 수미봉의 위치에 왔다” 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이유수 씨의 그러한 표현은 어문적(語文的)으로 성립될 수 없는 문장이며, 또 사람이나 기계장비로 이동시킬 수 있는 물건도 아닌 산(山)인데 사람이 어떻게 따온단 말인가?. 문장의 묘수로써 아무리 이유수 씨의 어법과 논리를 이해해 보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법(語法)과 논리이다. 우리나라 국어학자를 전부 동원해서 풀이해 보아도 풀릴 수 없는 어법이다.

 

[ ●7-12.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❶손흥수.도재국] : 천화현의 위치가 천왕산의 위치이고 또 천화령이라면 그 산괴(山塊, 산덩어리, 山群, 산의 무리)와는 중간에 사자봉(원래 載嶽山, 제1봉, 소위 天皇山)이라는 최고봉이 해발 1189.2m 로 높이 솟아 있는데, 이(사자봉)를 뛰어 넘어 있는 수미봉에 다이렉트로 바로 연결시킬 수 있나? 사실은 載嶽山(소위 천황산, 제1봉)에 딸린 산봉(山峯)이 수미봉(제2봉)이라 해야 산능선의 연결된 상태로 보아서 맞지 않나!!! 처음부터 이유수 씨가 穿火峴의 위치가 天王山이라 주장한 데서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❷손흥수.도재국] : 지맥으로는 중간에 소위 천황산(제1봉 載嶽山)이 중간에 가로막고 있기에 천화현.천화령.천왕산 산괴는 수미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❸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대동여지도상 천화현이 표시된 위치가 대동여지도상의 천왕산이 표시된 위치이다” 하면서, 天王山이 天皇山으로 되었다” 라는 해괴한 주장을 했다. 이는 물리적으로 태산을 남쪽으로 이십리쯤 옮겼다 라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유수 씨는 이 글에서 절대로 "수미봉"이라 하지 않고 "山峰"이라 부르고 있다

[❹손흥수.도재국] : “천화현의 지맥이 수미봉 위치에 이어져 載嶽山이 되었다“ 라는 표현은 ”더 가까운 연결.비교 대상(제1봉 재악산)을 버리고 더 먼 데 있는 어떤 연결.비교 대상(천화현.천화령.천왕산)을 적용하는 격이다.

”수미봉의 바로 옆에 있는 사자봉의 지맥이 수미봉에 연결되었다“ 해야 말이 된다.

[❺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산봉(山峰, 수미봉)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것이 지금의 載藥山(실재로는 載岳山이다 라고 주장)의 위치이다” 했다.

●여기서 “지맥"이란 대동여지도에 지금의 승학산 또는 정각산 쯤에 그려져 있는 載岳山을 지칭한다”.

●태산(泰山)을 어떻게 방향을 정해서 동쪽으로 50里쯤을 옮기나? 만약에 강도 9.0 대지진이 발생해도 태산이 50里를 正 동쪽으로 이동할 수 없다. 귀신도 그렇게 옮길 수 없다. 우리들의 논리로는 그의 글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문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이유수 씨의 주장이 말도 안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승학산, 정각산, 사자봉으로 동서방향 직선으로 바로 지맥”이 이어져 있으므로 사자봉(제1봉)에 이동해야 맞다.

●그런데 어째서 사자봉 지점에서 다시 우측으로 틀어서 다시 남쪽으로 1600m를 더 가서 수미봉의 위치에 이동하나?

이것은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載岳山의 위치가 지금의 수미봉 위치인 1961 국립지리원이 載藥山(제2봉)으로 고시한 위치가 載岳山의 위치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조작을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 ●7-13.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유수 씨가 천왕산의 위치가 천화현의 위치라 주장했으나, 그의 주장과 달리 천왕산과 천황산의 위치가 다르므로, 그의 주장으로 표현하자면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천왕산(천화현)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야 그가 주장한 표현이 된다.

[❶손흥수.도재국] : 해발 1115m(daum Kakao 지도에 보면 해발 1119m임) 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했다. 국내에서 1000m 정도되는 봉우리가 이어지는 산군은 큰 산군으로 불린다. 또 해외의 거대한 지맥(산맥)에 있는 최고봉에는 하나의 산명이 부여되어 있고, 연달아 있는 최고봉과 비슷한 높이를 가진 수많은 봉우리들은 제 각각 산명이 아닌 제 각각의 봉우리의 명칭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이유수 씨가 “산 이름이 없이 있는 산봉우리들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즉, 높은 봉우리마다 산명을 다 붙여야 한다” 라는, 식으로 보이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이것은 “1山群(山塊) 1산명(山名) 부여원칙”에 명백하게 위반된다

 

[ ●7-14.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❶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울산향토사보 52페이지에서 해발 1189.2m 의 載嶽山(소위 천황산)을 작은 산이라는 뜻으로 "소산(小山)"이라 했다.

[❷손흥수.도재국] : 그런데 울산향토사보 59페이지에서는 해발 1115m의 산봉(수미봉)을 높은 봉우리라 했다. 사자봉과 수미봉의 높이는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앞뒤의 주장이 상반된다. 비록 74m가 차이가 나지만 1189.2m 載嶽山(제1봉)과 1115m 수미봉은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산이다.

[❸손흥수.도재국] : 또 울산향토사보 58페이지에서도 해발 1189.2m의 載嶽山(소위 천황산)을 "조선의 한 작은 산"이라 비하했다.

[❹손흥수.도재국] : 우리나라에서 해발 1000m가 넘는 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산(거산,巨山)이라 한다. 그래서 載嶽山에 嶽(岳) 字가 붙어 있다.

 

[ ●7-15.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❶손흥수.도재국] :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은 옛날부터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 언양현. 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우리 민족의 여러 지리문헌 등에 재악산(載嶽山)을 중심으로 백운산(白雲山), 석남산(石南山)→가지산(迦智山), 운문산(雲門山), 천황산(天皇山)→재악산(載嶽山,載岳山), 능동산(陵洞山), 재약산(載藥山)→수미봉(載藥山), 신불산(神佛山), 취서산(鷲棲山)→영축산(靈鷲山.영취산), 간월산(看月山) 등으로 산명을 각각의 산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경일동계(敬一東溪)가 영정사(표충사 옛 이름)에 주석했던 조선시대에는 재악산(載嶽山,載岳山, 해발1189.2m 사자봉)이 밀양도호부와 청도군. 언양현. 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으로 인식하였으며, 그(敬一東溪)는 “載岳山記”에서 소위 말하는 “영정사 창건기에 적힌 “新羅王과 藥草” 등에 관한 것 “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는 “載岳山 산명의 유래”를 “白頭山 등 五嶽과 東海 등의 민족 山河의 氣運이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 언양현. 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인 재악산(載岳山)에 스며들어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영남알프스의 중심이 되는 주산(主山)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 ●7-16.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사자봉과 직선거리 1600m 떨어진 해발 1119m 의 수미봉이 어찌 하잘 것 없는 小山이냐? 수미봉에 載嶽山 산명을 억지로 끌어다 붙일 때는 “높은 봉이이 산명도 없어 안타깝다” 라는, 표현을 했다. 앞뒤의 주장이 한결같지 않고 상반된다.

[❷손흥수.도재국] : 이유수 씨는 “하나의 글 속에 하나의 산에 대해서 상반되는 평가를 한다. 소산(小山) 등으로 비하적인 평가에는 載嶽山 山神이 참으로 격노(激怒)할 노릇이다.

