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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 함경도(咸鏡道) 산 217 (산명 137개, 유사 산명 12개, 고개 68개)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19.11.15|조회수350 목록 댓글 0

★1445. 함경(咸鏡道) 산 217 (산명 137개, 유사 산명 12개, 고개 68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된 조선(朝鮮)의 산(山)과 고개

◎출처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분류별 >고전국역총서 >신증동국여지승람

 

Ⅳ.  함경(咸鏡道) 산 217 (산명 137개, 유사 산명 12개, 고개 68개)

◎볼록(凸) : 산(山). 악(岳). 봉(峰). 암(巖). 대(臺) : 149개

◎오목(凹) : 고개[치(峙). 현(峴). 령(嶺)] : 68개

①산(山) : 137개

②악(岳) :  0개

③봉(峰) : 2개

④암(巖) : 10개

⑤대(臺) : 0개

⑥고개(峙.峴.嶺) : 68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된 조선(朝鮮)의 산(山)과 고개

◎출처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분류별 >고전국역총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제는 1923년 황국신민화 [皇國臣民化, 대한제국의 백성과 관리를 전부 일본 천황의 백성과 관리로 만드는 일종의 韓民族 말살 정책] 를 위해 제1봉인 載嶽山(載岳山)을 말살하고 天皇山으로 조작했다. 동시에 제2봉을 載藥山으로 조작했다.

 

1961.4.21 국립지리원에서 제1봉을 天皇山으로 지명고시한 내용을 보면 "밀양 표충사 주변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서 天皇山으로  했다" 라는 지명 유래를 적어 놓았다. 이는 너무나 잘못된 지명(산명) 유래이다. 이런 논리로 한다면 "어떤 대상물의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전부 天皇山으로 지명(산명)을 고시해야 한다." 이게 맞는 말인가? 이런 식으로 산명을 정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수백 개의 天皇山이 있어야 한다.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 씨는 1998년에 발표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 천황산이 일본식 명칭인가를 고찰한다)"에서 대한제국시대에 나라의 자주독립을 고취시키기 위해 天王山을 격(格)을 높혀 "제1봉을 天皇山"으로 했다 라고, 주장하면서, 민족 고유의 산명인 제1봉인 밀양의 載嶽山(載岳山)을  말살하고, 제2봉의 위치가 載嶽山(載岳山)이라 했다. 참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울산 측은 이유수 씨의 이런 잘못된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2015.12.4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는 울산 측의 이러한 주장을 반영하여 載嶽山(載岳山)을 天皇山으로 심의했다. 이는 민족의 산명인 載嶽山(載岳山)을 말살한 잘못된 지명심의였다.

 

따라서 "다음 daum 카페 cafe 밀양광장"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지리문헌인 "국역(國譯)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조선팔도에 또 다른 天皇山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조선팔도의 334개 군현(郡縣)의 산천(山川) 조(條)에서 산(山)을 전부 발췌하여 다음과 같이 군현별(郡縣別)로 공개를 한다. 도재국은 20여년 전에 이미 확인한 결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팔도에 천황산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전 국민에게 눈으로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334개의 군현별로 2,125개의 산을 전부 발췌를 하여 알려 드린다.

 

○광의(廣義)의 개념에서 산(山)이란 볼록하게(凸) 솟은 "산(山), 악(嶽,岳), 봉(峰), 암(巖), 대(臺)"와 오목하게(凹) 꺼진 "치(峙), 현(峴), 령(嶺)"을 포함한다. 

 

○협의(俠義)의 개념에서 산(山)이란 볼록하게(凸) 솟은 "산(山), 악(嶽,岳), 봉(峰), 암(巖), 대(臺)"를 말한다.

 

이유수 씨는 천화현(穿火峴)과 천화령(穿火嶺)을 산(山)으로 주장하면서 수긍할 수 없는 글을 작성하였다. 고개를 산으로 주장하면 안된다. 산은 볼록하게(凸) 솟은 지형이고, 고개는 오목하게(凹) 아래로 꺼진 지형이다.

 

Ⅳ.  함경(咸鏡道) 산 217 (산명 137개, 유사 산명 12개, 고개 68개)


1. 함경도 함흥부 咸興府 → 함남 함흥시

◎위치:동쪽으로는 홍원현(洪原縣) 경계까지 70리, 남쪽으로는 정평부(定平府) 경계까지 27리, 서쪽으로는 평안도 강계부(江界府) 경계까지 2백 80리, 북쪽으로는 삼수군(三水郡) 경계까지 2백 10리, 북청부(北靑府) 경계까지 1백 75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8백 68리이다.


[산]


성관산(城串山, 진산 鎭山)


기린산(麒麟山)


운주산(雲住山)


태백역산(太白亦山)


소백역산(小白亦山)


우두산(牛頭山)


오봉산(五峯山)


부전령(赴戰嶺)


함관령(咸關嶺)


차유령(車踰嶺)


천불산(千佛山)


백운산(白雲山)


중봉산(中峯山)


설열한령(薛列罕嶺)


송동령(松洞嶺)


초황령(草黃嶺)

 

2. 함경도 영흥대도호부 永興大都護府 → 함남 요덕군.금야군

◎위치:동쪽으로는 해안(海岸)까지 50리, 남쪽으로는 고원군(高原郡) 경계까지 14리, 서쪽으로는 평안도 맹산현(孟山縣) 경계까지 2백 25리, 평안도 영원군(寧遠郡) 경계까지 2백 10리, 북쪽으로는 정평부(定平府) 경계까지 24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7백 52리이다.