  

[ ●7-17. 이유수 "7. 天皇山과 載嶽山"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청량면(靑良面)의 영취산(靈鷲山)이 청량산(靑凉山) 또는 문수산(文殊山)이라고도 하다가 현행 지도상에는 文殊山과 남암산(南巖山)으로 분화된 것과 같은 류(類)일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영취산(靈鷲山)이란 불교적인 측면에서 “영축산”으로도 발음한다. 인도의 영축산에서 유래되었고, 양산 통도사의 영축산이 대표적인 예이다. 주로 사찰의 배산으로 사용하는 산명이다. 그 산에 원래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지는 손흥수.도재국이 조사를 안했기에 알 수가 없다. 다만, 재악산 산명 복원에 그러한 산의 산명유래까지 조사할 여력도 이유도 없다. 위성사진으로 보니 그 두 개의 산은 아주 가깝게(2.49km 이격) 있다. 울주군 청량면에 영취산(靈鷲山)이 두 개의 산명으로 갈라진 것 또한 바잠직하지 못하다.

- 문수산과 남암산 위치와 이격 거리 속성 :

http://cfile243.uf.daum.net/image/99B96B365DAD866823CA20

 

아. 이유수 기고문 "8. 맺는말"


이제까지 여러 각도로 天皇山名의 과연 日本名인가 검토하여 보았으나 日本王名과는 우연의 일치일 뿐 이는 중국의 三皇中 天皇氏에서 따온 것으로서 자주적인 입장에서 山格을 높인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즉, 天王山을 天皇山으로 높혔던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요구됨을 덧붙여 본다.  

1) 경솔한 산명의 교체는 피해야 하지만은 설사 바꾼다고 가정하더라도 본 이름이었던 天王山으로 되돌아감이 바람직하다.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2) 載藥山으로 고쳐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載藥山이 두 곳에 있는 격이 되며, 영영 山名을 없앨 경우에는 1189m의 高山이 1115m이 載藥의 屬山이 되는 것도 천년 가까이 불러온 산의 내력을 전도하는 것이 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3) 窯址群은 天皇山에 있으니 山名을 바꾸지 않는 한 고쳐 부를려고 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아. 이유수 기고문 "8. 맺는말"에 대한 검토.의견


[ ●8-01.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이제까지 여러 각도로 天皇山名의 과연 日本名인가 검토하여 보았으나 日本王名과는 우연의 일치일 뿐 이는 중국의 三皇中 天皇氏에서 따온 것으로서 자주적인 입장에서 山格을 높인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즉, 天王山을 天皇山으로 높혔던 것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조선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황국신민화를 위해 조작한 산명이 천황산이고, 그 증거가 일제가 만든 지도에 갑자기 무려 12군데나 천황산으로 조작되어 있다.

 

[ ●8-02.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경솔한 산명의 교체는 피해야 하지만은 설사 바꾼다고 가정하더라도 본 이름이었던 天王山으로 되돌아감이 바람직하다.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❶손흥수.도재국] :

피휘 개념이 중국 당 태종 때에 대국으로서 약소국에 가한 일종의 심각한 내정간섭이었다. 이유수 씨는 중국 왕조의 피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울산향토사보에 적어서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삼황제의 천황을 인용하여 천왕을 천황으로 격을 높혀 천황산으로 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논리가 앞뒤로 도치된다.

중국이 우리 민족에게는 진짜 오랑캐다. 천년 넘게 재악산으로 불려왔고 또 載嶽山 또는 載岳山으로 기록되어 왔다 라는 증거가 수없이 많다. 천년 넘게 천왕산으로 불려 왔거나 기록된 증거가 전혀 없고, 일시적으로 천왕산으로 불려왔을 뿐이다. 이유수 씨는 끝까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말살하고 있다. 

 

[ ●8-03.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경솔한 산명의 교체는 피해야 하지만은 설사 바꾼다고 가정하더라도 본 이름이었던 天王山으로 되돌아감이 바람직하다.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❶손흥수.도재국] : 본 이름이 天王山이 아니고 載嶽山(載岳山)이다. 경솔하게 산명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시급히 복원해야 할 문제이다.

 

[ ●8-04.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❶손흥수.도재국] : 신라 경덕왕은 이두로 된 지명을 전부 한문식으로 변경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 역대 왕조의 모든 역사 서류가 순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비록 한문글자가 아닌 한글 단어도 대부분 한문식 내용이다. 지금은 신라시대가 아니다. 산명을 이두 독법에 맞게 변경.유지할 수가 없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우리 나라의 모든 산명을 이두 독법의 이름으로 이해하고 바꿀 수 없다.

 

[ ●8-05.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穿火峴이나 穿火嶺은 이두 독법이 사라진 금일의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다

[❶손흥수.도재국] : 천화현과 천화령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긴 지명이다.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 최고의 지리서인 "밀양지(密陽誌)"에는는 천화산(가지산) 일대가 화산폭발로 형성된 지형과 주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穿火)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위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 ●8-06.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載藥山으로 고쳐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載藥山이 두 곳에 있는 격이 되며, 영영 山名을 없앨 경우에는 1189m의 高山이 1115m이 載藥의 屬山이 되는 것도 천년 가까이 불러온 산의 내력을 전도하는 것이 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❶손흥수.도재국] : 제1봉은 載嶽山으로 복원하자는 것이다.

[❷손흥수.도재국] : 제2봉은 須彌峰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❸손흥수.도재국] : 그래서 두 개의 載藥山이 존재할 수가 없다

[❹손흥수.도재국] : 載藥山은 월파천유 때 소위 "재약산영정사고적"이라는 위작(僞作)된 문서에 나오는 산명으로 그 문서는 허구로 판명났다. 우리 민족의 왕립지리문헌에는  제1봉을 전부 載嶽山(載岳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왕조에 의해 천여년을 불러오고 기록된 산명을 최근인 1998년경에 한 개인(이유수 씨)의 서류(천황산일식명설고찰)로써 조작, 말살하면 안된다.

 

[ ●8-07. 이유수 "8. "맺는말에 대한 손흥수.도재국 의견 ]  

[①이유수 씨] : 窯址群은 天皇山에 있으니 山名을 바꾸지 않는 한 고쳐 부를려고 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❶손흥수.도재국] : 天皇山이 載嶽山(載岳山)으로 복원되고

[❷손흥수.도재국] : 載藥山이 須彌峰으로 변경되면

[❸손흥수.도재국] : 주(主)된 것(산명)이 바뀌면 종속(從屬)된 것(사적지 명칭)은 당연히 그에 따라가는 것이다. 天皇山 窯址群은 당연히 載嶽山 窯址群으로 변경해야 한다.

 

Ⅲ. 2015.12.4 국가지명위원회의 이해할 수 없는 지명심의 


[ 손흥수.도재국 의견, 국가지명위 Ⅲ - 01 ]

①삼국유사를 편찬한 고려시대 일연(一然) 스님의 『인각사 보각국사 비문』에 일연스님의 문도들이 주석한 사찰 중에 『재악사(載岳社 : 載岳寺를 가리킴)에 주석하신 선염(禪燄) 선사(禪師)』가 새겨진 것을 확인하므로서, 제1봉이 천황산(天皇山)도 아닌, 재약산(載藥山,제1봉)도 아닌, 『재악산(載嶽山,제1봉)』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만천하에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다음 카페 밀양광장에는 2019. 3. 6 현재 1,235건의 재악산(載岳山,제1봉)의 역사적인 증거와 정당한 주장과 의지(意志)가 담긴 글과 사진 등이 등재되어 있다. 이러한 증거를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2015. 12. 4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의 재악산(載嶽山,제1봉) 심의 때 재악산(載嶽山,제1봉)을 인정하지 않은 11명의 국가지명위원은 재악산(載嶽山,제1봉)을 부정하는 증거를 내 놓아야 한다

11명의 국가지명위원이 재악산(載岳山)을 부정하는 증거를 내 놓지 못하면 2015. 12. 4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의 재악산(載岳山,제1봉)을 천황산(天皇山)으로 한 심의는 엉터리 심의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④다음 카페 밀양광장에는 재악산(載嶽山,제1봉)이 맞다는 수많은, 명백한, 역사적인 증거가 있다. 재악산(載嶽山,제1봉)이 맞다는 논리적 증거도 엄청나게 많이 있다.

⑤이런 명백한 재악산(載嶽山,제1봉)을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으로 덮어서도 안된다.

⑥또 이유수 씨의 이해할 수 없는 글로 천황산으로 덮어서도 안된다.

또 역사적인 아무런 증거도 없는 "창건설화에 불과한 재약산(載藥山,제1봉 및 제2봉)"으로 載嶽山(載岳山)을 덮어려 해서도 않된다.

2015. 12. 4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의 재악산(載岳山) 심의 때 재악산(載岳山,제1봉)을 인정한 4분의 국가지명위원님께 영원히 깊은 감사를 드린다


. 2017년 표충사 일주문에 "載岳山 表忠寺, 산문에 載嶽山門 현판 부착


[ 손흥수.도재국 의견, 일주문과 산문 현판  - 01 ]

밀양 표충사는 40여년 전까지 “天皇山 表忠寺” 라는 일주문 현판을 걸어두다가 신도들과 시민들, 등산객 등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일제 잔재 천황산(제1봉)을 일주문에 붙였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다가 그 일주문 현판을 40여년 전에 스스로 떼어내고 40여년간 빈 상태로 두었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일주문과 산문 현판  - 02 ]

밀양 표충사는 40여 년간 비워 두었던 일주문에 2017.3.12 “載岳山 表忠寺”라는 현판을 달았다.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이 현판은 표충사를 관할하는 본사인 “영축산 통도사”의 원명지종 방장님께서 휘호를 편액하셨다.

표충사 도원법기 주지 스님의 표충사 중창을 위한 여러 불사(佛事 : 사업) 중의 하나로 표충사를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


 [ 사진 45 (위) ] 일주문에 2017.3.12 “載岳山 表忠寺”라는 현판을 달았다

※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일주문과 산문 현판  - 03 ]

밀양 표충사는 2017. 8. 17에 거대한 산문을 신축하여 산문에 “載嶽山門”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 현판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이신 진제법원 대종사님이 휘호를 편액하셨고, 현판식 및 산문 준공식때 종정님과 통도사 전 방장 스님, 통도사 주지, 표충사 주지, 수많은 스님과 사부대중, 문화재청 차장, 밀양시장, 밀양시의회의장, 교육장, 경찰서장, 도의원, 시의원 등등이 참속했고, 손흥수.도재국도 참석을 했다. 준공식 전에 산문 상량에도 “載嶽山門”이라는 휘호를 올렸다.

載嶽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載嶽山 山神이 영원토록 보존할 산문의 상량문의 글자가 전부 찍힌 사진을 손흥수.도재국은 가지고 있다


[ 사진 46 위) ] 산문에 2017.8.17 “載嶽山門”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載嶽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Ⅴ.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改修塔記碑) 보물 제1944호 지정 


[ 손흥수.도재국 의견, 개수비 보물지정 Ⅴ - 01 ]

표충사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신청으로 載嶽山(제1봉) 산명의 결정적 증거가 새겨진 “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일명 개수탑기비, 약칭 개수비)”를 2017. 10. 30 문화재청이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을 했다. 밀양 영남루와, 진주 촉석루 등과 대등한 국가보물로 탄생했다

이것은 국가(문화재청)가 표충사의 배산이 天皇山(제1봉)과 載藥山(제1봉)이 아니고 제1봉인 載嶽山(載岳山)이라는 것을 만방에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사진 47 (위) ] 문화재청에 의해 "재악산 영정사 삼층석탑 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개수탑기비)"가 2017. 10. 30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다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국가지명위, 인접 市.郡 의견 Ⅴ - 02 ]

산명을 변경하는 관련 법에는 산(山)이 이웃 지방자치단체와 붙어 있을 때는 의견을 들어 보도록 되어 있다. 국가지명위원회는 의견을 들어 보아야 하지만, 그 의견이 타당하지 않을 때는 들어만 보고,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載嶽山(제1봉)의 증거가 이렇게 명명백백한데 역사적인 증거도 없는 천황산(제1봉)과 載藥山(제1봉) 산명을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사자봉과 수미봉 Ⅴ - 03 ]

1839년 이래 산명에 수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표충사의 배산을 수많은 역사적인 증거에 의해 제1봉을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제1봉)으로 바로 잡아 일주문과 산문에 편액하여 주시고

제2봉을 수미봉으로 환원하여 표충사의 중창에 많은 노력을 하시는 도원법기 표충사 주지스님과 스님들, 종무소 직원분들, 사부대중 모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제1봉인 사자봉에는 거대한 사자가 사자후(師子吼)를 토하면서 표충사와 사부대중을 지키고 있다

진불암 위에는 제2봉인 거대한 수미봉이 수미산(須彌山)을 상징하면서 진불암과 표충사를 지키고 있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범국민운동 Ⅴ - 04 ]

 "載嶽山 산명복원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는 2019. 3. 6 현재 전국의 각계 각층에서 1,400여 명의 국민들이 참여하여 일제가 조작한 제1봉 天皇山과 제2봉 載藥山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많은 분들께서 동참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고맙겠다.


.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과 수미봉(제2봉 須彌峰) 좌표


[ 손흥수.도재국 의견, 좌표  - 01 ]

이유수 씨가 제시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문헌비고. 여지도” 등에도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은 지금의 사자봉(獅子峰,제1봉)의 위치가 명백하다.

밀양도호부(密陽道號府) 영역의 지리문헌(고지도)과 표충사의 비문. 탑비. 불교경전 등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은 제2봉이 아닌 제1봉을 말한다.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정점(산봉우리) 좌표는 동경128-58-30, 북위35-33-20 이다.

③사찰의 배산이 제2봉이 아니고 제1봉이라는 것은

민족의 지리문헌의 어떠한 군현(郡縣)에도 적용하여 산명

을 기록하는 기준이다. 사찰의 배산에 제2봉의 산명을 기록하는 민족의 지리학자는 옛날에도 지금에도 단연코 없다.

따라서 이유수 씨가 그의 논문(글)에서 제2봉인 수미봉(제2봉)의 위치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라는, 주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보물로서 전승되어 오는 수많은 왕립(王立) 지리문헌과 향교(鄕校) 등의 국.공립(公立) 지리문헌과 사찬(私撰) 지리문헌과 수많은 고지도, 표충사의 비석과 탑비, 불교경전 등에 기록되어 있는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는 현재 표지석에 소위 천황산(제1봉 天皇山)이라고 세워놓은 사자봉(제1봉, 獅子峰, 해발 1189.2m)의 위치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유수 씨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자기 주관적 논리로 작성한 이 글로써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를 조작.말살시키고 있다

⑦이유수 씨가 스스로 제시한 아래의 지리문헌에도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이

❶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편 산천조에 기록된 재악산이  제1봉 載嶽山이다.

❷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밀양도호부 편에 기록된 재악산이 제1봉 載岳山이다

❸대동지지(大東地志) 산수(山水) 條에 기록된 재악산이 제1봉 載岳山이다.

❹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2권 여지고(輿地考) 산천(山川) 밀양(密陽) 342페이지에 기록된 재악산이 제1봉 載岳山이다.

❺여지도(輿地圖) 밀양부 편에 기록된 천왕산(제1봉 天王山)이 제1봉 載嶽山이다.

⑧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천황산(제1봉)은 민족의 산명이다" 라는 글을  주장하는 분들은 더 이상 민족의 산명 즉,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을 천황산(제1봉 天皇山)으로 조작.왜곡시켜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도 민족의 선현들과 천여년전,수백여년전의 역사학자.지리학자들이 피땀흘려 연구.조사.제작하여 만들고 이룩한 역사.지리문헌 등을 조작.왜곡.폄훼해서는 안된다.