[산]


성력산(聖歷山) : 본부 서쪽 2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검산(劒山) : 본부 서북쪽 90리에 있으며, 그 위에 못이 있는데, 날이 가물 때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 한다.


국태산(國泰山) : 본부 서쪽 15리에 있다. 산 위에 석정(石井)이 있는데, 날이 가물 때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 한다.


병풍산(屛風山) : 본부 서쪽 60리에 있다. 그 위가 펀펀하고 넓어서 사람이 살만하며, 그 가운데에 못이 있는데 혹 사람이 들어와 살기만 하면 항상 비가 내리는 재앙이 있다 한다.


태박산(太博山) : 본부 서쪽 35리에 있는데, 웅장하게 10여 리가 구불구불 꺽여 있다.


애전현(艾田峴) : 본부 서쪽 1백 80리 지점이 되는 평안도 맹산현(孟山縣) 경계에 있는데, 옛날에는 맹주현(孟州峴)이라 했다.


오령(烏嶺) : 본부 서쪽 30리에 있다. 위에 석탑(石塔)이 있는데, 속칭 호종탑(胡宗塔)이라 한다.


광성령(光城嶺) : 본부 동쪽 30리에 있는데, 매우 높고 험하다.


장평령(長平嶺) : 본부 서쪽 2백 25리 지점이 되는 평안도 맹산현 경계에 있다.


진술산(鎭戌山) : 본부 동쪽 45리에 있는데, 돌 성의 옛터가 있다.


죽전령(竹田嶺) : 본부 서쪽 1백 80리에 있다.


마유령(馬踰嶺) : 본부 서북쪽 2백 10리 지점이 되는 평안도 희천군

 

3. 함경도 정평도호부 定平都護府 → 함남 정평군


◎위치:동쪽으로는 해안(海岸)까지 30리, 남쪽으로는 영흥부(永興府) 경계까지 45리, 서쪽으로는 평안도 영원군(寧遠郡) 경계까지 1백 25리, 북쪽으로는 함흥부(咸興府) 경계까지 2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8백 21리이다.


[산]


비백산(鼻白山) : 본부 북쪽 4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도성산(到城山) : 본부 서쪽 10리에 있다.


검산(劒山) : 장곡현(長谷縣)에 있으니, 본부와는 서쪽으로 1백 리가 떨어져 있다.


도안산(道安山) : 본부 남쪽 50리에 있다.


당산(堂山) : 본부 남쪽 45리에 있다.


원정현(元定峴) : 본부 남쪽 32리에 있다.


성산(城山) : 예원현(豫原縣)에 있으니, 본부 남쪽 33리에 있다.

 

4. 함경도 고원군 高原郡 → 함남 고원군


◎위치:동쪽으로는 영흥부(永興府) 경계까지 15리, 북쪽으로는 영흥부 경계까지 20리, 남쪽으로는 문천군(文川群) 경계까지 15리, 서쪽으로는 평안도 양덕현(陽德縣) 경계까지 1백 1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7백 16리이다.


[산]


가산(?山) : 군 북쪽 1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웅망산(熊望山) : 군 북쪽 13리에 있다.


구룡산(九龍山) : 군 서쪽 70리에 있다.


굴성산(屈城山) : 군 북쪽 15리에 있다.


벌라산(伐羅山) : 군 서쪽 10리에 있다.


학산(鶴山) : 군 서쪽 40리에 있다.


관여령(串餘嶺) : 군 서쪽 1백 10리 지점에 있는 평안도 양덕현(陽德縣) 경계에 있다.


죽전령(竹田嶺) : 군 서쪽에 90리에 있다

 

5. 함경도 안변도호부 安邊都護府 → 북한지역 강원도 안변군


◎위치:동쪽으로 강원도 흡곡현계(?谷縣界)까지 95리이며 남쪽으로는 농도 이천현계(伊川縣界)까지 88리요, 동도 회양부계(淮陽府界)까지 85리이며 서쪽으로는 관내 영풍현계(永?縣界)까지 90리이고, 강원도 평강한계(平康縣界)까지 1백 5리이며 북쪽으로는 덕원부계(德源府界)까지 25리이요, 서울과의 거리는 5백 84리이다.


[산천]


학성산(鶴城山) : 본부 동쪽 5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그 형상이 학(鶴)모양과 흡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이름한 것이다.


검봉산(劍峯山) : 본부 서남쪽 35리에 있다. 본명은 설봉산(雪峯山)인데 산위에 세 개의 석봉(石峯)이 높이 있기 때문에 속칭 검봉이라 한다.


오압산(烏鴨山) : 일명 황룡산(黃龍山)이라고도 하며 본부 동쪽 60리에 있는데, 극히 높고 남쪽으로 철령(鐵嶺)과 연해 있다. 산마루에 못[池]이 있는데 날이 가물 때에 비를 빌면 매양 그 감응이 있다 하며, 골짜기 속에 또 아홉 개의 못[淵]이 있다.


백운산(白雲山) : 본부 동쪽 10리에 있다. 풍류산(風流山) : 익곡현(翼谷縣)에 있는데 남쪽으로 90리 거리에 있다. 그 위에 못이 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를 공중에서 때로 음악소리가 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했다는 것이다. 철령(鐵嶺) : 본부 남쪽 83리에 있다. 고려 때에 관문(關門)을 설치하고 철관(鐵關)이라 불렀다.

○ 정도전(鄭道傳)의 시에, "철령(鐵嶺)의 산은 높이 칼날과도 같은데, 동쪽으로 바다 하늘을 바라보니 아득 하기만 하다. 가을바람은 유난스러이 양쪽 귀밑을 불어 스치는데, 말을 몰아 오늘 아침에 북녘 변방에 왔노라." 하였다.

○ 변중량(卞仲良)의 시에, "철관성(鐵關城) 아랫길은 멀리도 뻗었는데, "안계(眼界)에 가득히 들어오는 노을과 물결엔 해도 기울었구나, 남으로 가고 북으로 오는 사이에 봄은 저물려 하는데, 가는 곳마다 말머리에 해당화(海棠花)가 피었네." 하였다.


신증

●남곤(南袞)이 절도사(節度使) 이장곤(李長坤)을 보내는 부(賦)에, "등주(登州) 남쪽과 연성(連城) 북녘에 큰 산들이 깎아지른 듯 하늘로 치솟으니, 그 산세가 국토를 가로질렀다. 장백산(長白山)에 뿌리를 박고 뻗어나가 남으로 수천리를 달려와서 넓게 모였다. 그 길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당시에는 다만 만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이 보일 뿐이라, 우공(愚公)은 머뭇거리다가 도로 물러가고, 거령(巨靈)도 손바닥만 어루만지다가 피해 갔다네. 인가와는 서로 막혀 통하지 않았고, 풍기(風氣)조차도 다른 구역과 막혀 있었으리.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어느 연대(年代)에 있었는지. 새[鳥]나 넘는 이 길을 찾아 뚫었단 말인가. 처음엔 실 같은 외줄기 숲 밖으로 빙빙 돌더니, 점점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암석 사이로 서리었다네. 인마(人馬)가 이미 통하게 됨에 따라 평탄한 큰 길을 개척하였고, 고려(高麗) 때엔 이곳에 관문을 설치하고 철관(鐵關)이라 불렀다네. 아, 슬프다, 백이(百二) 험한 요새지에서 몇 왕대(王代)의 분쟁을 겪었던고, 나는 상상하건대, 윤관(尹瓘)이 북정(北征)할 때 예왕(睿王) 같은 영명한 임금을 만나 누대(累代)에 쌓였던 분한(憤恨)을 일거에 소탕(掃蕩) 숙청(肅淸)하려고 생각하였다네. 위봉(威鳳)이 절월(節鉞)을 받고 장춘(長春 땅 이름)에 군사를 주둔하고는, 10만 대군을 몰아 천리 밖에 원정할 적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군사를 쓰던 효릉(?陵)을 흘겨보고 한신(韓信)이 행군하였던 정형(井?)을 밟아 들어가니, 원수(元帥)가 관문(關門)을 떠나기도 전에 그 위엄이 이미 오랑캐 땅에 떨치었는지라, 달아나는 적병을 추격하여 파지(巴只 땅 이름)까지 나가고, 땅을 개척하여 아홉 개의 성(城)을 쌓음에 이르렀다. 개가(凱歌)를 부르며 돌아오매, 고갯길도 평탄하였으니 그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던가. 국세가 쇠퇴함에 미쳐서 조휘(趙暉)탁청(卓靑)의 역적이 있어 나라를 배반하고 오랑캐 원(元) 나라에 붙어 화령(和寧)땅을 훔쳐서 웅거(雄據)하니, 의관(衣冠)이 관문을 경계로 한계를 그었고 반쪽 변방의 초목이 오랑캐에게 더럽힘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내안(乃顔)의 잔당이 흉악하게 침입하여 개원령(開元嶺)을 넘어 화주(和州)등주(登州)를 노략하여 사람을 죽여 양식을 삼으니 어린아이들이 남지 않았다. 관군이 적의 그림자만 보아도 뿔뿔이 달아나 주력이 무너지고, 추악한 그들은 북을 울리며 관문으로 들어왔다. 정수기(鄭守琪)와 나유(羅裕)는 또한 어떤 사람이드냐. 무슨 낯으로 밝은 해를 보았던가. 비록 생명을 보전코저 나라를 저버렸다지만 어찌 나라가 멸망하고도 몸이 온전할 수 있다던가. 천험(天險)의 성곽을 버리고 지키지 않아서 백만의 병력이 흉악한 적의 손에 섬멸되고 말았네. 또한 기강이 해이함을 볼 수 있으며, 나라의 운명도 이로 인하여 쇠퇴하였다. 지금까지도 한떨기 나뭇가지 첩첩한 낙엽마저 그 분통한 빛을 띠고 있으리니 오히려 그 당시를 위하여 간사한 무리들을 베고 싶구나. 성이니 풍패(?沛)에서 일어나시니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케 하는 큰 뜻을 두시었네. 철관(鐵關) 서쪽에 살기가 가득한지라 잔악한 무리들을 제거하여 동한(東韓)의 안녕을 되찾았으며, 땅의 경계를 정하고 산하를 다 차지하였으니, 옛날의 외적들 있던 곳이 이제는 지경 안에 있게 되었다. 누가 동봉(東封)의 일환(一丸)을 빌려 관방(關防)을 헐어버리고 다시 기찰(譏察)함이 없이 다만 지나가는 길손들의 한가로운 모습만 보게 하였나. 아, 산천은 변함이 없으니 성패의 길이 다르고 험준 견고함은 예와 같아도 흥하고 쇠한 자취가 다른 것이 어찌 그 시세(時勢)의 이롭고 불리함이 사람이 모사를 잘하고 못하는 데 연유하고, 인재를 쓰고 버리는 것이 나라 세력의 강하고 약함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그 나라를 굳게 함은 산하의 험준함으로써 하지 아니하니, 형세의 이로움이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 덕을 닦지 않으면 한 배 가운데의 사람도 적국이 되나니, 위후(魏侯)의 아름다운 강산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금중(禁中)의 염파(廉頗)이목(李牧 전국시대 조(趙) 나라의 명장)이 족히 당(唐) 나라의 국위를 떨친다는 것이다. 오직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장성(長成)이 되는 것은 고금이 같으니, 고려 때 상고해 보더라도 자명한 일이다. 내가 그대의 가는 것을 전송(餞送)하려 울퉁불퉁한 높은 고갯길을 올라가니, 돌아가는 구름은 빽빽하게 응결하여 찬 비를 재촉해 좔좔 퍼붓는구나.긴 칼 빼어들고 휘파람 불어 이별에 어지러운 이 마음을 끊었노라. 어찌하면 그대와 더불어 꽁무니를 수레로 삼아 신마(神馬)를 몰아서 큰 사막을 넘고, 푸른 연하(煙霞)를 헤치며 백두산(白頭山)의 정상에 올라 윤관(尹瓘)의 공적비(功績碑)를 어루만지고, 바다에 임하여 푸른 물결을 잔질하여 가슴 가운데에 불평을 씻고 군신(君臣)이 같이 즐기는 징초(徵招)의 악장(樂章)을 연주하며 돌아와 호월일가(胡越一家)의 가사(歌詞)를 임에게 바쳐볼까." 하였다 법호현(法乎峴) : 본부 동쪽 20리에 있다.노리현(老里峴) : 본부 서쪽 55리에 있다. 고개 위에 장성(長城)을 쌓았고 연대(煙臺)가 있는데 옛날에 관방(關防)으로 쓰이던 곳이다. 이 길은 황해도에 통한다