[ 손흥수.도재국 의견, 좌표  - 02 ]

1. 천황산(제1봉 天皇山) 좌표 →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 좌표


◆69. 재악산(제1봉 載岳山 : 사자봉) 좌표와 치욕스러운 산명인 천황산(제1봉 天皇山)

<자료 근거>

○ 당초 고시 내용 ⇒ 국립지리원 홈페이지

○ 변경 고시 내용 ⇒ 국립지리원 고시 제2001-355호(2002. 1. 5)

손흥수.도재국:위 국립지리원은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 천황산(天皇山) ⇒ 지명번호 : 3171000683 ⇒ 이천리

❶-1,손흥수.도재국:위 지명번호 관련 한글.한문 표기의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A) : 동경128-58-30, 북위35-33-2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 행정구역(한문) : 蔚山廣域市 蔚州郡 上北面 梨川里

□ 표기지명(한글) : 천황산

□ 표기지명(한문) : 天皇山

❷손흥수.도재국:위 표기지명의 한글.한문 표기의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공란(空欄)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공란(空欄)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天皇山

❷-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❸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 고시명인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1961-04-22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공란(空欄)

□ 삼각점 : 1189.0m

 

<2> 천황산(天皇山) ⇒ 지명번호 : 4827000507 ⇒ 남명리

❸-1,손흥수.도재국:좌표 동경128-58-30, 북위35-33-20인 위 지명번호 : 4827000507는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접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명번호는 전체를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❹손흥수.도재국:위 지명번호 관련 한글.한문 표기의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A) : 동경128-58-30, 북위35-33-2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 행정구역(한문) : 慶尙南道 密陽市 山內面 南明里

□ 표기지명(한글) : 天皇山

□ 표기지명(한문) : 天皇山

❺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天皇山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天皇山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天皇山

-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❻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2002-01-05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약초가 많이 나는 산이라 하여 제약산의 사자봉을 일컬어 일명 天皇山이라 칭하였다.

❼손흥수.도재국:위 한글 표기의 제약산을 재악산으로, 한문 표기의 천황산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❼-1,손흥수.도재국:위 지명유래 문제점 : 큰 산으로 약초가 많이 나지 않는 산은 없다. 설악산.지리산.덕유산 등등은 이 산보다 약초가 더 많다. 따라서 이러한 지명유래는 타당하지 않다 

❼-2,손흥수.도재국:동계집(東溪集,韓國佛敎全書 朝鮮43, 東溪敬一 지음,김승호 옮김,2018.7.30,동국대학교출판부)의 재악산기(載岳山記)의 지명유래 : 산의 뿌리가 멀리 白頭山.楓嶽山.五臺山.太白山으로부터 흘러내려와 東海바다로 흘렀다가 높이 솟아 푸른 산이 되어 淸道.密陽.梁山.彦陽의 수백리를 휘감고 있다 하여 재악산(제1봉 載嶽山=載岳山)이라 함

❼-3,손흥수.도재국:동계집:259~262쪽(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268~272쪽(載岳山記),365쪽(刊記),368~371쪽(太虛堂 大師 行蹟)

(삼각점:1189m)

※동계집에서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3> 천황산(天皇山) ⇒ 지명번호 : 4827000511 ⇒ 구천리

❼-4,손흥수.도재국:위 한글.한문 표기의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A) : 동경128-58-30, 북위35-33-2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 행정구역(한문) : 慶尙南道 密陽市 丹場面 九川里

□ 표기지명(한글) : 天皇山

□ 표기지명(한문) : 天皇山

❽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공란(空欄)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공란(空欄)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天皇山

-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❾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1961-04-22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표충사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하여 天皇山이라 함

❾-1,손흥수.도재국:어떤 지명(특히 사찰)의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을 天皇山이라 한다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찰의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전부 天皇山으로 작명해야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런 어이없는 지명유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는 일제가 天皇을 상징하는 天皇山이라는 산명(天皇山)을 인용하다 보니 산명유래를 터무니없이 급조(急造)한 명백한 증거이다.

❾-2,손흥수.도재국:◎桐溪鄭蘊, 桐溪敬一, 太虛南鵬, 鄭東溪 4人의 간단한 고찰과 위작된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과 출전(出典)이 명백한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영정사.표충사 사적기)가 위작(僞作)이라는 증거가 아래와 같은 4人의 인물 추적에서 증명된다.

①본 동계(東溪)는 法名이 敬一, 道名이 太虛, 居號(宅號)가 동계東溪이며, 출생년도는 숭정(崇禎) 병자년(1636)이며, 열반년도는 을해년(1695.3.15), 출생지는 경상도(慶尙道)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로서 소위 말하는 “載藥山靈井寺古蹟”에 나오는 정동계(鄭東溪)와 태허남붕(太虛南鵬)과는 전혀 다른 인물임.

②동계 정온(桐溪 鄭蘊)의 생몰년은 1569~1641임

③동계 경일(桐溪 敬一)의 생몰년은 1636∼1695임, 道名은 태허(太虛),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와 載岳山記를 지은 인물임.

④태허 남붕(太虛南鵬)의 생몰년은 ?~1777임, 무안면 영취산 表忠祠(삼대사 사당)와 단장면 表忠寺(절)의 중흥(중창) 인물임.

⑤정동계(鄭東溪)는 이른바 載藥山靈井寺古蹟(소위 靈井寺寺蹟記)을 위작(僞作)한 정체불명의 인물임.

※위작된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는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를 저본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 ①과③은 같은 인물이며, 위②③④⑤는 각각 다른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daum cafe “밀양광장”에 조사.연재하고 있다.

❾-3,손흥수.도재국:◎재악산(載嶽山=載岳山)은 옛날부터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이다

우리 민족의 여러 지리문헌 등에 재악산(載嶽山)을 중심으로 백운산(白雲山), 석남산(石南山)→가지산(迦智山), 운문산(雲門山), 천황산(天皇山)→재악산(載嶽山,載岳山), 능동산(陵洞山), 재약산(載藥山)→수미봉(載藥山), 신불산(神佛山), 취서산(鷲棲山)→영축산(靈鷲山.영취산), 간월산(看月山) 등으로 산명을 각각 소개하고 있지만 경일동계(敬一東溪)가 영정사(표충사 옛 이름)에 주석했던 시대에는 재악산(載嶽山,載岳山, 해발1189.2m 사자봉)이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그(敬一東溪)는 “載岳山記”에서 소위 말하는 영정사 창건기에 적힌 “新羅王과 藥草” 등에 관한 것을 부정하면서 “載岳山 산명의 유래”를 “白頭山 등 五嶽과 東海 등의 민족 山河의 氣運이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인 재악산(載岳山)에 스며들어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영남알프스의 중심이 되는 주산(主山)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위 天皇山.載藥山(제1봉과 제2봉)은 옛부터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산이 아니고, 이유수 씨가 언급한 산명임. 

※동계집에서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❾-4,손흥수.도재국:위 지명유래의 한문 표기의 天皇山을 載嶽山(載岳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 1189m

  

 

[ 손흥수.도재국 의견, 좌표  - 03 ]  

2. 재약산(載藥山) 좌표 →수미봉(須彌峰) 좌표


[ 사진 48 (위) ] 수미봉(須彌峰)의 해발고는 1,119 m 이다


◆<70> 수미봉(須彌峰) 좌표와 지워야 할 산명인 재약산(載藥山 : 수미봉) 

<자료 근거>

○ 당초 고시 내용 ⇒ 국립지리원 홈페이지

○ 변경 고시 내용 ⇒ 국립지리원 고시 제2001-355호(2002. 1. 5)

손흥수.도재국:국립지리원은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 재약산(載藥山) ⇒ 지명번호 : 3171000684

❶-1,손흥수.도재국:위 한글.한문 표기의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B) : 동경128-59-00, 북위35-32-3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 행정구역(한문) : 蔚山廣域市 蔚州郡 上北面 梨川里

□ 표기지명(한글) : 재약산

□ 표기지명(한문) : 載藥山

❷손흥수.도재국:위 한글.한문 표기의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공란(空欄)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공란(空欄)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공란(空欄)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공란(空欄)

-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공란(空欄)