 

6. 함경도 덕원도호부 德源都護府 → 북한지역 강원도 문천시


◎위치:동쪽으로는 해안(海岸)까지 7리요, 남쪽으로는 안변부계(安邊府界)까지 25리이며, 서쪽으로는 통부 관내 영풍현계(永?縣界)까지 30리이며 북쪽으로는 문천군계(文川郡界)까지 1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6백 35리이다.


[산천]


반룡산(盤龍山) : 부 서쪽 15리에 있다. 또 문천군(文川群)에도 보인다.


소의달산(所衣達山) : 부 북쪽 20리에 있다.


송산(松山) : 부 동북쪽 25리에 있다.


마수령(馬樹嶺) : 마식산(馬息山)이라고도 하는데, 부 서쪽 30리에 있다

 

7. 함경도 문천군 文川郡 → 북한지역 강원도 문천시


◎위치:동쪽은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은 같은 덕원부 경계까지 17리, 서쪽은 평안도 양덕현(陽德縣) 경계까지 54리, 북쪽은 고원군(高原郡) 경계까지 33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6백 68리이다.


[산천]


반용산(盤龍山) : 군 서남쪽 2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천불산(天佛山) : 군 북쪽 25리에 있다.


보현산(普賢山) : 군 북쪽 10리에 있다.


두리산(頭里山) : 군 서쪽 50리에 있다

 

8. 함경도 북청도호부 北靑都護府 → 함남 북청군


◎위치:동쪽은 이성현(利城縣) 경계까지 68리, 남쪽은 함흥부(咸興府) 경계까지 80리, 서쪽은 홍원현(洪原縣) 경계까지 56리, 북쪽은 갑산부(甲山府) 경계까지 1백 68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83리이다.


[산천]


연덕산(連德山) : 부 서쪽 2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대덕산(大德山) : 부 북쪽 20리에 있다.


입석산(立石山) : 부 동쪽 60리에 있다. 산 위에 서 있는 돌이 있고, 북쪽 기슭에 또 서 있는 돌이 있는데, 높이가 36척이고 넓이가 12척이나 되어, 마치 비(碑)를 세워놓은 것 같다.


성대산(聖代山) : 부 북쪽 81리에 있다.


죽파산(竹坡山) : 부 서쪽 99리 함흥부 경계에 있다.


중산(中山) : 부 동쪽 35리에 있다.


승방동산(僧房洞山) : 부 서쪽 45리에 있다.


대동산(大洞山) : 부 북쪽 20리에 있다.


후치현(厚致峴) : 부 북쪽 1백 9리에 있다.


●만령(蔓嶺) : 부 북쪽 68리 이성현(利城縣) 경계에 있다. 성화(成化) 3년에 이시애(李施愛)가 길주(吉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정평(定平) 이북에는 사람과 물화가 서로 통하지 못하자, 관군(官軍)이 토벌하려고 이 고개에 이르렀다. 이시애가 그 군병을 다 거느리고 와서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크게 패하여 도망하는 것을 마침내 생포하여 베었다.

○ 양성지(梁誠之)의 <평삭방서(平朔方序)>에 이르기를, "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성상께서 임어하옵신 13년 여름 5월에 적신(賊臣) 이시애가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니, 성상께서 크게 분노하여 도총사(都摠使) 신(臣) 준(浚 귀성군(龜城君)과 부사(副使) 신 석문(錫文 조석문(曺錫文))에게 명하여 서울의 군사 3천 명을 영솔하고 가서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또 진북장군(鎭北將軍) 신 순(純 강순(康純))에게 명하여 평안도의 군병을 영솔하게 하고, 정로장군(征虜將軍) 신 중선(仲善 박중선(朴仲善))에게 명하여 황해도의 군병을 영솔하여 양덕령(陽德嶺)을 넘어 토벌케 하였다. 또 신 준(俊)신 유림(有臨 최유림(崔有臨) )신 진충(進忠)신 의견(義堅)신 교(嶠 김교(金嶠))신 자경(子慶 오자경(吳子慶)) 등에게 명하여 경기충청전라강원도의 군병을 영솔하고 이 싸움을 돕게 하였다. 대군(大軍)이 모두 함흥부(咸興府)로 회합하니, 모두 3만 명인데, 북청으로 나가서 진(陣)을 쳤다. 6월 정사일에 적(賊)이 밤을 타고 돌격해 온 것을 여러 장수가 나가 싸워 크게 격파하고 지세(地勢)가 불리하여 홍원(洪原)으로 물러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7월 정해일에 적이 임명한 북청부사라는 자가 부임해 와서 바야흐로 풍악을 벌이고 잔치를 베풀어 술 마시고 있는 것을 우리의 군사가 정탐하여 알게 되었다. 이에 정예(精銳)한 군사를 보내어 공격해 들어가서 거의 다 죽이고 들어가 북청창(北靑倉)을 점거(占據)하니 이때 적들은 이성(利城)에 해안을 의지해 진을 치고 있었다. 8월 정유일에 우리 대군이 진격해 나가니, 적은 방패로 앞을 가리고 쏘는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우리 군사가 칼날을 무릅쓰고 올라가서 싸움이 한창 격렬할 무렵에 대장(大將) 어유소(魚有沼)가 해변을 따라 험하고 막힌 데를 넘어 들어갔다. 적은 불의에 관군이 그 배후로 좇아 내려오는 것을 보고 죽을 힘을 내어 마구 싸웠으나 우리 군사도 용기 백배하여 오시(午時)로부터 유시(酉時)에 이르도록 일대 접전을 벌였다. 적의 괴수가 기(旗)를 버리고 먼저 도망하여 드디어 대패했다. 우리의 대군이 승세(勝勢)를 타고 추격하여 수천 급(級)의 머리를 베고, 마천(磨天)마운령(磨雲嶺)을 넘어 길주(吉州)의 영동역(嶺東驛)에 이르니, 적의 괴수는 그의 주거를 불사르고 처자와 수백 기(騎)의 부하를 이끌고 명원참(明源站)까지 도망하였다. 그러나 적의 부하 장수 이주(李珠) 등이 적의 괴수를 결박지어 투항(投降)해 왔으므로 진 앞에서 베이고 그 머리를 서울로 보내왔다. 전하께서 경내에 대사(大赦)를 내리시고 3일간 저자에 그 머리를 효시(梟示)하였다. 다만 일부의 군사만을 머물러 두어 북방을 진압하게 하고는, 참가한 군사들에게는 주식(酒食)을 내려 먹인 뒤에 파해 보냈다. 인하여 3년간 복호(復戶 조세와 부역을 면케 하는 것)하게 하였으며, 대소의 장사(將士)들에게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차등있게 베풀었다. 신은 그윽히 생각하건대, 함길도는 본시 조종(祖宗)께서 기업을 창건한 땅으로 다른 도에 견줄 바 아니니, 만약 수개월만 더 적이 점거하였다면 그 해독을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군사를 보낸 지 수개월에 세 번 싸워 큰 도적을 평정하였으니, 이것이 비록 천지와 조종이 음으로 도우셨기 때문이지만 실상은 지혜로운 꾀와 신묘한 계산으로 실수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신의 직책이 사국(史局)을 더럽히고 있으나 마땅히 대서 특서하여 그 무공(武功)을 만대(萬代)에 밝히는 바이다." 하였다.


건자개현(乾者介峴) : 만령(蔓嶺)과 8리 거리에 있다. 혹자는 이시애가 이곳에서 전패하였다고도 한다.


마본령(馬本嶺) : 부 북쪽 1백 67리 갑산부(甲山府) 경계에 있다.




향령(香嶺) : 부 북쪽 1백 30리에 있다.


김창기이(金昌岐伊) : 부 북쪽 1백 13리 단천군(端川郡) 경계에 있다.


허건려이령(虛件驢耳嶺) : 부 북쪽 1백리 48리에 있다.


9. 함경도 단천군 端川郡 → 함남 단천시


◎위치: 동쪽은 길성현(吉城縣) 경계까지 66리, 남쪽은 이성현(利城縣) 경계까지 37리, 서쪽은 경계까지 45리, 갑산부(甲山府) 경계까지 1백 86리, 북쪽은 야인지(野人地) 경계까지 1백 7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2백 78리이다.


[산]


덕산(道德山, 진산 鎭山)


증산(甑山)


천봉산(天鳳山)


말흘라산(末訖羅山)


오봉산(五峯山)


회산(廻山)


덕응주산(德應州山)


마운령(磨雲嶺, 일명 두을외대령 豆乙外大領)


마천령(磨天領, 일명 이판령 伊板嶺)


홍군파(紅軍坡)


갈암(烏曷巖)


도라화산(都羅和山)

   

10. 함경도 이성현 利城縣 → 함경남도 리원군 일대



◎위치:동쪽은 단천군(端川郡) 경계까지 45리,북쪽은 단천군 경계까지 34리,남쪽은 북청부(北靑府) 경계까지 37리이며,서쪽은 같은 북청부 경계까지 43리이고,서울과의 거리는 1천 1백 89리이다.


[산천]


진산(鎭山) : 본현 서쪽 22리에 있다.


성산(城山) : 본현 서쪽 8리에 있다.