□ 표고점 : 1115.5m

-1,손흥수.도재국:위 daum(Kakao) 지도상 수미봉의 해발고는 1,119 m 이다. daum(Kakao) 지도의 좌측 하단(모서리)에는 국토지리정보원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2> 재약산(載藥山) ⇒ 지명번호 : 4827000516

-2,손흥수.도재국:위 한글.한문 표기의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B) : 동경128-59-00, 북위35-32-3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 행정구역(한문) : 慶尙南道 密陽市 丹場面 九川里

□ 표기지명(한글) : 재약산

❸손흥수.도재국:위 한글 표기의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변경해야 한다

□ 표기지명(한문) : 공란(空欄)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載藥山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載藥山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載藥山

-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❹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載藥山을 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2002-01-05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공란(空欄)

□ 신라의 한 왕자가 이 산의 샘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하여 그 자리에 영정사를 짓고 약이 실린 산이라 칭하였다

❹-1,손흥수.도재국:수미봉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의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산명의 지명고시에서 삭제하는 것이 맞으나, 굳이 봉우리 명칭으로 지명고시로 존치시킨다면 주봉(제1봉)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의 지명유래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봄

□ 삼각점 : 858m

 

<3> 재약산(載藥山) ⇒ 지명번호 : 4833000201  

❹-2,손흥수.도재국:좌표 동경128-58-30, 북위35-33-20인 지명번호 : 4827000507는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접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명번호는 전체를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❹-3,손흥수.도재국:위 한글.한문 표기의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좌표(B) : 동경128-59-00, 북위35-32-30

□ 지명종류 : 산

□ 행정구역(한글)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

□ 행정구역(한문) : 慶尙南道 梁山市 院洞面 善里

□ 표기지명(한글) : 재약산

□ 표기지명(한문) : 공란(空欄)

□ 등록일자 : 공란(空欄)

□ 도엽번호 : 공란(空欄)

□ 도엽명 : 남명

□ 도엽축적 : 0

□ 시,군,구 지명위원회 제정 : 載藥山

□ 도 지명위원회 조정 : 載藥山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명 : 載藥山

-1,손흥수.도재국:위 중앙지명위원회는 현재 국가지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❻손흥수.도재국:위 한문 표기의 載藥山을 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 중앙 지명위원회 고시일자 : 1961-04-22

□ 로마자 표기 : 공란(空欄)

□ 지명유래 : 산에 약초가 많이 있다 하여 載藥山이라 함

❻-1,손흥수.도재국:지명유래 문제점 : 큰 산으로 약초가 많이 나지 않는 산은 없다. 설악산.지리산.덕유산 등등은 이 산보다 약초가 더 많다. 따라서 이러한 지명유래는 타당하지 않다

❻-2,손흥수.도재국:동계집(東溪集,韓國佛敎全書 朝鮮43, 東溪敬一 지음,김승호 옮김,2018.7.30,동국대학교출판부)의 268~272쪽 재악산기(載岳山記)의 지명유래 : 산의 뿌리가 멀리 白頭山.楓嶽山.五臺山.太白山으로부터 흘러내려와 東海바다로 흘렀다가 높이 솟아 푸른 산이 되어 淸道.密陽.梁山.彦陽의 수백리를 휘감고 있다 하여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함.

❻-3,손흥수.도재국:동계집:259~262쪽(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268~272쪽(載岳山記),365쪽(刊記),368~371쪽(太虛堂 大師 行蹟).

❼손흥수.도재국:위 지명유래의 한문 표기의 載藥山을 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

손흥수.도재국:◎桐溪鄭蘊, 桐溪敬一, 太虛南鵬, 鄭東溪 4人의 간단한 고찰과 위작된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과 출전(出典)이 명백한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영정사.표충사 사적기)가 위작(僞作)이라는 증거가 아래와 같은 4人의 인물 추적에서 증명된다.

①본 동계(東溪)는 法名이 敬一, 道名이 太虛, 居號(宅號)가 동계東溪이며, 출생년도는 숭정(崇禎) 병자년(1636)이며, 열반년도는 을해년(1695.3.15), 출생지는 경상도(慶尙道)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로서 소위 말하는 “載藥山靈井寺古蹟”에 나오는 정동계(鄭東溪)와 태허남붕(太虛南鵬)과는 전혀 다른 인물임.

②동계 정온(桐溪 鄭蘊)의 생몰년은 1569~1641임

③동계 경일(桐溪 敬一)의 생몰년은 1636∼1695임, 道名은 태허(太虛),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와 載岳山記를 지은 인물임.

④태허 남붕(太虛南鵬)의 생몰년은 ?~1777임, 무안면 영취산 表忠祠(삼대사 사당)와 단장면 表忠寺(절)의 중흥(중창) 인물임.

⑤정동계(鄭東溪)는 이른바 載藥山靈井寺古蹟(소위 靈井寺寺蹟記)을 위작(僞作)한 정체불명의 인물임.

※위작된 이른바(所爲) 載藥山靈井寺古蹟는 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를 저본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 ①과③은 같은 인물이며, 위②③④⑤는 각각 다른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daum cafe “밀양광장”에 조사.연재하고 있다.

❾손흥수.도재국:◎재악산(載嶽山=載岳山)은 옛날부터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이다

우리 민족의 여러 지리문헌 등에 재악산(載嶽山)을 중심으로 백운산(白雲山), 석남산(石南山)→가지산(迦智山), 운문산(雲門山), 천황산(天皇山)→재악산(載嶽山,載岳山), 능동산(陵洞山), 재약산(載藥山)→수미봉(載藥山), 신불산(神佛山), 취서산(鷲棲山)→영축산(靈鷲山.영취산), 간월산(看月山) 등으로 산명을 각각 소개하고 있지만 경일동계(敬一東溪)가 영정사(표충사 옛 이름)에 주석했던 시대에는 재악산(載嶽山,載岳山, 해발1189.2m 사자봉)이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그(敬一東溪)는 “載岳山記”에서 소위 말하는 영정사 창건기에 적힌 “新羅王과 藥草” 등에 관한 것을 부정하면서 “載岳山 산명의 유래”를 “白頭山 등 五嶽과 東海 등의 민족 山河의 氣運이 嶺南의 땅 밀양도호부와 청도군.언양현.양산군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산인 재악산(載岳山)에 스며들어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영남알프스의 중심이 되는 주산(主山)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동계집에서 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위 天皇山.載藥山(제1봉과 제2봉)은 옛부터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산이 아니고, 이유수 씨가 언급한 산명이다.


Ⅹ. 우리 민족 왕조 등의 지리문헌에 기록한 제1봉의 산명인 載嶽山(載岳山)을 부정한 이유수 씨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거짓 서류이다

 

1. 손흥수.도재국 등이 34년간 피눈물을 흘리면서 찾아낸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들

①아래는 손흥수와 도재국이 34년간 피눈물을 흘리면서 찾아낸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들이다.

②위와 같은 과정에서 2000년대 부터는 밀양문화원 부원장인 박순문 변호사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2.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리문헌(지와 고지도) 등에 기록된 載嶽山(載岳山)은 제1봉을 가리킨다.

①아래의 載嶽山(載岳山) 산명이 기록된 지리문헌(지지와 고지도 등)은 사찬(사찬, 주로 문중과 지리학자 등) 지리문헌도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 왕조(신라,고려,조선)의 국정교과서 격(格)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리문헌 등에 기록된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는 지금의 제1봉인 사자봉의 위치이다. 이것은 사찰의 배산(配山,背山)이 제1봉임과 같다.

②우리나라 지리문헌(지지와 고지도)에 기록된 모든 산은 제1봉을 가리킨다.

 

3. 天王峰 또는 天王山. 天王臺 라고 기록된 지리문헌(地誌 또는 고지도)은 앞의 항목에서 여러 차례 설명한 대로 제1봉인 載嶽山(載岳山)을 가리킨다.

①이유수 씨는 동국여지승람과 문헌비고. 여지도서. 여지도. 대동지지에 기록된 재악산이 제2봉이라 주장했으나, 거짓 주장이다.