영취산(靈鷲山) : 본현 남쪽 25리에 있다.


회산(檜山) : 본현 서쪽 40리에 있다. 날이 가물어 비를 빌면 번번히 감응이 있다 한다.


오봉산(五峯山) : 본현 북쪽 15리에 있다.


운달산(雲達山) : 본현 북쪽 16리에 있다.


궐파산(蕨坡山) : 본현 서쪽 35리 북청부계(北靑府界)에 있다.


좌익령(佐翼嶺) : 본현 북쪽 35리인 단천군계(端川郡界)에 있다.


만령(蔓嶺) : 본현 남쪽 37리에 있다. 북청부 산천 조항에 자세히 나와 있다.


마운령(磨雲嶺) : 본현 동쪽 44리 단천군계에 있다. 옛날에 오랑캐를 막던 곳으로 문기(門基)와 추석(樞石)이 있다. 또한 문현(門峴)이라고도 한다.


다포산(多布山) : 본현 남쪽 34리에 있다.


오갈암(烏曷巖) : 본현 동쪽 20리 지점 바다 가운데 있다.


형제암(兄弟巖) : 본현 동쪽 23리에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이 대치(對峙)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11. 함경도 홍원현 洪原縣 → 함경남도 홍원군


◎위치:동쪽으로 북청부계(北靑府界)까지 53리이요, 남쪽으로는 해안(海岸)까지 4리이며, 서쪽으로는 함흥부계(咸興府界)까지 37리이며 북쪽으로도 동부계(同府界)까지 64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9백 75리이다.


[산천]


두무산(豆蕪山) : 본현 북쪽 85리에 있다.


황가라산(黃加羅山) : 본현 동쪽 35리에 있다.


대문령(大門嶺) : 본현 동쪽 30리 허에 있는데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동으로 달려 뻗은 것이 있고, 또 남쪽으로 굽이굽이 바다에 이르렀다. 고개를 따라 서성(西城)이 있고, 성에 문 세 개가 있어 행로를 통하게 하였다. 서쪽 문을 대문(大門)이라 이르고, 가운데 문을 중문(中門)이라 이르고, 남쪽 문을 석문(石門)이라 이른다. 석문은 해변에 있으며, 세 문의 거리가 모두 3리 가량 되었다. 신우(辛禑) 때에 심덕부(沈德符)가 왜적(倭賊)과 고개 북쪽에서 싸워 대패하였다.


차유령(車踰嶺) : 본현 서쪽 50리 함흥부와의 경계에 있다.


함관령(咸關嶺) : 본현 서쪽 37리 함흥부와의 경계에 있다.


묘봉산(妙峯山) : 본현 동쪽 35리에 있다.

 

12. 함경도 갑산도호부 甲山都護府 → 량강도 갑산군


◎위치:동쪽으로는 건주위(建州衛) 동량북계(東良北界)까지 1백 5리요, 남쪽으로는 단천군계(端川郡界)까지 90리, 북청부계(北靑府界)까지 1백 32리이며, 서쪽으로는 삼수군계(三水郡界)까지 65리이며, 북쪽으로는 혜산진(惠山鎭)까지 1백 15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3백 83리이다.


[산]


천봉산(天鳳山) : 본부 동쪽 8리에 있으니 진산(鎭山)이다.


장평산(長平山) : 본부 동쪽 15리에 있다.


오음회령(吾音會嶺) : 본부 서쪽 50리에 있다.


마본령(馬本嶺) : 본부 남쪽 1백 32리에 있다. 북청부계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웅이령(熊耳嶺) : 본부 남쪽 64리에 있다.


응덕령(鷹德嶺) : 본부 남쪽 1백 6리에 있다.


아질간령(阿叱間嶺) : 본부 북쪽 55리에 있다.


오로촌령(吾老村嶺) : 본부 남쪽 90리 단천군계(端川郡界)에 있다.


혜산령(惠山嶺) : 본부 북쪽 90리에 있다.


녹반현(綠礬峴) : 본부 북쪽 91리에 있다.


유파현(楡波峴) : 본부 남쪽 56리에 있다.

 

13. 함경도 삼수군 三水郡 → 량강도 김정숙군


◎위치:동쪽으로는 갑산부계(甲山府界)까지 1백 25리이고, 남쪽으로는 함흥부계(咸興府界)까지 3백 44리이며, 서쪽으로는 평안도의 고 무창군계(古茂昌郡界)까지 1백 10리이며, 북쪽으로는 압록강(鴨綠江)까지 1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5백 73리이다.


[산]


장령(長嶺) : 본군 동쪽 57리에 있다.


소라동령(所羅洞嶺) : 본군 동쪽 1백 25리에 있다.


오봉산(五峯山) : 본군 남쪽 8리에 있다.


이방령(李方嶺) : 본군 동쪽 59리에 있다.


사동령(蛇洞嶺) : 본군 남쪽 61리에 있다.신로령(新路嶺) : 본군 남쪽 1백 67리에 있다.성파령(城坡嶺) : 본군 남쪽 2백 73리에 있다.

 

14. 함경도 경성도호부 鏡城都護府 → 함북 송평구역. 라남구역


[산천]


조백산(祖白山) : 부(府)의 서쪽 5리에 있고 진산(鎭山)이다.


설봉산(雪峯山) : 부의 북쪽 32리에 있다. 길성현(吉城縣)에도 나타나 있다.


백산(白山) : 부의 서쪽 1백 10리에 있다. 산세가 매우 험하여 5월이 되야 눈이 녹으며, 7월이면 다시 눈이 쌓인다. 산꼭대기에는 나무의 키가 낮고 작다. 지방 사람들은 이 산도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른다.

○ 이색(李穡)이 장만호(張萬戶)를 전송하는 시에, "장백산은 높고 험준하며 철령관(鐵嶺關)은 우뚝하여 산맥은 몇 천리나 뻗어 내려 천연적으로 험한 곳이므로 넘어다닐 수 없네. 해단(奚丹)의 여러 종족들이 산짐승처럼 살면서, 활과 화살을 휘두르며 달리고 싸우는 것을 생활로 삼고 있으니, 이 지역을 다니며 살펴보니 긴 탄식이 절로 나네. 가을풀이 쓸쓸한 가운데, 윤관(尹瓘)이 세웠던 비석이 묻혀 있도다. 집현학사(集賢學士)이며 상장군(上將軍)이 임금의 명령을 받고 지방의 군무(軍務)를 맡았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성을 사랑하니 어찌 큰 것을 좋아하리오마는, 짐승처럼 미쳐 날뛰는 것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도다. 전쟁이란 예로부터 그 출발을 매우 신중히 여기는 바이며, 먼저 민간의 고통을 돌보아 극히 세밀한 곳까지 다 살펴야 하네. 서리 내리는 가을인 듯 하기도 하고 따뜻한 봄날이 되기도 하는 병영(兵營)에서 국경지대에는 원한을 품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즉시 동해의 물결을 쏟아 가지고, 영원토록 마르지 않는 술을 빚으리. 모든 사람이 흠씬 취하고 한마음이 되게 하여 대대로 우리 임금을 해와 달처럼 받들게 하라. 그리고 스스로 강한편(江漢篇)의 시를 지어서 말을 달려와, 황금 대궐 안에 바치리라." 하였다.


제왕산(諸王山) : 부의 남쪽 45리에 있다. 동쪽은 바다에 닿았다.


중봉산(中峯山) : 부의 남쪽 1백 8리에 있다.


주산(雲住山) : 부의 남쪽 60리에 있다.


입암(立巖) : 부의 남쪽인 간합리(幹合里)에 있다. 높이가 2백여 길[丈]이다. 이 지방 사투리에 돌을 간합(幹合)이라고 하므로, 그대로 땅이름으로 붙였다.


광암(廣巖) : 부의 남쪽 1백 17리에 있다.입암(笠巖) : 부의 남쪽 1백 50리에 있다.

 ○ 이상의 바위 셋이 솥발처럼 솟아 있는데 매우 기괴하다.


오봉산(五峯山) : 부의 남쪽 65리에 있다.


백록산(白鹿山) : 부의 남쪽 1백 40리에 있다.


강릉산(江陵山) : 부의 남쪽 1백 10리에 있으며, 남쪽은 바다에 닿았다.


허수라현(虛修羅峴) : 부의 서쪽인 부령(富寧)의 북쪽 경계에 있다. 적(賊)의 통로를 지키며 탐색하는 곳이다.

 

15. 함경도 길성현 吉城縣 → 함경북도 길주군의 조선시대 이름


◎위치:동쪽은 명천현(明川縣) 경계까지 10리,북쪽은 명천현의 경계까지 32리,남쪽은 바다까지 1백 27리,서쪽은 단천군(端川郡) 경계까지 1백 19리,서울까지는 1천 4백 64리이다.


[산천]


산(圓山) : 두리산(豆里山)이라고도 한다. 현의 서쪽 2백 95리에 있다. 동쪽에는 또 소두리산이 있다.


마천령(磨天嶺) : 현의 서쪽 1백 30리에 있다.


장백산(長白山) : 현의 서쪽 1백 16리에 있다. 경성부 항목에 상세하다.


성불산(成佛山) : 현의 서쪽 45리에 있다.


도산(刀山) : 현의 서쪽 44리에 있다.


장덕산(長德山) : 현의 동쪽 5리에 있다.


설봉산(雪峯山) : 현의 서쪽 72리에 있다

 

16. 함경도 명천현 明川縣 → 함북 명천군


◎위치:동쪽은 경성부(鏡城府) 경계까지 6리, 북쪽은 같은 부(府) 경계까지 7리, 남쪽은 바닷가까지 1백 70리, 서쪽은 길성현(吉城縣) 경계까지 44리이고, 서울까지는 1천 5백 56리이다.


[산천]


영평산(永平山) : 현의 남쪽 32리에 있는 진산이다.

 

마유산(馬乳山) : 현의 남쪽 1백 64리에 있다.


칠보산(七寶山) : 현의 동쪽 56리에 있다.


백록산(白鹿山) : 현의 서쪽 59리에 있다.


가을마산(加乙?山) : 현의 동남쪽 1백 73리에 있다.


국화대산(菊花臺山) : 현의 남쪽 1백 25리에 있다.


우화령(于禾嶺) :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숭산(崇山) : 현의 남쪽 31리에 있다. 산꼭대기에 이상한 바위가 우뚝히 서 있다.

 

17. 함경도 경원도호부 慶源都護府 → 함북 새별군.은덕군


◎위치:동쪽은 경흥부(慶興府) 경계까지 96리,남쪽은 바다까지 1백 65리,서쪽은 온성부(穩城府) 경계까지 19리,북쪽은 두만강까지 16리요,서울과의 거리는 2천 1백 44리이다.


산천


증산(甑山) : 부의 서쪽 31리에 있다. 산꼭대기에 시루[甑]와 같이 생긴 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희악산(希岳山) : 부의 남쪽 85리인 경흥부(慶興府)와의 경계에 있다.