②이유수 씨가 언급한 위 5건의 지리문헌 외에도 손흥수와 도재국 등이 찾아낸 수많은 아래의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는 모두 제1봉이다.

③따라서 이유수 씨의 載嶽山(載岳山) 제2봉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다.

 

4. 이유수 씨가 지은 천황산일식명설에서 주장한 천황산은 조작된 산명이다.

①아래에 열거된 수많은 載嶽山(載岳山)은 제1봉이 명명백백한데도 불구하고 이유수 씨는 “載嶽山(載岳山)은 제2봉이다”. 라고 주장한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②따라서 이유수 씨가 지은 천황산일식명설에서 주장한 천황산은 조작된 산명은 완전히 조작한 산명이다

 

5. 우리 민족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수많은 載嶽山(載岳山) 기록의 증거들

①아래는 수많은 載嶽山(載岳山) 기록의 증거들이 기록된 글의 제목들이다

②아래의 글은 도재국이 운영하는 daum cafe 밀양광장에 올려져 있고, 자료(지지 내용과 고지도, 사진)가 방대하여 글의 제목만 올린다. 자세한 내용은 밀양광장에 가입하여 확인하기 바란다.

③아래의 제목의 글은 손흥수와 도재국이 지어낸 내용이 아니고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의 왕조의 국정교과서에 해당하는 지리문헌에 있는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들이다.

④일부 사람들은 도재국에게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들에 대해서 논문”을 작성하여 증명해 보이면 좋겠다 라는, 권유가 있으나 그런 권유는 載嶽山(載岳山) 산명 복원을 위해서 성원을 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도재국은 논문을 작성하여 증명해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⑤그 이유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기록된 모든 왕조의 모든 지리문헌과 불교경전과 석탑에 수장되었던 비문 등이 그 시대의 왕조의 국정교과서로서의 지리문헌이고, 국가(왕조)가 조성한 석탑의 석비(石碑) 등이기 때문이다.

⑥이를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의 국정교과서 중의 지리.지명 부문 또는 국가가 조성 또는 건축한 사물에 기록한 지리.지명의 내용을 지금의 대한민국의 불특정의 한 개인에게 그 기록이 맞는 지를 증명해 보이라는 것과 다름없다.

⑦그래서 도재국은 아래의 여러 자료 중에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를 다시 라이센스한느 논문을 작성하면 좋겠다” 라는, 주장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있는 글의 제목을 게재했다.

⑧우리 민족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수많은 載嶽山(載岳山) 기록의 증거들

❶아래 글의 제목들은 밀양광장에 올려진 글의 날자별. 연번별 순서대로 복사해서 게재한다

❷아래의 글은 두 개의 연번과 제목. 글 게시자, 글을 올린 날자별, 글의 조회수, 추천수 등으로 되어 있다.

❸검은 별(★)이 붙지 않은 글은 은 별(★)이 붙은 글을 보충 설명하는 글이다.

❹중간에 연번이 결번(缺番)된 것은 보충하는 글들이므로 여기에서는 등재를 생략한다.

 

6. 우리 민족 왕조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수많은 載嶽山(載岳山) 기록의 증거 글 제목 연명부

가. 載嶽山(載岳山). 載嶽寺 (載岳寺)등이 기록된 지리문헌

❶아래에는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가 무려 70건이 있다.

❷심지어는 일본의 문헌에도 있다

❸載嶽山(載岳山) 증거 제목 연명부 (아래 70건)

◎226 ★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春夏)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228 ★2.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문(1)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도재국 15.02.24 24 0

◎229 ★3. 점필재 김종직 선생 詩文(2)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도재국 15.02.24 9 0

◎230 ★4.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단장면 지세와 연혁條에 지금의 표충사를 옛날에는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1994년 밀양문화원 발행) [1]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23 0

◎231 ★5. 동국여지승람 판심에 첨부된 동람도(東覽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232 ★6.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7 0

◎233 ★7.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4 0

◎234 ★8. 밀주지(密州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漢文本, 河載裕 藏書,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1]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2 0

◎235 ★9. 밀주구지(密州舊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戊戌重陽獲撛,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1 0

◎236 ★10. 밀주읍지(密州邑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2]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6 0

◎237 ★11. 교남지(嶠南誌) 밀양군편 山川 및 校院 條 재악산(載岳山), 화동(華洞) 전寫 소장(所藏)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18 0

◎238 ★12. 천태종통기(天台宗統紀) 기록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개간(開刊)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일(卷第一) [1] 사진첨부 도재국 15.02.24 53 0

◎240 ★14.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편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241 ★15.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밀양군편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嶽山) [2]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22 0

◎242 ★16. 영지요선(嶺誌要選)券之一 밀양 山川條 재악산(載嶽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5 0

◎243 ★17. 교남지(嶠南誌)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밀양편 산천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9

◎2 ★18. "단장면 리동가(里洞歌)"에도 불려진 재악산(載嶽山) [9]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5 0

0

◎246 ★20.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문(3)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사진첨부

◎247 ★2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秋冬)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2 0

◎249 ★23. 밀양 명문가(名門家)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계선생실기(松溪先生實記)"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12 ★24. 밀주승람[密州勝覽 1928~1929 편찬 추정, 丁卯年 손병현(孫秉鉉) 전사(電寫)]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1]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5 0

◎251 ★25.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1] 사진첨부

◎252 ★26. 청구도(靑邱圖) 곤(坤)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2 0

◎253 ★27. 대동지지(大東地志) 산수(山水) 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30 0

◎254 ★28. 국역 밀주지(지리편) 재악산(載岳山) 기록, 밀양문헌집람 제1호, 2001년 밀양문화원 발행, 이익성家 소장본) [3]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34 0

◎255 ★29. 동여도(東輿圖)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경기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소장 :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18 0

◎256 ★30. 1906년 인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岳山), 서울 국회도서관 소장,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사진첨부 도재국 15.02.25 23 0

◎67 ★31.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山川 條, 밀양 단장천을 재악천(載嶽川)으로 기록 도재국 15.02.25 24 0

◎264 ★38. 밀양 명문가(名門家) 일직손씨 세보(161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사진첨부

◎265 ★39. 동강집(東江集, 밀양부사 신익전 찬, 165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2.27 15 0

◎274 ★41. 오기팔도(五畿八圖) 조선국세견전도(朝鮮國細見全圖 : 全國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일본인 제작 사진첨부◎275 ★42.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2권 여지고(輿地考) 산천(山川) 밀양(密陽) 342페이지, (재악산.載岳山)

◎276 ★43. 한국지리지총서 읍지1권(경상도읍지 10책 1832년경) 487페이지 지도(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사진첨부

◎277 ★44. 한국지리지총서 읍지2권(영남읍지 7책 1895년경) 323.325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사진첨부 도재국 15.03.22 7 0

◎278 ★45. 한국지리지총서(韓國地理志叢書) 읍지4권(영남읍지 3책 1871년경) 168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사진첨부 도재국 15.03.22 12 0

◎285 ★48. 밀양부읍지(密陽府邑誌) 인물(효자)條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286 ★49. 2006년 밀양지(密陽誌) 탁영당지(濯纓堂址) 재악산(載嶽山) 기록 [1] 사진첨부 도재국 15.03.23 9 0

◎287 ★50. 밀주지[密州誌, 박수헌 저작, 1932.8.1 밀양군향교 발행, 재악산(載嶽山), 재악사(載嶽寺) 기록] [1] 사진첨부 도재국 15.03.23 12 0

◎293 ★56.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해동지도(海東地圖) 밀양부(지지+지도) 18세기 중엽 "재악산(載岳山) 및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1] 사진첨부

◎294 ★57.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팔도지도(八道地圖 : 경상도)에 기록된 재악(載岳) 사진첨부 도재국 15.03.23 18 0

◎299 ★62. 고지도[古地圖,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출처 :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사진첨부