복호봉(伏胡峯) : 부의 동쪽 10리에 있다.


운봉산(雲峯山) : 부의 남쪽 22리에 있다.


마유산(馬乳山) : 부의 북쪽 25리에 있다. 산꼭대기에 말 젖[馬乳]과 같이 생긴 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나단산(羅端山) : 부의 남쪽 34리에 있다. 산 위에 돌이 7개가 늘어서 있는데, 이것을 칠보석(七寶석)이라 한다. 오랑캐는 일곱을 나단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또 종성부(鍾城부)의 항목에도 보인다.


경관령(慶關嶺) : 부의 서쪽 18리인 온성부(穩城府)의 경계에 있다.


회호로하대산(回呼老下大山) : 부의 서쪽 29리에 있다.

 

18. 함경도 회령도호부 會寧都護府 → 함북 회령시


◎위치:동쪽은 바다까지 1백 49리, 남쪽은 부령부(富寧府)의 경계까지 68리, 서쪽은 두만강까지 6리, 북쪽은 종성부(鍾城府) 경계까지 30리, 서울과의 거리는 1천 9백 21리이다.


[산천]


오산(鰲山) : 부의 서북쪽 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두만강(豆滿江)가에 있다.


원산(圓山) : 부의 동쪽 25리에 있다.


염통산(念通山) : 부의 남쪽 35리에 있다.


상문령(上門嶺) : 부의 서쪽 15리에 있다.


하문령(下門嶺) : 부의 서쪽 6리에 있다.


죽포령(竹苞嶺) : 부의 북쪽 15리에 있다.


갈파령[加乙坡嶺] : 부의 동쪽 85리에 있다. 고개 위에 갈랫길 셋이 있다.


쌍개암(雙介巖) : 부의 남쪽 1백 43리에 있다. 높이가 10여 장(丈)이다. 중간에 구멍 둘이 있어서 물이 언제나 솟아난다. 오랑캐는 구멍을 쌍개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동쪽 1리쯤 되는 곳에 또 바위가 바닷가에서 마주보고 있는데 양쪽 벼랑이 천 척이나 되며, 위에 깊은 못이 있는데 가물 때에 비오게 해달라고 빌면 효험이 있다.


우라한현(于羅漢峴) : 부의 서남쪽 45리에 있다, 백두산의 남쪽 지맥이다.


전괘현(錢掛峴): 부의 동남쪽 79리인 부령부(富寧府)와의 경계에 있다.


오산(鰲山)


●백두산(白頭山) :바로 장백산(長白山)이다. 부의 서쪽으로 7, 8일 걸리는 거리에 있다. 산이 모두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2백 리요, 가로는 천리에 뻗쳐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리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아야고하(阿也苦河)이다." 라고 했는데, 아마 속평강(速平江)을 가리킨 듯하다. 다음은 모두 두만강 밖에 사는 야인(野人)의 지역이다. 고라이(古羅耳)사오이동(沙吾耳洞)상가하(常家下)아적랑이(阿赤郞耳)하다가사(下多家舍)벌인(伐引)무을계(無乙界)상동량(上東良)중동량(中東良)하동량(下東良)어후강(魚厚江)후훈(厚訓)박가천(朴加遷)검천(檢天).

 

19. 함경도 종성도호부 鍾城都護府 → 함북 온성군


◎위치:동쪽은 온성부(穩城府) 경계까지 27리,북쪽은 같은 부의 경계까지 87리,서쪽은 두만강(豆滿江)까지 1리,서울과의 거리는 2천 38리이다.


소백산(小白山, 진산 鎭山)


동건산(童巾山)


나단산(羅端山)


광덕산(廣德山)


녹야현(鹿野峴) 곡암(斛巖)


녹야현(鹿野峴)


향고개(香古介)


국사당 중령(國祠堂中嶺)


유성동현 중령(柳城洞峴中嶺)


가을파령(加乙坡嶺)


증산(甑山)


임천산(林泉山)

 

20. 함경도 온성도호부 穩城都護府 → 함북 온성군


◎위치:동쪽은 경원부(慶源府) 경계가 34리, 남쪽은 바다가 2백 61리, 서쪽은 종성부(鍾城府) 경계가 37리, 북쪽은 두만강이 5리, 서울까지의 거리는 2천 1백 1리이다.


남산(南山)


귀암봉(龜巖峯)

 

21. 함경도 경흥도호부 慶興都護府 → 함북 선봉군


◎위치:동쪽으로 조산포(造山浦)가 35리, 남쪽은 바다가 40리, 서쪽은 경원부 경계가 36리, 북쪽은 두만강이 35리, 서울과의 거리는 2천 2백 5리이다.


백악산(白岳山)


아양관산(我羊串山)


초관산(草串山)

 

22. 함경도 부령도호부 富寧都護府 → 함북 부령군.청암구역.신암구역.라진시


◎위치:동쪽은 바다가 83리, 남쪽은 경성(鏡城府) 경계가 62리, 서쪽은 야인(野人)이 거주하는 경계가 35리, 북쪽은 회령부(會寧府) 경계가 38리, 서울과의 거리는 1천 8백 15리이다.


두리산(豆里山)


석막산(石幕山)


형제암(兄弟巖)


청암산(靑巖山)


회봉산(回峯山)


쌍계산(雙溪山, 일명 청계산 淸溪山)


동랑산(冬郞山)


운봉산(雲峯山, 일명 운룡산 雲龍山)


타락산(駝駱山)


복호봉(伏胡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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