◎300 ★63. 천년고찰 표충사[表忠寺] : 문헌과 고지도 등에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또는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도재국 15.03.23 15 0

◎301 ★64. 밀양 지리지 "미리벌의 얼" 1983.9 밀양군 발행, 503페이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2] 사진첨부 도재국 15.03.24 16 0

◎302 ★65. 도별도(道別圖 : 경상도) "해좌승람(海左勝覽)"에 기록된 밀양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도재국 15.03.29 12 0

◎303 ★66.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나온 "재악산(載岳山) 영정사 개수비문" 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3.29 41 0

◎304 ★67. 밀양 표충사 경내 비석걸에 있는 "경자갑보월비문(庚子甲補月碑文)"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3.29 27 0

◎314 ★74. 여지도서(輿地圖書) 지도, 산천조, 사찰조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사진첨부

◎315 ★75. 밀양유감(密陽儒鑑) 서문(序文)에 동천(東川) 발원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4.02 14 0

◎316 ★76. 단군봉안록(檀君奉安會案錄) 일람표(一覽表)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4.02 13 0

◎317 ★77.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1] 사진첨부 도재국 15.04.02 26 0

◎318 ★78. 범우고(梵宇攷) 밀양 사찰편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4.02 32 0

◎319 ★79. 천하지도(天下地圖)중 경상도(慶尙道) 71官에 밀양 재악산(載岳山)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4.02 29 0

◎322 ★80. 일본지리대계(日本地理大系) 조선편(朝鮮編)에 나오는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326 ★81. 천유가 1839(己亥) 삼대사 신위 봉안후 56년째인 1894년 밀양군수 겸관했던 오횡묵이 사명대사 관련 글에 ”재악산(載岳山)으로 기록 사진첨부 도재국 15.04.11 31 0

◎334 ★87. 524년 만에 드러난 "재악산(載岳山) 영정사(표충사) 삼층석탑 개수비문"의 탁본과 삼층석탑 해체,중수 과정 업무보고서 사진첨부

◎336 ★88. 김종직 선생의 동국여지승람 발문(跋文)에 임금이 강조한 산천(山川) 도재국 15.04.28 19 0

◎428 ★116. “선총(禪摠) 계심(戒心) 대선사(大禪師)님”께서 1491년 건립(改修)하신 載嶽山靈井寺삼층석탑개수비 (도재국, 국보 지정 당위성 강조) [7] 사진첨부

◎445 ★123. 옛 지리서의 산천(山川)은 군현별(郡縣別) 편찬, 재악산(載嶽山)은 언양현(彦陽縣 : 울산)이 아닌,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소속 [10]

◎462 ★135.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1661년 개판(改版)한 기록이 있는 경전『김해 보현사 전적(典籍) 원각경(圓覺經) 개요』 [2] 사진첨부

◎468 ★140. 군수(郡守) 추천(鄒川) 손영재의 아들 손기륜이 재악산(載嶽山)에서 노모를 구하고, 무참하게 왜적의 칼을 맞다 사진첨부

◎487 ★150. 동국여지승람보다 먼저 간행된 「해인사 장경(藏经)」을 인쇄하여, 1458년 배부할 때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3]

◎488 ★151.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1458년 해인사 장경(海印寺 藏經) 50부 인쇄하여 배부시", 배부처에 "재악사(載岳寺)에 1부 주라" 로, 기록 [2] 사진첨부 도재국 15.10.17 33 0

◎498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사진첨부

◎512 ★162. 국립중앙도서관 고지도(108번), 조선전도 밀양 재악(載岳), [ 1894년 인쇄, 조선총독부 고서, 동경, 일본 육군참모국 ] [2] 사진첨부

◎565 ★199.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 1712-1781) “산수고(山水考), 산위(山緯)" 밀양부(密陽府)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사진첨부

◎578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사진첨부

◎649 ★257. 속리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속리산 天王峰으로 되어 있어, 울산측의『오주연문장전산고』 에 실렸다는 天皇峰과 내용이 다르다 [5] 사진첨부

◎655 ★260. 조선 중기, 재악산(載岳山)으로 가면서 지은 시(詩)

◎658 ★261. 재악산(在岳山)이라고 적힌 일제강점기 사진 사진첨부

◎687 ★279.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발간한 원각경(圓覺經) 사진 사진첨부

 

나. 天王山은 載嶽山(載岳山)과 같은 위치에 부여진 이명동산(異名同山)

❶아래의 천왕산은 불교의 사천왕에서 유래된 산명으로 불교가 왕성한 시대에는 사찰의 배산을 천왕봉 또는 천왕산으로 불렀다

❷천왕과 천황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천왕을 불교식 산명이고 조선총독부 시대에 제작된 전국의 지형도에 갑자기 기록한 12개의 천황산은 일제 천황을 상징하기 위해서 조작한 산명이다.

❸아래에 제시한 『◎553 ★188. 해동지도 > 필사본 회화식 > 규장각 > 해 동 지 도 (古大4709-41) > 경상도 > 밀양부 > 載岳山(지지), 天王山(지도), 載岳寺(지도) 사진첨부』등에서 천왕산과 재악사는 배산이 載岳山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배산 명칭을 절이 명칭에 붙이는 것이다.

❸아래의 11건의 天王山.天王臺 등은 전부 제1봉인 載嶽山(載岳山)을 가리키는 것이다.

❹載嶽山(載岳山) 증거 제목 연명부 (아래 11건)

◎550 ★185. 팔도지도 > 규장각 > 팔도지도(奎 10331)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右曳山(古曳山을 우예산으로 잘못 표시) |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18 0

◎549 ★184. 팔도지도 (古4709-14)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1책 > 경상도 > 밀양 > 천옥산(天玉山. 天王山을 誤記한 듯) 사진첨부

◎551 ★186. 팔도지도(古4709-23)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4

◎552 ★187. 팔도지도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팔도지도(古軸 4709-48)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도재국 15.12.30 5 0

0

◎553 ★188. 해동지도 > 필사본 회화식 > 규장각 > 해 동 지 도 (古大4709-41) > 경상도 > 밀양부 > 載岳山(지지), 天王山(지도), 載岳寺(지도) 사진첨부

◎554 ★189. 조선팔도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조선팔도지도(奎 12419) > 경상도 > 밀양 > 天王臺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7 0

◎555 ★190. 규장각 : 필사본 회화식 여지도 >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경상도 > 밀양부 > 天王山, 載岳寺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4 0

◎556 ★191. 여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여지도 (輿地圖)(古4709-37) > 경상도 > 天王山 사진첨부

◎557 ★192.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여 지 도 (古4709-78) > 경상도 > 밀양 > 天王臺, 右曳山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3 0

◎560 ★194. 규장각 > 필사본 기타 > 좌해지도(奎 12229) > 경상도 (慶尙道), 天王山 (1776-1800) 사진첨부

◎561 ★195. 지승 (奎 15423) > 규장각 > 필사본(회화식) > 경상도 > 밀양부 > 天王山 사진첨부 도재국 15.12.30 5 0

 

다. 별표(★) 글을 보충하는 지리문헌(地誌 또는 고지도)

❶아래의 天王山은 載嶽山(載岳山)과 이명동산(異名同山)이다

❷절의 명칭은 배산(配算,倍山)의 명칭과 같이 해온 역사를 볼 때 載岳寺는 배산인 載嶽山(載岳山)를 따서 지었다 라는, 증거이다. 천왕산 또는 천오아봉은 불교의 세력이 왕성할 때 주로 절의 북쪽 등의 최고 높은 봉우리에 일시적으로 붙은 명칭이다.

❸載嶽山(載岳山) 증거 제목 연명부 (아래 21건)

◎335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김종직선생의 跋文 [2] 동진 15.04.27 19 0

◎362 동여도 > 필사본(방안식) > 규장각 > 동여도 전국지도 > 밀양 > 載岳山, 載岳川, 靈井寺 사진첨부

◎363 지도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지도(地圖)〈古 4709-92〉> 경상도 > 밀양 > 載岳山 (지도 명칭이 조선지도가 아님) 사진첨부 레나 15.06.05 10 0

◎365 해동지도 > 필사본 회화식 > 규장각 > 해 동 지 도 (古大4709-41) > 경상도 > 밀양부 > 載岳山(지지), 天王山(지도), 載岳寺(지도) 사진첨부

◎367 동국지도 > 목판본 기타 > 규장각 > 동국지도(일사. 古912.51-D717) > 경상도 > 밀양 > 載岳山 사진첨부 레나 15.06.08 6 0

◎369 조선지도 (필사본 방안식) 1 > 규장각 > (奎16030) > 載岳山 (4종류) 사진첨부

◎373 대동여지도(1861) > 목판본 방안식 > 규장각 > 전국지도 > 밀양 > 載岳山 사진첨부

◎376 동국지도(영조 1700년대)에 載藥山 기록? : 규장각 > 목판본 기타 > 동국지도(일사. 古912.51-D717) > 경상도 > 밀양부 > 載岳山 사진첨부

◎377 여지도(1757-1765)에 天王山 기록? (규장각, 4종류)

◎378 규장각 > 필사본 회화식 > 해 동 지 도 (古大4709-41) > 경상도 > 밀양부 > 지지(載岳山)+지도(天王山, 載岳寺) 사진첨부 레나 15.06.08 6 1

◎379 좌통지도(1800후반)에 天王山 기록 규장각 > 경주도회[좌통지도](古4709-26) > 필사본 회화식 > 규장각 > 밀양부 : 天王山, 載岳寺 사진첨부 레나 15.06.08 4 0

◎380 규장각 > 필사본 기타 > 좌해지도(奎 12229) > 경상도 (慶尙道), 天王山 (1776-1800) 사진첨부 레나 15.06.08 4 0

◎381 지 승 (奎 15423) > 규장각 > 필사본(회화식) > 경상도 > 지승(1700년대)에 天王山 기록 ? 규장각 > 필사본 회화식 > 군사용지도, 天王山, 載岳寺 사진첨부 레나 15.06.08 12 0

◎382 Re:1. 규장각 : 필사본 회화식 여지도 >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경상도 > 밀양부 > 天王山, 載岳寺 사진첨부 레나 15.06.08 5 0

◎383 Re:2. 여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여지도 (輿地圖)(古4709-37) > 경상도 > 天王山 사진첨부 레나 15.06.08 8 0

◎384 Re:3.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여 지 도 (古4709-78) > 경상도 > 밀양 > 天王臺, 右曳山 사진첨부

◎386 Re:1. 조선팔도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조선팔도지도(古 4709-54) > 경상도 > 밀양 > 載岳山 사진첨부

나 15.06.08 4 0

◎387 Re:2. 조선팔도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조선팔도지도 (古屛 912.51-J773) > 경상도 > 2책 > 경상도·전라도[일부] > 밀양 > 載岳山 사진첨부 레나 15.06.08 14 0

◎388 Re:3. 조선팔도지도 > 필사본 기타 > 규장각 > 조선팔도지도(奎 12419) > 경상도 > 밀양 > 天王臺 사진첨부 레나 15.06.08 20 0

◎389 Re:1. 팔도지도 > 규장각 > 팔도지도(奎 10331)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右曳山(古曳山을 우예산으로 잘못 표시) 사진첨부 레나 15.06.08 16 0

◎391 Re:3. 팔도지도(古4709-23)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사진첨부

◎392 Re:4. 팔도지도 > 필사본(기타) > 규장각 > 팔도지도(古軸 4709-48) > 경상도 > 밀양 > 天王山 사진첨부 레나 15.06.08 10 0

 

라. 기타 자료

❶아래의 28건은 제1봉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서류의 목록들이다.

❷이 외에도 다음 카페 밀양광장에는 제1봉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임을 직.간접적으로 증명, 홍보하는 글이 많이 등재되어 있다.

◎310 ★72. 사찰 명칭 재악사(載岳寺)는 재약산(載藥山)이 아닌,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증명합니다 [8]

◎479 ★146. 재악산(載嶽山) 사자봉(獅子峰)을 한 평생 지켰던 "재악산(載嶽山) 산지기 청산 이상도 선생" 타계를 추도하면서 사진첨부

◎481 ★147. "재악산(載嶽山) 산 이름 복원 운동을 계속 하면, 손흥수와 도재국의 목을 끊어 버리겠다" [ 20여 년 전의 협박 전화 ] 사진첨부

◎485 ★149. 고려시대(1295년)에도 지금의 밀양 표충사를 재악사(載岳社:載岳寺)라 했습니다 [1] 사진첨부

◎566 ★200.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목록(제목) 도재국 16.01.07 8 0

◎567 ★201. 修禪社 역사 자료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도재국 16.01.08 4 0

◎568 ★202. 白洋寺 역사 자료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1>] 도재국 16.01.08 5 0

◎569 ★203. 백양사(白羊寺) 1차 전장법회(轉藏法會),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2>] 도재국 16.01.09 9 0

◎570 ★204. 국사편찬위원회의 "天皇山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라는, 울산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692 ★284. 재악산(載岳山)이 기록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앙엽기(盎葉記)란 어떤 저술인가?

◎693 ★285. 신성한 부처님 전각(殿阁)에, 이제 "고질병의 약수(约水)"를 언급하는 일은 그만하자

◎697 ★287.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는 밀양땅에도, 사자평에도 오지 않았다 사진첨부

◎1018 ★440.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 實)는 대한제국 회복을 위한 스파이였나 ? [1]

◎1063 ★461. 재악산 정상을 평생 지켰던 사자봉 암굴에 기거했던 고(故) 이상도 선생이 언급조차 안했던 사람 [5]

◎1077 ★467.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밀양시 단장면 고례,단장,무릉,미촌] <1> 사진첨부

◎1078 ★468.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밀양시 단장면 법흥,사연,태룡] <2> 사진첨부 도재국 15.07.22 1 0

◎1079 ★469.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울주군 상북면 지곡, 오산, 지화, 안몰, 신리, 지내, 화천, 명촌, 일동 ] <3> 사진첨부 도재국 15.07.22 20 0

◎1080 ★470. 한국의 마을제당(2003년, 국립민속박물관) [밀양군 색인 : 단장면 구천리 조(條) 없음] <4> 사진첨부 도재국 15.07.23 8 0

◎1112 ★487(511).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의 실체와 조작의 내막(도표식 설명) 사진첨부

◎1123 ★493(517). 사자평(獅子坪)을 사자벌(沙者伐, 沙自伐)로 둔갑시킨 울산 사람 이유수의 주장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사진첨부

◎1158 ★512(536). 재악산(載嶽山) 서상암(西上庵)의 일직손씨(一直孫氏) 독립운동 전사(戰士)들 [1] 사진첨부

1168 역대 한국통감-조선총독-정무총감 (요약표) [1] 사진첨부

◎542 ★180. 고려시대 사찰의 명칭에 붙는 "사(社)"에 대한 내용

◎1268 ★597(621). 전선명승고적(全鮮名勝古蹟) 밀양군(密陽郡) 편 재악산(載嶽山) 기록 사진첨부

◎1273 ★600(624). 재악산(載嶽山) 산명 증명에 또 다른 라이선스가 왜 필요한가? 사진첨부

◎1276 ★601(625). 표충사 배산 재악산(載嶽山)의 산명 복원운동에 있어서 또 다른 라이선스(license)는 필요없다. 정대재 18.04.05 27 0

◎1353 ★646(670). 호박에 줄 긋는 세상? [1]

◎2870 ★1324(1343). ★122. 조명(朝明)연합군과 왜장 가토 기요마사 군(軍), 피아간의 수많은 목숨을 피로 물들인 "도산성 (울산 왜성) 전투도"

◎2897 ★1344(1363). ★73. 재악산(載嶽山=載岳山), 載嶽山과 載藥山 비교 그림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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